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 전야에 골든 라즈베리 영화제 시상식이 열린다. 전자가 그해 " 최고의 영화 " 를 선정하는 영화제라면 후자는 그해 " 최악의 영화 " 를 선정하는 영화제'다.
만약에 문학 분야'에도 " 황금산딸기 " 시상식이 생겨서 최악의 고전 문학을 뽑아야 한다면 이 불명예를 뒤집어쓸 불후의 명작은 무엇이 될까 ? 문학적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의 문학 작품이 선정되겠지만, 내 악취미를 고려하자면 셰익스피어의 << 베니스의 상인 >> 과 더불어 << 이솝 우화 >> 를 뽑겠다. 이솝우화는 이솝이라는 흑인 노예가 주인에게 바치는 그리스판 " 용비어천가 문학 " 이다. 주인의 성은에 보답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정직하게 살자고 가르치니, 이를 어여삐여긴 주인이 이솝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매문 문학의 고전'이라고 하는 쪽이 합당할 듯하다.
누군가는 < 개미와 베짱이 > 이야기'에서 : 노래하는 베짱이가 유한 계급에 속하기에 이솝이 노동을 예찬하고 유한 계급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말할지도 모르나, 자세히 뜯어보면 베짱이는 딴따라이기는 하나 평일에 비행기 타고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유한 계급(有閑階級)은 아니다. 유한계급이 "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만으로 소비가 가능한 계층 " 이라고 가정한다면 노래하는 베짱이'는 매사에 낙천적이며 흥 많고 끼 많은, 가난한 딴따라 노동자 계층에 불과하다. 한여름에 일하지 않았다고 한겨울에 굶어죽을 걱정을 하는 유한계급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그러니까 < 개미와 베짱이 > 는 일은 하지 않고 거드름이나 피우는 " 부자의 게으름 " 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꾼 주제에 놀기만 좋아하는 무한계급無恨階級을 조롱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솝은 " 노래하는 베짱이 " 를 " 문화 생산자로서의 예술 노동자 " 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솝은 공장 노동자(일개미)의 근로(勤勞 : 근로는 부지런히 움직이다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다)는 예찬하지만 예술 공연자(베짱이)의 유희적 노동(勞動 : 노동은 단순히 일하다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근로 행위는 예찬하면서 노동 행위는 경시하는 태도는 악덕 고용주 마인드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 근로자 > 라는 단어가 " 근 + 로(노)동자 " 의 조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단어는 노동자에게 노동의 기본은 물론이요, 덧대어 근(勤 : 부지런할 근)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싸장님 마인드이다. 이솝의 << 개미와 베짱이 >> 는 바로 노동 천시 근로 예찬 서사'에 가깝다. 박근혜는 부지런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_ 라며 무식을 뽐냈지만, 슬퍼할 시간도 없을 만큼 노동 강도가 쎈 사회보다는 차라리 슬퍼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애도 기간을 보장하는) 사회가 보다 더 건강한 사회'라는 점은 두말없다. < 노동자의 날 > 이 < 근로자의 날 > 로 변경된 때가 1963년 박정희 군사 정권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왕벌인 박근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벌은 말 잘 듣는, 바빠서 슬퍼할 시간도 없는 벌꿀'이다. 어쩌면 503호는 가막소에서 이솝우화를 읽으며 와신상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