심야 식당 : 純하리?

 

- 현장을 뛰어다니며 만든 글이 아니라 책상 앞에서 문장을 만드니 위로는 졸라 뽕끼 작렬하는데 와 닿지가 않는다. 발성이 어버버버버한 배우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88세대를 위로한답시고 내놓은 작가의 대사나 통곡을 강요하는 연출가나 도긴개긴이다. 영혼 없는 위로와 힐링'이 삐딱하게 빠지면 좆되는 경우를 지금 당신은 보고 있습니다. 밝은 방송, 좋은 방송. 에쑤비에스....

 

 

 

 

                                            내가 혐오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순혈주의 . < 혈통 > < 뼈대 > 라는 포대기 신파 에 질려버렸다.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억척 어멈 모성 신화는 한국 사회의 병폐. < 억척 > 은 미덕이 아니라 부덕에 속한다. 좋게 말하자면 순혈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우생학이다과도한 애국심은 타자에게는 공포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순혈 > 은 순수, 전통, 원조, 재래라는 단어로 변형되어 혼용, 개량, 외래라는 단어와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100% ~ , 전통 방식, 원조 맛집 따위로 간판을 내건 광고일수록 가짜인 경우가 많다. 장충동 왕족발 거리를 걷다 보면 원조가 아닌 음식점이 없다. 원조란 으뜸이라는 차원을 떠나서 오리지널 이란 의미인데,

도대체 이 수많은 원조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 전통 > 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재래와 외래가 서로 섞이는 현상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 전통 이라는 명사가 붙는 순간 프리미엄이 더해진다. 종종, < 전통 시장 > 이라는 낱말 조합을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시장은 시장일 뿐이지, 도대체 전통 시장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 전통 음식이라는 말도 이상한 조합이다. < 전통 > < 옛것 > 이라는 의미라면 전통 음식은 옛날부터 내려온 음식이라는 뜻인데, 요즘은 전통 음식이 건강 음식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 식사하셨어요 ? ”가 안부를 묻는 인사말이 될 정도로 굶주린 사회에서 어렵게 구한 식재료로 만들었던 옛 음식이 과연 웰빙 음식이 될 수 있을까 ?

못 먹던 시절에 먹던 개떡은 웰빙 푸드가 아니라 그 시절에는 구황 음식이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재래와 외래가 교류하면서 섞인다. 그것은 타락이 아니다. 한자로 구성된 한글 단어를 타락한 언어로 인식하는 태도도 삐뚤어진 근성이다. 모든 언어는 오염된다. 그 오염은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휘를 풍부하게 만든다. 영어가 언어 권력으로 군림하는 원인에는 라틴어를 적극 끌어들여서 어휘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진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자의 유입은 한글을 오염시킨 것이 아니라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재래의 식재료와 외래의 식재료가 섞여서 새로운 요리로 발전했다. 맥적은 너비아니로, 너비아니는 불고기로 조금씩 변화했다.

시대에 따라 그 시대에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식재료로 요리를 만든다. 그것을 두고 과연 오염이나 타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 맥적 " 이 타락한 결과물이 " 불고기 " 일까 ? 웃긴 일. 하하, 비웃어도 된다. 이제는 순수한 사람에 대한 대중적 집착도 버려야 한다. 만화 << 심야 식당 >> 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동명의 SBS드라마 << 심야 식당 >> 이다. 관건은 일본 요리 중심인 원작을 어떻게 << 식객 >> 처럼 한국 요리'를 풀어서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들러 말하자면 첫 단추부터 망한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 메밀전 " 이었다. 왕년에 잘나가던 여배우였던 심혜진이 메밀전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한다. " 맞벌이 부모를 둔 덕에 동생들이 배가 고프다고 투덜대면 늦은 저녁 밤, 메일전을 부쳐 먹고는 했지요. 그때 먹었던 메밀전 맛을 잊지 못해요. 마스터가 요리한 메밀전은 깊고 따스한 맛이에요. "

 

크게 웃었다. 앞뒤 사정 모르는 아이들이 이 방송을 본다면 메밀 가루를 밀가루처럼 흔히 얻을 수 있는 식재료로 오해했을 것이다. 발로 현장을 취재하지 않고 책상머리 앞에서 글을 쓰면 이 꼴이 된다. 드라마 작가는 메밀이 꽤 손이 많이 가는 식재료라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김치전이라면 이해는 간다만 메밀전이라......  원작도 마찬가지지만 드라마 속 심야 식당은 순수한 사람 집합소'다. 그래도 원작은 만화이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만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드라마는 사정이 다르다. 순수한 사람에게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심야 식당 주소를 서울시 종로구 순하리'로 설정하는 것은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 이제는 그 순수함에 대한 찬양을 버려야 한다. 순수에 대한 찬양도 알고 보면 순혈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염된 맛이 좋다. " 마스터, 요리를 망칠 땐 마법의 라면 스프가 있답니다 ! " 언제부터인가 먹방과 요리 대결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었다. 삼시 세 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마음의 허기가 있기 마련이다. 요리 방송 열풍은 한국 사회가 허기 사회라는 점을 증명한다. 아니, 아사(餓死) 상태의 기아(飢餓) 사회'라는 말이 더 적확한지도 모르겠다. ​쓸쓸한 일이다.  허기 사회 앞에서 MSG가 아닌 싱싱한 식재료로 국물 맛을 내는 음식점을 찾아나서고, 밀가루가 섞이지 않은 메밀국수를 찾아나서고, 100% 도가니로 만든 수육을 찬양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 같다. 이따위 순혈 예찬은 지나가는 민들레에게 주시라. 배려심 많은 사람이면 좋지만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어도 좋다. 긴 생머리에 눈깔 곱게 내리까는 순종적인 여자가 아닌 약간 타락한 여자여도 좋다.

 

그리고 매사에 삐딱해도 되고, 아기 엄마가 보는 앞에서 지구가 내일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고백하는 철없는 넋두리에도 비판은 하지 말자.  타락한 사회에서 착한 사람으로 살기를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웃긴 일이 아닐까 싶다. 진흙 속에 핀 연꽃이 되라고 하기 전에 연꽃이 필 수 있는 아름다운 연못을 먼저 만들어 달라고 지적하자.  언제까지 우리가 성골(聖骨)의 시다바리나 하는 착한 성골(成骨)이 되어야 할까. 적,  당히... 눈치껏, 각자, 알아서, 삐뚤어지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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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주는 빨간 두꺼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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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7-0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관계없는 소리긴 한데 sbs에서 한국판 심야식당을 시작했더군요.
근데 하필 토요일 밤 12시에 하고 앉았으니 무슨 수로 그걸 보겠습니까? 자야지...ZZZ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6 13:41   좋아요 0 | URL
오, 마침 심야식당 드라마를 첨가했는데 그 점을 지적하셨네요. 전 보았습니다만... 정말 드럽게 만들었더군요.

cyrus 2015-07-0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에 늦잠을 자는 편이라서 어떤 드라마인지 궁금해서 마리텔 끝나고 SBS 채널로 돌렸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지역방송 프로그램을 하더군요. 우연하게도 지역방송 프로그램이 대구에 유명한 중국집을 소개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땐 허무했는데, 다음 날 방송 반응을 봤는데 안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 맛집을 소개하는 지역방송 프로그램이 재미있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6 14:04   좋아요 0 | URL
안 보길 다행이십니다. 요즘 이 드라마에 나왔던 발연기가 화제입니다. 진짜 웃겨씀니다.....함 찾아보세요..

5DOKU 2015-07-07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시당초 우리의 몸이, 우리가 쓰는 언어가 섞이고 떨어지고 수정되는 상호 작용의 결과물인데 단일 민족이라는 환상, 한글 전용이 최선이라는 맹목은 답답할 따름입니다. 물론 하나의 단어가 지닌 역사의 무게는 무시할 수 없고 굳이 외래어로 대체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것이 외래어 자체를 쓰지 못할 이유가 되진 않을 텐데 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7 11: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단일민족이라는 피 섞이지 않은 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7-0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통을 외치면서 정작 한국 전통문화는 파괴하고, 고유종교난 민속신화는 배타적으로 대하는 세상에서 순수라는 말은 웃기는 것이죠. 저라면 전통도 좋고 변화도 좋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문화재가 되는 물건들이 200년 전에는 문화재가 아니라 생활용품이란 점에서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7 11:48   좋아요 0 | URL
옳은 말씀입니다. 전통을 무슨 상업팔이로만 이용하려는 게 문제 같습니다.

수다맨 2015-07-0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가 나온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배우의 연기력이 좋지 않다고 해서 비난을 많이 사던 모양이더군요. 그런데 특정 배우의 연기력만 문제가 아니라, 음식에 대한 이해도 부족이 더 큰 문제였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7 18:45   좋아요 0 | URL
아니 누가 가래떡을 김에 싸서 먹습니까. 일본 사람이나 조미김에 구운 가래떡 싸서 먹지...

samadhi(眞我) 2015-07-07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스터 라는 호칭 자체부터 우리식이 아니지요 음식의 다양성(?)을 놓고 보면 우리식이 훨씬 유리할텐데요. 일본드라마 심야식당을 보면 흰밥에 날달걀 넣고 간장 뿌려먹는 것까지도 음식 종류 하나로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만 봐도요.
얘기 참 못 만들어내네요. 그래서 전 그 드라마가 아니 보고 싶어요. 주인공 배우 자체도 마음에 안들고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7 18: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다양성 하면 한국 음식이 짱 아닙니까. 못 먹는 풀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마스터..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무슨 놈의 마스터.. ㅋㅋㅋㅋㅋㅋ

2015-07-08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9 0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물에 대한 에티튜드, 첫 번째 이야기 : 편지

                                                                사물에 대한 에티튜드(ettitude)'라는 목록'을 하나 만들었다. 제목으로 굳이 태도나 자세'라는 말 대신 " 에티튜드 " 라는 외래어를 사용한 이유는 attitude에 essay를 덧대어 만들어낸 조합, ettitude'라는 데 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사물에 대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 목록'이라 해두자.

<< 사물에 대한 에티튜드 >> 첫 번째 이야기는 < 편지 > 다. 디지털 문화의 폐허를 이야기하며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말할 때 자주 호명되는 것이 " 손 편지 " 다. 손 편지'는 모니터 안에서만 떠도는 메일과는 다르다. 메일에는 없지만 편지에는 있는 것, 그것은 바로 < 글씨체 > 다. 메일이 0과1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글 맵시라면, 편지 속 글씨체'는 글쓴이의 고유한 서명'이다. 글씨체를 보면 그 사람 성격이 보인다. 실제로 범인이 보낸 협박 편지 속 글씨체를 통해 범인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여 사건을 해결한 예는 무수히 많다. 누군가가 범죄에 악용할 목적으로 편지를 흉내 낸다고 가정했을 때 문체를 모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글씨체'를 흉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이스미스의 << 재능 있는 리플리 씨 >> 에서 톰 리플리'가 모방하는 것은 서명이지 글씨체'가 아니다.

그는 서명을 흉내 내는 데에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기에 글씨체는 지문과 같이 그 사람 고유의 특징'이다. 반면 메일에는 글씨체가 없기에 문체만 흉내 내면 감쪽같이 수신자를 속일 수 있다. 이처럼 문장을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에둘러 가지 말고 서둘러 정리하자면 : 문체와 글씨체 라임을 맞추기 위해서 글씨체를 서체'라고 하겠다  는 다르다는 점이다. 보다 깊이 들어가면 < 문체 > 는 글쓴이의 성격을 드러내지만 < 서체 > 는 글쓴이의 성질을 나타낸다. << 성격 >> 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고, << 성질 >> 은 복수가 아니라 고유명사'다.  A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A와 같은 성질은 A가 유일하다.  생각해 보면 불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많다. 하지만 불이라는 물질(성질)이 물이 되는 경우는 없다.

그렇기에 < 편지 > 는 타인이 흉내 낼 수 있는 성격과 함께 타인이 흉내 낼 수 없는 성질이 혼용된 독특한 기표다. 편지는 대부분 정해진 기간 안에 수신자에게 무사히 도착되지만,  유통 과정에서 분실되거나 틀린 주소 따위로 수취인불명으로 되돌아오거나 엉뚱한 사람이 편지를 가로채거나 기이한 방식으로 너무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수신자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처벌을 받는다. 영화 <<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 에서 은행원 해원(지성원 분)이 겪는 고통은 복남(서영희 분)이 보낸 편지를 읽지 않은 것에 대한 징벌이다. 섬에서의 악몽 같은 날들을 겪고 집으로 돌아온 해원인 비로소 복남이 섬에서 보낸, 개봉하지 않은 편지를 발견한다. 그것은 정해진 기간 안에 수신인에게 도착한 편지이지만,

해원이 뜯지 않은 편지이기에 그녀가 편지봉투를 뜯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복남이 보낸 편지를 해원이 읽는 시점은 복남이가 죽은 이후'이기에 죽은 자가 보낸 편지'가 되었다. 영화 << 파이란 >> 도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에 속한다. 그는 편지를 읽고 나서 마음의 변화가 생겨 보스와 맺은 계약을 번복한다. 이 변심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 막스 오필스, 1948 >> 에서 바랑둥이 주인공은 남의 여자를 건드린 죄로 3시간 후에 결투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남자는 결투를 피하고자 비엔나를 떠나기로 마음 먹고 짐을 꾸리기 위해 집에 들렸으나 이름과 주소가 적히지 않은 편지를 읽게 된다.

여자가 죽고 난 후 도착한 편지'였다. 그는 도피 계획을 잠시 지연한 채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남자의 얼굴에는 짙은 회한이 배어 있다. 그는 애초의 계획을 변경하고 결투장으로 향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관객은 결투 결과를 알 수 없으나 결투장으로 향하는 그 남자의 행위가 < 자기 징벌 > 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편지들은 모두 수신자에게 죄의식'을 상기시킨다. 반면 포우의 << 도둑 맞은 편지 >> 와 이언 맥큐언의 << 속죄 >> 는 수신인이 바뀌거나 편지지가 바뀌는 바람에 불행이 찾아온다. << 도둑 맞은 편지 >> 에서는 여왕이 정부(情夫)에게 보내는 편지를 장관이 가로채고, << 속죄 >> 에서는 cunt라는 비속어를 남발한 저속한 편지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게 엉뚱하게 편지봉투에 담겨 수신자에게 도착한다.

이 배달 사고'는 letter를 litter(잡동사니)로 만든다. << 도둑 맞은 편지 >> 에서 장관은 중요한 편지letter 를 책상 위에 어질러놓는다(litter : 쓰레기, 어질러진 물건). 여왕이 보낸 수색대가 장관의 집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찾는 것은 허섭스레기(litter)가 아니라 편지(letter)였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 속죄 >> 에서는 쓰레기통(litterbin)에 들어가야 할 구겨진 편지지(litter)가 그만 실수로 letterbox 에 들어간다(정확히 말하자면 인편人便으로 배달된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밀란 쿤데라의 << 농담 >> 에서도 반복된다. 주인공 루드빅은 엽서에 악의 없는 농담을 썼다가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 변방의 탄광에서 석탄 캐는 일로 청춘을 보낸다. 그에게 남은 것은 복수와 증오뿐이다.

 

이들 작품과는 결이 다르지만 신경숙의 << 풍금이 있던 자리 >> 도 일종의 " 잘못된 편지 " 에 속한다. 서간체로 쓰여진 이 소설은 사랑의 망명을 하자는 가정 있는 남자에게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편지인데 결국에는 이 편지를 그에게 보내지 못한다. 형식은 가정 있는 남자에게 띄우는 것이나 사실은 독자를 향한 독백'에 가깝다. 수신인은 가정 있는 남자이지만 정작 그 편지가 도착한 곳은 독자'다. 그런 의미에서 << 풍금이 있던 자리 >> 는 잘못된 편지'다. 소설 속 " 나 " 는 이렇게 고백한다. " 이 글은 당신께 제 마음을 전해 드리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아무래도 이 글을 못 끝낼 것만 같습니다. " 그녀는 약속 장소에 가지 않는다. 사랑의 도피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편지 또한 완성되지 못한 채 도착하지 못했다.

 

편지의 실제 수신자 입장에서 보면 발신자인 " 나 " 의 편지는 주소지를 잃고 보류 중이거나 허공에 부류 중이다. 그렇기에 계획은 실패한다. 이처럼 정해진 기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수취인불명이거나, 뒤바뀌거나, 혹은 너무 늦게 읽은 편지는 영화와 문학 속에서 처벌의 기능을 작동한다. 편지가 부류하는 순간 그것은 유령이 띄우는 말이 되어 억압된 것의 회귀'가 된다. 혹여, 어디선가 당신의 불행을 알리는 전화벨이 울린다면 제일 먼저 우편함으로 달려가라. 뒤늦게 도착한 편지는 없는지, 뜯지 않고 방치한 편지는 없는지, 혹은 차마 못다 쓴 편지는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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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7-05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설에 따르면 저 당시 미혼이었던 신경숙과 유부남이었던 남진우가 서로 좋아했다고 하네요. 아마 저 소설은 신경숙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해 쓰였을 가능성이 꽤 높죠. 결국 남진우는 이혼을 하고 얼마 뒤 신경숙과 재혼을 했으니, 문학적으로는 편지가 수신자에게 닿지 못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제대로 배송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5 13:34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 살펴보니 이 소설은 1992년에 쓰여졌군요. 하긴... 남진우와 신경숙 오빠가 고교 동창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stella.K 2015-07-0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코너 기대되네요.
책을 얼마나 많이 읽으면 이런 코너를 만들 수 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ㅠ

저는 18살 때 언니의 남자친구를 좋아했는데 뭐 연애편지로 오해 받을만한
편지를 썼다가 개쪽 당한 일이 있습니다.ㅎ
그도 그럴 것이 그 오빠가 먼저 편지로 접근했거든요.
그땐 명사들이 누구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뭐 그런 얘기들이심심찮게 화제에 오르곤 하잖아요.
그런 편지를 나눌 상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뭐 어림없는 소리긴 합니다만. 순진했죠.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6 15:25   좋아요 0 | URL
심혈을 기울일 코너`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올릴 생각입니ㅏ.
편지가 애틋하기는 하죠.
꼬리친 쪽은 확실히 남자 쪽이 맞네요.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흑심을 품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stella.K 2015-07-06 15:44   좋아요 0 | URL
그 오빠가 의욕이 과했던 게 사실이죠.
언니한테 잘 보이겠다고 저한테까지 지나친 친절을 베풀었으니
그 오빠로선 과유불급이었을 겁니다.ㅋㅋ

2015-07-08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8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1948년)
막스 오퓔스 감독, 루이 주르당 외 출연 / 피터팬픽쳐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막스 오필스,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 순애보에서 복수극'으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 낯선 여인의 편지 >> 에 대한 " 서평 " 을 읽어보았다. 나는 이 작품을 < 여인의 복수극 > 으로 읽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 여인의 순애보 > 로 읽었다는 점에서, 한 작품을 두고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린다는 점에서, 꽤 흥미로웠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이 작품을 << 아내의 유혹 >> 으로 접근했는데 다른 이들은 이 작품을 << 풍금이 있던 자리 >> 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내 판단이 옳고 당신 해석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서로 취향이 다른 것이다. 내가 이 작품을 여인의 복수극으로 이해한 것은 내 장르적 취향'이 반영된 탓이기도 하거니와 " 착한-서사 " 에 대한 체질적 반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는 소설 속 여인'은 " 체제 순응적 인물 " 보다는 " 체제 반항적 인물 " 이다. 그녀는 지독한 사랑'을 끝내기 위해 날 벼린 칼을 책상 옆에 두고 펜을 들어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님이여,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나요 ? 절절한 고백을 듣다 보면 무쇠 같은 사내라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이 편지'는 사랑을 가장한 복수'다. 죽기로 결심한 순간, 여인은 그 남자에 대한 원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한 남자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말하는 척하면서 잔인한 복수를 계획한다. 그녀가 편지에 쓴 " 지독한 사랑 " 은 어쩌면 " 평범한 호감 " 을 과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야지 복수는 완성되니까. 불행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그 남자의 회한도 짙어질 테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당신을 향한 사랑이 조건 없는 " 아가페 " 적 사랑이었음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 에로스 " 적 몸'을 강조한다. 그녀는 뭇 사내들에게 구애와 청혼을 받는 선망의 대상'이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고급 창녀'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아가페와 에로스, 성녀와 창녀. 이 얼마나 완벽한 조합인가 ! 더군다나 죽은 아이'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아이'다. 남자는 편지를 통해 그동안 자신이 모르고 있던 것을 모두 잃어버린, 불행한 남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잡았다 놓친 물고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  낯선 여인'은 남자에게 당신의 무관심'이 낳은 폐허'를 보라고 요구한다. 소설은 여기까지'다. 회한에 사로잡힌 호색한은 지난날을 회상한다. 스치고 지나갔던 일들을, 여성을 소모품 따위로 취급했던 날들을, 그런 날들을.

이 소설은 많은 감독들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은 막스 오필스가 연출한 <<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 다. 이 영화가 원작과 다른 점은 " 결투 설정 " 장면'이다(소설에서는 편지를 다 읽고 잠시 지난날을 기억하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가 시작되면 남자가 처한 상황이 전개된다. 바람둥이였던 남자는 유부녀와 놀아나고, 이 사실을 안 유부녀의 남편이 남자에게 결투 신청을 한다. 남자는 3시간 후에 벌어질 결투를 피하기 위해 집에 잠시 들려 짐을 꾸려 비엔나로 도망칠 생각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모르는 여인에게 온 편지'로 인하여 실패하게 된다. "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에는 나는 죽었을 겁니다. " 이 강렬한 메시지 앞에 남자는 메두사를 바라본 사내처럼 압도당한다.

그는 짐을 꾸려 나갈 도피할 계획을 잠시 멈추고 편지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결국 편지가 계획을 늦춘 것이다. 편지를 다 읽고 나자 시간은 이미 지나버린 후다. 남자는 도망칠 계획을 버리고 결투장으로 향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막스 오필스는 원작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선보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결투의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관객은 이 결투가 남자의 죽음을 암시한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관객은 편지를 읽고 난 남자가 계획을 철회하고 결투장으로 갈 때 언뜻 보인 " 회한의 얼굴 " 에서 자기 징벌이 어른거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를 죽음(결투장으로 향하게 만든.. )으로 내몬 것은 편지'였다. 여자는 죽은 후에 복수를 완성했다.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말이다.

이 영화가 걸작인 이유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데 있다. 막스 오필스는 순애보 속에 감춰진 복수극을 간파했다. 이 영화는 순애보라는 지극히 남성 판타지 서사'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변주했다는 점에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멜로 드라마'다. 이처럼 너무 늦게 도착한, 혹은 발신인이 죽은 다음에 수신인에게 도달한 편지는 불길한 증후로 작동하는 오브제'다. 송해성 감독이 연출한 << 파이란 >> 도 " 너무 늦게 도착한(발신인이 죽은 다음에 수신인에게 도달한) 편지 - 서사 " 에 속한다. 이 영화에서 파이란은 낯선 여인'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여성이다. 그녀는 3류 건달 최민식을 사랑하지만 정작 그의 기억 속에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 러브레터는 결국 남자(최민식)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런 점에서 영화 <<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 와 << 파이란 >> 은 닮은 꼴'이다.  두 영화 모두 편지'가 남성의 죄의식을 호명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곰곰 생각하니,  막스 오필스의 1946년 작품인 <<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 를  여성영화제'에서 보았다. 그렇다, 이 영화는 여성주의 시각으로 풀어낸 진정한 멜로 드라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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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0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애보는 절대 아니죠~ 아주 지능적인 응징이
고 복수죠~ 진저리쳐질 정도로 무서운~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4 15:16   좋아요 0 | URL
지능적인 복수죠.. ㅋㅋㅋㅋㅋㅋㅋ. 이 소설은 온통 아이러니 아닙니까.
여자는 날마다 남자만 바라보는데 남자는 여자를 단 한번도 기억하지 못하고...
반면 집사`는 스쳐지나는 그 짧은 시간에 10년 전 이웃 소녀를단번에알아차리고.....
이 얼마나 아이러니입니까...

지금행복하자 2015-07-04 18:11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는 아이러니를 작품속에 잘 푸른것 같아요. 체스도 저는 아이러니로 읽었거든요.. 머리로 아무리 애를 써도 천부적인 재능앞에 툭 무너저버리는..
다르게 읽는 분들도 있었지만요~
그래서 츠바이크가 좋나봐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5 05:57   좋아요 0 | URL
좋은 단편에는 훌륭한 아이러니도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체스도 그렇고 이 기술을 노련하게 다루는 솜씨가 있는 양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 시리즈 2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송용구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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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 치기 좋은 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 평소 < 꽹과리 > 와 < 징 > 을 혼동하고는 했다. 징을 보고 꽹과리'라고 말한 적 있고, 꽹과리를 보고 징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장구 보고 징이라 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 꽹과리냐 징이냐 > 의 문제는 박근혜의 < 의리냐 배신이냐 > 라는 문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사소한 문제여서 별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보니 항상 틀린 대답을 내놓고는 했다. 색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색맹이라 하는데 나는 악기의 맵시'를 구별하지 못하니 악맹인 셈이다. 악기 중에서 유독 꽹과리와 징을 구별하지 못하니 부분 색맹이라 해두자. 그래도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은 없으니까. 그러자 누군가가 나에게 " 꽹과리와 징 구별법 " 에 대해 알려주었다.

" 딱 봤을 때 치기 좋게 생긴 놈이 징이고, 두들기기 좋게 생긴 놈은 꽹과리'야. 권투에 비유하자면 징은 어퍼컷이고, 꽹과리는 잽이지.... " 치기 좋은 놈'과 두들기기 좋은 놈 ?!  말이야 똥이야. 이 또한 시덥잖은 소리'라 그냥 웃어넘겼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 내가 해봐서 아는데 ~ " 를 남발하던 각하가 떠나고 그 자리'를 (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여왕     그녀에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녀가 필요해      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무렵, 또 다시 꽹과리와 징을 구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치기 좋은 놈과 두들기기 좋게 생긴 놈 !  딱 보니 < 그것 > 은 치기에 좋은 놈'처럼 보였다. 그것은 징이었다. 그렇다,  징은 치기 좋은 악기이고,  꽹과리는 두들겨야 제맛이 난다.  돈오(頓悟)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이 세상에 치기 좋은 징은 있지만 두들기기 좋은 징은 없다 ! 

외국소설에 대한 서평치고, 들어가는 말문이 상당히 "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 스러워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한국 문학에 대한 취향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한국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밖에서 발로 뛴 흔적보다는 책상 앞에서 머리를 굴린 흔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데 있다. 음색은 < 징 > 도 아니면서 징징거린다. 이 음색이 싫은 것이다. 차라리 꽹과리처럼 왁자지껄한 귀여니 소설이 낫다. 이 한 문장을 위해서 말문이 쓸데없이 길어진 점, 독자 여러분이 화낼 만하다. 그렇게 할 의도는 없었는데 나도 내 의도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서평을 중단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이곳에서 자빠졌으니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보석 같은 리뷰를 완성하겠다. 40대 소설가 K, 그는 바람둥이'다. 그 앞에 한 통의 두툼한 편지'가 도착한다. "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께...... " 로 시작하는 편지.  < 결코 > 라는 부정적 부사'가 결연한 의지처럼 느껴져서 소설가 K는 범상치 않은 예감을 느끼며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그녀의 편지는 지독한 짝사랑을 담은 연서'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사랑한 남자에 대한 추문이자 폭로였다. 모르는 여인은 편지에 " 사랑하는 님이여... " 라는 문장을 반복하지만, 이 편지를 다 읽고난 남자는 바로 이 문장 때문에 목에 걸린 가시'처럼 살아갈 것이 뻔하다. 츠바이크는 사랑을 말하지만 증오를 숨긴 여성의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이 정도면, 이 정도의 " 징징거림 " 은 신파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는 신경숙 신파가 왜 예술이 되지 못하고 통속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강한 어조로  " 나는 당신이 싫어요 ! " 라고 말하는 속내는 " 나는 당신이 좋아요 ! " 라는 메시지'를 숨기기 위한 반어'라고 말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이 주변인을 속이는 태도도 동일하다. 사기꾼은 항상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그것은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반어(反語)다.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에서도 여자는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는가를 고백한다. 그 불행은 " 타인의 하품 " 과 같아서 남자에게 쉽게 전염된다. 여자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낚시꾼은 놓친 물고기가 크면 클수록 아쉬움이 비례하듯이  여자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죽은 아이(소설가K와의 하룻밤 관계에서 얻은 아이) 가 얼마나 총명했는지를 남자에게 강조한다. 순애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복수극인 이 소설은 " 아이러니 " 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묻는다. 이 세상 모든 징은 치기 좋게 생긴 놈이다. 헤어진 남자(혹은 헤어진 여자)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웠던 얼굴'은 헤어지고 나면 불쑥불쑥 기억 속에서 호명된다. 그 옛날의 아름다웠던 얼골은 다...  어디를 갔느뇨.  후광은 사라지고 따귀 한 대 치기 좋은 얼굴로 등장한다. 명심하자. 이 세상, 모든 사기꾼은 친절하다. 등골을 빼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 명심하자. 이 세상, 모든 애인은 한때 친절했다.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헤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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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5-07-0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애인은 안친절했는데ㅠㅠㅠㅠ
그나저나 전 곰발님 서재에서 보고 이 제목이 넘 맘에 들어 위시로^^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3 09:52   좋아요 0 | URL
안친절하셨군요.. ㅎㅎㅎㅎㅎㅎ 음.....

samadhi(眞我) 2015-07-0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오랜만에 보는 징이 반가워서, 서평은 일부러 실눈으로 대충 읽었어요.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서. 동아리 입회식 때 징에 술을 가득 붓고 그 외 온갖 더~러운 것들 다 넣어서 마신 사랑주 생각이 나네요. 마시고 또 마셔도 줄어들지 않았지요. 징이란 놈, 징하게 큽니다. 징과 쇠의 구별법은 한눈에 알 수 있는 크기 입니다. 악기채 크기도 비례하죠. 소리도 차이가 크구요.. 쇠는 말그대로 꽹꽹 거리구요. 징은 지~잉 울립니다. 사물을 운우풍뢰라고 하는데, 정말 징은 風에 어울리는 소리를 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3 10:49   좋아요 0 | URL
실물을 보면 저도 알 것 같은데 왜 대부분 모니터로 보잖아요. 모니터로 보면 크기가 가름이 안 되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전 이상하게 헷갈리더라고요.... 아, 꽹은 꽹 소리가 나고 징은 징 소리가 나는군요... ㅎㅎㅎㅎㅎㅎ

stella.K 2015-07-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글은 좀 미스테리 하군요.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지 딱히 와 닿지가 않아요.
이책을 설명하기 위해 왜 징과 꽹괴리가 나와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3 14:49   좋아요 0 | URL
삼펀포로 빠지는 게 제 특기잖습니까.
징은 단순히 삼천포로 가기 위한
멕거핀`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에곤 실례 2015-07-0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모르지만 당신을 평생 사랑하면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으세요?

당신이 열고 들어간 문고리를 만져보기도 하고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 조차도 소중하게 주워서 간직했던 여인이라면 말이지요.

이 글을 읽고 이작가의 또다른 글들도 읽었는데 말이지요, 광기와 우연의 역사, 환상의 밤, 달빛 뒷골목, 어느 노인의 죽음,

황혼이야기 등 특히 그 당시로서는 소재로 삼기 힘들었을 동성애적 성향을 다룬 감정의 혼란 이라는 작품도 있었지요. 좀전 세대의 사람들에게 읽혔던 책을 소개하니 반가워서 답글 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3 14:49   좋아요 0 | URL
츠아이크 다른 작품 중 추천하실 만한 작품 좀 추천해주십시오....

아... 저 위에 걸린 게 제목인가 보죠 ?

광기와 우연의 역사... 등등등 말입니다 ?

2015-07-03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3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3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3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7-03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작가군요~~
남자분이니 여쭤보고 싶군요~ 저런 여자가 있다면 어떤 기분인지 ㅎㅎ
저는 여자라도 소름이 끼칠것 같다고 했는데~ ㅎㅎ

체스. 마리 앙트와네트도 재미있게 읽었고 지금은 니체를 쓰다를 읽고 있는데 니체를 잘 몰라 뭔말인고~~ 하고 있습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3 18:35   좋아요 0 | URL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전 이 작품을 순애보-서사`라 생각하지 않고 복수극-서사`라 생각합니다.
막스 오필스의 <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 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내용이 약간 다릅니다. 남자는 결투 신청을 받습니다. 그는 이 결투를 피할려고 집에 가서 잠시 머물다가 다음날 새벽에 도망가려고 집에 가죠. 집에 가니 여인의 편지가...

남자는 편지를 읽느나 새벽을 넘겼고, 결투자가 오죠.
남자는 도망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결투장으로 갑니다.

막스오필스의 위대한 걸작인데 막스 오필스도 이 영화를 일종의 여성 복수극으로 준비했습니다.
거봐라. 잉과응보다. 벌을 받아라.. 뭐, 이런 뉘앙스로 읽었습ㄴ디ㅏ.


체스도 참 재미있게 읽었던기억이....

츠바이크 좀 읽어봐야겠습니다.

수다맨 2015-07-0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파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게 참 어려운 작업 같습니다. 신경숙이 매일 실패하는 것도 바로 이부분인 듯하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4 15: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신파가 예술이 되기는 힘이 듭니다. 신경숙은 항상 실패하죠. 어차리 감정 과잉이라는 게 그리 매끄러운 세련된 기교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후진 영화라 해도 누가 죽어서 눈물의 떼창을 하면 영화는 후지더라도 눈물은 나더라고요. 그런데 눈물이 나면 다 좋은 영화라고 착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독재와 독서

 

                         독서는 읽을 독 () 에 글 서 ()로 구성된 단어.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讀書에서 讀 : 읽을 독 을 獨 : 홀로 독 으로 착각했었다. 獨書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이 오독이 차라리 더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란 어차피 독고다이 가 아니었던가 !   "  읽는다는 행위 " 와 " 혼자라는 행위 " 는 서로 궁합이 잘 맞는 짝패. < : 홀로 독 > 이 사용되는 단어 중에는 독재란 낱말도 있다. 홀로 독 ( ) 에 자를 재 (). 그런데 < 독재 > < 독서 > 는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놀라지 마시라. 뿜빠라 뿜빠, 뿜빠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는 없어요 ~ 독재라는 단어에서 한자 재()에는 글을 쓰다 라는 의미도 있다.

억지로 재단을 하자면 : 홀로 글을 쓴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까 독서가(독자)는 글을 읽는 행위자인 반면, 독재자는 글을 쓰는 주체'다. 그런데 독재자가 사용하는 < > 은 독서가'가 읽는 글'과는 사뭇 다르다. 독자가  읽는 글은 문학, 철학, 사회학 따위의 학문이라면 독재자가 사용하는 글은 문서, 서류, 통보문 따위의 명령문'이다. 법의 언어'인 셈이다. 그것은 권위의 언어이다. 다시 말해서 < 독서가 > 가 글을 받아들이는 수동태라면, < 독재자 > 는 포고령 따위를 작성하는 능동태. 포고령이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내용을 널리 알리는 법령이나 명령 혹은 한 나라가 상대국에 대하여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명령 이다. 문명사회는 문자 사회이다 보니 권력은 문자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독재자는 타자의 언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작성한 문서'만 유통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다 보니 독재자가 흔히 저지르는 악행이 분서. 진시황과 히틀러는 책을 불태웠던 독재자로 유명하다. 그들은 자기 언어와 사상에 위반되는 글은 모조리 태워 없앴다. 그것은 “ (타자의) 언어 다양성 말살 정책 인 셈이다. 곰곰 생각하면 독재자'는 현명한 백성보다는 멍청한 백성을 원한다. 속는 사람은 항상 바보들이니깐 말이다. 그래서 독재자는 책을 읽는 대중을 싫어한다. 독서 행위는 무기를 얻는 방식이다. 도끼(카프카)와 망치(니체)가 대중의 손에 쥐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탄생한 배경에는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한몫했다는 주장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신경숙 표절 사건에서 신경숙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문학 권력 이란 실체가 없는 풍문이라고 말했지만 출판 자본에 의해 유통된, 영혼 없는 상찬에 의해 떠받들어진 신경숙 문학은 자폐적 성을 구축했다. 비판 없는 문학은 충신 없는 임금과 같은 신세'다. 그의 주변에는 방귀를 " 시원하시겠습니다, 각하 ! " 라고 되받아치는 간신만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문학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 신경숙 작가가 그동안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는 점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독재자의 독고다이를 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숙은 문학 권력인 셈이다. 표절은 겁박할 표()에 훔칠 절()로 구성된 단어. 한자 < > 의 부수가 칼 도()인 것을 보면 글을 쓰는 작가가 붓 대신 칼로 남의 책을 도려낸 행위’가 표절이라 할 수 있다.  

칼은 펜을 든 작가가 싸워야 할 대상이지 작가의 무기가 아니다. 그녀는 어릴 때 독서가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소설가로 성공했으나 결국에는 독재자가 되어 문학 권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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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5-07-0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명을 찾아서]를 참 좋아했는데 그 책을 쓴 작가인 복거일이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신경숙이 표절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복거일은 그 책을 쓸 때만 정신 똑바로 박혔었던가 봐요. 그 이후로는 영어공용화를 주장하지 않나...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2 11:40   좋아요 0 | URL
복거일, 여전하시군요. 그래도 용기는 있네요. 다른 사람들은 여론이 무서워서 잽싸게 말을 바꾸던데 말입니다. ㅎㅎㅎㅎㅎ

가넷 2015-07-02 12:37   좋아요 0 | URL
그 분이 신경숙 표절관련해서 어떤 말을 했나보네요. 그분이 <역사 속의 나그네>만 완간한 것만 봐서... 저도 <비명을 찾아서>는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 뒤에 작가의 정치적 입장이 저하고는 맞지는 않기도 하고, 뒤로 갈 수록 내는 작품에 힘이 빠진다는 느낌도 받아서 더 이상 그분의 글을 읽지 않고 있었는데, 최근에 <역사 속의 나그네>는 완결을 냈다고 해서 사볼 생각입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2 15:51   좋아요 0 | URL
네에, 책 출판 기념회에서 잠시 언급했나 봅니다. 뭐 지금은 신경숙이 핫 워드 아닙니까..
역사 속 나그네.. 은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다 읽으시면 살짝 귀뜸ㅇ.ㄹ...

cyrus 2015-07-03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혼자서 책 읽는 행위를 ‘고독’(孤讀)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곰발님이 만든 ‘獨書’라는 단어가 마음에 듭니다. 요즘 고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고흐는 ‘孤흐’였습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서점에서 일했고, 독서를 좋아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는군요. 그래서 동생에게 보내는 평범한 편지글도 잘 쓰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3 06:17   좋아요 0 | URL
讀이 孤 하다 보니 독서가 獨인 줄 알았습니다. 사전 보다가 깜짝 놀랐씀요.. 이 간단한 조합을 그동안 착각하고 있었다니..... 이런 생각. 고흐의 편지에서도 드러나듯이 좋은 문장은 깊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