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가 봤니 :
부덕의 소치
예술의 도시이자 좌파들의 아지트인 파리(Paris)는 프랑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깃발만 꽂으면 코끼리 아재들(공화당)이 당선된다는 미국판 대구 달성'인 텍사스에도 파리(Paris)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한 << 파리, 텍사스 >> 는 말을 잃은 한 남자가 텍사스 ㅡ 파리'를 찾는 데에서 시작되는 로드 무비'이다. 텍사스에 파리가 있다 / 없다 ?! 정답은 있다. 익숙한 장소 안에서 이질적인 지명을 만나는 경우는 텍사스 - 파리 조합만은 아니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는 하와이가 있었고, 충남 충주시 수안보(면)에는 와이키키'가 있었다. < 부곡 ㅡ 하와이 > 와 < 수안보 ㅡ 와이키키 > 조합은 < 텍사스 ㅡ 파리 > 조합과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1).
어쩌면 영화 << 친구 >> 에서 유오성이 장동건에게 하와이 가라고 말했을 때, 그 하와이는 하와이섬 남단의 사우스케이프[南串] 북위 19°에 위치한 휴양지가 아니라 대한민국 3대 온천 휴양지인 부곡 하와이 가서 때 빼고 광 내고 오라는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온천장 입장표 내밀며 생색내기 뭐하니깐 비행기표'라며 설레발을 친 것은 아닐까 ? 5,000원짜리 국밥 먹은 손님에게 카운터 주인이 50,000원이라며 농을 거는 것처럼 말이다.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옛날에는 온천 휴양지 가서 때 빼고 광 내는 게 일종의 힐링'이었으니까. 대한민국 아재들에게 < 열탕 > 만큼 시원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영화 << 친구 >> 는 오고가는 상호 의미(부곡 ㅡ 하와이와 미국 ㅡ 하와이)를 두 친구가 서로 오해하는 데에서 비롯된 비극을 다른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잘나가는 사람들이 잘나가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 흔히 내뱉는 " 부덕의 소치 "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 러시아 ㅡ 소치 > 조합이 떠오른다. 이제는 < 부곡 ㅡ 하와이 > 조합과 < 수안보 ㅡ 와이키키 > 조합과 더불어 < 부덕 ㅡ 소치 > 도 낯익은 장소의 낯선 장소로 선정할 만하다. 언젠가는 강원도 태백 부덕면'에서 스케이트 타며 질펀하게 놀 일 있으리라. " 부덕(不德)의 소치(所癡) " 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적 신임을 얻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층민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때 " 부덕의 소치 " 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일단, 소치(所致)라는 단어 뜻일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다. 설령, 소치가 한자 所 : 장소, 자리, 위치 와 致 : 다다르다, 도달하다'로 이루어진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뜻을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어느 누가 저 조합에서 " 어떤 까닭으로 생긴 일 " 이란 단어 뜻을 유추할 수 있느냔 말이다. 나는 이 사회 엘리트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때마다 부덕의 소치를 꺼내들 때 속으로 생각한다. " 개새끼들.... 지랄이 풍년이구나 ! " 부덕의 소치는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덕이 부족하여 생긴 일이라는 뜻이니, 부덕의 소치 운운하며 < 유죄(有罪) > 를 < 무덕(無德) > 으로 치환하여 사과를 하는 행위는 사과가 아니라 바나나'다. 너나 까서 쳐드세요. 이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이 글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궁금해 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혹자는 윤상현 막말 파동 때 그가 부덕의 소치 운운하며 사과한 짓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틀렸다. 이 글의 목적은 독후감으로 토마스 모어의 << 유토피아 >> 에 대한 글이다. 나는 이 책을 중학생 때 읽었다. 그것도 무려 중1. 담임 쌤은 서울대가 선정한 세계 명저 100선'을 바탕으로 학생 1명당 두 권 이상의 책을 사서 강제적으로 읽게 했는데, 내게 돌아온 책은, 씨발2)..... 존 번연의 << 천로역정 >> 과 토마스 모어의 << 유토피아 >> 였다. 곰곰 생각해도 이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알쏭달쏭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책에 대한 독후감은 작성했다는 점이다. 쌤은 독서 행위가 세계를 구원하리라 - 주의자'였으면서
동시에 학생에겐 매 타작이 보약이라고 믿으시는 분이셨다. " 책을 읽지 않으면 죽도록 맞아야제 ~ " 다들 아시다시피 유토피아는 < 없는 ( ou ㅡ ) > 과 < 장소 ( topos ) > 를 결합하여 만든 단어'이니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없는 장소, 다다를 수 없는 장소를 뜻한다. 텍사스 ㅡ 파리는 지명에 있는 장소이지만 없는 장소이고, < 부곡 ㅡ 하와이 > 와 < 수안보 ㅡ 와이키키 > 도 있는 장소이지만 없는 장소'이다. 색깔은 다르지만 < 미아리 ㅡ 텍사스 > 나 < 청량리 ㅡ 텍사스 > 도 마찬가지다. 와이키키, 하와이, 텍사스는 거기 있지만 거기 없는 곳이다. 부덕의 소치도 마찬가지'다. 사실, 부덕이라는 지명은 대한민국 지도'에는 없다. 부덕의 소치'는 다다를 수 있는 장소 ; 所致'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곳 또한 유토피아'다 ■
1) 이런 이질적인 조합의 판타스틱하며 에스에푸적 조우는 < 미아리 ㅡ 텍사스 > 에서 정점을 이룬다. 옛날에는 집창촌을 텍사스촌(ㅡ村)으로 부르곤 했다.
2) 어떤 놈은 << 이솝우화 >> 나 << 허클베리 핀 >> 을 배당받기도 했다.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