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에 대하여
이예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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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도서제공

🔖각자의 어둠을 지나 찬란하게 빛나는
여자들의 용기와 믿음에 대해 말하다

#여자가사랑한여자들
#이예지
#이예지인터뷰집
#위즈덤하우스

작가 정서경, 뮤지션 김윤아, 배우 전도연, 배구선수 김연경, 영화감독 이경미, 배우 심은경, 뮤지션 전소연, 작가 김은희, 미술감독 류성희, 소설가 정보라, 댄서 모니카, 뮤지션 씨엘, 아나운서 강지영, 희극인 김민경, 소설가 최은영까지, 15명의 여자들을 만났다.

세상에, 이 라인업이라니 엄청난 여자들이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여자들과 만나 인터뷰한 이예지 에디터는 여성을 위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여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었다. 그럴수록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부제가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에 대하여」다. 그만큼 여성이 가는 길에는 두려움과 편견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일테다. 남자작가, 남자감독, 남자프론트맨, 남자희극인, 남자배우라고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류작가, 여감독, 여배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부른다. 은근슬쩍 주류에서 분리시키는 모양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만 그만한 인지도와 자격을 부여받는 느낌이다.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칸 영화제의 전도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김은희, 은퇴할 때까지 세계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김연경, 김연아 등등.

정서경 작가는(특히 문화계) 이게 변화된 세상의 시작이라고, 이런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싫으면 직접 쓰던가! 라고도🤭
(남자작가 찾기 진짜 어려울 지경)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에겐 롤모델, 본보기가 되어줄만한 더 많은 여성들을 원한다. 그래서 한계와 편견을 딛고 나아가는 멋진 여성이 수많은 남성들 사이에 있는 홍일점이 아니라 다수가 되는 미래로 가고 있다고, 그게 그리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아 씩씩하게 함께 나아갈 수 있으리라.

인터뷰 내내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당당히 나아가는 멋진 여자들을 보며 뭉클하면서 벅차오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마지막이 최은영이여서 더욱 좋았다. (밑줄이 많아서 필사를 다 하지 못했다)

멋있으면 다 언니라고 누가 그랬던가.
언니들 사랑해요❣️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해내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이 책을 적극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나면 당신도 사랑에 빠질 거라고 장담한다.
(일단 제얘기입니다😍)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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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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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시인의산문집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영혼의 반짝임을 발견하는 시인,

진은영의 신작 산문집


#나는세계와맞지않지만

#진은영

#마음산책


“위대한 책들의 타격 아래서 우리는 번번이 죽고

또 번번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죽고 싶었던 숱한 순간에 시인을 살린 문장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고통의 순간도 회복의 과정도 전부 잊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 살아 있다고 말한다.


내가 특히 어려워하는 책이 고전인데 알고본 이 책, 진은영 시인을 살린 책들에 대한 책이었다. 시인이 사랑했던, 시인의 숱한 밤을 함께했던, 죽고 싶었던 순간을 살려냈던 작가들. 프란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알베르 카뮈, 실비아 플라스, 한나 아렌트…… 그들의 이름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에 나같은 고전바보에게도 친숙한 이름들이다. 


그러나 어쩜 이래? 시인의 말한 작품들 중에 읽은 작품 하나도 없다! 앞으로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일지 단언할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얼마 전에 읽었던 청춘의 독서가 생각하네...?)


사는 동안 삶이 행복이라 생각하며 살지 못했다. 그래서 시인이 들려주는 첫 번째 글, 서문에서부터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말았다. 물론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라는 제목에서 이미 예상한 결말이었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아무리 애써도 이 절망과 고통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들을 만나며, 그들의 문장을 읽고 살피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닐지. 


전에 만났던 백은선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무해한 시가 아니라 행복만으로 추구하는 글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건져올리듯이. 친절하게 다정하게 괜찮다, 행복해질 것이라고 아첨하지 않고 너에게 고통이 올지라도, 그 고통을 다 겪더라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둔다. 쉽게 위로하지 않지만 우리는 결국 위로받고 만다.


좋은 작가는 아첨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처럼 우리에게 진실의 차가운 냉기를 깊이 들이마시라고 무심한 얼굴로 짧게 말한다. 카프카, 울프, 카뮈, 베유, 톨스토이, 플라스, 니체, 아렌트…… (…) 이들은, 내 책을 읽는다면 넌 아침에 슬펐어도 저녁 무렵엔 꼭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_ 책머리에


위대한 책을 읽는다고 혁명을 일으키거나 인류를 구원하지는 못했지만, 다만 살아갈 수 있었다는 진은영 시인. 그리하여 기어코 살아가게 하는 문장을 만날 것이다. 인류는 구원하지 못해도 나 자신은 구원할 수 있으므로.





P. 22 사실 삶은 기나긴 소송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성별, 인종, 계급 등의 사회문화적 규정들 속에 던져진다. 사회는 그 규정들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며 늘 우리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려고 대기 중이다. 규정 하나를 잘 지켜도 다른 규정들로 인한 소송들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누구나 사는 동안 사회적 ‘정상상태’에 있을 것을 명하는 법 앞에서 계속 무죄를 입증하거나 유죄를 인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완전한 무죄방면은 불가능하다.


P. 34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소중하지만 자신이 짜 넣을 인생의 무늬들이 모두 관계로만 환원된다고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올랜도는 고독을 사랑하는 실존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P. 67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은 한없이 어둡다. 그런 세상에서 사랑은 벼락처럼 아주 잠시 동안 번쩍이며 어둠을 밝힌다. 장미꽃처럼 붉고 짧은 빛 속에서 바흐만은 꽃들을 몽환적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피어난 꽃들 아래 환하게 불 밝혀진 역사의 과오라는 가시들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P. 117 어떤 시인들은 시 속에 죽어가는 이의 가쁜 숨소리를 담아낸다. 읽은 이의 가슴을 찢는, 고귀한 시들이다. 그러나 백석의 시에선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큰 비명이나 고통스러운 신음은 들리지 않는다. 다만 그는 죽어가는 사람, 피로와 고통과 절망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사람 곁에서 속삭이며 중얼거리듯 쓴다. 그 중얼거림에 삶의 깊은 성찰이나 낙원의 약속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P. 156 슬픔에 빠진 아이는 늘 구석에 가서 웅크린다. 겁에 질린 동물들이 찾는 곳도 구석이다. 세상에서 버려진 기분이 들 때 우리는 구석으로 숨는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구석이야말로 안전에 대한 몽상을 충족시켜주는 진정한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편안하게 거주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상처받는 순간에 숨을 수 있고 비밀의 은신처가 될 수 있어야 하니까. 어쩌면 집은 “세계 안의 우리들의 구석”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P. 175~176 사랑은 늘 이런 식이다. 시대의 어둠, 운명적 불운, 제삼자의 모략, 서로에 대한 의심, 착각과 실수 등 배송 과정에 끼어든 각종 장애로 내가 보낸 사랑의 정량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 당신의 연인이 홀로 어떤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는지 살피라는 듯 소설은 거듭되는 배송 사고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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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스미는 사이 사각사각 (시절)
김종완 외 지음 / 시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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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단편소설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네 편의 가을 소설


#빛이스미는사이

#사각사각

#계절소설

#시절출판사


사각사각 시리즈는 3년전 전주북페어, 책쾌에서 처음 만났다. 시절출판사 부스에서 봄 소설<송이 송이 따다 드리리>를 구매하고 얼마 후에 가을을, 그러다 겨울을 구매했던 것 같다. 바람결에 가을이 묻어나는 요즘, 가을소설을 읽어본다.


모든 게 선명하고 반짝이며 빛나던 여름을 지나 가을이 훌쩍 다가왔다. 무더웠던 여름빛 아래에서 산책하던 시간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하늘을 마주하며 걷는 시간이 참 좋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져오는 건 가을이라 그런거라고. 그리움의 계절, 가을이다.


#김현

소 설 | 우리가 기계와 처음 섹스한 것은

에세이 | 가을을 위한 소네트


제목이 강렬한 이 단편! 

미래에는 기계와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 성별과 인종, 환경 모든 배경이 사라지려나. 그럼에도 역시 인간의 마음은 딱딱해지지 않을 것이고 변함없이 사랑을 갈구할 것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인해 기뻐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어려워하겠지.


P. 19 동원은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자신 안의 결락이 오랜 연애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한땐 찬란했고 한땐 어두웠으며 결국 어느 한때의 추억 때문에 이어가고 있는 연애가 이미 끊어진 선이었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서로의 유령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하자 다시 울음이 터졌다.

P.22 우리가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타인을 내 안으로 들이는 법이리라.


#김종완

소 설 | 맑은 밤

에세이 | 달리기


첫문장이 잔잔하니 좋았다. 

“맑은 밤이다. 까만 하늘에 구름도 없이, 덩그러니 달만 떠 있다. 쌀쌀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왔다.” (37)

가을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 단편을 읽고 나니 달리기에도 좋은 계절인 것 같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몸을 움직여야만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달리는 일, 걷는 일, 대청소와 같은 일. 지나간 기억들을 뒤로 흘려보내며.


P. 49~50 “그래서 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네?”

“달리면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래서.”

“맞아. 달리면……. 저도 몸 생각해서 달리는 것보다는 마음이 시끄러워서 달리는 것 같아요.”

소윤이 말했다.

“마음이 시끄러워서.”

“그냥 가끔씩 그래요. 자책하는 말들.”



#이종산

소 설 | 가을 소풍

에세이 | 가을 편지


소풍하면 가을이지. 가을은 쓸쓸하면서도 평온해지는 요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조용히 혼자서 산책하는 시간. 계절이 흐르는 것이 아쉬운 순간이 가을이니까.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가을을 더 깊숙이 들여다봐야겠다.


P. 75 참 좋구나.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 같은 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바깥세상과 숲이 아예 다른 세계처럼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숲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누구였는지, 숲 바깥세상에서 내가 무엇이었는지 아득해질 정도였다.


P.84 가을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사람이 계절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계절이 강처럼 사람들을 풍덩 빠트려 놓고 흘러간다. 가을이 또 한 바퀴 흐르고 있다. 


#송재은

소 설 | 우연의 용기

에세이 | 우연을 이끌기


육아휴직으로 권고사직 당한 우연. 우연은 부당하게 해고되었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며 느낄 수 있는 기쁨 또한 컸다.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또다른 성취가 필요했던 우연은 블로그를 시작하며 육아 블로그에서 최고등급 배지를 받고 많은 협찬과 체험단 제안을 받았다. 그러면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자부심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하자 새롭게 일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만난 현희는 아이없는 기혼자였다. 현희와 미묘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이 발생하는데 인간이 가진 결핍이나 작은 질투였으리라고 작가는 말한다. 임신, 출산, 육아, 육아휴직, 기혼자인 여성의 고민과 현실을 잘 그려냈다. 가을이라고 느낄만한 부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뒷에 실린 에세이를 읽어보니 소설 속 비 내리는 시기가 가을장마라고 한다. 


P. 107 둘째가 생겼다는 걸 알고 나서 우연은 얼마간은 안도했고, 얼마간은 막막했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 이 상태에 더 머물 이유를 찾고 싶었는데,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그 길을 막아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원은 당장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걱정 말라곤 했지만, 우연은 아이를 키우는 일 말고, 자신만의 뭔가를 계속 키워나가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다. 다른 성취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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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지도의 뒷면에서
아이자키 유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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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장편소설



 

“앞으로 나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제36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화제의 수상작!

 

#올바른지도의뒷면에서

#아이자키유 장편소설

#김진환 옮김

#하빌리스

#니들북

 

“오늘로부터 나는 얼마나 오래 도망칠 수 있을까?”

 

강렬한 핑크색 띠지도 눈에 띄는데 문장도 궁금증을 불러온다. 주인공은 왜 도망치는 걸까?

 

고등학생 코이치로는 가난과 무관심 속에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간다. 술과 도박에 빠져 모든 것을 놓아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향한 억눌린 분노는 어느 날 폭발하고, 코이치로는 쓰러진 아버지가 눈에 파묻혀 죽기를 바라며 방치한다. 그리고 기혹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길로 도망쳐버린다. #줄거리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된 코이치로. 코이치로의 수중에 가진 돈은 2만엔도 채 되지 않는다. 미성년자인데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코이치로는 그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대단히 거창한 꿈도 아니었는데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코이치로는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다. 고철 수거, 일용직, 노점상 등 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렇게 살아가는 코이치로의 삶은 결국 어떻게 될까? 하루하루 어디에 의지하거나 기댈 수도 없고 외롭게 살아가는 코이치로지만 그의 곁에도 사람을 만나 작은 온기를 얻게 된다. 그들 역시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었다. 코이치로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가도 이렇게도 성실하고 끈질기게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코이치로의 모습이 기특해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과연, 코이치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성장소설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든 걸 읽어버리고 궂은 역경과 고난을 겪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는 소년의 모습이 뭉클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둑어둑하던 길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길거리를 떠돌게 될 줄 알았다면……. 그런 후회가 잠깐 스치긴 했지만, 선을 넘어버린 아버지를 용서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지갑 안에 든 잔금을 계산할 때마다 비참한 마음이 들었고, 남은 인생에 비해 너무 큰 죄를 범한 건 아닌가 하는 초조함이 점점 더해졌다. 이것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 P41

"네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야. 사정이야 있겠지. 하지만 자진해서 노숙자가 되려는 건 좀 아니잖아. 우릴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고. 우리는 노숙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야. 미성년자라고 했지? 미안하지만, 앞으로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어린 네가 우리 같은 인간한테 의지하려 드는 것 자체가 불쾌한 거야. 여기서 사는 녀석들은 다들 착해. 어제는 모두 친절한 마음으로 너를 재워주자고 뜻을 모았던 거고.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널 돌봐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 P70

"처음엔 솔직히 음습하고 가혹한 밑바닥 인생에 떨어진 줄 알았는데 코이치 군이 그렇게 사는 걸 보니까, 육체노동이 힘들다는 것 빼고는 여기 생활도 제법 귀중한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기했어."

몇 마리의 동료가 함께 움직이다가 문득 한 마리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 이변을 느낀 다른 개가 돌아보니, 멈춰선 개는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A군은 멈춰선 개의 표정을 짓고 있다. 어둑어둑한 영화관, 희미한 빛 아래 비친 A군의 목소리에서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그래서 비관하지 않을 수 있었어. 적어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은 아닌 것 같았거든."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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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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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문장이다


계엄과 탄핵, 슬픔과 분노, 다정함과 고마움

따뜻한 빛처럼 위로가 되는 황정은의 작고 단단한 기록들


#작은일기

#황정은

#창비


황정은의 문장을 소설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황정은에게 소설쓰기를 멈추게 했다. 2024년 12월 4일, 전국민에게 또다시 잊지 못한 하루를 만들어냈다. 권력에 미친 한 인간의 선택,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하면서 두려움에 떨게 했는 그 결정의 날을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다.

<작은 일기>는 소설가 황정은이 현직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에 대해 써내려간 글이다. 12월 3일 이후로 매일의 삶을 기록하며 광장에 나가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집안에서, 거리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기록했다. 함께 분노했고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 피로감에도 광장으로 나갔다. 감히,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던 시간들. 우리가 모두 한마음이지 않다는 사실이 처참하면서도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지쳐버리기도 했다. 어떻게 법원에 쳐들어갈 수 있는지, 탄핵을 반대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폭설에도 밤새 자리를 지키는 키세스단이나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놀랐고 감동했으며 고마웠다. 극단적이면서 폭력적인 극우세력의 모습 앞에서 다른 의미로 놀라웠고 극우세력과 함께하는 언론, 정치인, 사법기관의 행태에는 씁쓸함을 넘어 참담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참담함을 딛고 평온함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 무모하고 끔찍했던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다. 여전히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윤씨의 태도는 꼴도 보기 싫지만 분명 우리에게 정의로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에 동조했던 인간들의 이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P. 188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지귀연, 조희대

(더많은 인간들이 있겠지만)



P. 10 번역서 두권을 주문하는 김에 귤을 샀다. 지난달에 백두대간수목원을 방문하고 들은 이야기도 곧 원고로 정리해야 한다. 오늘은 원고지 다섯매를 썼는데 밤에 한번 더 보면서 다듬고 싶다.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

P. 13 국회의원이든 시민이든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절박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나도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을 간절히 바라며 서 있었지만, 윤석열과 그가 초래한 국가 상태를 묘사하려고 ‘정상‘과 ‘비정상‘을 반복해 말하는 몇몇 연설은 집중해 듣기가 어려웠다. 이사회의 정상성 기준으로 불편과 부당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도 여기 있는데 별 조심성 없이 그 말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선 자리가 따끔했고, 뒤쪽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불편함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일까. 2016년 광화문에서 한 생각을 2024년 국회 앞에서도했다.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꼈다.

P. 38-39 12월 3일,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고 새벽 네시 삼십분에 이를 때까지, 그리고 이후로 주말까지, 특수요원들을 동원한 국지전 위험이 있었다는 뉴스 보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국지전을 일으켜 계엄을 정당화하고 장기 집권으로.
2024년 12월 둘째 주, 지금으로선 이름도 붙이지 못할 이 기간의 불안과 울분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감히.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이 말만 입속에 줄곧 서 있다. 감히.

P. 43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P. 58 그 추운 밤을 그 자리에서 보낸 사람들도 놀랍고, 그들에게 난방 버스며 음식이며, 바람 넘는 고개에서 버티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즉시 보낸 사람들도 놀랍다. 그건 나라에서 받은 것이 없어도 위기가 닥치면 들불같이 일어난다는 어느 민족의 성격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는 없는 마음들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는 마음들.

P. 64-65 사람들의 악함을 마음에 들여 되짚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게도 그 싹이 무성하게 있으니까. 그런 것이 자신에겐 없을 거라고 믿는 얼굴 앞에 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내게는 그런 입장 역시 악함의 기반이 되는 약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의 약함에 내가 얼마나 분노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약함은 어느 정도 그의 탓일까. 그리고 권력 가진 이들의 혼돈 그 자체인 악함도 약함에서 그 탓을 찾을 수 있을까.

P. 85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남아 밤샘 집회를 하고 있다.
눈 내린다.
파주에도 서울에도.

P. 102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이삼십대 남성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같은 세대 여성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려고 추운 날 거리를 돌아다니고 서로를 돌보며 밤을 새우고는 할 때, 저들은 비틀린 세계인식과 자아 인식으로 국가기관인 사법부에서 난동을 부렸다. 대가를 치를 것이다. 동시에 이 광경을 봐야 하는 사회구성원들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쳐온 걸까. 1월 19일 새벽, 우리 사회가 그간 육성해온 일부가 크게 자라나 이 괴상망측한 열매를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이것도 과정이지, 결과도 아닐 것이다. - P102

P.102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립이 징그럽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으로 이 내란을 보면 윤석열이 그들의 일면이기도 할 테니까. - P102

P. 112 2월 27일 목요일 오후 여덟시 오분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탄핵 재판의 최후 변론이 있었다. 국회 측 대리인인 장순욱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내게무척 아름다웠다. "오염"이라는 말로 내 상처의 원인을 부드럽게 짚어주는 것 같았다. 말헌법의 오염. 바로 그것을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정확한 말이 건네는 위안을 받았다. - P112

"존경하는 재판관님, 피청구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언동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말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하루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 첫 단추가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과 함께 이 사건 탄핵 결정문에서피청구인이 오염시킨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이 제자리를찾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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