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ㅣ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연휴를 맞아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동하여 책장 앞을 서성여도 손에 얼른 쥐어지는 책이 없을 때가 있다. 이 책을 넘겨 보고 덮어 버리고, 저 책을 손에 쥐고 책장을 넘기고 있어도 곁눈으로 다른 책을 살피고 있으니 이럴 때는 그 어떤 책을 읽어도 집중하지 못할 것이란 나 자신을 알게 된다. 또한 하필 이럴 때 근사한 소설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나곤 하는데 어쩌란 말이냐? 내 마음아! 금방 자포자기하게 된다.
그래서 정리하지 않아 어지러운 책장을 한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이상스런 습관이 생겼는데 그럴 때 딸아이가 슬쩍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이 책 저 책 꺼내서 아무 말을 내던지며 관심을 끌곤 한다.
딸은 주로 책 표지가 예쁜 책들을 선택하며 "몽글몽글한 이야기 책을 읽고 싶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딸이 잡았던 몽글몽글한 표지의 소설책들은 막상 몽글몽글한 내용이 아닐 수 있다고 답해줬더니 그럼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 해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로맨스는 읽을만 할 거야! 하며 권해줬다.
그랬더니 딸이 나에게 복수?하는 조건으로 김이설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을 읽으라고 꺼내줬다. 아, 안 읽은 책은 귀신같이 찾아내는 너의 신묘한 능력이라니! 하긴, 안 읽은 책이 어디 이 한 권 뿐이겠냐만....
여튼 그렇게 회원이 단 둘인 독서클럽이 그 자리에서 결성되어 연휴동안 각자 권해준 소설을 읽기로 했다. 당연히 회장은 내가 되었다.
회장의 임무를 해야겠기에 회원 관리가 필수라, 딸의 방을 들여다 보면 분명히 <오만과 편견> 넘 재미나다고 하던 녀석은 앞의 몇 장 넘길 힘이 없어 침대에 쓰러져 있었다.
"회원님. 여기서 이렇게 주무시면 안 됩니다. 얼른 일어나셔요. 이러다가 제 시간에 책 다 못 읽어요."
피식 웃는 어린 회원은 아까 엄마도 코 골고 자는 걸 다 봤었다고 10분만 자게 자기를 내버려 달라고 했다.
아니...내가 언제 코를 골았다고?
아까 책 읽다 큰 숨소리에 내가 화들짝 놀랐었는데...그때였나?
회장의 명예와 체면을 구긴 회원은 제명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이로써 모녀 북클럽은 이틀을 못 넘기고 해체됐다는.....ㅜㅜ
유리창을 닦는 날, 화장실을 청소하는 날, 싱크대를 정리하는 날, 찬장을 치우는 날, 베란다를 정리하고 다용도실을 치우는 날이 주어졌고, 그럼 나는 미션을 치르는 사람처럼 묵묵히 치우고 쓸고 닦고 정리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쓸고 물걸레질을 했고, 자기 전에 꼭 현관을 말끔히 정리해야 했다. 빨래는 겉옷과 속옷으로, 겉옷은 다시 색깔별로, 속옷과 수건은 꼭 삶았으며, 손빨래할 것들은 나오는 대로 곧 바로 빨아야 한다고 배웠다. 이불과 베개는 매일 먼지를 털어 햇빛에 말렸고, 이불은 매달, 커튼은 계절마다 빨았다.
가장 힘든 집안일은 부엌일이었다. 매일 세 끼를 차리고 치우는 일, 그 반복적인 일이 끝나지 않는 소모품으로 전락되는 기분이 들게 했다. 매 끼니 새로운 반찬과 국과 찌개를 끓이는 게 아니어도 상을 닦고 수저를 놓고 음식을 차리고, 빈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하고, 남은 음식을 갈무리하고, 다시 다음 끼니 준비를 해놓고서야 부엌을 나올 수 있다는 것, 매일매일 거르지 못하는 일인 데다 거를 수도 없는 일의 무한반복이었다. 끔찍하게 지겹고 지긋지긋하게 지루했다.(104~105쪽)
아마도 나도 모르게 코를 골며 졸았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주말과 연휴를 포함한 날들은 살짝 부담감이 든다.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구들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흐트러 놓아 정리되지 않는 물건들과 바닥에 쌓이는 먼지와 머리카락, 평일보다 더 나오는 빨래들이며, 무엇보다 차려야 하는 끼니와 주전부리 준비에 설거지 거리들.
아이들이 자랐음에도 계속 중단되지 않는 집안일들이 나는 늘 의문스럽고 지겹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보다 훨씬 손이 덜 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집안일이 때론 체력적인 소모가 많은 건지? 내가 체력의 한계를 잘 느끼는 건지?(곧 만 나이를 셈한다던데 그럼 내년에도 아직 50이 안된다는 건데 몸은 늘 피곤하다니?)....암튼 이틀 전 나도 식구들 끼니 차리고 치우고 커피 마시고 앉아 책을 읽는데 집안일을 열거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너무나 숨막히게 다가와 절로 육체적 피로감에 이입되어 나는 책을 읽다 코를 골며 졸았던 거였을지도 모른다.(자기 변명일 수도!)
주인공은 동생이 남편의 외도로 인한 불화와 가정 폭력을 당한 것을 목격하고 어린 두 조카와 동생을 이끌고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고, 동생의 앞날을 위하여 자신이 아이들을 키워주겠다고 자처했으며 어쩌다 보니 집안일까지 도맡아서 하게 된 장녀다.
부모님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푼돈이라도 저축을 해놓으려면 일을 해야 해서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어른 식구들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던 주인공이 온통 전전긍긍하며 식구들의 끼니를 차리고, 두 조카를 돌보는 돌봄 노동을 3년동안 해냈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다지만 주인공은 시인이 되고 싶어한다. 시인이 되기 위해 동생이 뒷바라지 해준 돈으로 야간대학을 다니며 시 창작을 배우기도 했다. 공모전에 해년마다 투고를 하지만 당선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시인이 되기 위해 일 년동안 계속 시를 읽고, 시를 필사를 하고, 본인의 시를 짓는다.
돈벌이를 하는 게 아니니 옳은 직장이 없어 보이는 주인공에게 모든 집안일과 육아를 내맡긴채, 각자 본인들의 우울한 처지와 상황에 골몰해 있는 듯해 보인다. 정작 우울한 사람은 주인공의 상황이지만 가족이기에 언니의 희생이, 큰 딸의 노력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무심하게 못본 척 한다.
그나마 아버지의 한 마디가 가슴을 쿵 울리게 한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 엄마가 하란 대로 하지도 말고."(117쪽)
아버지의 위로와 걱정이 고맙기도 하지만 그뿐, 주저앉지 않고 다시 꽃을 피우려해도 힘 없고 무심한 아버지라 돌파구가 없다. 만약 엄마가 그리 생각해 주었다면 주인공은 벌떡 일어나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그것도 답이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라면 분명 큰 딸을 위해 집안일과 아이들의 돌봄을 자처했을 터, 주인공이 그것을 보고 차마 일어서진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오래 전부터 지켜봐 온 주인공의 애인이 "당신의 감정과 당신의 행복이 가족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본인의 정체성을 갖기를 계속 이야기해 준다.
그래서 어쩌면 가족이란 울타리가 유일한 내 편일 수도 있겠지만, 그 유일한 내 편이 가장 끔찍하게 속을 까맣게 애태우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인해 주인공은 집을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뜬금없는 선전포고로 인해 엄마는 주인공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어댔지만 두 딸에 대한 차별을 묵묵히 참고 견뎌 온 주인공이라 그 용기가 대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가족에게 희생을 했으면 마음의 부채는 갚은 셈이란 생각이 든다. 다행히 동생이 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마음이 남아 있었기에 언니는 주저앉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제 피지 못한 꽃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주인공 자신일테지만 미우나 고우나 엄마와 동생이 심적 울타리가 되어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늘 든든하게 응원을 해주는 애인의 마음도 크게 안심이 된다.
여느 소설과 같은 듯 다른 듯한 김이설 작가의 소설이지만 결말은 늘 다행스럽단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럴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야무지게 키워냈고, 시를 읽고, 소설을 쓰는 작가였던지라 정말 강인한 체력과 정신을 무장한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겨왔던 지난 시간이 작가에겐 정말 치열했고, 아득했고, 고독했었을 시간들이었을 것이라고 가늠해보니 가볍게 치부했던 나의 미안한 감정과 뒷편의 구병모 작가의 평과 더불어 여성이자 엄마 자리에 서 있는 소설가들에 대한 숭고한 마음이 든다.
여성이자 엄마인 작가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이 한없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