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먼저 인정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
채식주의자와 맨부커 문학상
세계 3대 영화제는 칸느, 베를린, 베니스 필름 페스티발'이다. 문민의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에서 세계 3대 영화제에 더해서 아카데미 영화제를 포함하여 세계 4대 영화제'라고 하자는 제안을 했다1)가 영화인'에게 욕을 " 바가지 " 로 먹은 적이 있다. 아카데미 영화제는 미국의 < 국내 영화제 > 이지 < 국제 영화제 > 가 아니라는 논리'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카데미 영화제는 국내(미국) 영화제와 국제 영화제 사이에 애매모호하게 걸친 영화제'라 할 수 있다.
겉만 보면 국제 영화제'다. 선정 기준은 ' 매년 전번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부터 12월 31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주일 이상 개봉된 모든 영어 사용 영화’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꼼수, 외연을 확장해서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얄팍한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 우리 아카데미 영화제는 < 나쇼날的 > 이기보다는 < W.W.W 的 > 입니다. ha ha ha ! " 쉽게 말해서, 한국 자본으로 한국 인력을 동원하여 한국에서 촬영되었지만 모든 대사를 영어로 처리한 영화(미국 내에서 일주일 이상 개봉된 영화라는 가정에서)라면 영화제 후보 선정 기준에 부합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아카데미 영화제를 국제 영화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이 한국 땅'에서 한국 배우를 대상으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일상 대화를 나누는 영화를 기획할 리가 없고 설령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기껏해야 민병철 생활 영어(학습 교재 영상)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이 대자본을 바탕으로 세계 영화 산업 전체를 주도하기는 하지만 아카데미 영화제의 언어적 제한'은 " 팍스 - 잉글리쉬 " 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볼거리가 화려하다고 해서 그 상이 국제적 명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영화제라는 타이틀을 얻으려면 적어도 다양성 영화의 적극적 포섭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실력만 놓고 보자면 미국 야구가 세계 최강'이지만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우승이 곧 세계 야구 우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카데미 영화제는 주요 본상 발표에 앞서 먼저 << 외국어 영화상(비 영어권 영화 대상) >> 을 발표한다. 조용필은 항상 피날레를 장식하는 법이요, 본 요리에 앞서 스끼다시가 나오는 법. 발표 순위를 보면 그 상에 대한 중요도를 파악할 수 있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전국노래자랑으로 치자면 인기상 정도'다. 그러니까 아카데미 영화제는 작품성보다는 먼저 영어를 사용하느냐 영어를 사용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 정도면 언어 제국주의'다.
한강의 << 채식주의자 >> 가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자 한국 언론이 들뜨기 시작했다. 노벨, 공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이라며 대대적 보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3대 문학상이라는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맨부커 문학상이 권위 있고 명성 있는 문학상이라는 데 의문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맨 부커 문학상은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언어적 장벽을 전제로 하는 맨 부커 문학상이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한다면 아카데미 영화제도 국내(미국) 영화제가 아니라 국제 영화제'라고 해야 한다. 차라리 맨부커 문학상'보다는 에스파냐語를 사용하는 국가의 문학 작품을 기준으로 하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이 더 국제적'이다.
맨부커 문학상이 세계 3대 문학상'이라면 판소리 경연 대회에서 파란 눈의 외국인 몇몇이 춘향가를 완창했다고 해서 남원 판소리 경연 대회를 < 인터내셔널 뮤직 어워드 > 라고 우겨도 된다. 또한 맨부커 국제상은 비 영어권 문학을 영어로 번역한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 올해의 출판 번역상 " 이다. 극심한 출판 판매 가뭄에도 불구하고 << 채식주의자 >> 가 하루에 4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이 정도면 있어도 못 파는 수준을 넘어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 되었다. 한국인은 타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면서도 동시에 타자의 시선에 민감하다. 서구인이 먼저 알아줘야 비로소 우리 것을 인정한다. " 세계가 먼저 인정한 ㅡ 류 " 의 인정 욕구'라고나 할까.
< 우리가 먼저 인정한 문학 > 보다는 < 세계가 먼저 인정한 문학 > 이 숭고해 보이는 사고 구조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싸듯이 호들갑이 지나치면 꼴값이 된다 ■
+ 덧대기

한국일보 기사는 몇몇 문장을 번역한 문장을 비교하며 " 절묘한 개입 " 이라는 성찬을 하는데, 내가 보기엔 " 과도한 번역 " 인 것 같다. 어두운 숲에서 뾰족한 잎이 돋는 나무들을 헤치느라 팔에 상처가 났다는 원문은 뾰족한 잎이 돋는 나뭇잎 때문에 발이 찢어졌다고 번역한다. 이게 절묘한 개입'인가 ? 번역자는 번역가의 입장에서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다기보다는 편집자의 입장에서 원작을 자기 취향에 맞게 고쳤다.
1) 정부 기관에서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