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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로 -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7년 7월
평점 :
발터 벤야민이 신경숙에게 :
“ 샛길로 빠지지 말고 일방통행로, OK ? ”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 설운도, 나침반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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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포토몽타주, 존 하츠필드
비극은 < 책 > 을 읽을 때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버릇‘에서 시작되었다. 밑줄을 긋다 보니 책은 반드시 사서 읽게 되었다. 버릇을 고쳐 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시작한 것. 문제는 “ 섹시한 문장 ” 을 만났을 때 발생하게 된다. 밑줄을 긋지 않고서는 내 것이 될 수 없는, 아... 시바, 저 황홀하고 탱탱한 문장 ! 홍길동’이 아버지와 형에게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해 억울해 하는, 하.......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때부터 안달이 나기 시작한다. 하, < 하 > 고 싶은데 < 하 > 지 못하는 심정 ! 나는 벌거벗은 애인의 침대 속으로 진격하고 싶은데 애인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접근 금지를 선포한 상황. “ 자기야, 오늘 밤 내 몸에 털 끝 하나라도 건드려봐 ? ”
그때부터 손이 간질거리기 시작한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애써 참고 책장을 넘겨 보지만 똥 싸고 나서 밑 안 닦고 나온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 이내 다짐하게 된다. 쩨쩨하게 살아도 밑은 닦고 살자 ! 결국, 도서관에서 읽은 책 가운데 밑줄을 긋고 싶어 안달이 났던 책을 다시 사서 밑줄을 그었다.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침을 바른다는 행위. 하, < 하 > 지 못해서 안달이 났는데 < 하 > 고 나니 < 아 > 좋은 느낌. 바로....... 이 맛이제 ~ 뭐랄까 ? 개가 전봇대 아래 영역 표시를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할까. 이 버릇을 버리지 못하다 보니 책만 늘어나 내 방은 < 책책산중 > 이 되었다. 이사 갈 때마다 인상이 구겨지는 짐꾼 눈치를 보는 것도 지쳤다. 그러다 문득, << 밑줄 >> 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밑줄, 그것이 알고 싶은 것이다.
< 밑줄 > 이란 독자가 저자에게 보내는 좋아요, 공감, 엄지 이모티콘‘이다. 내게는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을수록 좋은 책이다. 만약에 책 한 권에서 밑줄을 그은 문장만 오려서 이어붙인다면 분량이 몇 페이지나 될까 ? (그럭저럭 읽을 만한 책이라는 가정에서) 책 분량이 평균 300페이지’라고 했을 때 내가 그은 밑줄은 대략 3페이지 정도 되지 않을까 ? 마음에 쏙 드는 책은 10페이지 정도 뽑을 것이다. 예를 들면 : 롤랑 바르트의 << 사랑의 단상 >> , 미셀 푸코의 << 감시와 처벌 >> , 파스칼 키냐르의 << 섹스와 공포 >> , 김훈의 << 칼의 노래 >> 같은 경우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 독서란 3페이지의 알맹이를 위해서 300페이지를 읽어야 하는 비효율적인 두뇌 활동. 우우, 하지 마시라.
한쪽 벽에 산성처럼 쌓여가는 책을 볼 때마다 밑줄 그은 문장만 도려낸 후, 두께가 나가는 무지 노트에 이어붙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밑줄 친 문장을 도려내고 남은 책은 중고 장터에다 팔리라). 일종의 “ 독서 써머리 노트 ” 라고나 할까 ? 써머리 노트 한 권에 수천 권에서 뽑아낸 밑줄 그은 문장이 있는 것이다. 이 상상을 실천한 작가가 있다.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는 그가 도서관에서 밑줄 친 문장들로 구성된, 저자와의 합의 없이 무단 도용된, 저작권 소송 전문 변호사가 좋아할 만한 책이다. 누군가 벤야민에게 무인도에 표류할 경우 들고 갈 책 10권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는 당연히 << 아케이드 프로젝트 >> 1권만 선택할 것이다. “ 무인도에 표류하는 비상 사태를 대비해서 미리 책 한 권 만들었수다. ”
발터 벤야민은 << 일방통행로 >> 에서 현학에 빠진 책에 대해 조롱 섞인 글을 내놓는다.
서술하는 내내 질질 끌면서 요설에 가까울 정도로 원래 구상에 대한 설명을 끼워 넣을 것
각각의 규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 말고도 더 이상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개념들을 위한 용어를 도입할 것.
본문에서 어렵게 이루어진 개념 구별도 해당 부분의 주석에서는 다시 애매하게 할 것.
일반적인 의미로만 다루어지고 있는 개념들에 대해서도 예를 들 것. 예를 들어 기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모든 종류의 기계를 일일이 열거할 것.
어떤 대상에 대해 모든 것이 선험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풍부한 예를 들어 확증할 것.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관계들도 말로 상술할 것. 예를 들어 계통수로 표시하는 대신 모든 혈연관계를 열거하고 묘사할 것.
복수의 논적이 동일한 논거를 사용하고 있더라도 하나하나 따로따로 반론할 것.
교재, 대저(大著)의 원리들 또는 두꺼운 책의 집필 요령 中
나는 그가 내놓은 집필 요령에 밑줄을 쫘악 ~ 그으며 미친년처럼 웃었다. 그것은 내가 발터 벤야민에게 보내는 짱좋아요, 공감백배, 엄지두개, 환호작약, 육성응원(불!꽃!한!화!), 속시원타(속 시원합니다) - 메시지‘였다. 그도 나처럼 < 서둘러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상아탑 꼰대 문장 스타일 > 에 질려버린 모양이다. 특히 계통수 그림으로 설명하면 될 것을 말로 30페이지를 잡아먹고 시작하는 슨상님 책에는 밑줄은커녕 등짝을 한 대 차 주고 싶었다. 제임스 조이스 선생, 보고 있나 ? 그가 보기에 저런 책(혹은 저자)은 “ 괜히 젠 체하기만 하며 일반적인 제스처만 취하고 마는 저서(혹은 저자) ” 다. << 일방통행로 >> 는 곳곳에서 주류 학계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또한 이 책은 철학자로서의 발터 벤야민’뿐만 아니라 문학가로서의 발터 벤야민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일방통행로 >> 는 보들레르가 쓴 < 파리의 우울 > 이요, 스피노자가 다시 고쳐 쓴 < 에티카 유머집 > 같다. 다음과 같은 문장은 어떤가 ? 지금부터 당신은 산문의 정수를 보게 된다.
㉠“ 길 초입에 문이 하나 있다. 그녀가 이사 간 후 이 문의 아치형 입구는 그때부터 청력을 잃은 귓바퀴처럼 내 앞에 서 있다(중국 도자기 공예품 中) ”
㉡ “ 생각은 영감을 죽이고 문체는 생각을 속박하며 집필은 문체에 보수를 지불한다(벽보 부착 금지 中) ”
㉢ “ 여름에는 뚱뚱한 사람들이 눈에 잘 띄지만 겨울에는 마른 사람들이 눈에 잘 띈다,..... 시선은 인간의 찌꺼기다(안경점 中)”
㉣ “ 책과 매춘부는 진열될 때 등을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13번지 中) ”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이 떠오른 인물은 아도르노나 숄렘이 아닌, < 신경숙과 비평가들 > 이었다. 그는 << 세놓음 >> 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보들이나 비평의 쇠퇴를 애석해한다. 비평의 명맥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인데도 말이다. 비평이란 정확하게 거리를 두는 문제이다. 비평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은 원근법적 조망과 전체적 조망이 중요한 세계, 특정한 관점을 취하는 것이 아직도 가능한 세계이다. 그런데 지금 온갖 사물들이 너무 긴박하게 인간 사회를 짓누르며 다가오고 있다. 편견 없는, 자유로운 시선 같은 것은 거짓말이 되었다(135쪽)
신경숙과 발터 벤야민의 공통점은 필사(筆寫)를 필사(必死)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벤야민이 도서관에서 원본을 필사한 사본을 엮은 책이 << 아케이드 프로젝트 >> 이니 말이다. 신경숙이 자신이 갈고닦은 수련법으로 < 필사 > 를 예찬했듯이, 발터 벤야민도 < 필사 > 를 예찬했다. “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길의 지배력을 알며,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는 그저 쭉 펼쳐져 있는 평야에 불과한 지형들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마치 병사들을 전선에 배치하는 지휘관의 호령처럼 원경들, 전망대, 숲 속의 공터, 굽이굽이 길목마다 펼쳐진 멋진 조망을 불러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베껴 쓴 텍스트만이 그것에 몰두한 사람의 영혼에게 호령할 수 있 ” 다고 말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 가는 길이 달랐다. 신경숙은 필사를 연마해서 < 우국 > 을 내놓았고, 발터 벤야민은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를 내놓았다.
한쪽은 샛길로 빠진 반면 다른 한쪽은 일방통행로로 정직하게 달린 것이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를 읽다 보면 그가 도서관에서 베낀 문장 아래 강박적일 만큼 촘촘하게 기록된 출처에 질리게 된다. 그는 짧은 문장을 인용할 때도 저자, 책 제목, 쪽을 기록했다. 반면 신경숙은 문장을 그대로 베꼈지만 그 어디에도 저자와 제목과 쪽을 기록한 흔적이 없다. 벤야민에게 < 비평 > 이란 “ 정확하게 거리를 두는 문제 ” 이다. 그런 점에서 신경숙을 두고 감싼 문동과 창비는 “ 거리를 두는 행위 ” 에 실패했다. 주례사와 정실 비평이 주범이다. 주례사/정실 비평은 계통수를 그림으로 설명하는 대신 지적 허세가 가득 담긴 만연체로 비평문을 남발했다. 부드러운 칭찬과 시적 미문은 비평가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
비평가의 손에 쥐어져야 할 것은 자양강장제 < 박카스 > 가 아니라 “ 정신들의 투쟁 속에서 번뜩이는 < 칼 > 이다. ” 발터 벤야민이 쓴 << 비평가의 테크닉에 관한 13개의 테제 >> 에 나오는 문장이다. 벤야민이 불로장생하여 신경숙 논란에 대해 20자 논평을 한다면 무슨 말을 남길까. 이런 코멘트가 아니었을까 ?
“ 샛길로 빠지지 말고 일방통행로, 오케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