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를 위한 변명





                                                                                                        대한민국 현대사는 " 압축 성장 " 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그것은 VCR 2배속 기능의 빨리감기 버튼과 비슷해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남들처럼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았다면 놀라운 " 한강의 기적 " 은커녕 그녕저녕 " 한가한 기적 " 쯤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20세기 다보탑은 남들 일할 때 일하는 것은 물론이요, 남들 놀 때도 일해서 쌓을 수 있는 금자탑이다.  이 금자탑을 쌓아올린 주역이 바로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 서사의 주인공으로 유신 세대(52 ~ 6 0)와 산업화 세대(61 ~ ) 가 주축이 되었다. 그들은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놀 때도 일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세대'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저개발국의 잔재여서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려는 현실과는 맞지 않는 노동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저개발의 향수를 버리지 못한 채 과잉 노동 신화가 병리적 증후였다는 사실을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다 _ 라고 말하는 세대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옳다 _ 고 말하는 세대가 충돌하고 있다(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굳이 커밍아웃하자면 : 그때는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여기에 덧대어 보다 솔직하게 나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고백하자면 그때는 틀리고 지금도 틀리지만 앞으로도 틀릴걸 ?! ).      대한민국 영토 전체가 박정희의 나와바리'가 되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 노동자 > 라는 단어를 < 근로자 > 로 창씨개명하는 일이었다.

그는 1963년 4월 17일 <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 을 제정하면서 이날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한다. 왜, 박정희는 노동자를 근로자라는 단어로 교체하는 언어 정화 운동에 앞장섰을까 ?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했던가 ?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를 알게 되면,  당신은 각하의 꼼꼼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우리 각하, 꼼꼼혀 !   근로자는 노동자라는 단어 앞에 한자 勤(부지런할 근)이 머리에 붙은 단어이다. 단어 구성에 있어서 앞머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 Ladies and gentlemen ~ " 를 번역할 때  

" 숙녀 신사 여러분 ~ " 이 아니라 " 신사 숙녀 여러분 ~ " 으로 번역되는 이유는 대한민국 사회가 젖보다는 좆을 강조하는 남근 선망 사회라는 데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 연놈 1) > 이란 단어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 반론은 오히려 내 주장을 공고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예리한 지적이 아니다. 이 단어에서 놈보다 년이 유리천장 (Glass Ceiling)을 뚫고 앞머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단어가 욕설이기에 가능했다. 한국어에서 좋은 것(중요한 것)은 좆이 우선하지만 나쁜 것은 젖이 우선한다. < 근로 勤勞 > 라는 단어 구성에서 勤은 勞보다 중요하다.

그러니까 꼼꼼한 각하가 보시기에 " 勞 : 일하다 " 만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는다. 강철군화로 한반도를 짓밟은, 대한민국을 자신의 나와바리라고 선포하며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_ 라고 선포하신 각하는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야 비로소 만족하신다. 여기서 방점은 열 ! 심 ! 히 !   그러다 보니, 노동법 준수를 주장하며 " 나인-투-파이브 " 를 외치는 근로자는 근로자가 아니라 놀고먹는 베짱이 취급받기 일쑤다. 유신세대와 산업화세대가 저개발의 향수에 젖어서 태극기를 흔들 때, 그 자식들은 유다세대3)로 전락하게 된다. nine - to - nine12시간 넘게 일하지만 이것저것 떼고 나면 월급명세서에 찍히는 것은 99만 원이 전부다.

세월은 변했지만 메이데이는 지금도 근로자의 날'로 불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노동자는 없고 근로자만 있는 나라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 개미와 베짱이 >> 이야기는 근로자와 노동자를 다룬다.  우선, 제목만 봐도 " 순서와 배치의 정치학 " 을 엿볼 수 있다. 순열의 정치학에서 앞머리는 항상 지배계급을 대표한다.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자면 좋은 것은 좆(주류)이 우선하고 나쁜 것은 젖(비주류)이 우선한다. 개미는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놀 때도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은유이고, 베짱이는 놀 때는 놀 줄 아는 노동자에 대한 은유이다. 이 이야기에서 근로는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노동은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놀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4) " 는 하위징아의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노래하는 베짱이는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지 빌어먹을 거지'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_ 는 교훈을 얻겠지만 이 교훈을 맹신한다면 당신은 유다처럼 예수를 배신하는 배덕자 신세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수는 근로자보다는 노동자에 가까웠고, 노동보다는 휴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한 성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교훈이 자본가의 논리라면 유한 계급에 속하는 그들은 모두 굶어죽어야 한다.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화'만으로 먹고 사는 계층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유한계급에게 밥숟가락 내려놓으라고 협박하는 이는 없다. 한여름에 그늘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생산하는 베짱이를 향해 밥숟가락 내려놓으라고 비난할 수 있다면, 같은 이유로 한여름에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유한계급에게도 같은 논리로 비난해야 한다. 하여,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노래하는 베짱이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부른 적 있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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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집과 사내를 함께 낮잡아 이르는 말

2) 勤 : 부지런히 일하다, 근무하다, 힘쓰다, 위로하다, 근심하다, 걱정하다, 괴롭다

3)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소비 활동을 유니클로와 다이소에 한정하는 세대

4) 호모루덴스, 하위징가 책머리 소개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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