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싱어 4, 신해철 편 : 두 개의 망령
남해용왕 우연득병하여 아무리 약을 써도 백약이 무효라 / 이때 용왕 꿈속에 신령 나타나 토끼 간이 제약이라 일러주니 / 이말을 들은 용왕, 별주부에게 명하기를~ “ 토끼를 잡아오너라~”허니 이말 들은 별주부 말 허기를 / 난감하네~ 난감하네~ 난감하네 ~ 난감하네
-난감하네, 프로젝트 락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망령은 누구일까 ? 죽어서 추한 몰골이 되었으나 유명인사가 될 운명을 가진 자는 누구란 말이더냐. 내가 보기엔 햄릿의 선왕'이다. 연극 <<햄릿 >> 은 무대 위에 오를 등장인물이 모두 죽어서 어쩔 수 없이 상연이 중단된 연극이다. 오필리어 가문을 보자 : 약혼자인 오필리어가 죽고, 아버지인 플로니어스 재상도 죽고, 오도방 쇼바 높이 올리며 말 달리던 오라방 레어티즈도 죽는다. 햄릿 가문도 오필리어 가문과 마찬가지로 멸문지화'를 당한다. 아버지 선왕이 죽은 이후, 어머니인 거투르드 왕비도 죽고, (선왕의 동생이자, 어머니의 남편이며, 햄릿에게는 삼촌이자 의붓 아버지인) 클로디어스 왕도 죽는다.
물론 주인공 햄릿도 죽는다. 말 그대로 혈육상잔'인 셈이다. 다 죽고 없으니 이제 < 소 > 는 누가 키울 것인가 ? 이 비극을 초래한 발단은 < 아버지 - 망령 > 이 출몰했기 때문이었다. 궁궐 밖에서 선왕으로 보이는 망령이 어슬렁거린다는 첩보를 입수한 햄릿은 망령과 대면한다. 망령이 말한다. " 이 아비는 거지가 되어 동천을 떠도는데 너는 몸 성히~ 성히~ 성히~ 성히 잘 있구나. 내 동생이자 네 삼촌인 오호츠크 시밤바가 네 어머니와 정분이 나서 나를 독살하였느니라. 오호, 츠쿠나(춥구나) ! 몸이 떨리나니, 아들아 ! 하이에나의 억센 턱과 발이 되어서 억울한 내 죽음을 낱낱이 파헤쳐다오. 이제 복수는 너의 것이란다. " 아아, 진정 무서운 것은 (죽은 자의) 몰골이 아니라 (죽은 자가 전하는) 발화(發話)였으니,
아들 햄릿은 망령의 몰골보다 그가 전하는 말 앞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진실을 안 이상, 행동하지 않을 이 뉘 있으리. 죽은 자가 꿈에 나타나는 것도 불길한데 하물며 생시(生時)에 나타난다는 것은 ! 그런데 망령'이 모두 불길한 존재만은 아니다. 즐거움을 주는 망령도 있다. << 히든 싱어 4 : 신해철 편 >> 에서 제작진은 신해철을 무대 위로 호명한다. < 그 > 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하는 망령(亡靈) 신분으로 참가한다. 한자 亡이 無와 같은 뜻이니 망령은 靈의 無다. 신해철은 이 무대 위에서 부재하는 존재로서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죽은 자를 흉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문이 열리면 몸은 없고 목소리만 울려 퍼지리라.
하지만 웬걸 ? 통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죽은 자의 망령이 아니라 산 자'다. 원본보다 사본이 더 원본 같다. 우리는 산 자의 몸에 빙의된, 죽은 자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 히든 싱어 >> 는 아마추어가 기성 가수의 노래를 똑같이 흉내 내는 버라이어티 쇼'다. 방청객과 시청자는 신해철 성대모사를 똑같이 하는, 신묘에 가까운 재주에 박장대소하다가도 느닷없이 한겨울 대설大雪 에 내리는 눈처럼 펑펑 울기도 한다. 이 망령의 출몰 앞에서 몸을 부들부들 떠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찌 되었든, 그는 죽은 자가 되어서 산 자의 무대 위에 오른 광대'다. 방송을 보다가 문득 <<히든 싱어 : 신해철 편 >> 은 한판 질펀한 < 굿 > 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징과 꽹과리, 장구가 사용되지 않는다 뿐이지
기타와 드럼, 신디사이저로 풍악을 울리며 춤과 노래를 즐기는 것이 영락없이 씻김굿이다. < 굿 > 은 서양과는 달리 죽은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볼거리이지 무서운 풍경이 아니다. 죽은 자는 무당의 몸을 빌려 못다 한 말을 하고 떠난다. << 히든 싱어 >> 에 출연한 망령도 히든 싱어'의 몸을 빌려 못다 한 노래를 부른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떠나야 했으니 이렇게 다시 만나 즐겁게 놀다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는 것이다. < 그 > 가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령이 출몰했는데도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쌓은 좋은 덕'이 아닐까 ?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망령이 햄릿의 선왕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망령은 박정희가 아닐까 싶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를 따라하는 히든 싱어'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모르겠으나 성대모사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서 싱크로율이 99% 다. 그녀가 궁궐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아버지 성대모사를 할 때마다 아버지의 망령(亡靈)이 되살아나 궁궐 밖에서 아른거린다. 그런데 전혀 즐겁지가 않다. 죽은 자 신해철의 출몰에는 희노애락이 느껴지지만 박근혜가 살려낸 망령 앞에서는 회(喜)와 락(樂)은 없고 노(怒)와 애(哀)만 느껴진다. 같은 망령인데 전혀 다른 망령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의 출몰은 햄릿의 선왕을 닮았다. 이럴 때 내뱉는 유행어가 있다. “ 난감하네, 난감하네 ! ” 망령(亡靈)은 사전적 의미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하고, 두 번째는 혐오스러운 과거의 잔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뜻한다.
우리가 망령에게 바라는 것은 명령을 내리는 망령이 아니다. 재미있게 놀 줄 아는 망령‘이다. 이런 망령 말이다. “ 산 자들이여 ! 뛸 준비 되셨습니까아아아 ~~~~ 안 놀면 미워할꺼야아아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