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 치기 좋은 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 평소 < 꽹과리 > 와 < 징 > 을 혼동하고는 했다. 징을 보고 꽹과리'라고 말한 적 있고, 꽹과리를 보고 징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장구 보고 징이라 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 꽹과리냐 징이냐 > 의 문제는 박근혜의 < 의리냐 배신이냐 > 라는 문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사소한 문제여서 별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보니 항상 틀린 대답을 내놓고는 했다. 색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색맹이라 하는데 나는 악기의 맵시'를 구별하지 못하니 악맹인 셈이다. 악기 중에서 유독 꽹과리와 징을 구별하지 못하니 부분 색맹이라 해두자. 그래도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은 없으니까. 그러자 누군가가 나에게 " 꽹과리와 징 구별법 " 에 대해 알려주었다.
" 딱 봤을 때 치기 좋게 생긴 놈이 징이고, 두들기기 좋게 생긴 놈은 꽹과리'야. 권투에 비유하자면 징은 어퍼컷이고, 꽹과리는 잽이지.... " 치기 좋은 놈'과 두들기기 좋은 놈 ?! 말이야 똥이야. 이 또한 시덥잖은 소리'라 그냥 웃어넘겼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 내가 해봐서 아는데 ~ " 를 남발하던 각하가 떠나고 그 자리'를 (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여왕 그녀에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녀가 필요해 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무렵, 또 다시 꽹과리와 징을 구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치기 좋은 놈과 두들기기 좋게 생긴 놈 ! 딱 보니 < 그것 > 은 치기에 좋은 놈'처럼 보였다. 그것은 징이었다. 그렇다, 징은 치기 좋은 악기이고, 꽹과리는 두들겨야 제맛이 난다. 돈오(頓悟)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이 세상에 치기 좋은 징은 있지만 두들기기 좋은 징은 없다 !
외국소설에 대한 서평치고, 들어가는 말문이 상당히 "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 스러워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한국 문학에 대한 취향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한국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밖에서 발로 뛴 흔적보다는 책상 앞에서 머리를 굴린 흔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데 있다. 음색은 < 징 > 도 아니면서 징징거린다. 이 음색이 싫은 것이다. 차라리 꽹과리처럼 왁자지껄한 귀여니 소설이 낫다. 이 한 문장을 위해서 말문이 쓸데없이 길어진 점, 독자 여러분이 화낼 만하다. 그렇게 할 의도는 없었는데 나도 내 의도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서평을 중단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이곳에서 자빠졌으니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보석 같은 리뷰를 완성하겠다. 40대 소설가 K, 그는 바람둥이'다. 그 앞에 한 통의 두툼한 편지'가 도착한다. "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께...... " 로 시작하는 편지. < 결코 > 라는 부정적 부사'가 결연한 의지처럼 느껴져서 소설가 K는 범상치 않은 예감을 느끼며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그녀의 편지는 지독한 짝사랑을 담은 연서'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사랑한 남자에 대한 추문이자 폭로였다. 모르는 여인은 편지에 " 사랑하는 님이여... " 라는 문장을 반복하지만, 이 편지를 다 읽고난 남자는 바로 이 문장 때문에 목에 걸린 가시'처럼 살아갈 것이 뻔하다. 츠바이크는 사랑을 말하지만 증오를 숨긴 여성의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이 정도면, 이 정도의 " 징징거림 " 은 신파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는 신경숙 신파가 왜 예술이 되지 못하고 통속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강한 어조로 " 나는 당신이 싫어요 ! " 라고 말하는 속내는 " 나는 당신이 좋아요 ! " 라는 메시지'를 숨기기 위한 반어'라고 말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이 주변인을 속이는 태도도 동일하다. 사기꾼은 항상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그것은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반어(反語)다.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에서도 여자는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는가를 고백한다. 그 불행은 " 타인의 하품 " 과 같아서 남자에게 쉽게 전염된다. 여자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낚시꾼은 놓친 물고기가 크면 클수록 아쉬움이 비례하듯이 여자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죽은 아이(소설가K와의 하룻밤 관계에서 얻은 아이) 가 얼마나 총명했는지를 남자에게 강조한다. 순애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복수극인 이 소설은 " 아이러니 " 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묻는다. 이 세상 모든 징은 치기 좋게 생긴 놈이다. 헤어진 남자(혹은 헤어진 여자)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웠던 얼굴'은 헤어지고 나면 불쑥불쑥 기억 속에서 호명된다. 그 옛날의 아름다웠던 얼골은 다... 어디를 갔느뇨. 후광은 사라지고 따귀 한 대 치기 좋은 얼굴로 등장한다. 명심하자. 이 세상, 모든 사기꾼은 친절하다. 등골을 빼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 명심하자. 이 세상, 모든 애인은 한때 친절했다.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헤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