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습니다 : 





야구와 엉덩이



 


                                                                                                      메이저리그 야구장에는 없는데 한국 프로야구 야구장에는 있는 것 ?  치어리더와 배트 걸'이다. (치어리더 문화는 논외로 하고)  배트 걸 같은 경우는 배트 보이'가 한국 식으로 변형된 예'이다.

배트 걸이 하는 일은 타자가 공을 치고 나서 내던진 방망이를 수거하는 일'이다. 땅에 떨어진 방망이를 줍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야 하는 법. 미니스커트를 입은 배트 걸이 방망이를 수거하다 보면 관중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뒤태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그 모습 위로 야구 해설위원이 자랑스럽게 한마디한다. " 요즘은 프로야구 구단이 야구장을 찾은 관중을 위해 팬 서비스 차원에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보일락 말락한 배트 걸의 엉덩이 뒤태는 팬 서비스'를 위해 제공되는 것이다. 야구 스포츠 해설위원의 말을 들으니 비로소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배트 걸에게 야구 유니폼이 아닌 불편한 미니스커트를 입힌 이유를 말이다. 야구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감독은 물론이고 배트 보이와 볼 보이(or 볼 걸)도 야구 유니폼을 입는다.  양복을 입고 경기를 진두지휘하는 다른 스포츠 감독'과는 이질적인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 보이'를 배트 걸'로 변형시켜서 짧은 치마를 입히는 것을 보면 한국 식 여성 성상품화의 지랄 같은 극성을 엿볼 수 있어서 씁씁하다. " 팬 여러분의 성원에 우리 구단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엉덩이 뒤태일 뿐 ! "   허리를 굽혀 배트를 줍는 경기 진행 요원에게 팬 서비스'라고 말하는,  그 순진무구한 불알후드들의 무지'가 어쩌면 여성 혐오 문화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산 대부도 토막 살인자의 " 피해자가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 " 는 말과 강남 화장실 살인자가 " 여성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 " 는 말을 동일선상에 놓고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어느 블로거의 반박을 읽다 보면 불알도 유세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 성기를 의인화해서 캐릭터 분석을 하자면 뼈대 없는 집의 가난한 자식이면서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이라며 자랑하는, 근육이라고는 물살이 전부인 흐물흐물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딱딱하다고 뼈가 있는 것은 아니다. 쪼그라들면 뭣 같은 개불을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을 다잡곤 한다.  불알 가지고 여성 앞에서 유세는 떨지 말자.   김민정 시인의 시를 빌리자면 좆과 젖은 한끗 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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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2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이저리그 볼걸은 상의는 야구 팀 유니폼, 하의는 간편한 운동복을 입었더군요. 볼걸의 팬서비스는 파울 볼을 3루수 쪽 좌석에 앉은 관중들(특히 어린이들)에게 주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야구장 분위기와 너무 비교되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2 12:50   좋아요 0 | URL
볼걸은 아무나 하지는 못하죠. 이거 하려면 1년 기다리고 막 그런다고 합니다.
보통 여성 볼걸은 여자 야구부 소속 선수들도 있고, 종종 나이 많은 노인이 볼걸 하기도 하죠..
볼걸 하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기기도 한다고 하네요..ㅎㅎ.

뱃보이도 제가 알기로는 열정페이로 알고 있습니다. 신청하면 1년 씩 기다려야 하고...
무보수라고 합니다..

어서 술자리에서 주워들은 말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정확할 거임..

cyrus 2016-05-22 12:53   좋아요 0 | URL
그래서 메이저 볼걸들이 파울볼 캐치를 잘하는군요. ^^

yamoo 2016-05-22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트 보이`를 배트 걸`로 변형시켜서 짧은 치마를 입히는 것을 보면 한국 식 여성 성상품화의 지랄 같은 극성을 엿볼 수 있어서 씁씁하다..

저도 지랄같은 그 극성에 한 표 던집니다요~ㅎ

아, 근디...확실히 배트걸들 핫팬츠 입은 그녀들 몸매는 정말 한 몸대 하더군요. 어디서 그런애들을 데리고 오는지...여성부는 한심한 거에 지럴하지 말고 이런 거에 개거품 물어야 하는데, 여성부는 어째 이런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11:07   좋아요 0 | URL
여성부 진짜 뻘짓 참.. 많이했죠. 그래서 마초들의 빌미를 제공하기도했고...
근데 지금도 여성부 있나요 ? 뻘짓 안 하는 걸 보면 사라졌나 ???!
 

 

 

 

 


                              

 

저에게 똥을 주세요  :


 



 

 

 

 

 

일베와 혐오


​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입말 中에 << 맥락 1) >> 이라는 낱말이 있다. 줄기 맥(脈)에 이을 락(絡)으로 구성된 단어인데 사전적 의미로 "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 " 라는 뜻이다.  즉, 맥락은 두 개 이상의 줄기가 서로 엮인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우파는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고 좌파는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치환하려는 경향이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다른 시각차를 드러낸다.  보수는 살인범이 정신병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번 사건을 개인 문제로 파악한다.  반면에,  진보 쪽은 이번 사건을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여성 혐오 현상이 발단이 되어 발생한 혐오 범죄'로 파악한다.  이번 사건을 사회적 맥락 2)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는 이 사건을 " 개인적 맥락 " 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3)?   학술지 논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 개인적 맥락 " 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말이다.  < 개인 > 은 원자에 해당되고 < 맥락 > 은 분자(원자와 원자의 결합)에 해당된다. 관계(들)의 결과가 맥락인 것이다.  개인은 단수형이고 맥락은 복수형'이다 !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은 맥락에 관한 이야기'다.  오른손이 개인이라면 왼손은 사회'다. 이과생 모드로 설명하자면 박수 소리'란 오른손(원자)과 왼손(원자)이 동일한 벡터 안에서 충돌할 때의 충돌 에너지'이다.  그렇기에 " 개인적 맥락 " 이라는 표현은 한쪽 팔이 없는 사람이 힘차게 박수를 쳤다는 소리'만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다.  만약에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 사건'을 단순히 개인 문제(정신병)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처녀가 혼자서 임신을 했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정신병리학은 개인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개인이 사회(구성원)과 관계를 맺게 될 때 발생하게 되는 신경쇠약을 다룬 학문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사회적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분노와 혐오는 모두 타자에 대한 공격적 성향을 띠지만 < 결 > 은 사뭇 다르다.  사회적 분노가 강자를 향한 공격적 성향이라면 사회적 혐오는 약자를 향한 공격적 성향이다.  수많은 갑질 논란에서 발생하게 되는 대중의 화(火)는 분노이다.  신체 반응으로는 얼굴이 붉어지고 눈을 크게 뜨게 된다.  분노한 사람은 분노의 대상을 직시(直視)한다. 또한 상부(강자)를 향하기에 고개를 들게 된다.  반면,  혐오를 작동시키는 것은 < 直視 직시 > 가 아니라 < 無視 무시 > 다.  분노는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지만 혐오는 대상을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무시), 가볍게 보거나(경시), 낮잡아본다(멸시)'다.  신체 반응으로는 눈을 내리깔며(혹은 외면하거나) 눈살을 찡그린다. 이처럼 혐오의 시선은 대상을 낮잡아보기에 아래 혹은 대상에서 빗겨난 사선을 향하게 된다.

혐오 감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혐오와 식욕의 관계'다.  특정 계층(하층민)을 향해 노골적으로 눈살을 찡그리거나 코를 막거나 고개를 외면하는 행위는 혐오 음식(악취 나는 썩은 음식)을 보게 될 때 반응하는 행동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 일베 >> 가 약자에게 가하는 혐오 행위는 묘하게도 식욕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일베의 표현법을 보면 주로 혐오 대상(여성, 전라도, 진보 좌파)을 혐오 식품(역겨운 것, 메스꺼운 것)과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베 식 사고는 혐오 대상을 모두 입맛 떨어지는 것들이거나 반대로 먹고 싶은 것으로 호명한다.  전라도 사람은 삭힌 홍어로 환유되고,  세월호 희생자는 어묵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일베 식 표현에 의하면 여성을 < 맛있(겠)다 > 와 < 맛없(겠)다 > 로 나눈다.  이러한 증후는 퇴행적이다.

왜냐하면 일베는 입맛이 까다로운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역겹고 메스꺼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린 남자아이를 키워본 적이 있는 엄마라면 내가 일베를 " 얼라로 퇴행한 결과 " 라고 한 말에 동의할 것이다.  얼라는 평소 역겨운 것( 악취 나는, 썩은 냄새가 나는)에 호기심을 느끼며 매혹된다.  심리학자 폴 로진은 " 실물과 똑같이 생긴 구토물, 분비물, 정액, 대변, 장난감 같은 물건을 사는 것은 대부분 어린 남자 아이들이다. "  라고 지적한다.  즉, 일베들은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은 꼬마 한스인, 항문기 고착 상태에 머무른 성인 얼라'들이다. 똥 보면 만지고 싶고, 코딱지 보면 손으로 조물딱거리고 싶은 마음.  문제는 그들이 어른이라는 데 있다.  " 시바, 이게 뭔 짓이여. 다 큰 놈이 ~ "

여성은 자고이래로 " 아랫것 " 이었다.  멀리 볼 것 없다.  한국 여성은 두들길수록 맛이 좋다는 북어가 되었다가,  새벽에 시끄럽게 우는 암탉이 되기도 했으며,  가정 폭력의 원인을 제공하는 팜므 파탈이기도 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쓰남. 근데...... 맞을 짓을 했응께 때렸겠지 ?  성경만 봐도 여성은 집에서 키우는 가축과 동급으로 취급되었고, 무시와 경시와 멸시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남성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이해하지 못한다.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태생적 한계를 두고  불알 달고 태어났는데 어쩌란 말이냐, 라고 되묻는다면  불알 때문에 불안한 여성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고 말하고 싶다. 여성의 불안은 팔 할이 남성의 불알 때문이다.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밤 늦은 귀갓길에서.......  

여성 혐오 범죄 사건에 대해 한국 사회가 들끓고 있지만 정작 여성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방구(一言半句)도 없다. 친박, 진박, 원박도 (여성) 핍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그들은 " 개인적 맥락 " 으로 이 사건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란의 주범으로 팔 한 쪽이 없는 사람이 박수를 힘차게 쳤다고 믿는다 ■


​                                    

1)     맥락 하면 떠오르는 철학적 개념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 천 개의 고원 >> 에서 언급한 리좀[ Rhyzome ]이다. 이 식물은 수직으로 자라지 않고 땅 밑에서 수평으로 자란다. 위에서 보면 두 식물은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땅 밑을 보면 하나의 뿌리 줄기에서 나온 동일자'다. 리좀 개념을 쉽게 설명하자면  " 땅 파면 안다 ! "

2)     이 사건을 사회적 맥락으로 이해하면 묻지마 범죄 유형이기도 하고 혐오 범죄 유형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과 사회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끊겼다는 점에서 살인범에게 필요했던 것은 탱고를 함께 출 타자인지도 모른다.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

3)     그들이 내세우는 묻지마 범죄(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 행위) ㅡ 프레임'은 맥락이 끊겼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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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론 : 강남역 묻지마 살인과 여성혐오
    from muse님의 서재 2016-05-23 06:53 
    ‘강남역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사건을 여성혐오로 규정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병자에 의한, 조금 비약하자면 여성‘대상’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단어 한끗 차이지만 범죄의 원인과 논의의 결과는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말씀대로 이 문제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으로 해석될 문제입니다. 조현병이라는 개인과 그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의 결과가 낳은 비극인 것이죠. 전통적으로 보수는 범죄를 개인의 특성에서 기인한, 자
 
 
마립간 2016-05-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탱고를 춰 주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죠. 하지만 누가 그에게 손을 내밀까요. 특히 여성과 춤을 추기를 원했다면.

이 사건으로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 상황이 강화되다면, 사회의 연결 고리가 끊어짐으로 만들어지는 제2, 제 3의 살인자들이 나오겠죠.

위글에서 곰곰발 님이 언급하지 않는 맥락을 지적하고 갑니다. 맨스플레인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1 11:38   좋아요 0 | URL
예리한 맥락 분석 감사합니다.. 이번 범인 보니까 사건이 발생하기 10일 동안 노숙을 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약을 살 돈도 없었고...

가넷 2016-05-2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혐오란 감정은 정말 싫어요. 저도 성인군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싫어하는 감정이 극에 달하면 혐오 같은 감정이 올라오는데그럴 때면 그 감정 때문에 나 스스로도 너무 힘든데, 혐오를 싸지르는 사람들은 그게 힘들지도 않나보네요.

... 좀 생뚱맞은 소리를 했네요. ㅎㅎ

여튼 불알달고 태어난게 벼슬인 세상이긴 한가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1 15:13   좋아요 0 | URL
불알.... 큰 벼슬이죠. 뭐 그리 소중하다고...... 기껏 커봐야 12센티미터.
더군다나 뼈대 없는 신체이면서 존나 뼈대 있는 가문의 신체인 척...
사정하고 나면 쪼그라든, 개불로 돌아오거늘..

툭하면 자기 무시하냐며 불알.. 아니 눈알 부라리고..
 

 

 

 

 

 

 

 

 

 

 

 

 

 

 

http://blog.aladin.co.kr/749915104/7840985 ( 밤꽃의 제국 )

 

 

 

 

 

 

 

 

 

                                                                

남성 혐오 정서'가 불쾌하다는 남성에게 :

 

꽃과 포스트잇

                                                                                                       한국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은 관상용 ㅡ 꽃'이다.  꼰대들이 여성을 흔히 꽃'에 비유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꽃 둏고 여름 하나니 보기에 좋았어라,  누가 ?! 

< 꽃 > 은 향기가 있고 아름답다. 가시는 있으나 위협적이지 않고,  암탉처럼 새벽에 울지는 않는다. 뾰족한 가시,  그까이꺼 !  무엇보다도 욕망이 없다.  < 꽃 > 은 남성 욕망이 투사된 대상(오브제)일 뿐,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詩 << 꽃, 김춘수 >> 에 나오는 꽃은  화자인 남성 시선에 갇힌 對象化된 존재'다.  누가 자기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하나의 (의미 없는) 몸짓 "  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 그의 꽃 " 이 되고,  그의 꽃이 " 되고 싶 " 다고 고백한다. 


ㅡ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그린 꽃은 당당하다. 남성 시선에 갇힌 꽃이 아니다. 그녀는 대형 화폭에 거대한 꽃을 담았는데 이 극단적 클로즈-업'은 위풍당당한 꽃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오키프의 꽃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씩씩하다.

그런가 하면 小說 << 채식주의자, 한강 >> 는 식물이 되고 싶은 여성 채식주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다분히 문제적이다.  스스로 식물이 되고 싶다는 강박은 남성 폭력에 대한 비폭력 저항'이면서 동시에 남성 욕망에 대한 순응이기도 하다.  이처럼 김춘수와 한강이 호명한 오브제는 남성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꽃으로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다,  위풍당당한 꽃이 아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표적이 되는 순간은 여성이 욕망을 표출할 때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성은 욕망을 드러낼 때 < 남성 ㅡ 다움 > 을 획득하게 되지만  여성이 욕망을 드러낼 때에는 < 여성 ㅡ 다움 >   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전자는 남성 욕망의 표출이 < 야망 > 으로 포장되지만  후자는 < 천박 > 이 된다.  그렇기에  여성이 먼저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순간 여성은 " 걸레 " 나 " 쌍년1) " 이 된다.  

최근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벌어진 살인은 < 목적 > 은 선명하지만 < 이유 > 는 불명하다.    범인이 목표로 삼은 대상은 뚜렷하다. 불특정 여성 일반이 대상이다.  하지만 살인 동기는 없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 평소에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 는 게 살해 동기의 전부'다.  내가 보기엔 약자를 향한 분풀이 범죄'처럼 보인다.  혐오 범죄는 대부분 약자를 향한 폭력'이니 이번 살인 사건은 약자인  여성을 향한 혐오 범죄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 지점에서 분노 감정과 혐오 감정의 차이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 분노 > 는 대체로 강자를 향한 공격적 성향이고, < 혐오 > 는 약자를 향한 공격적 성향'이다.  그렇기에 " 불의에 분노한다 " 는 표현은 있지만 " 불의에 혐오한다 " 는 표현은 없는 것이 아닐까.  

 

정확히 말하자면  :  < 여성 혐오 > 는 존재하지만 < 남성 혐오 > 는 잘못된 표현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사회적 강자인 남성에게 보내는 공격적 성향은 혐오가 아니라 분노에 가깝다.  서천석 서울 신경정신과 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는 그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은 여성혐오'다. 이것이 그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남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에 비해서 특별히 남자들에게 더 기분 나쁜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병을 갖고 있으며, 범죄를 저지른 그는 아마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외감과 분노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외감의 원인을 여성들의 자신에 대한 태도에서 찾고, 분노의 초점을 여성들에게 맞춘 것은 분명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우리 사회 내에서 최근 들어 뚜렷하게 늘어난 심리적 현상인 여성 혐오가 (만약 그에게 정신병적 망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망상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여성 혐오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망상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망상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은 맥락이 있다.  결국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할 근거일 수 없다. 오히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의 이유로 ‘여자들의 무시’ 운운하는 상황이 여성 혐오 이슈를 우리가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이 사건은 분명한 여성 혐오 범죄다.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닌 것이 아니라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성혐오 범죄인 것이다.


ㅡ 서천석 트위터 중 일부 발췌

 

여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과 폭력에 대항할 수 없는 무력감.  여성들이 죽은 그녀를 애도하기 시작했다.  꽃 한 송이로 애도를 표출하는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꽃 대신 포스트잇'으로 애도했다. 이번 사건에서 여성이 선택한 것은 꽃보다는 메시지였다. 그렇기에 포스트잇에 새겨진 메시지는 다잉메세지'처럼 읽혀진다. 격정적인 목소리는 남성 폭력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이에 남성들은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간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남혐 정서로 인해 죄 없는 남성 일반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불쾌한 반응이다. 그런데 나는 남성들의 이 불쾌함이 불쾌하다.  울고 있는 자의 편향이 다소 거북하더라도 애도 기간이니 만큼 잠시나마 그 편향'을 받아줄 아량은 없는 것일까.  

프란시스코 교황도 말하지 않았던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이다.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의 격앙이 다소 불쾌하더라도 그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왜,  수많은 여성들이 꽃 대신 포스트-잇으로 죽은 그녀를 애도했을까.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서 대한민국은 내내 남성 상위 시대'였다.  북어와 계집은 삼 일에 한 번씩은 두들겨 패야 정신을 차린다고 믿었던 사회였다. 여성 입장에서 보면 역사 전체는 성불평등의 역사인 셈이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남성 혈맹에 대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 지 10년이 될까 / 말까?!  그것도 여성이 여성 권리 독점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남성과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한국 사회가 이토록 빠르게 여성 혐오 사회'가 되어가는 꼴을 보니

이 또한 불알후드(brotherhood)의 지랄같은 노욕으로 보여서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보라 했는데  불알후드는 불알을 황금 알과 같이 소중하게 다루니 답답하다.  여성보다 남성이 행복한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고,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행복한 사회도 건강한 사회가 아니며, 소수가 다수보다 더 많은 권리를 독점하는 사회도 좋은 사회가 아니다.  반대로 남성보다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가, 다수 일반이 소수 특권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더 건강한 사회'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남성만 행복한 사회보다 건강한 사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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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0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0 09:47   좋아요 2 | URL
저는 분노와 혐오를 분류하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분노는 강자를 향하고
혐오는 약자를 향한다고 생각합니다.
불의에 혐오한다, 라는 표현은 없지 않습니까. 불의에 분노한다는 말이 있지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의 남성 혐오라는표현보다는 여성이 남성에게 분노한다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겁니다.

즉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남성 일부가 여성 전체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고
여성은 남성 사회에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05-20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0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0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0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6-05-20 14: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노와 혐오의 정의에 동의한다는 가정 하에

흑인 남성은 남성으로서의 약자는 아니지만 흑인으로서의 약자일 수 있고,
장애인 남성은 남성으로서의 약자는 아니지만 장애인으로서의 약자일 수 있겠죠.

어떤 한국 남성이 남성으로서의 약자는 아니지만, (계급같은) 계층에서의 약자의 위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안타까운 것은 약자의 분노가 자신보다 더 약자의 혐오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남성만 행복한 사회보다 건강한 사회`다 ; 이 문장에 대해 두 말 없이 동감합니다.

지난 번, 은사와 협사의 이야기의 반복입니다만, 약자의 분노가 정당하더라도 분노의 결과가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0 10:42   좋아요 0 | URL
그럼요. 분노의 결과가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일반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ㅎㅎ
위치-짓기`는 항상 변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립간 님이 지적하신대로 문제는 약자의 분노가
더 낮은 약자에 대한 혐오로 바뀐다는 점이죠. 혐오 범죄는 대부분 약자가 약자에게 보내는 폭력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만화애니비평 2016-05-2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습니다. 화성남자 금성여자 피곤합니다. 약한자가 약한 것이라 여성이 신체적으로 약하지 사회적으로 무조건 약한건 아닌데 말이죠. 이런애기 하면 발끈대는 분들 할말 없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1 09:57   좋아요 0 | URL
기본 전제는 여자는 눈 깔어라는 거죠... 그리고 나서 양성평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자는 태도... 역겨움..
반대로 여성만 보면 환장하닌 새끼가 있어요. 어찌나 친절한 지... 그런데 남자끼리 대화를 나누면 상 일베입니다.. 고런 새끼도 만음..

cyrus 2016-05-2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겠지만, 여성 혐오 문제에 공감하는 남자들도 혐오 대상이 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1 09:56   좋아요 0 | URL
도매급이라고나 할까요. 싸잡아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어느 놈은 왜 아빠 성 + 엄마 성 따라서 김박정숙.. 이런 이름 있잖습니까.
고거 같지고 생지랄하는 거 봤는데 가관이어씀.

마립간 2016-05-2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을 다시 정리하면서 글(알라딘 페이퍼)을 쓰고 있는 중에 직접 곰곰발님 에게 물어보면서 진행하는 것이 빠른 것 같아 댓글을 남깁니다.

분노와 혐오. ; 아래 예는 어떻게 정리될까요.

1) 아이 A가 학교 시험을 망쳤다. 2) 아이 B가 친구 물건을 훔쳤다.
아이 A와 아이 B의 엄마는 아이에게 화를 냈다.

어떤이 ; 두 어머님, 두 분은 (분)화를 낸 것이 아니고 (혐)오를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권력관계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반례에 대해서 곰곰발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11:10   좋아요 0 | URL
무식쟁이인 저에게 이런 고차원적인 질문을 던지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체로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이지 뭐 100%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화는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분노, 혐오, 경멸... 두 어머님의 화는 분노도 아니고 혐오도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냥 평범한 화.. 가 아닐까 싶네요..
 

 

 

 

 

 

 

 

 

 

 

 

 

 

 

 

 


 




​                                                     


세계가 먼저 인정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






 

채식주의자와 맨부커 문학상



 


                                                                                                           세계 3대 영화제는 칸느, 베를린, 베니스 필름 페스티발'이다. 문민의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에서 세계 3대 영화제에 더해서 아카데미 영화제를 포함하여 세계 4대 영화제'라고 하자는 제안을 했다1)가 영화인'에게 욕을 " 바가지 " 로 먹은 적이 있다.  아카데미 영화제는 미국의 < 국내 영화제 > 이지 < 국제 영화제 > 가 아니라는 논리'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카데미 영화제는 국내(미국) 영화제와 국제 영화제 사이에  애매모호하게 걸친 영화제'라 할 수 있다. 

겉만 보면 국제 영화제'다.  선정 기준은 ' 매년 전번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부터 12월 31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주일 이상 개봉된 모든 영어 사용 영화’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꼼수, 외연을 확장해서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얄팍한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 우리 아카데미 영화제는 < 나쇼날的 > 이기보다는 < W.W.W 的 > 입니다.  ha ha ha ! "    쉽게 말해서,  한국 자본으로 한국 인력을 동원하여 한국에서 촬영되었지만  모든 대사를 영어로 처리한 영화(미국 내에서 일주일 이상 개봉된 영화라는 가정에서)라면 영화제 후보 선정 기준에 부합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아카데미 영화제를 국제 영화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이 한국 땅'에서 한국 배우를 대상으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일상 대화를 나누는 영화를 기획할 리가 없고  설령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기껏해야 민병철 생활 영어(학습 교재 영상)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이 대자본을 바탕으로 세계 영화 산업 전체를 주도하기는 하지만 아카데미 영화제의  언어적 제한'은 " 팍스 - 잉글리쉬 " 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볼거리가 화려하다고 해서 그 상이 국제적 명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영화제라는 타이틀을 얻으려면 적어도 다양성 영화의 적극적 포섭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실력만 놓고 보자면 미국 야구가 세계 최강'이지만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우승이 곧 세계 야구 우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카데미 영화제는 주요 본상 발표에 앞서 먼저 << 외국어 영화상(비 영어권 영화 대상) >> 을 발표한다.  조용필은 항상 피날레를 장식하는 법이요,  본 요리에 앞서 스끼다시가 나오는 법. 발표 순위를 보면 그 상에 대한 중요도를 파악할 수 있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전국노래자랑으로 치자면 인기상 정도'다. 그러니까 아카데미 영화제는 작품성보다는 먼저 영어를 사용하느냐 영어를 사용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 정도면 언어 제국주의'다. 

한강의 << 채식주의자 >> 가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자 한국 언론이 들뜨기 시작했다. 노벨, 공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이라며 대대적 보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3대 문학상이라는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맨부커 문학상이  권위 있고 명성 있는 문학상이라는 데 의문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맨 부커 문학상은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언어적 장벽을 전제로 하는 맨 부커 문학상이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한다면 아카데미 영화제도 국내(미국) 영화제가 아니라 국제 영화제'라고 해야 한다.  차라리 맨부커 문학상'보다는 에스파냐語를 사용하는 국가의 문학 작품을 기준으로 하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이 더 국제적'이다. 

맨부커 문학상이 세계 3대 문학상'이라면 판소리 경연 대회에서 파란 눈의 외국인 몇몇이 춘향가를 완창했다고 해서 남원 판소리 경연 대회를 < 인터내셔널 뮤직 어워드 > 라고 우겨도 된다.    또한 맨부커 국제상은 비 영어권 문학을 영어로 번역한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 올해의 출판 번역상 " 이다.  극심한 출판 판매 가뭄에도 불구하고 << 채식주의자 >> 가 하루에 4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이 정도면 있어도 못 파는 수준을 넘어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 되었다. 한국인은 타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면서도 동시에 타자의 시선에 민감하다. 서구인이 먼저 알아줘야 비로소 우리 것을 인정한다.  " 세계가 먼저 인정한 ㅡ 류 " 의 인정 욕구'라고나 할까.

< 우리가 먼저 인정한 문학 > 보다는 < 세계가 먼저 인정한 문학 > 이  숭고해 보이는 사고 구조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싸듯이 호들갑이 지나치면 꼴값이 된다 ■


 

 

 

 

 

+  덧대기

 


한국일보 기사는 몇몇 문장을 번역한 문장을 비교하며 " 절묘한 개입 " 이라는 성찬을 하는데, 내가 보기엔 " 과도한 번역 " 인 것 같다. 어두운 숲에서 뾰족한 잎이 돋는 나무들을 헤치느라 팔에 상처가 났다는 원문은 뾰족한 잎이 돋는 나뭇잎 때문에 발이 찢어졌다고 번역한다. 이게 절묘한 개입'인가 ? 번역자는 번역가의 입장에서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다기보다는 편집자의 입장에서 원작을 자기 취향에 맞게 고쳤다. 

 

 

 

​                              

 1)    정부 기관에서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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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5-19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물놀이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죠.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면 따라서 관심을 갖는 ...

한국인은 타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면서도 동시에 타자의 시선에 민감하다. ; 제 다음 독후감에 인용해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1:11   좋아요 0 | URL
김덕수인가요.. 이분은 항상 외국에서만 사물놀이를 하세요. 이젠 한국에서는 시시해서 안하시는 듯...
아마도 해외 비용도 다 국가에서 비용 치르지 않았다 츠측이 가기도 하고..ㅎㅎ

하이드 2016-05-19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영미권 작가의 영어로 쓰인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맨부커상의 `인터내셔널`부문(에서 올해부터 독립했다고 하는 맨 부커인터내셔널)을 자꾸 맨 부커상 수상이라고 하니깐 신경쓰이구요, 세계 3대문학상도 뭔소린가 싶고, 그렇다고해도 메인인 맨 부커상이 아닌 번역자와 작가에게 상을 주는 맨 부커 인터내셔널을 탄 것을 기존 맨 부커상 수상자들과 같이 논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제가 귀 씻고 싶은 `문학한류`라는 말을 들었는데, (코웃음) 자제들 좀 하셨으면 해요. 곰발님 글 읽고나니, 맨부커 인터내셔널의 외국어를 자국어로 번역한 `번역가`에 더 방점이 찍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애초에 저도 흥미롭게 봤던 것이 한국문학 전공의 훌륭한 번역가를 만나 빛을 발한 좋은 작품이라는 점이었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1:10   좋아요 0 | URL
웃긴 거죠. 한류 왜 안 나오나 했씁니다. 역시나 문학한류라는 호들갑을..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올해의 출판번역상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번역가에게도 반반 책임을 선사하는 것을 보면 번역에 방점이 찍히기도 한 거죠..

yureka01 2016-05-1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축구의 국대 경기에 대한 관심과 비슷한 수준 아닐까 싶어서요.....문학계가 참 어려운 건 오늘 어제 일도 아닌데,,,,반전의 계기가 되면 참 좋겠지만 늘 그래왔듯이 아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1:05   좋아요 0 | URL
국대 경기만 보면 프리미어 리그 같죠. 뭔 놈의 국가대항전만 펼쳐지면 애국심이 그리 나는지...

수다맨 2016-05-19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 이번 수상에 의의와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작가인 한강 씨보다도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 씨에게 적지않게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한강 씨의 ˝채식주의자˝가 내용적/구도적으로는 범박하다 보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 미학과 같은 장점은 살아 있다고 보거든요. 어떻게 보자면 한국 소설의 전반적인 특징(내용이나 상징은 그저그런데 묘사력/문장력은 화려하다)을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채식주의자˝ 같습니다.
때문에 한강 소설의 장점(섬세하고 수려한 문장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성실한 번역가를 만난 것이, 이번 수상의 결정적인 동인이라 봅니다. 하지만 본상보다는 그 의미가 한결 낮은 상임에도 언론에서 세계적인 상이라고 호들갑 떠는 모습은 가당찮게 보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1:07   좋아요 0 | URL
횟집 갔으면 회의 신선도를 맛보고 횟감에 대한 칭찬을 해야지
스키다시 예찬으로 흐른 감이 있죠.

그리고 이건 아카데미 외국어상 받고서는 아카데미를 재패했다고 말하는 거랑 같은 뉘앙스..

yamoo 2016-05-19 14:00   좋아요 0 | URL
˝채식주의자˝가 내용적/구도적으로는 범박하다 보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 미학과 같은 장점은 살아 있다고 보거든요. 어떻게 보자면 한국 소설의 전반적인 특징(내용이나 상징은 그저그런데 묘사력/문장력은 화려하다)을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채식주의자˝ 같습니다.

저는 수다맨님의 이 평을 보고 <채식주의자>를 안 보기로 했습니다..ㅎㅎ 오늘 낼 책사러 가야쥐...했는데, 수다맨님의 짧은 평을 보니 이건 제가 읽을 작품이 아닌 듯합니다..ㅎㅎ 제가 적응하지 못하는 부류의 소설이 저런 작품군..ㅎㅎ 감사합니다!!

수다맨 2016-05-24 00:05   좋아요 0 | URL
yamoo님 답글이 많이 늦었네요 ㅎㅎㅎ
저도 8년 전에 읽어본 책이라 다시 읽어보면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약간의 감흥이 생길 수도 있을 테지요. 그럼에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군 목록에 한강이 추가되지는 않을 듯싶습니다.

yamoo 2016-05-1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우리가 먼저 인정한 문학 > 보다는 < 세계가 먼저 인정한 문학 > 이 숭고해 보이는 사고 구조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백번 공감할 말입니다. 내 기준이 아닌 남이 설정한 기준에만 따라가려고 하는 거...한번도 자기 자기 기준으로 살아보지 못한 이류 인생의 전형적 사고. 세계가 인정해야 가치가 생기는 것과 같은 착각. 이런 노예근성을 하루 빨리 박멸해야 합니다!

흠...전문 스토커까지 있다는 건 나름 유명세를 떨친다는 반증이라고 봅니다..ㅎ 그냥 귀엽게(?) 생각하시면 될 듯해요..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4:37   좋아요 1 | URL
한국일보에서 번역의 좋은 예( 뭐라더라? 절묘한 간섭이라는 표현을 했나 ? ) 라고 들은 번역 예를 보면
이건 좋은 번역이 아니라 나쁜 번역의 좋은 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팔에 상처가 났다는 표현을 그냥 발이 찢어졌다고 번역하질 않나... 좀 웃김...

번역자는 채식주의자를 번역가의 역할로 번역을 한 게 아니라 편집자의 마인드로 작품을 고쳤다는 생각이 드네요..

만화애니비평 2016-05-19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인기는 크윽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5:37   좋아요 0 | URL
인기는 무슨..... ㅋㅋ

cyrus 2016-05-19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봤던 내용의 글이라면 안 보면 말 것을 괜히 다른 회원 닉네임을 언급하면서 비꼬는 심보가 별로네요.

ventus 2016-05-2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뉴스레더 클릭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곰곰님의 글을 접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어와서 읽게 될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11:05   좋아요 0 | URL
뉴스테러에 내 글이 나왔군요...ㅎㅎㅎ
네에. 자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격하게 환영하겠습니다..
 

 

 

 


​                        


어디까지 가 봤니 :

부덕의 소치



                                                                                                          예술의 도시이자 좌파들의 아지트인 파리(Paris)는 프랑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깃발만 꽂으면 코끼리 아재들(공화당)이 당선된다는  미국판 대구 달성'인 텍사스에도 파리(Paris)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한 << 파리, 텍사스 >> 는 말을 잃은 한 남자가 텍사스 ㅡ 파리'를 찾는 데에서 시작되는 로드 무비'이다.    텍사스에 파리가 있다 / 없다 ?!   정답은 있다.  익숙한 장소 안에서 이질적인 지명을 만나는 경우는 텍사스 - 파리 조합만은 아니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는 하와이가 있었고,  충남 충주시 수안보(면)에는 와이키키'가 있었다. < 부곡 ㅡ 하와이 > 와 < 수안보 ㅡ 와이키키 > 조합은 < 텍사스 ㅡ 파리 > 조합과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1).

 

 

어쩌면 영화 << 친구 >> 에서 유오성이 장동건에게 하와이 가라고 말했을 때,   그 하와이는  하와이섬 남단의 사우스케이프[]  북위 19°에 위치한 휴양지가 아니라  대한민국 3대 온천 휴양지인 부곡 하와이 가서 때 빼고 광 내고 오라는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온천장 입장표 내밀며 생색내기 뭐하니깐 비행기표'라며 설레발을 친 것은 아닐까 ?  5,000원짜리 국밥 먹은 손님에게 카운터 주인이 50,000원이라며 농을 거는 것처럼 말이다.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옛날에는 온천 휴양지 가서 때 빼고 광 내는 게 일종의 힐링'이었으니까. 대한민국 아재들에게 < 열탕 > 만큼 시원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영화 << 친구 >> 는 오고가는 상호 의미(부곡 ㅡ 하와이와 미국 ㅡ 하와이)를 두 친구가  서로 오해하는 데에서 비롯된 비극을 다른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잘나가는 사람들이 잘나가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 흔히 내뱉는 " 부덕의 소치 "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 러시아 ㅡ 소치 >  조합이 떠오른다.  이제는 < 부곡 ㅡ 하와이 > 조합과 < 수안보 ㅡ 와이키키 > 조합과 더불어 < 부덕 ㅡ 소치 > 도 낯익은 장소의 낯선 장소로 선정할 만하다.   언젠가는 강원도 태백 부덕면'에서 스케이트 타며 질펀하게 놀 일 있으리라.  " 부덕(不德)의 소치(所癡) " 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적 신임을 얻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층민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때 " 부덕의 소치 " 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일단, 소치(所致)라는 단어 뜻일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다. 설령,  소치가 한자 所 : 장소, 자리, 위치 와 致 : 다다르다, 도달하다'로 이루어진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뜻을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어느 누가 저 조합에서  " 어떤 까닭으로 생긴 일 " 이란 단어 뜻을 유추할 수 있느냔 말이다.  나는 이 사회 엘리트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때마다 부덕의 소치를 꺼내들 때  속으로 생각한다.   " 개새끼들.... 지랄이 풍년이구나 ! "  부덕의 소치는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덕이 부족하여 생긴 일이라는 뜻이니,  부덕의 소치 운운하며 < 유죄(有罪) > 를 < 무덕(無德) > 으로 치환하여 사과를 하는 행위는 사과가 아니라 바나나'다. 너나 까서 쳐드세요. 이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이 글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궁금해 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혹자는 윤상현 막말 파동 때 그가 부덕의 소치 운운하며 사과한 짓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틀렸다.  이 글의 목적은 독후감으로 토마스 모어의 << 유토피아 >> 에 대한 글이다.  나는 이 책을 중학생 때 읽었다. 그것도 무려 중1.  담임 쌤은 서울대가 선정한 세계 명저 100선'을 바탕으로 학생 1명당 두 권 이상의 책을 사서 강제적으로 읽게 했는데,  내게 돌아온 책은,   씨발2).....   존 번연의 << 천로역정 >> 과 토마스 모어의 << 유토피아 >> 였다.  곰곰 생각해도 이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알쏭달쏭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책에 대한 독후감은 작성했다는 점이다. 쌤은 독서 행위가 세계를 구원하리라 - 주의자'였으면서

동시에 학생에겐 매 타작이 보약이라고 믿으시는 분이셨다. " 책을 읽지 않으면 죽도록 맞아야제 ~ "  다들 아시다시피 유토피아는 < 없는 ( ou ㅡ ) > 과 < 장소 ( topos ) > 를 결합하여 만든 단어'이니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없는 장소, 다다를 수 없는 장소를 뜻한다. 텍사스 ㅡ 파리는 지명에 있는 장소이지만 없는 장소이고,  < 부곡 ㅡ 하와이 > 와 < 수안보 ㅡ 와이키키 > 도 있는 장소이지만 없는 장소'이다.  색깔은 다르지만 < 미아리 ㅡ 텍사스 > 나 < 청량리 ㅡ 텍사스 > 도 마찬가지다. 와이키키, 하와이, 텍사스는 거기 있지만 거기 없는 곳이다.  부덕의 소치도 마찬가지'다.  사실,  부덕이라는 지명은 대한민국 지도'에는 없다.  부덕의 소치'는 다다를 수 있는 장소 ; 所致'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곳 또한 유토피아'다 ■




​                       

1)  이런 이질적인 조합의 판타스틱하며 에스에푸적 조우는 < 미아리 ㅡ 텍사스 > 에서 정점을 이룬다. 옛날에는 집창촌을 텍사스촌(ㅡ村)으로 부르곤 했다.

2) 어떤 놈은 << 이솝우화 >> 나 << 허클베리 핀 >> 을 배당받기도 했다.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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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18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글..참 재미잇게 읽었습니다..ㅎㅎㅎㅎ부덕의 소치..소치에 부덕이 있나 싶을 정도로 ㅋㅋㅋㅋ중학생때 유토피아라니..ㅎㅎㅎ그러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8 10:1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제가 알기론 독자적 소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 반에서만 학급 도서관을 운영했거든요.. ㅎㅎㅎ. 각자 자기가 맡은 책을 사서 읽고 학급 책장에 책을 두었습니다. 아무나 읽으라고 말이죠...

시이소오 2016-05-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호의 단편이 떠오르네요. 중동에 30년 살았다는 할머니 때문에 비행기에서 자리를 옮겨 달라는데,
이 할머니 부천시 중동에 사신다고.
이 남자, `부덕의 소치`가 아닐런지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8 11: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천의 중동도 좋은 예이네요.. 부천의 중동.. ㅋㅋㅋ

yamoo 2016-05-1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번연의 << 천로역정 >> 과 토마스 모어의 << 유토피아 >> ..ㅋㅋㅋㅋㅋ 중학생 때 말이지요~ㅎㅎ

전 중학교 때 국어 시험이었는데, 방학 때 현진건의 <무영탑>을 읽고 거기서 문제 낸다고 했는데, 하두 놀아서 숙제를 까먹고 셤 당일날 진짜 하나두 모르는 상태에서 셤을 봤네요..ㅋㅋ 40점..ㅎ 제 국어점수 역대 최하점수였다는..ㅎㅎ

근데, 중학교 때는 계속 이런 시험이 종종 시행됐는데, 그때마다 책을 읽지 않아 항상 점수가 바닥이었다는...ㅋㅋ 그래도 읽지 않았다고 때리지 않아 그게 좋았다는 기억이 나네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1:24   좋아요 0 | URL
아니 중학생에게 왜 그런 시련을 주는 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봐서 서울대 100선이 중학생 수준입니다.
피해본 사람 많았습니다. ㅎㅎㅎㅎㅎㅎ...

아마도 선생이 저를 미워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따뜻한사람 2019-07-05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부덕의소치)에 대한 해석이 맘에 확 와 닿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7-05 16: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