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영혼 - 경이로운 의식의 세계로 떠나는 희한한 탐험
사이 몽고메리 지음, 최로미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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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박근혜보다 문어


 

 

 


                                                                                                      그해, 나는 위대한 수작을 완수하기 위해서 날숨을 길게 내뱉은 후 들숨을 깊게 마셨다. 어찌나 깊게 들이마셨는지 들이마신 공기가 괄약근으로 빠져나갈 것만 같아서 순간 " 케겔 " 운동 요법으로 괄약근을 꽉 조여서 공기의 유실을 막아야 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계획도 아니었건만, 그때는 " 미션 임파서블 " 하지는 않지만 "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미션 파서블한 " 과제였다고 생각했다. 비디오 가게 문을 열고 공포영화만 모아둔 진열장 앞에 서서 공포 영화 비디오 세 개를 골랐다. 골랐다기보다는 진열된 순서대로 뽑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해가 가기 전에 < 공포 영화 300편 보기 > 가 내가 세운 원대하고 위대한 수작이었다. 주중에는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으니 주로 주말에 몰아서 보았다. 남들은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 토익이다, 공무원 시험이다,

각종 자격증 공부 설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어두컴컴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졸라 재미 없는 공포 비디오'를 5,6편씩 몰아서 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헬 _ 이었다. 그런데 지옥 같은 상황도 참고 견디자 나중에는 지옥이 뭐가 나빠 _ 라고 반문할 정도로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애정을 가지고 공포 영화를 보기 시작하자 < 몬스터 > 와 < 프릭스 > 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내 취향은 " 길고, 흐느적거리며, 꿈틀거리는 것 " 이었다. 아나콘다와 같은 거대 뱀이 등장하는 영화는 물론이고, 거대 지렁이나 거대 거머리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 앞에서도 넋을 놓고 보게 되었다.

남들이 그토록 형편없다고 욕을 했던 << 디워 >> 조차 내 눈에는 친근하게 다가왔다. 머, 머머머멋지다 이무기 ! 그중에서도 최고의 몬스터는 문어-괴물'이었다. 거대한 아나콘다 한 마리만 나와도 열광했던 나에게 아나콘다 여덟 마리(문어는 다리가 여덟 개다)가 한몸으로 구성된 문어-괴물은 슈퍼스타'였다. 그것은 마치 연기파 배우 여덟 명이 한 영화에 출연할 꼴이었다. 사랑하,      지 않을 수 없었다. " 올드 old " 한 외양과 " 오드 odd " 한 서정을 좋아했던 나는 넋을 놓고 보곤 했다. 심지어 인간과 문어가 싸우면 항상 문어를 응원하곤 했다. 옥토퍼스, 가시는 길에 영광 있으라 !

실제로도 문어는 매우 매력적인 생명체'다. 머릿속에는 위장이 달렸고, 발에는 생식기가 달렸으며, 피는 파랗고 심장은 무려 세 개나 된다. 그리고 멸치조차 뼈대 있는 가문이라며 으스대는 시대에 문어는 뼈 없는 동물이다. 멸치가 문어에게 족보 없는 놈이라고 조롱한다면 문어는 멸치에게 심장이 하나 밖에 없는 놈이라고 맞받아치면 된다. 또한 몸통보다 대갈통이 큰 대두이나, 압도적으로 큰 대두(大頭)에 비해 다리가 시원스럽게 쭉 뻗었으니..... 이런 등신은 해석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문어는 카멜레온처럼 변신이 가능하다. 문어는 변장술이 뛰어나서 시시때때로 얼굴을 바꾼다.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서는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감쪽같다. 놀라운 것은 피부 색깔뿐만 아니라 피부 감촉이나 질감마저 변화시킨다. 또한 문어는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보다 지능이 높다. 만약에 당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향해 하는 짓이 사람과 똑같다 _ 며 칭찬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면, 문어가 사람보다 한수 위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처럼 문어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odd이다. 기네스 팰트로는 문어는 음식이 되기에는 너무 똑똑하다 _ 면서 문어 요리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라. 너무 똑똑해서 하는 짓이 사람과 같은 짐승을 먹는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문어는 사람보다 뇌에 뉴런이 더 많다고 한다. 어쩌면 문어는 박근혜보다 더 많은 뉴런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름하는 짐승일지도 모른다. 나는 기네스 펠트로의 말을 지지한다. 문어는 음식이 되기에는 너무 똑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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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7-27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포영화.. 저는 공포영화를 보는거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는데, 억울한 영화는 힘들어서 도저히 못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7-27 14:5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공포영화가 불편하지는 않는데 오히려 고발 다큐를 볼 때가 더 불편한 적이 많습니다..

얄라알라 2017-07-27 0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제목보다 리뷰의 제목이 더 강렬합니다. ^^ 읽고나니 리뷰 제목의 뜻이 이해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7-27 14:53   좋아요 0 | URL
내기 걸면 이길 확률이 높으니 얄라 님도 문어에게 내기를 거십시오. 이 힘든 세월에 500원이 어디입니까.
제가 보기엔 박은 지능이 낮습니다.

2017-07-27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7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짱이를 위한 변명





                                                                                                        대한민국 현대사는 " 압축 성장 " 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그것은 VCR 2배속 기능의 빨리감기 버튼과 비슷해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남들처럼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았다면 놀라운 " 한강의 기적 " 은커녕 그녕저녕 " 한가한 기적 " 쯤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20세기 다보탑은 남들 일할 때 일하는 것은 물론이요, 남들 놀 때도 일해서 쌓을 수 있는 금자탑이다.  이 금자탑을 쌓아올린 주역이 바로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 서사의 주인공으로 유신 세대(52 ~ 6 0)와 산업화 세대(61 ~ ) 가 주축이 되었다. 그들은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놀 때도 일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세대'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저개발국의 잔재여서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려는 현실과는 맞지 않는 노동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저개발의 향수를 버리지 못한 채 과잉 노동 신화가 병리적 증후였다는 사실을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다 _ 라고 말하는 세대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옳다 _ 고 말하는 세대가 충돌하고 있다(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굳이 커밍아웃하자면 : 그때는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여기에 덧대어 보다 솔직하게 나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고백하자면 그때는 틀리고 지금도 틀리지만 앞으로도 틀릴걸 ?! ).      대한민국 영토 전체가 박정희의 나와바리'가 되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 노동자 > 라는 단어를 < 근로자 > 로 창씨개명하는 일이었다.

그는 1963년 4월 17일 <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 을 제정하면서 이날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한다. 왜, 박정희는 노동자를 근로자라는 단어로 교체하는 언어 정화 운동에 앞장섰을까 ?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했던가 ?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를 알게 되면,  당신은 각하의 꼼꼼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우리 각하, 꼼꼼혀 !   근로자는 노동자라는 단어 앞에 한자 勤(부지런할 근)이 머리에 붙은 단어이다. 단어 구성에 있어서 앞머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 Ladies and gentlemen ~ " 를 번역할 때  

" 숙녀 신사 여러분 ~ " 이 아니라 " 신사 숙녀 여러분 ~ " 으로 번역되는 이유는 대한민국 사회가 젖보다는 좆을 강조하는 남근 선망 사회라는 데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 연놈 1) > 이란 단어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 반론은 오히려 내 주장을 공고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예리한 지적이 아니다. 이 단어에서 놈보다 년이 유리천장 (Glass Ceiling)을 뚫고 앞머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단어가 욕설이기에 가능했다. 한국어에서 좋은 것(중요한 것)은 좆이 우선하지만 나쁜 것은 젖이 우선한다. < 근로 勤勞 > 라는 단어 구성에서 勤은 勞보다 중요하다.

그러니까 꼼꼼한 각하가 보시기에 " 勞 : 일하다 " 만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는다. 강철군화로 한반도를 짓밟은, 대한민국을 자신의 나와바리라고 선포하며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_ 라고 선포하신 각하는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야 비로소 만족하신다. 여기서 방점은 열 ! 심 ! 히 !   그러다 보니, 노동법 준수를 주장하며 " 나인-투-파이브 " 를 외치는 근로자는 근로자가 아니라 놀고먹는 베짱이 취급받기 일쑤다. 유신세대와 산업화세대가 저개발의 향수에 젖어서 태극기를 흔들 때, 그 자식들은 유다세대3)로 전락하게 된다. nine - to - nine12시간 넘게 일하지만 이것저것 떼고 나면 월급명세서에 찍히는 것은 99만 원이 전부다.

세월은 변했지만 메이데이는 지금도 근로자의 날'로 불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노동자는 없고 근로자만 있는 나라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 개미와 베짱이 >> 이야기는 근로자와 노동자를 다룬다.  우선, 제목만 봐도 " 순서와 배치의 정치학 " 을 엿볼 수 있다. 순열의 정치학에서 앞머리는 항상 지배계급을 대표한다.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자면 좋은 것은 좆(주류)이 우선하고 나쁜 것은 젖(비주류)이 우선한다. 개미는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놀 때도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은유이고, 베짱이는 놀 때는 놀 줄 아는 노동자에 대한 은유이다. 이 이야기에서 근로는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노동은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놀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4) " 는 하위징아의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노래하는 베짱이는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지 빌어먹을 거지'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_ 는 교훈을 얻겠지만 이 교훈을 맹신한다면 당신은 유다처럼 예수를 배신하는 배덕자 신세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수는 근로자보다는 노동자에 가까웠고, 노동보다는 휴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한 성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교훈이 자본가의 논리라면 유한 계급에 속하는 그들은 모두 굶어죽어야 한다.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화'만으로 먹고 사는 계층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유한계급에게 밥숟가락 내려놓으라고 협박하는 이는 없다. 한여름에 그늘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생산하는 베짱이를 향해 밥숟가락 내려놓으라고 비난할 수 있다면, 같은 이유로 한여름에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유한계급에게도 같은 논리로 비난해야 한다. 하여,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노래하는 베짱이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부른 적 있었느냐. 











​                                                      


1) 계집과 사내를 함께 낮잡아 이르는 말

2) 勤 : 부지런히 일하다, 근무하다, 힘쓰다, 위로하다, 근심하다, 걱정하다, 괴롭다

3)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소비 활동을 유니클로와 다이소에 한정하는 세대

4) 호모루덴스, 하위징가 책머리 소개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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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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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 전야에 골든 라즈베리 영화제 시상식이 열린다. 전자가 그해 " 최고의 영화 " 를 선정하는 영화제라면 후자는 그해 " 최악의 영화 " 를 선정하는 영화제'다.

만약에 문학 분야'에도 " 황금산딸기 " 시상식이 생겨서 최악의 고전 문학을 뽑아야 한다면 이 불명예를 뒤집어쓸 불후의 명작은 무엇이 될까 ?  문학적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의 문학 작품이 선정되겠지만, 내 악취미를 고려하자면 셰익스피어의 << 베니스의 상인 >> 과 더불어 << 이솝 우화 >> 를 뽑겠다.   이솝우화는 이솝이라는 흑인 노예가 주인에게 바치는 그리스판 " 용비어천가 문학 " 이다. 주인의 성은에 보답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정직하게 살자고 가르치니, 이를 어여삐여긴 주인이 이솝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매문 문학의 고전'이라고 하는 쪽이 합당할 듯하다.

누군가는 < 개미와 베짱이 > 이야기'에서     :    노래하는 베짱이가 유한 계급에 속하기에 이솝이 노동을 예찬하고 유한 계급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말할지도 모르나,  자세히 뜯어보면 베짱이는 딴따라이기는 하나 평일에 비행기 타고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유한 계급(有閑階級)은 아니다. 유한계급이 "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만으로 소비가 가능한 계층 " 이라고 가정한다면  노래하는 베짱이'는 매사에 낙천적이며 흥 많고 끼 많은, 가난한 딴따라 노동자 계층에 불과하다. 한여름에 일하지 않았다고 한겨울에 굶어죽을 걱정을 하는 유한계급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그러니까 < 개미와 베짱이 > 는 일은 하지 않고 거드름이나 피우는 " 부자의 게으름 " 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꾼 주제에 놀기만 좋아하는 무한계급無恨階級을 조롱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솝은 " 노래하는 베짱이 " 를 " 문화 생산자로서의 예술 노동자 " 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솝은 공장 노동자(일개미)의 근로(勤勞 : 근로는 부지런히 움직이다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다)는 예찬하지만 예술 공연자(베짱이)의 유희적 노동(勞動 : 노동은 단순히 일하다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근로 행위는 예찬하면서 노동 행위는 경시하는 태도는 악덕 고용주 마인드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 근로자 > 라는 단어가 " 근 + 로(노)동자 " 의 조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단어는 노동자에게 노동의 기본은 물론이요, 덧대어 근(勤 : 부지런할 근)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싸장님 마인드이다. 이솝의 << 개미와 베짱이 >> 는 바로 노동 천시 근로 예찬 서사'에 가깝다. 박근혜는 부지런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_  라며 무식을 뽐냈지만, 슬퍼할 시간도 없을 만큼 노동 강도가 쎈 사회보다는 차라리 슬퍼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애도 기간을 보장하는) 사회가 보다 더 건강한 사회'라는 점은 두말없다.  < 노동자의 날 > 이 < 근로자의 날 > 로 변경된 때가 1963년 박정희 군사 정권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왕벌인 박근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벌은 말 잘 듣는, 바빠서 슬퍼할 시간도 없는 벌꿀'이다. 어쩌면 503호는 가막소에서 이솝우화를 읽으며 와신상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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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7-07-22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마이갓. 저는 왜 단 한번도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보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베짱이는 부자가 아닌데 말입니다. 후라이팬으로 뒷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7-23 11:42   좋아요 0 | URL
이솝우화를 좀 삐딱하게 읽으면 친기득권을 옹호하는... 그러니 주인이 이솝 노예를 해방시켰지 않았스겠습니까..

cyrus 2017-07-23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이라는 소재로 이솝 우화를 재해석한 글이 참신하고 좋습니다. 모 알라디너의 명대사를 인용하자면 ‘이달의 마이리뷰로 선정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7-24 10:47   좋아요 0 | URL
좋아요가 12개 밖에 안되서 글렀습니다..

2017-07-24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4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7-07-2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로와 노동의 의미가 헷갈렸었는데 곰발님 덕에 학씨리 접수하게 되었어요.
노동은 자발적이라 아름답지만, 근로는 강요된 이데올로기라 추접한 꼼수로 느껴지네요.
역시 곰발님...

곰곰생각하는발 2017-07-28 13:33   좋아요 0 | URL
노동자 앞에 근‘자가 붙은 꼴이죠. 그냥 노동하면 성에 안 차니까 근을 붙이는...
 
경제적 공포
비비안느 포레스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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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잃어버린 삶



 

 

                                                                                                       대한민국은 저녁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장년이 퇴근을 미루고 야근을 하면 " 열심 " 히 일하는 사람이 되고, 청년이 퇴근을 미루고 야근을 하면 " 열정 " 이 되며, 소년이 방과 후 학원을 유령처럼 배회하다가 아빠보다 늦게 집에 오면 " 열공 " 이 된다.

과부하에 걸린 노동 사회를 열심, 열정, 열공 따위로 선전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 리 없다. 한술 더 떠, 이런 사회를 역동적'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시부럴 놈들, 뭐가 중헌지도 모른 채 국가 브랜드 이미지 광고는 온통 " 다이나믹 코리아 ! " 란 구호만 넘쳐났다. 노동자 계급에게는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 " 라고 말하는 현대 카드 광고 카피'는 머나먼 쏭바강 얘기처럼 들린다. 박근혜는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지만 " 슬퍼할 시간 " 마저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슬퍼한 시간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이다.

한국인 모두가 슬퍼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것은 아니다. 죽도록 일만 하는 노동자 계급이 있는가 하면, 죽도록 한가한 유한 계급(有閑階級)도 있다. 남는 것이 시간과 돈이다 보니 독서 대신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며 여가를 즐긴다. 반대로 무한계급(無閑階級)은 만화책 읽을 시간도 없다. 미국이 1인당 한 달에 책을 6.6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인 반면에 한국은 1.3권으로 최하위권(166위)에 속한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성인의 35%는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소리는 결국 10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 독서량이 OECD 국가 중 꼴찌인 이유는 " 근성의 문제 " 로 접근하기보다는 " 근로의 문제 " 로 이해하는 쪽이 합당할 듯하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을 반기는 쪽은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맑스나 푸코 서적처럼 읽고 나면 말랑말랑한 마음을 딱딱하게 만드는, 석고 반죽 같은 책보다는 고통을 완화시키는 히로뽕 같은 " 최루성 신파 이빠이 감성 졸라 에세이 " 를 읽으라고 주문한다. 최근, 이기주의 << 언어의 온도 >> 가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은 비극이다.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의 " 경제적 공포 " 를 이용하여 자신이 속한 계급에게 유리한 제도와 정책을 유지하려 든다.

좋은 예가 원전 마피아들이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며 내세우는 논리이다. 그들은 그동안 원전 정책으로 인해 값 싼 전기료를 공급했는데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기료 상승이 예상된다면서 경제적 공포를 유포시킨다. 쉽게 말해서 별 탈 없이 무탈하게 돌아가는 원전 시설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잉 대응한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위험 시설에 대해서는 < 늑장 대응 > 보다는 차라리 < 과잉 대응 > 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모두 다 공감한다. 엎질러진 물보다는 엎질러지기 전에 컵을 치우는 것이 합리적이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손보는 게 합리적 대응이니까.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괴담도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경제적 공포를 이용한 사례이다.

국민 기본 소득 정책을 위한 전 단계인 최저 임금 7530원을 두고      :       언론이 자영업자의 몰락, 또는 공장 6곳 중 3곳 폐쇄 검토 운운하며 경제적 공포를 유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전이 폐쇄되면 전기료가 상승된다고 걱정하기 전에 대기업에게 무상에 가까운 수준으로 공급되는 국가의 전기 정책을 상기할 필요가 있고, 최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 세금 4조 원을 투입하는 것을 걱정하기에 앞서 국가가 대기업에 투입되는 세금 126조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지나친 특혜가 아닌지 재검토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  자신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당연한 것이고 서민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은 포퓰리즘인가 ?

슬퍼한 시간조차 없는 사회보다는 슬퍼한 시간이 주어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며, 일하지 않고도 빌어먹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가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말하는 사회보다 더 빌어먹을 사회에 가깝다. 일하지 않고 빌어먹을 권리만 주장하는 것이 염치의 문제라면 일하지 않고도 빌어먹을 권리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정치의 문제이다. 그리고 경제적 공포를 주장하는 놈일수록 배부른 놈일 가능성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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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21 1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입니다. 이 날에 공연 보러 가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날이 평일인데다가 야근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7-22 15:46   좋아요 0 | URL
문화가 있는 날.... 이거 올해 7월까지만 적용되는 것이죠 ? 문화가있는날은 아마도 박근혜가 만든 문화 혜택일 겁니다..

cyrus 2017-07-22 16:20   좋아요 0 | URL
‘마지막 주 수요일‘에서 ‘마지막 주 모든 요일‘로 확대 적용된다고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이 바뀌게 되었군요.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

양손잡이 2017-07-23 00:53   좋아요 0 | URL
문화의 날이 그렇게 바뀌는군요!! 동네 도서관은 마지막주 수요일에 대출한도를 두 배로 늘려주던데 그럼 매일 14권을 빌릴 기회가 있는 걸까요 ㅎㅎ 어차피 그만큼 못 읽지만요...

표맥(漂麥) 2017-07-21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부하에 걸린 노동 사회를 열심, 열정, 열공 따위로 선전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 리 없다... 공감 백배...^^

곰곰생각하는발 2017-07-22 15:47   좋아요 0 | URL
ㅈ긋지긋하죠. 뼈빠지게 일해야 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정상적으로 법적 테두리 안에서 노동을 하면 빈둥빈둥 노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 참 문제죠..

2017-07-24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4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4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살나무 2017-08-2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낳지 않는 사회, 과음하는 사회.놀이문화가 없는 사회..이 불행한 현상과 일맥상통하느 거라고 봅니다.
 
음악 혐오 - 공쿠르상 수상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음악의 시원과 본질
파스칼 키냐르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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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리는 미묘한 공포를 선사한다




                                                                                                          이기주의 << 언어의 온도 >> 는 이기주의 " 감성 에세이 " 라기보다는 " 감성 이기주의 " 에 가깝다. 대중 감성에 호소하는 문장이 대중을 향할 때에는 호소력을 얻을 수 있지만,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 달달한 언어로 대중적 감성을 자극하면 구질구질한 문장이 된다. << 언어의온도 >> 는 후자'에 속한다.

이런 책을 두고 " 인문 에세이 "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두고“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하는 문학적 장치1) ” 라고 해서 어중이떠중이-들, 누구나 가볍게 쓸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품격을 갖춘 에세이를 경험하고 싶다면 프랑스 에세이'만큼 좋은 것도 없다. 파스칼 키냐르의 인문 에세이 << 음악 혐오 >> 는 교양의 넓이와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걸작이다.  << 섹스와 공포 Le Sexe et l'effroi (1994년) >> 에서 키냐르는 성이 공포와 저주로 변주된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철학, 성서 텍스트를 해독할 뿐만 아니라 고대 희랍어와 라틴어의 어원과 변형을 통해 자신의 논증을 증명한다. 이 과정이 화려하다. 읽다 보면, 무릎 관절통으로 고생하는 간서치(看書癡)도 키냐르의 넓이와 깊이 앞에서 무릅쓰고 무릎 탁, 치며 아, 하게 된다. 음악과 공포를 다룬 << 음악 혐오 >> 가 그로부터 2년 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은 << 섹스와 공포 >> 의 거울쌍이자 연작 에세이처럼 읽힌다. 파스칼 키냐르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신호로써의 소리)이 공포와 저주로 변주된 것2)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작인 << 섹스와 공포 >> 에서 그랬던 것처럼 각종 신화와 철학

그리고 어원과 그 변형을 통해서 자신의 논증을 증명한다. 넓은 교양과 깊은 사유에 버금갈 만한 기똥찬 문장력은 덧거리(덤)이다. 그는 메두사 신화를 언급하면서 공포(돌처럼 굳게 하고) 뒤에 오는 침묵 현상에 주목한다. 그가 보기에 이 침묵은 " 그 자체로 결핍에 의한 노래 " 이며 " 내가3) 겪었던 무언증은 일종의 부재의 노래 " 라고 언급한다. 처음에는 대대로 걸출한 음악가를 탄생시켰던 집안에서 자랐고, 그 스스로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이가 음악을 혐오한다고 하니 의문투성이였지만 그가 내세운 인문학적 사유와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수긍하게 된다.

침묵이 그 자체로 결핍에 의한 노래라는 키냐르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그때부터 이 텍스트는 술술 읽히게 된다. 사실, 공포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은 침묵이 강요되는 장면들이 아니었던가. 침묵 뒤에 오는, 그러니까 공포 영화에서 침묵을 깨는 사운드(갑작스런 효과음-들)은 공포라기보다는 서프라이즈에 가깝다는 점에서 침묵이라는 노래야말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인 것이다. 좋은 독서는 고정된 사고 틀을 깨고 외연을 확장하는 경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매우 훌륭하다.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무릅쓰고 무릎 탁, 치고 아, 할 만한다 ■

 

 

 

 

 

덧대기 ㅣ 독자가 책값 가지고 설왕설래하는 꼴이 우습기는 하지만 << 음악혐오 >> 와 << 언어의 온도 >> 의 책값 차이가 4000원밖에 안 난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정한 혐오가 아닐까 싶다. 좋은 책은 강철로 만들고 나쁜 책은 스티로폼으로 만든다. 하여,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물에 빠트려 보는 것이다. 무게 있는 책은 가라앉고 경박하고 가벼운 책은 둥둥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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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더스 헉슬리

2) 음악과 공포. 이 두 단어는 영원히 결속된 것만 같다. 비록 그 기원과 시대가 어긋난다 할지라도 ( 13쪽 )

3) 키냐르는 어린 시절에 무언증mutisme 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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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7-2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읽은 비문학 서적 가운데 최고 으뜸이라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