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과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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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피라미드 구조'에서 " 하부는 상부를 < 지향 > 하고, 상부는 하부를 < 지양 > 한다. "    쉽게 설명하자면 : 서민층은 중산층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을 모방하려고 하고, 중산층은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을 모방하려고 한다. 반면 상류층은 자신을 모방하려는 중산층과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목동 엄마의 롤모델은 강남 엄마'이지만 강남 엄마는 목동 엄마를 추종하지 않는다. 강북이 강남 스타일을 따라할 수는 있지만 강남이 강북 스타일을 따라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욕망이란 언제나 하부에서 상부를 향한다.

 

루이비통 로고 크기를 보면 계급이 보인다. ① 34폰트 로고의 루이비통 가방을 처음 구매한 사람은 사모님(상류층)이다. 사모는 이 바닥에서는 얼리 어답터(Early-adopter)에 속한다. ② 두 번째 34폰트 크기의 루이비통을 구매한 소비자는 부인(중산층)이다. 부인은 사모님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을 공유한다. 부인은 얼리 어답터(Early-adopter) 라기보다는 사모님 가는 길'을 발빠르게(허겁지겁) " 벤치마킹 " 한다는 측면에서  허리 어답터(Hurry-adopter)다. ③ 세 번째 34폰트 루이비통 구매자는 아줌마(서민층)이다. 아줌마의 롤모델은 부인이다.  이로써 사모, 부인, 아줌마는 모두 " 대따 큰 "  로고가 박힌 루이비통 가방을 가지게 된다.

사모 입장에서 보면 모든 계급이 " 대따 큰 "  루이비통 가방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모와 부인을 구별할 수 있는 변별력이 사라진 꼴이다. 기분 나쁘다. 부인 입장도 마찬가지다. 부인과 아줌마를 구별할 수 있는 변별력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 저, 아줌마 아니거등여 ~ "  사모는 34폰트 루이비통 가방을 버리고 24폰트 루이비통을 구매한다. 부인도 이에 질세라 잽싸게 24폰트 가방을 구매한다. 이런 식으로 로고 폰트 크기'는 줄어들게 되어 결국에는 로고가 없는 루이비통을 구매한다. 로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방을 열면 가방 안에 로고가 박혀 있다. 9폰트 루이비통이 서로 악수를 나눌 수 있는 거리에 있을 때 알 수 있는 가방이라면, 로고 없는 루이비통은 카페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다가 명함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었을 때 알 수 있는 가방이다.

귀부인이 지갑을 열어 속을 보여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귀부은들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이처럼 루이비통이 진화하는 과정을 보면 계급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로고 크기가 클수록 식별력은 향상될 수밖에 없다. < 14 폰트 로고 > 보다는 < 34 폰트 로고 > 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니깐 말이다. < 34폰트 로고 > 는 < 14폰트 로고 > 보다 더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서민층이 34폰트 로고가 박힌 루이비통을 선호하는 이유는 유식하게 말하자면 < 후광 효과 > 요, 무식하게 표현하자면 < 생색 내기 > 에 있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게 좋은 것이다. 비싸게 주고 산 가방이니 본전은 뽑아야 할 것 아닌가 ! 

그것은 마치 가난한 집 아이가 시장에서 짝퉁 나이키 옷을 고를 기회가 오면 " 대따 큰 " 나이키 로고가 박힌 옷을 고르려는 심리와 같다. 교양이 넘치는 사모님이 보기에 교양이 없는 부인과 아줌마의 욕망은 뻔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사모, 부인, 아줌마의 욕망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상류층은 왜 로고가 없는 루이비통 가방을 선호하게 되었을까 ?  부인과 아줌마 입장에서 보자면 < 겉으로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루이비통 > 은 의미가 없다. 부인은 9폰트 루이비통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설령, 로고 없는 루이비통 가방을 산다한들 부인과 사모가 서로 차를 마실 기회는 거의 없지 않은가. 아줌마도 24폰트 루이비통까지가 한계'다.

14폰트와 24폰트는 경제적 한계와 심리적 한계가 맞물린 계급의 진입 장벽'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피라미드 구조에서 전체 50%를 차지하는 부류는 바로 한 단계 위엔 40%를 좇고, 40%는 30%를, 30%는 20%를, 20%는 상위 2%를, 상위 2%는 최상위 1%를 좇고, 1%는 0.1%를 꿈꾼다. 결국 0.1%는 0에 가까운 쪽을 좇게 된다. 아라비아 숫자 < 0 > 이 無 라고 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프로이트가 말한 바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 쾌락 원칙을 넘어서 >> 에서 "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뿐 " 이라고 말한다. 시쳇말로 욕망이 지향하는 끝판왕은 無 다. 자신보다 상부를 지향하게 되면 결국 로고가 없는 루이비통 가방을 가져야 하듯이 말이다.

내가 오늘 소개할 영화(혹은 텍스트)는 두 편이다. 하나는 << 주홍글씨 >> 이고 다른 하나는 << 태양은 가득히 >> 다. 긴 말하지 않겠다. 욕망은 결핍이다, 상품은 결핍을 채운다, 비쌀수록 근사하다, 명품은 비싼 대가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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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10-23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발 님, 한번, innovator, early adopter, early majority, late majority, laggards에 대해 이야기른 나눈 적이 있었죠.

이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해 지난 번에 소개한 EBS 다큐프라임 `소비는 감정이다`의 Youtube 웹주소를 남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VsHaotbTdo&index=1&list=PLf_vppNPJQYubD_OCQqmU2pXhA99lwHbD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3 17:18   좋아요 0 | URL
저 이방송 보았습니다. 확실히 소비 행위는 감정의 결과죠. 저도 화나고 그러면 쇼핑합니다.
쇼핑하고 잔뜩 사고 들어오면 뭐가 좀 마약 같은 느낌이 들죠... ㅎㅎㅎㅎ

2015-10-23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3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10-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품행제로에서 류승범이 신었던 나이키 짝퉁 ˝나이스˝ 얘기네요 ㅎㅎ
뭐니뭐니해도 택배받을 때가 제일 기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10-25 19:26   좋아요 0 | URL
저 옛날에 나이키 산다고 돈 받아서 짝퉁 나이키 사고 남은 돈으로 까까 먹었는데 그거 형한테 걸려서( 짝퉁 나이키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어머니한테 엄청 혼난 기적이 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