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싱어 4,  신해철 편  :  두 개의 망령

 

 

 

남해용왕 우연득병하여 아무리 약을 써도 백약이 무효라 / 이때 용왕 꿈속에 신령 나타나 토끼 간이 제약이라 일러주니 / 이말을 들은 용왕, 별주부에게 명하기를~ “ 토끼를 잡아오너라~”허니 이말 들은 별주부 말 허기를 / 난감하네난감하네~  난감하네 ~  난감하네  

-난감하네, 프로젝트 락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망령은 누구일까 죽어서 추한 몰골이 되었으나 유명인사가 될 운명을 가진 자는 누구란 말이더냐. 내가 보기엔 햄릿의 선왕'이다. 연극 <<햄릿 >> 은 무대 위에 오를 등장인물이 모두 죽어서 어쩔 수 없이 상연이 중단된 연극이다. 오필리어 가문을 보자 : 약혼자인 오필리어가 죽고,  아버지인 플로니어스 재상도 죽고,  오도방 쇼바 높이 올리며 말 달리던 오라방 레어티즈도 죽는다. 햄릿 가문도 오필리어 가문과 마찬가지로 멸문지화'를 당한다.   아버지 선왕이 죽은 이후, 어머니인 거투르드 왕비도 죽고, (선왕의 동생이자, 어머니의 남편이며, 햄릿에게는 삼촌이자 의붓 아버지인클로디어스 왕도 죽는다

물론 주인공 햄릿도 죽는다.  말 그대로 혈육상잔'인 셈이다.  다 죽고 없으니 이제 < > 는 누가 키울 것인가 ?   이 비극을 초래한 발단은 < 아버지 - 망령 이 출몰했기 때문이었다. 궁궐 밖에서 선왕으로 보이는 망령이 어슬렁거린다는 첩보를 입수한 햄릿은 망령과 대면한다. 망령이 말한다. " 이 아비는 거지가 되어 동천을 떠도는데 너는 몸 성히~ 성히~ 성히~ 성히  잘 있구나. 내 동생이자 네 삼촌인 오호츠크 시밤바가 네 어머니와 정분이 나서 나를 독살하였느니라오호, 츠쿠나(춥구나) ! 몸이 떨리나니,  아들아 하이에나의 억센 턱과 발이 되어서 억울한 내 죽음을 낱낱이 파헤쳐다오. 이제 복수는 너의 것이란다. "  아아, 진정 무서운 것은 (죽은 자의) 몰골이 아니라 (죽은 자가 전하는) 발화(發話)였으니,  

아들 햄릿은 망령의 몰골보다 그가 전하는 말 앞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진실을 안 이상, 행동하지 않을 이 뉘 있으리. 죽은 자가 꿈에 나타나는 것도 불길한데 하물며 생시(生時)에 나타난다는 것은 그런데 망령'이 모두 불길한 존재만은 아니다즐거움을 주는 망령도 있다. << 히든 싱어 4 : 신해철 편 >> 에서 제작진은 신해철을 무대 위로 호명한다. < > 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하는 망령(亡靈) 신분으로 참가한다.  한자 와 같은 뜻이니 망령은 . 신해철은 이 무대 위에서 부재하는 존재로서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죽은 자를 흉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문이 열리면 몸은 없고 목소리만 울려 퍼지리라

하지만 웬걸 ?   통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죽은 자의 망령이 아니라 산 자'원본보다 사본이 더 원본 같다. 우리는 산 자의 몸에 빙의된,        죽은 자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 히든 싱어 >>  아마추어가 기성 가수의 노래를 똑같이 흉내 내는 버라이어티 쇼'. 방청객과 시청자는 신해철 성대모사를 똑같이 하는, 신묘에 가까운 재주에 박장대소하다가도 느닷없이 한겨울 대설大雪 에 내리는 눈처럼 펑펑 울기도 한다. 이 망령의 출몰 앞에서 몸을 부들부들 떠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찌 되었든그는 죽은 자가 되어서 산 자의 무대 위에 오른 광대'. 방송을 보다가 문득 <<히든 싱어 : 신해철 편 >> 은 한판 질펀한 < 굿 > 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징과 꽹과리, 장구가 사용되지 않는다 뿐이지

기타와 드럼, 신디사이저로 풍악을 울리며 춤과 노래를 즐기는 것이 영락없이 씻김굿이다. < 굿 > 은 서양과는 달리 죽은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볼거리이지 무서운 풍경이 아니다.  죽은 자는 무당의 몸을 빌려 못다 한 말을 하고 떠난다. << 히든 싱어 >> 에 출연한 망령도 히든 싱어'의 몸을 빌려 못다 한 노래를 부른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떠나야 했으니 이렇게 다시 만나 즐겁게 놀다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는 것이다. < >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령이 출몰했는데도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쌓은 좋은 '이 아닐까 ?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망령이 햄릿의 선왕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망령은 박정희가 아닐까 싶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를 따라하는 히든 싱어'.

불행인지 행운인지 모르겠으나 성대모사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서 싱크로율이 99% . 그녀가 궁궐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아버지 성대모사를 할 때마다 아버지의 망령(亡靈)이 되살아나 궁궐 밖에서 아른거린다. 그런데 전혀 즐겁지가 않다. 죽은 자 신해철의 출몰에는 희노애락이 느껴지지만 박근혜가 살려낸 망령 앞에서는 회()와 락()은 없고 노()와 애()만 느껴진다. 같은 망령인데 전혀 다른 망령인 셈이다그런 점에서 박정희의 출몰은 햄릿의 선왕을 닮았다. 이럴 때 내뱉는 유행어가 있다. “ 난감하네, 난감하네 ! ” 망령(亡靈)은 사전적 의미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하고, 두 번째는 혐오스러운 과거의 잔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뜻한다.

우리가 망령에게 바라는 것은 명령을 내리는 망령이 아니다. 재미있게 놀 줄 아는 망령이다. 이런 망령 말이다. “ 산 자들이여 뛸 준비 되셨습니까아아아 ~~~~   안 놀면 미워할꺼야아아아 !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살리미 2015-10-2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아앙~~~~ 역시!!!! 곰발님이 이런 멋진 글 올려주실거라 기대했어요!!! 히든싱어 보면서 울컥해서 막 얘기하고 싶었는데 참았거든요.. 제 두서없는 글보다는 분명 누군가 멋지게 그를 추억할 글을, 이 애달픈 마음을 표현해줄 사람이 있을것이라고요...
마왕의 목소리 들어서 행복했고, 문이 열릴때 아무도 없고 목소리만 나오는 그 광경이 묘하게 슬퍼서 울컥했어요. 너무 드라마틱한 히든 싱어들까지 역시 마왕의 포스는 영원하더군요!!
박근혜는 박정희의 히든싱어라는 말! 너무 멋진 비유십니다^^
왜 좋은 사람은 항상 먼저 가는지.... 울컥했던 마음에 한풀이 속풀이가 좀 된듯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6 20:47   좋아요 0 | URL
그 노래가 좋은가 나쁜가는 세월 후 다시 들었을 때 촌스러운가 아닌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신해철 음악은 확실히 지금 들어도 선구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하튼, 재미있더군요. 실컷 웃다가 실컷 울다가.... 마치 굿 같았습니다.

samadhi(眞我) 2015-10-2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어버버는 애비보다 많이 멍청하다는 것이 다르네요. 악한 것은 누가 더 한지 알 수가 없지만.
저는 티비가 없어 보지 못 했지만 굿으로 이해한 것이 딱 이네요. 제가 굿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따로 공부도 안 하지만(말로만 관심) 예전에 진도 씻김굿을 보고(아마추어의 공연) 충격이 컸지요. 언젠가 진도에 가서 전수받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8 13:11   좋아요 0 | URL
실제로 보면 정말 묘해요. 빙의 되어서 무당은 죽은 엄마 목소리로 말하고 딸은 울고...
이야, 막 보는데.. 사람들은 웅성웅성.. 여기저기 눈물바다..
이걸 실제로 딱 보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정서가... 감돌아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가방과 시계 

​                                

 

 

 

계급 피라미드 구조'에서 " 하부는 상부를 < 지향 > 하고, 상부는 하부를 < 지양 > 한다. "    쉽게 설명하자면 : 서민층은 중산층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을 모방하려고 하고, 중산층은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을 모방하려고 한다. 반면 상류층은 자신을 모방하려는 중산층과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목동 엄마의 롤모델은 강남 엄마'이지만 강남 엄마는 목동 엄마를 추종하지 않는다. 강북이 강남 스타일을 따라할 수는 있지만 강남이 강북 스타일을 따라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욕망이란 언제나 하부에서 상부를 향한다.

 

루이비통 로고 크기를 보면 계급이 보인다. ① 34폰트 로고의 루이비통 가방을 처음 구매한 사람은 사모님(상류층)이다. 사모는 이 바닥에서는 얼리 어답터(Early-adopter)에 속한다. ② 두 번째 34폰트 크기의 루이비통을 구매한 소비자는 부인(중산층)이다. 부인은 사모님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을 공유한다. 부인은 얼리 어답터(Early-adopter) 라기보다는 사모님 가는 길'을 발빠르게(허겁지겁) " 벤치마킹 " 한다는 측면에서  허리 어답터(Hurry-adopter)다. ③ 세 번째 34폰트 루이비통 구매자는 아줌마(서민층)이다. 아줌마의 롤모델은 부인이다.  이로써 사모, 부인, 아줌마는 모두 " 대따 큰 "  로고가 박힌 루이비통 가방을 가지게 된다.

사모 입장에서 보면 모든 계급이 " 대따 큰 "  루이비통 가방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모와 부인을 구별할 수 있는 변별력이 사라진 꼴이다. 기분 나쁘다. 부인 입장도 마찬가지다. 부인과 아줌마를 구별할 수 있는 변별력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 저, 아줌마 아니거등여 ~ "  사모는 34폰트 루이비통 가방을 버리고 24폰트 루이비통을 구매한다. 부인도 이에 질세라 잽싸게 24폰트 가방을 구매한다. 이런 식으로 로고 폰트 크기'는 줄어들게 되어 결국에는 로고가 없는 루이비통을 구매한다. 로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방을 열면 가방 안에 로고가 박혀 있다. 9폰트 루이비통이 서로 악수를 나눌 수 있는 거리에 있을 때 알 수 있는 가방이라면, 로고 없는 루이비통은 카페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다가 명함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었을 때 알 수 있는 가방이다.

귀부인이 지갑을 열어 속을 보여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귀부은들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이처럼 루이비통이 진화하는 과정을 보면 계급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로고 크기가 클수록 식별력은 향상될 수밖에 없다. < 14 폰트 로고 > 보다는 < 34 폰트 로고 > 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니깐 말이다. < 34폰트 로고 > 는 < 14폰트 로고 > 보다 더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서민층이 34폰트 로고가 박힌 루이비통을 선호하는 이유는 유식하게 말하자면 < 후광 효과 > 요, 무식하게 표현하자면 < 생색 내기 > 에 있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게 좋은 것이다. 비싸게 주고 산 가방이니 본전은 뽑아야 할 것 아닌가 ! 

그것은 마치 가난한 집 아이가 시장에서 짝퉁 나이키 옷을 고를 기회가 오면 " 대따 큰 " 나이키 로고가 박힌 옷을 고르려는 심리와 같다. 교양이 넘치는 사모님이 보기에 교양이 없는 부인과 아줌마의 욕망은 뻔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사모, 부인, 아줌마의 욕망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상류층은 왜 로고가 없는 루이비통 가방을 선호하게 되었을까 ?  부인과 아줌마 입장에서 보자면 < 겉으로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루이비통 > 은 의미가 없다. 부인은 9폰트 루이비통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설령, 로고 없는 루이비통 가방을 산다한들 부인과 사모가 서로 차를 마실 기회는 거의 없지 않은가. 아줌마도 24폰트 루이비통까지가 한계'다.

14폰트와 24폰트는 경제적 한계와 심리적 한계가 맞물린 계급의 진입 장벽'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피라미드 구조에서 전체 50%를 차지하는 부류는 바로 한 단계 위엔 40%를 좇고, 40%는 30%를, 30%는 20%를, 20%는 상위 2%를, 상위 2%는 최상위 1%를 좇고, 1%는 0.1%를 꿈꾼다. 결국 0.1%는 0에 가까운 쪽을 좇게 된다. 아라비아 숫자 < 0 > 이 無 라고 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프로이트가 말한 바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 쾌락 원칙을 넘어서 >> 에서 "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뿐 " 이라고 말한다. 시쳇말로 욕망이 지향하는 끝판왕은 無 다. 자신보다 상부를 지향하게 되면 결국 로고가 없는 루이비통 가방을 가져야 하듯이 말이다.

내가 오늘 소개할 영화(혹은 텍스트)는 두 편이다. 하나는 << 주홍글씨 >> 이고 다른 하나는 << 태양은 가득히 >> 다. 긴 말하지 않겠다. 욕망은 결핍이다, 상품은 결핍을 채운다, 비쌀수록 근사하다, 명품은 비싼 대가가 따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15-10-23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발 님, 한번, innovator, early adopter, early majority, late majority, laggards에 대해 이야기른 나눈 적이 있었죠.

이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해 지난 번에 소개한 EBS 다큐프라임 `소비는 감정이다`의 Youtube 웹주소를 남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VsHaotbTdo&index=1&list=PLf_vppNPJQYubD_OCQqmU2pXhA99lwHbD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3 17:18   좋아요 0 | URL
저 이방송 보았습니다. 확실히 소비 행위는 감정의 결과죠. 저도 화나고 그러면 쇼핑합니다.
쇼핑하고 잔뜩 사고 들어오면 뭐가 좀 마약 같은 느낌이 들죠... ㅎㅎㅎㅎ

2015-10-23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3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10-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품행제로에서 류승범이 신었던 나이키 짝퉁 ˝나이스˝ 얘기네요 ㅎㅎ
뭐니뭐니해도 택배받을 때가 제일 기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5 19:26   좋아요 0 | URL
저 옛날에 나이키 산다고 돈 받아서 짝퉁 나이키 사고 남은 돈으로 까까 먹었는데 그거 형한테 걸려서( 짝퉁 나이키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어머니한테 엄청 혼난 기적이 나네요.. ㅎㅎㅎ
 

 

 

 

 

 

 

 


 


 

 

 

 

 

 

 


 

 


 

 

 

 

 

 

1 : 나눌 수 없는 것 

 

 

 진리는 없다. 단지 주관적인 해석만 있을 뿐이다

ㅡ 니체

                                              

요즘 시쳇말로 말하자면  :  사도세자'는 금수저 물고 태어난 자식'이다. 그를 단순하게 특권층이라고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는 상위 20%도 아니요, 그렇다고 1% 부류도 아니며, 0.1% 부류도, 0.0001% 부류도 아니다. 그는 영조의 유일한 아들(왕후의 아들이었던 효장세자는 병으로 사망했다)이니 왕위를 계승할 사람은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유일 존재이자 완전체인 순혈 < 1 > 이다. 그 높고 높고 높은 0.1% 도 1 앞에서는 오징어'가 되나니, 숫자 < 1 > 앞에 모든 백분율은 무릎 꿇고 경배하여라.  유아인은 전작 << 베테랑 >> 에서 최상위 1% 인 재벌 3세'를 연기했다.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은 범(汎)SK 가문의 후손인 빠따 최철원 선생'이시었다. 그는 이 빠따 저 빠따 막 (휘두르는) 찐따였다. 

파업하는 노동자를 사무실로 불러내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팬 후 맷값'이라며 천만 원 쥐어준 인물.  < 1% >  부류도 이 지랄인데 하물며 절대값 < 1 > 인 경우는 말해서 무엇하랴. 공교롭게도 유아인은 올해 1%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3세)와 1(영화 사도)을 동시에 연기한 배우가 됐다. 1%에서 1로 신분을 " 업로드 " 했으니 계급 장벽을 뚫고 왕자가 된 캐릭터라고나 할까 ?  < 사도 > 는 단순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궁궐 내 9급 공무원을 수없이 죽인 장본인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100명 넘게 죽였다고 한다. 이 숫자의 규모에 대해 가감은 있을 수 있지만  그가 무고한 백성을 홧김에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뒤주에 갇혀 죽은 것은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죽을 짓을 했다는 생각도 든다.

사학자 이덕일은 사도를 어질고 총명한 인물로 당쟁의 희생양으로 주장했지만, 그렇게 어질고 총명한 인간이 사람 목숨 귀한 줄 모르고 가을 무 밑동 썰듯이 사람 모가지를 벨 수 있을까 ?   0.1%도 아닌 절대값 < 1 > 은 무한한 권력을 가진다. 권력 또한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숫자 1이다. < 1 > 은 치외법권의 영역이며,  말이 법이고, 내가 곧 국가'인 존재다.  < 1 > 이라는 숫자는 본디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소수'이다. 그런 환경과 밥상머리 교육이 되물림되다 보니 이기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시다바리들이 하나에서 백까지 시중드는 환경에서 자란 인간'이 인간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싼 똥을 날마다 혀로 맛을 보는 직책을 가진 부류도 있었다. 건강을 체크하기 위한 수단이란다.  장금이 흉내 낸다고 " 제 입에서는.... 똥냄새가 났는데, 어찌 똥냄새가 나느냐고 하시면 그냥... 똥냄새가 나서 똥냄새가 난다고 한 것이온데...... "

라고 말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박근혜는 < 1 > 이다.  왕이라는 호칭은 대통령으로, 궁궐은 청와대로 바뀌었으나 1를 중심으로 권력이 작동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1 옆에 붙어서 이득을 보려는 0.1% 부류가 있고, 0.1% 부류에 빌붙어서 콩고물을 주워먹으려는 1%가 있으며,  1%에게 동조하는 10%가 존재한다. 그렇게 다수는 확장된다. 대한민국은 말이 좋아 민주주의 체제이지 1인 독제 공화국이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모두 박근혜의 입만 쳐다본다. 어미 입만 바라보는 어린 새끼 새처럼 말이다. " 분부만 내리십셔 ! " 그들은 < 완장 > 에 < 죽창 > 을 들 준비를 마친다. 토, 토토토토토 다는 놈은 종북, 친북, 빨갱이'다.  대대로 견제를 상실한 절대 권력은 썩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권력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수많은 백분율은 박근혜 가문을 위해 용비어천가를 바칠 모양이다. 문제는 용비어천가가 역사 교과서라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교과서가 뉴라이트 논조를 대부분 수용할 것이란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 착한 제국주의 > 다. 그런데 이 말은 " 착한 연쇄살인범 " 이라는 표현과 다를 것이 없다. 이 세상에 착한 제국주의는 없다. 나쁜 제국주의'만 있다. 독단에서 오는 오류가 아니다. 제국주의의 본질은 침략과 자원 강탈이다. 니체는 말했다. " 진리는 없다. 단지 주관적인 해석만 있을뿐이다. " 여기서 니체의 말을 왜곡하면 안 된다. 이 말을 다른 식으로 풀어서 해석하면 " 진리는 하나다. 하지만 해석은 다양하다 " 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 역사 > 는 하나의 팩트'를 가지고 있지만 그 팩트에 접근하는 해석은 다양하다. 검인증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보다 건강한 구조'다. 앤디 워홀의 실크 프린트 작품 중에 < 1보다 30'이 낫다 > 란 제목이 있다. 국정 교과서 1권보다는 다양한 검인증 교과서 30권이 낫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5-10-2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주제와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오늘은 다소 사도가 끼이신듯..합니다.ㅎㅎㅎ
크게 놓고보자면 아닌말은 아니나..사도세자를 탓하잔것인지..박근혜의 정권을 말하자함인지 교과를 말하고자 함인지...전부 오징어라고 말하고 싶으신겐지
모르겠나이다.
우매하여...하하하..
해물잡탕을 끓이신 듯...좋은재료로...끝맛이 영 개운칠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어쩌면 좋습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1 13:56   좋아요 1 | URL
마태우스 님의 돌려까기를 시도했으나 보통의 내공으로는 어림도 없어서 엉망이 된 듯하옵니다.
그냥 모두까지-전략이라 생각하시면... ㅋㅋㅋㅋㅋ

[그장소] 2015-10-21 14:00   좋아요 0 | URL
애교로 때우시깁니까?^^ㅋ
그럼 맨입으로 아니되옵니다!~^^a
곰곰 생각하니...또 아닌 것도 아닌듯도 하고
너무 햇갈려 말입니다~ㅋㅋㅋ
곰곰님 꺼꾸로 매달려 3분간 벌칙 푸하핫!
그럼 문이 열릴까..나?!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1 14:31   좋아요 1 | URL
데구르르... 데구르르... 벌떡 !

[그장소] 2015-10-2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서방만 오시면...되는걸로~~^^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1 16:14   좋아요 1 | URL
만경루 가서 모시고 오겠습니다.

stella.K 2015-10-2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도에게 그런 전적이 있었나요? 그렇다면 말대로 정말 뒤주에서 뒈져도 할 말은 없어보이는 듯도
합니다. 그런데 이덕일은 어쩌자고 사도를 그처럼 어질고 착한 사람으로 평했을까요?
그런 사료는 어디 나와 있나요?

베테랑이 최 선생을 모티프로 했군요. 아직도 안 본지라...ㅠ

박 언니는 왜 하필 이럴 때 역사 교과서를,,,다른데 쓸 때도 많은데 예비비를 긴급 투입할만큼
중대사안인지 그걸 잘 모르겠어요. 여태까지 현재의 교과서로도 공부 잘하고 졸업했구만.

오늘은 브릿지가 약한 듯 하옵니다.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1 16:17   좋아요 1 | URL
한중록에 보면 막 100명 넘게 사람을 죽였다라고 나오는 구절이 있따고 하네요. ( 전 안 읽었음.. )

이덕일이 내세우는 것은 한중록이 홍씨 가문을 위해 사도를 미치광이로 몰았다는 거죠.
사도가 죽일 놈이 되어야 자기 가문이 화를 입지 않을 테니깐 말이죠. 사도가 미치광이가 아니었는데
죽였다면 장차 홍씨 가문의 앞날은 너무 뻔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팩트는 승정원 일기에 보면
사도가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영조가 정조를 와에 올리면서
사도에 대한 안 좋은 사료를 왕창 삭제햇는데도 그 자료가 있는 것을 보면... 이덕일의 논리는 좀 엉터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samadhi(眞我) 2015-10-21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렸어요. 제가 아직 학부생이라면 열심히 반대시위를 했을 텐데요. 저희과를 자칭 사악한 사학과 라 불렀지요.
ㄹ혜의 오랜 숙원이었던 게지요. 애비의 유지를 받들어. 거짓말같은 일들이,˝현대˝사회에서 일어나기도 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1 16:19   좋아요 0 | URL
100년은 후퇴한 거 같죠 ? 그냥 미친 세상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 새끼는 보니까. 이 새끼는 꽤 또라이인데 국정이냐 검정이냐를 놓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어느 것이 더 합당하냐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런 논리 펴는 놈들이 대부분 일베들임....

samadhi(眞我) 2015-10-21 16:21   좋아요 0 | URL
얼마나 무식한지. 그러니까 이를테면 ˝자유˝ 를 가지고 이게 필요한지 아닌지 찬반투표라도 하자는 얘기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1 16:2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오, 아주 적절한 비유입니다.

살리미 2015-10-2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1>과 <1%>의 차이 정말 엄청나군요. 요즘 최고존엄 1 때문에 아주 돌아버리겠어요. 유아인은 보기에 많이 흡족하기라도 했지만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2 13:41   좋아요 0 | URL
인간은 < ~ % > 에서 숫자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80%에 속하는 인간은 50%부류 내로 진입하려고 하죠. 쉽게 말해서 하층민은 중산층이 되려고 하고.... 50%에서 상위 30%로, 30%에서 10%, 1%, 0.1%......
최종 목적은 자신의 주체에서 %를 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완전체 1이 되기 위한.. 권력의 최종 핵심은 단독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지엄하신 남조선 최고존엄 땜시 불행하시죠 ? ㅎㅎㅎㅎㅎ
 
일방통행로 -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터 벤야민이 신경숙에게 :

 


 

샛길로 빠지지 말고 일방통행로, OK ? ”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 설운도, 나침반 가사 中 

 

 

ㅡ 포토몽타주, 존 하츠필드

 

비극은 < > 을 읽을 때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버릇에서 시작되었다. 밑줄을 긋다 보니 책은 반드시 사서 읽게 되었다. 버릇을 고쳐 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시작한 것. 문제는 섹시한 문장 을 만났을 때 발생하게 된다. 밑줄을 긋지 않고서는 내 것이 될 수 없는, ... 시바, 저 황홀하고 탱탱한 문장 ! 홍길동이 아버지와 형에게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해 억울해 하는, .......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때부터 안달이 나기 시작한다. , < > 고 싶은데 < > 지 못하는 심정 ! 나는 벌거벗은 애인의 침대 속으로 진격하고 싶은데 애인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접근 금지를 선포한 상황. “ 자기야, 오늘 밤 내 몸에 털 끝 하나라도 건드려봐 ? ”

 

그때부터 손이 간질거리기 시작한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애써 참고 책장을 넘겨 보지만 똥 싸고 나서 밑 안 닦고 나온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 이내 다짐하게 된다. 쩨쩨하게 살아도 밑은 닦고 살자 ! 결국, 도서관에서 읽은 책 가운데 밑줄을 긋고 싶어 안달이 났던 책을 다시 사서 밑줄을 그었다.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침을 바른다는 행위. , < > 지 못해서 안달이 났는데 < > 고 나니 < > 좋은 느낌. 바로....... 이 맛이제 ~ 뭐랄까 ? 개가 전봇대 아래 영역 표시를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할까. 이 버릇을 버리지 못하다 보니 책만 늘어나 내 방은 < 책책산중 > 이 되었다. 이사 갈 때마다 인상이 구겨지는 짐꾼 눈치를 보는 것도 지쳤다. 그러다 문득, << 밑줄 >> 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밑줄, 그것이 알고 싶은 것이다.

 

< 밑줄 > 이란 독자가 저자에게 보내는 좋아요, 공감, 엄지 이모티콘이다. 내게는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을수록 좋은 책이다. 만약에 책 한 권에서 밑줄을 그은 문장만 오려서 이어붙인다면 분량이 몇 페이지나 될까 ? (그럭저럭 읽을 만한 책이라는 가정에서) 책 분량이 평균 300페이지라고 했을 때 내가 그은 밑줄은 대략 3페이지 정도 되지 않을까 ? 마음에 쏙 드는 책은 10페이지 정도 뽑을 것이다. 예를 들면 : 롤랑 바르트의 << 사랑의 단상 >> , 미셀 푸코의 << 감시와 처벌 >> , 파스칼 키냐르의 << 섹스와 공포 >> , 김훈의 << 칼의 노래 >> 같은 경우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 독서란 3페이지의 알맹이를 위해서 300페이지를 읽어야 하는 비효율적인 두뇌 활동. 우우, 하지 마시라.

 

한쪽 벽에 산성처럼 쌓여가는 책을 볼 때마다 밑줄 그은 문장만 도려낸 후, 두께가 나가는 무지 노트에 이어붙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밑줄 친 문장을 도려내고 남은 책은 중고 장터에다 팔리라). 일종의 독서 써머리 노트 라고나 할까 ? 써머리 노트 한 권에 수천 권에서 뽑아낸 밑줄 그은 문장이 있는 것이다. 이 상상을 실천한 작가가 있다.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는 그가 도서관에서 밑줄 친 문장들로 구성된, 저자와의 합의 없이 무단 도용된, 저작권 소송 전문 변호사가 좋아할 만한 책이다. 누군가 벤야민에게 무인도에 표류할 경우 들고 갈 책 10권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는 당연히 << 아케이드 프로젝트 >> 1권만 선택할 것이다. “ 무인도에 표류하는 비상 사태를 대비해서 미리 책 한 권 만들었수다. ”

 

발터 벤야민은 << 일방통행로 >> 에서 현학에 빠진 책에 대해 조롱 섞인 글을 내놓는다.


 

서술하는 내내 질질 끌면서 요설에 가까울 정도로 원래 구상에 대한 설명을 끼워 넣을 것

각각의 규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 말고도 더 이상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개념들을 위한 용어를 도입할 것.

본문에서 어렵게 이루어진 개념 구별도 해당 부분의 주석에서는 다시 애매하게 할 것.

일반적인 의미로만 다루어지고 있는 개념들에 대해서도 예를 들 것. 예를 들어 기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모든 종류의 기계를 일일이 열거할 것.

어떤 대상에 대해 모든 것이 선험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풍부한 예를 들어 확증할 것.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관계들도 말로 상술할 것. 예를 들어 계통수로 표시하는 대신 모든 혈연관계를 열거하고 묘사할 것.

복수의 논적이 동일한 논거를 사용하고 있더라도 하나하나 따로따로 반론할 것.

 

교재, 대저(大著)원리들 또는 두꺼운 책의 집필 요령

 

 

나는 그가 내놓은 집필 요령에 밑줄을 쫘악 ~ 그으며 미친년처럼 웃었다. 그것은 내가 발터 벤야민에게 보내는 짱좋아요, 공감백배, 엄지두개, 환호작약, 육성응원(!!!!), 속시원타(속 시원합니다) - 메시지였다. 그도 나처럼 < 서둘러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상아탑 꼰대 문장 스타일 > 에 질려버린 모양이다. 특히 계통수 그림으로 설명하면 될 것을 말로 30페이지를 잡아먹고 시작하는 슨상님 책에는 밑줄은커녕 등짝을 한 대 차 주고 싶었다. 제임스 조이스 선생, 보고 있나 ? 그가 보기에 저런 책(혹은 저자)괜히 젠 체하기만 하며 일반적인 제스처만 취하고 마는 저서(혹은 저자) ” . << 일방통행로 >> 는 곳곳에서 주류 학계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또한 이 책은 철학자로서의 발터 벤야민뿐만 아니라 문학가로서의 발터 벤야민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일방통행로 >> 는 보들레르가 쓴 < 파리의 우울 > 이요, 스피노자가 다시 고쳐 쓴 < 에티카 유머집 > 같다. 다음과 같은 문장은 어떤가 ? 지금부터 당신은 산문의 정수를 보게 된다.


 

길 초입에 문이 하나 있다. 그녀가 이사 간 후 이 문의 아치형 입구는 그때부터 청력을 잃은 귓바퀴처럼 내 앞에 서 있다(중국 도자기 공예품 ) ”

생각은 영감을 죽이고 문체는 생각을 속박하며 집필은 문체에 보수를 지불한다(벽보 부착 금지 ) ”

여름에는 뚱뚱한 사람들이 눈에 잘 띄지만 겨울에는 마른 사람들이 눈에 잘 띈다,..... 시선은 인간의 찌꺼기다(안경점 )”

책과 매춘부는 진열될 때 등을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13번지 ) ”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이 떠오른 인물은 아도르노나 숄렘이 아닌, < 신경숙과 비평가들 > 이었다. 그는 << 세놓음 >> 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보들이나 비평의 쇠퇴를 애석해한다. 비평의 명맥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인데도 말이다. 비평이란 정확하게 거리를 두는 문제이다. 비평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은 원근법적 조망과 전체적 조망이 중요한 세계, 특정한 관점을 취하는 것이 아직도 가능한 세계이다. 그런데 지금 온갖 사물들이 너무 긴박하게 인간 사회를 짓누르며 다가오고 있다. 편견 없는, 자유로운 시선 같은 것은 거짓말이 되었다(135)

 

 

 

신경숙과 발터 벤야민의 공통점은 필사(筆寫)를 필사(必死)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벤야민이 도서관에서 원본을 필사한 사본을 엮은 책이 << 아케이드 프로젝트 >> 이니 말이다. 신경숙이 자신이 갈고닦은 수련법으로 < 필사 > 를 예찬했듯이, 발터 벤야민도 < 필사 > 를 예찬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길의 지배력을 알며,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는 그저 쭉 펼쳐져 있는 평야에 불과한 지형들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마치 병사들을 전선에 배치하는 지휘관의 호령처럼 원경들, 전망대, 숲 속의 공터, 굽이굽이 길목마다 펼쳐진 멋진 조망을 불러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베껴 쓴 텍스트만이 그것에 몰두한 사람의 영혼에게 호령할 수 있 다고 말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 가는 길이 달랐다. 신경숙은 필사를 연마해서 < 우국 > 을 내놓았고, 발터 벤야민은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를 내놓았다.

 

한쪽은 샛길로 빠진 반면 다른 한쪽은 일방통행로로 정직하게 달린 것이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를 읽다 보면 그가 도서관에서 베낀 문장 아래 강박적일 만큼 촘촘하게 기록된 출처에 질리게 된다. 그는 짧은 문장을 인용할 때도 저자, 책 제목, 쪽을 기록했다. 반면 신경숙은 문장을 그대로 베꼈지만 그 어디에도 저자와 제목과 쪽을 기록한 흔적이 없다. 벤야민에게 < 비평 > 이란 정확하게 거리를 두는 문제 이다. 그런 점에서 신경숙을 두고 감싼 문동과 창비는 거리를 두는 행위 에 실패했다. 주례사와 정실 비평이 주범이다. 주례사/정실 비평은 계통수를 그림으로 설명하는 대신 지적 허세가 가득 담긴 만연체로 비평문을 남발했다. 부드러운 칭찬과 시적 미문은 비평가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

 

비평가의 손에 쥐어져야 할 것은 자양강장제 < 박카스 > 가 아니라 정신들의 투쟁 속에서 번뜩이는 < > 이다. ” 발터 벤야민이 쓴 << 비평가의 테크닉에 관한 13개의 테제 >> 에 나오는 문장이다. 벤야민이 불로장생하여 신경숙 논란에 대해 20자 논평을 한다면 무슨 말을 남길까. 이런 코멘트가 아니었을까 ?

 

샛길로 빠지지 말고 일방통행로, 오케이 ?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10-17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벤야민과 프루스트.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극세사’ 정신을 좋아합니다. 조이스도 그런 성향이 있긴 한데, 내용이 너무 현학적이라서 재미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프루스트의 소설이 지루하다고 말하는데,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안 읽어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10-17 10:46   좋아요 0 | URL
극세사 정신.. ㅎㅎㅎㅎ 아주 좋은 표현이군요.
극세사 정신 하면 뭐... 많죠. ㅎㅎ 도스토예프스키도 한몫하려나요?
저.. 진짜 왠만한 지루한 소설 다 읽는데 율리시스는 제가 워낙 아는 게 없어서
무슨 말 하는지 몽롱하더군요..

수다맨 2015-10-16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케이트 프로젝트를 사두고 여적지 읽고 있지 않답니다. 한동안 바빠서 그랬는지, 책이 손에 안 잡히더라구요. 솔직히 요즘 나오는 책들이 열에 열 다 이면지 묶음처럼 느껴지더군요. 그 와중에 벤야민의 한 구절을 여기서 읽으니, 청량감이 느껴집니다. 한국에는 이런 비평가가 없는 것 같아요. 지식을 모으는 능력은 다들 절륜해 보이는데 지혜나 강단을 가진 사람은 드물어 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0-17 12:32   좋아요 0 | URL
책 구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씁니다. 전 처음에 어디가 인용문이고 어디가 작가 코멘트인지 몰라서 엄청 헷갈려했는데 우선 책 읽기 전에 책이 구성된 구조를 파악해야 이해하기 빠릅니다. 본문 들어가기 전에 아케이드 개론서부터 하나 읽고 나서 읽으면 빠른 이해가 가능합니다.

우선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토 몽타주 기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의 사진과 사진을 조합해서 작가의 주장을 부각시키는 것이 몽타주 기법입니다. 요 기법을 하츠필드가 대표적이죠. 일종의 희화화죠. 그는 몽타주 이미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텍스트를 삽입합니다. 사진에 문자를 삽입하는 방식.... 아케이드돠 이 몽타주 기법과 매우 유사합니다.

실제로 벤야민은 사진 이미지를 엄청나게 모았다고 하죠 ?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쓸려고 말이비낟. 유감스럽게도 이 묶음은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yamoo 2015-10-18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인용하신 부분을 보니 엔날에 읽는 기억이 납니다. 저도 그 부분에 밑줄을 쳐놓았던 기억이...박스로 인용해 주신 글들 대부분 저도 줄친 부분인 듯합니다.

사이러스 님의 극세사 정신이란 표현이 와 닿네요! 아주 좋은 표현이라 종종 써먹을 거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0-18 13:08   좋아요 0 | URL
아케이드와 번갈아가며 읽고 있습니다. ( 물론 이 책은 다 읽었습니다만... )
이제 슬슬 베를린 어린 시절 읽을 때가 온 것 같군요.


저도 극세사 정신이란 말이 좋아서 종종 그 표현을 훔칠 생각입니다. ^^
 

 

 

 

 

 

 

 

 

 

 

 


 

 

 

 

완성된 책은 착상의 죽음이다

   

 

아 인간이 가진 가능성이란 게 얼마나 무한한 것인가 ! 미완성 작품, 이 작품, 아마 우리들 시대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일지도 모를 이 작품......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단편 [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中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밥상 위에서 펼쳐졌던 혈육 상잔은 대개 < 젓가락질 > 에서 시작되었다. 황우석 이전에 그림을 팔아 겨우 고기 반 근을 사들고 집에 와야 했던 가난한 아비의 두 아들이 있었으니, 소생은 어린 나이에도 고기 한 점 더 먹겠다고 뜨거운 고기를 씹지도 않고 삼키는 신기술을 몸소 터득해야 했다.  신공은 21세기 젓가락질이 아니라 20세기 화통(火筒)을 삼키는 내공에 있었다. 식도는 불에 타도 배때기에 고소한 기름은 남으리라.         소생 또한 누대가 대대로 가난한 집 자손이어서 “ 괴기 한 점 ” 앞에서는 영혼을 팔 각오가 되어 있었다. 동생과 나는 고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사뭇 달랐다. 동생은 나중에 반찬이 떨어져 맨밥을 먹더라도 일단 고기부터 거덜 내고 보자는 주의였고,

  

나는 밥 한 숟가락에 고기 한 점씩 고르게 배분해서 밥그릇 비울 때까지 괴기 맛을 음미하자는 주의였다. 집중이냐 분배냐 ?  동생은 독식을 찬양했고, 나는 고른 분배에 방점을 찍었다. 극과 극, 상극이다 보니 형제는 밥상머리에서 흥야항야하기 일쑤였다. 결론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나 또한 동생의 전략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기반찬이 나오면 맨밥을 먹는 날이 나날이 늘어갔다. 상투 틀 나이에도 고기에 대한 식탐이 남아 있었다면 밥상머리 앞에서 볼썽사납게 상투 잡고 “ 삐약삐약 ” 할 뻔했다.            훗날, 동생은 정치적으로 우파를 지지했고 나는 좌파를 지지했다. 어릴 때 밥상머리 행동 강령‘이 정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우리 형제는 지난 무상급식 논란 때도 다퉜다. 허, 허허허허허허 하면서 말이다.

  

고기를 앞에 두고 집중이냐 분배냐를 놓고 싸우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다.  볼록 나온 올챙이 배를 걱정하며 동치미 국물을 깨작깨작 마셨을 뿐이다.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올해 독서 목표는 < 다독 > 이 아니라 < 정독 > 이었다. 씹지도 않고 삼켰던 수많은 책을 부끄러워하며, 뜨신 밥 한 숟가락 위에 고기 한 점 올려놓고 천천히 오래오래 씹어보자는 의도였다. 첫 번째 목표는 스피노자의 << 에티카 >> 를 읽는 것이었는데 일찌감치 포기했다.  만만한 줄 알았으나 만만하지 않아서 이만저만 실만(실망)한 게 아니었다.  << 에티카 >>  읽기는 이만 하면 그만 !  < 에티카 읽기 > 은 내가 이 책을 읽기에는 아직 덜떨어진 놈이란 사실만 증명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 이리하여 이 정리는 증명되었다. ”

  

두 번째 목표 도서는 발터 벤야민의 << 아케이드 프로젝트 >> 였다. 몇 달째 매달리고 있으나 아직 밥그릇을 다 비우지 못했다.  2500쪽 분량이다 보니 진도가 늦어지는 이유도 있지만, 그 이유보다는 < 지적 유희의 최전선 > 을 만났다는 데 있었다. 서지(書誌)의 환락가에서 노는 맛이란 이런 것이다. 읽기를 늦출수록 쾌락은 지연된다.           발터 벤야민이 주목한 아케이드는 보르헤스가 꿈꾼 “ 바벨의 도서관 ” 이며 “ 원형의 폐허 ” 이자 “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 이었다.  그는 보들레르처럼 만보객‘이 되어서 거리에서  < 시대적 우울 > 을 읽어 나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거리를 걷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고, 벤야민은 아케이드 거리 상점 쇼윈도우에 진열된 상품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라는 풀네임을 발음할 때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풀네임이 얼마나 우아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문학적 위상으로 보면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이름을 놓고 보면 릴케의 완승이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노회한 정치가 이름 같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의  아버지에게 < big 엿 > 을 !

  

책을 읽다가 이해가 필요한 부분은 아케이드 프로젝트 해설서에 해당되는 <<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 수잔 벅 모스 지음 >> 를, 보들레르의 << 악의 꽃 >> 과 << 파리의 우울 >>을, 그 외 << 일방통행로 >> 와 데이비드 하비의 << 지리학 >> 서적을 참고하여 각주 읽듯이 번갈아가며 읽다 보니 진도가 더 느릴 수밖에.  끝이 보일 때 기운이 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끝이 보일 때 아쉬운 책이 있다. 내 경험으로 미뤄 끝이 보일 때(마지막 페이지를 몇 장 남겨두었을 때) 힘이 솟는 책은 역설적이게도 그리 좋은 책이 아니었다. 100킬로 행군 끝에 오는 달콤한 휴식이라고나 할까 ?  고된 행군 끝에 최종 목적지가 보일 때 천 근 만 근 같던 군화가 나비 날개‘처럼 팔랑팔랑 가볍게 느껴지던 순간은 모두 다 경험했으리.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었을 때 힘이 솟는다는 것은 그 책에 대한 독서 경험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늦거나 이른 오후 3시처럼 애매모호한 책이 있다. 읽기를 멈추고 책을 덮자니 내용이 그리 형편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내를 가지고 읽자니 지루해서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순간.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읽다가 어느새 끝이 보이는 책이니 즐거운 독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영화 << 달콤한 인생 >> 에서 양아치를 연기한 황정민 말투를 흉내 내자면 “ 독서는 고해야, 몰랐어 ? ” 반대로 끝이 보일 때 힘이 빠지는 책은 좋은 책이다. 읽는 내내 즐거웠기에 이별이 아쉬운 탓이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1,2 >>    를 읽다 보면 아, 하다가 다시 아, 아아 하게 된다. 경탄, 경탄, 경탄의 < 아 > 다. 그는 < 시시껄렁한 문화사 사료 > 에 몰두했지만 그 사유는 독특한 방식으로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역사, 철학 전 방위로 확장되었다.      그가 주목한 사료들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주류 철학자와는 달리“ 문학의 틀을 차용하는 모든 문학 행위 ” 는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예외가 있다면 벤야민은 보들레르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보들레르에 대한 카테고리 J는 거의 책 한 권 분량이다). 대신 벤야민이 주목한 것은 광고(선전용)인쇄물, 소책자, 신문 기사, 플래카드 따위였다.  그는 망원경으로 먼 산을 보는 대신 현미경으로 < 일상에서 분열되는 틈 > 을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그는 인간이 고고하다는 신화를 믿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 유치하다 ” 고 생각했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라고 부른 계획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가 세계 각국의 도서관을 전전하며 수집한 개요, 사료, 그것에 덧대는 간단한 논평 모음을 엮은 책이 바로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로,

 

■ < 쿨 > 하게 말하자면 : 이 책은 착상과 집필 단계 中 중간 형태인 자료 수집 단계로 냉정하게 보자면 서류 뭉치일 뿐이며 많은 부분이 원본에 의지한 사본이었다. “ 미완의 걸작 ” 이라는 표현도 어폐가 있다. 이 책은 글을 쓰다가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집필)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저자 수천 명의 동의도 없이 무단 발췌한 책임편집자였던 셈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저작권 소송 전문 변호사의 눈으로 보자면 이 책은 수천 명이나 되는 저자와 합의 하에 이루어진 발췌가 아닌, 무단 도용이기에 수천 명으로부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받을 운명인 책이다. 그리고 -

 

■ < 핫 > 하게 말하자면  :  미완성이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고, 완벽한 걸작을 낳았다. 그는 거리에서 시대적 증후를 읽고, 그 증후에 맞는 문장을 고르기 위해 도서관에서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그가 선택한 문장은 출처가 다양했다. 오히려 “ 괜히 젠 체하기만 하며 일반적인 제스처만 취하고 마는 저서보다 현재 활동 중인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기에 훨씬 더 적합한, 언뜻 싸구려처럼 보이는 형식들, 즉 전단지, 팸플릿, 신문 기사와 플래카드 ( 일방통행로, 14쪽) ”에서 발췌했다. 그는 철저하게 현학을 배제하고 현장을 중시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 아케이드 프로젝트 >> 인데 말 그대로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올려놓았을 뿐인 책이다.

  

그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덧씌워졌을 뿐이다. 수많은 인용문으로 채워진 이 책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니체 또한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 고 생각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낡은 것 위에 덧씌워진 환(등)상일 뿐이다. 그것은 일종의 패로디‘였다. 니체는 20세기를 두고 “ 패로디가 시작된다 ” 고 말했다. 니체가 말한 패로디와 벤야민이 주목한 몽타주는 서로 겹친다. 패로디와 몽타주는 모두 지난 재료를 가지고 도용, 모방, 복사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그는“ 완성된 책은 착상의 죽음 ” 이라고 썼다. 그는 << 일방통행로 >> 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장을 쓴 적이 있다. “ 작품은 구상의 데스마스크’이다. ” 이 문장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 착상 > 이란 상상 속에서 원고지 칸을 채우는 과정이고, < 완성된 책 > 은 착상(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밖으로 빼낸 결과이니 귀뚜라미와 연가시의 관계가 아닐까 ?  이 세상 모든 < 완성된 책 > 은 머릿속에서 기생하며 영양분을 빼앗아 먹다가 때가 되면 세상 밖으로 나온 연가시 성충이다. 착상은 숙주이고 완성된 책은 기생충인 셈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발터 벤야민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세운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못한 채 “ 거대한 착상 ” 으로만 존재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의 한 형태라는 사실도 ! 유태인이었던 발터 벤야민은 히틀러를 피해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마을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좌절되자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약물인 모르핀을 과다 투여한 후 죽었다(1940년). 그가 국경 마을 여인숙에서 남긴 것이라고는 “ 사무용 가죽가방, 남자용 손목시계, 파이프, 사진 여섯 장, 엑스레이 사진, 안경, 편지들, 내용이 기록되지 않은 잡지들과 기타 문서들, 그리고 약간의 돈(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수잔 벅 모스 452쪽)“ 이 전부였다.  아쉽게도 종이뭉치는 남아 있지 않다. 자살 시도는 처음이 아니었다. 1931년에도 자살을 시도했으며 1932년에도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착수한 해가 1927년이었으니 그는 이미 수차례 계획을 포기했던 셈이다.

  

<<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 에서 제바스타인 하프너는 현대를“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다 ” 라고 지적했는데, 이 지적은 고스란히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라는 책에도 해당된다. “ 좋든 싫든, 오늘날에 미완성으로 남은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는 히틀러의 작품이다. ”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벤야민은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구성과 카테고리 순서가 바뀐  연가시 성충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 완성된 책 > 은 미완성으로 끝난 지금의 책보다 더 완벽한 형태를 갖추게 될까 ? 쉽게 내릴 수 없는 “ 결론 ” 이다 ■

 

 

 

 

 

 

덧대기 ㅣ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는 몽타주 기법을 적극 끌어들인 책이다. 존 하츠필드는 서로 다른 사진 이미지를 연결해서 새로운 이미지-메시지를 만든다(그는 기존 이미지 1 + 2 를 합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다). 여기에 모호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텍스트 3를  삽입한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도 인용문 1 과 인용문 2를 이어붙인 후 발터 벤야민의 코멘트 3를 합성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다. 이 책은 레터(letter) 몽타주 기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madhi(眞我) 2015-10-1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요즘 글들이 무지하게 기네요. 길게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쓸데없는 수다는 길게 늘어놓을 수 있지만 논쟁거리(?)들을 풀어놓기는 어려운 일인데요.
어찌보면 발터 벤야민은 백과사전(?)을 만들고자 한 건 아닐까요? ㅋㅋ
호기심이 뭉게뭉게 피어나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한가 보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0-16 12:50   좋아요 0 | URL
누가 벤야민 서평을 읽겠습니까. 그래서 길게 썼습니다. 서평을 안 쓰면 나중에 내용을 잊어보리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정리라도 해야 리뷰 보고... 아, 그런 내용이었지 .. 하게 됩니다.

stella.K 2015-10-16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이맘 때 도정제 임박하기 전 저 벤야민 책을 사라고 했다 도저히 너무 두꺼워
못 읽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곰발님이 리뷰를 올리겠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언제 올라오나 했는데 드디어 올리셨군요. 벤야민도 벤야민이지만 곰발님도 대단하셔요.
벤야민이야 자신이 그렇게 쓰겠다고 했으니 말릴 수는 없는 일이고,
이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슴까?
그런데 과연 어떻게 썼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책이 좀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졌다면 저도 늦게라도 도전해 보겠는데
아무래도 좀 어마무시하게 생겨서 겁이나는군요.
암튼 완독 축하하구요, 참 잘했어요!ㅋㅋ

참, 이제 곰발님 책만 나오면 되는데...ㅜㅜ

곰곰생각하는발 2015-10-16 12:52   좋아요 0 | URL
저도 도정제 할 때 호시탐탐 노리던 게 가져온 놈들입니다.
전 학자들이 상아탑 높은 곳에서 뒷짐 지며 사랑은 아름답다. 정의는 승리하리라, 이런 말 하는 놈을 굉징히 거부감이 생겨서... 이런 이단아 나오면 좋아합니다. 벤야민도 그런 부류를 굉장히 혐오했죠.

책상에 앉아서 좋은 소리만 한다고... 거리를 나가서 사람을 보라고...
뭐... 그런 내용입니다.

이런 책은 그냥 아예 천천히 읽기 작전으로 해야 합니다. 저도 하루에 4,5장 아니면 10장 정도 읽습니다. 무리하지 않는게 장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