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와 독서
독서는 읽을 독 (讀) 에 글 서 (書)로 구성된 단어‘다.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讀書에서 讀 : 읽을 독 을 獨 : 홀로 독 으로 착각했었다. 獨書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이 오독이 차라리 더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란 어차피 “ 독고다이 ” 가 아니었던가 ! " 읽는다는 행위 " 와 " 혼자라는 행위 " 는 서로 궁합이 잘 맞는 짝패’다. < 獨 : 홀로 독 > 이 사용되는 단어 중에는 독재‘란 낱말도 있다. 홀로 독 ( 獨 ) 에 자를 재 (裁)다. 그런데 < 독재 > 와 < 독서 > 는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놀라지 마시라. 뿜빠라 뿜빠, 뿜빠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는 없어요 ~ 독재‘라는 단어에서 한자 재(裁)에는 “ 글을 쓰다 ” 라는 의미도 있다.
억지로 재단을 하자면 : 홀로 글을 쓴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까 독서가(독자)는 글을 읽는 행위자인 반면, 독재자는 글을 쓰는 주체'다. 그런데 독재자가 사용하는 < 글 > 은 독서가'가 읽는 글'과는 사뭇 다르다. 독자가 읽는 글은 문학, 철학, 사회학 따위의 학문이라면 독재자가 사용하는 글은 문서, 서류, 통보문 따위의 명령문'이다. 법의 언어'인 셈이다. 그것은 권위의 언어‘이다. 다시 말해서 < 독서가 > 가 글을 받아들이는 수동태’라면, < 독재자 > 는 포고령 따위를 작성하는 능동태‘다. 포고령이란 사전적 의미로 “ 어떤 내용을 널리 알리는 법령이나 명령 ” 혹은 “ 한 나라가 상대국에 대하여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명령 ” 이다. 문명사회’는 문자 사회이다 보니 권력은 문자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독재자‘는 타자의 언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작성한 문서'만 유통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다 보니 독재자가 흔히 저지르는 악행이 분서’다. 진시황과 히틀러‘는 책을 불태웠던 독재자로 유명하다. 그들은 자기 언어와 사상에 위반되는 글은 모조리 태워 없앴다. 그것은 “ (타자의) 언어 다양성 말살 정책 ” 인 셈이다. 곰곰 생각하면 독재자'는 현명한 백성보다는 멍청한 백성을 원한다. 속는 사람은 항상 바보들이니깐 말이다. 그래서 독재자는 책을 읽는 대중을 싫어한다. 독서 행위는 무기를 얻는 방식이다. 도끼(카프카)와 망치(니체)가 대중의 손에 쥐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탄생한 배경에는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한몫했다는 주장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신경숙 표절 사건’에서 신경숙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 문학 권력 ”이란 실체가 없는 풍문이라고 말했지만 출판 자본에 의해 유통된, 영혼 없는 상찬에 의해 떠받들어진 신경숙 문학은 자폐적 성을 구축했다. 비판 없는 문학은 충신 없는 임금과 같은 신세'다. 그의 주변에는 방귀를 " 시원하시겠습니다, 각하 ! " 라고 되받아치는 간신만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문학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 신경숙 작가가 그동안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는 점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독재자의 독고다이‘를 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숙은 문학 권력인 셈이다. 표절’은 겁박할 표(剽)에 훔칠 절(竊)로 구성된 단어‘다. 한자 < 剽 > 의 부수가 칼 도(刂)인 것을 보면 글을 쓰는 작가가 붓 대신 칼로 남의 책을 도려낸 행위’가 표절이라 할 수 있다.
칼은 펜을 든 작가가 싸워야 할 대상이지 작가의 무기가 아니다. 그녀는 어릴 때 독서가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소설가로 성공했으나 결국에는 독재자‘가 되어 문학 권력을 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