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은 마음에게
김현경.송재은 엮음 / 웜그레이앤블루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자 남은 마음에게, 

김현경 송재은 엮음





이별과 함께 했던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스무명의 작가들이 전하는 이별의 순간들을 담았다. 이별은 헤어지는 그 순간만은 아니다. 헤어지기 전과 헤어지는 순간과 헤어지고 난 후의 마음들이 먼지처럼 부유하고 그 시간들을 감내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다 만난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그 순간순간을 찬찬히 조용히 보았다. 어쩐지 읽었다기보다 본 것만 같다. 20편의 다양한 이별의 순간들. 그 순간이 슬프기도, 아프기도, 토닥여주기도 하면서. 하루종일 영화관에 앉아 단편영화들을 본 기분이 들었다. 감정은 전염되고 물들기 마련이라 행복이나 기쁜 기억보다 이별이라는 것이 마음을 자꾸만 멍들게 했다. 이별은 헤어짐이 전부가 아니라 만남도, 사랑도, 시간이 전부 들어있는 관계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이별에는 관계가 부서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를 잃어버리고 자식의 성장으로 멀어지고 유년시절의 나와 헤어지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반려동물을 보낸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반려동물이든 나자신이든 모든 건 헤어지는 게 이별이다. '이별 앞에서 어떤 모습일까. 애써 감정을 죽인 한낮과 달리 새벽엔 있는 힘껏 숨겼던 마음을 드러내도 되는(p.65)' 것처럼 엉엉 울며 이별을 마주하는 시간도 있다. '늙어간다는 건 가까운 죽음에 익숙해지는 일(p.80)'이건지, 생경한 죽음앞에 멍해지기도 한다.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 좋아했던 사람에게서 나와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할 때, 그 차이점이 내가 상대방을 좋아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p.178)'했다가도 그냥 이렇게 됐네, 하고 무덤덤하게 넘어가지지 않는 게 이별이기도 하다. '사랑받지 못할까봐, 결국 이별로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시시한 이유(p.127)'로 미리 끝내버리는 시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잃게 될지라도 기억하고 껴안고 싶어하는 마음이 용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p.127)'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시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이도형 작가의 #당신이떠난세계에한권의시집처럼남아 가 기억에 남는다. 허수경이 시인은 이미 세상에 없고 감사하는 마음을 보낼 길이 없다. 그래서 쓴다는 작가의 글이 마음을 울렸다. 시로 인해 위로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슬퍼하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여전히 나는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마음이 힘들 때면 시를 읽곤 한다. 나역시 시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한다.


우리는 고여 있는 시절과 흘러가는 시간이 뒤섞인 삶을 살아간다. 엉켜버린 채라도 어쩌겠는가. 영원의 안식처는 없어도 어둠 속에서 의지할 작은 빛이 있으니 다행인거지. p.165

#종점이별의로터리 #오종길


오종길 작가의 말처럼 어둠 속에서 의지할 작은 빛을 등대삼아 느리지만 한걸음씩 내딛는거라고 믿는다. 그 빛이 누군가에겐 사람일수도 책일수도 음악일수도 영화일수도 있겠다.


혼자남은 마음에게 말한다. 그동안 함께 했던 이별의 시간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은 늘 만남뿐만 아니라 이별이 함께하므로. 이별에 아파하고 슬퍼하는 어제의 나와 헤어지고 내일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서둘러 떠나보내지 말고 서서히 이별하기로 한다. 어쩌면 그 끝을 보고싶지 않은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남은 마음이, 허전한 그 마음이 오래오래 가슴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으로 따뜻하게 감싸져 있던 마음이 혼자가 되어버리면, 전에는 혼자서도 잘 버텨냈던 차가움이 훨씬 시리게 느껴(p.202)' 지니까 말이다.


알고보면 이별은 우리의 일상. 우리는 무수한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며 산다. 타인과, 나와, 어제와 그리고 오늘과 자꾸 헤어진다. 그렇다면 나는 다만 어떻게 하면 잘 이별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잘 남겨지고, 잘 보내는 법. 잘 떠나고 잘 남겨두는 법. 그런 것들을 고민하다보면 나는 애초에 그 무엇도 가질 수 없다는 진실만이 또렷해진다. 그 진실을 기억해야만 잘 이별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나는 오늘도 이별하러 간다. p.38

#서서히이별하는일 #박상희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웜그레이앤블루 크루 1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끼숲, 천선란

천선란 작가를 만난 첫 책. 이끼숲을 읽었다.

이끼숲은 세 편의 연작소설로 더 이상 지상에서 살 수 없게 된 인류가 지하에 세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여섯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 <바다눈>,<우주늪>,<이끼숲> 이렇게 세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첫사랑임을 깨닫자마자 그 상대를 잃고 마는 소년의 아픈 성장을 보여주는 「바다눈」
지하도시의 연구소 경비원으로 일하는 마르코. 어느날 연구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홀린 듯 따라가게 되는데, 그렇게 만나게 된 은희. 마르코와 은희는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며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지하도시에서 그들의 삶은 어둡기만 하다. 한정적인 공간인 지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래사회에서도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이 존재하고 오히려 더 부당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일을 하지만 그만한 대가는 돌아오지 않는다. 연구소 직원들의 파업 속에 신입인 마르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괴롭기만 하다. 결국 파업이 끝나고 난 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커커스는 패배한 게 아니라, 밟혔다(p.89)고 말하는 마르코의 말처럼 회사와 노동자 사이에서의 결말은 이렇게 씁쓸하다.
첫사랑의 설렘과 기쁨도 잠시 마지막 마르코의 울음소리가 마음아프게 다가왔다. 도망보다는 모험을, 추방보다는 발견을, 타락한 세계보다는 미지의 세계를 바라던 은희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지하도시는, 이 세계는 조급하고, 초라고, 두려웠다. 지하에 갇혀버린 미래가 암울하다. 어디로 가든 벽이 있고 지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유를 잃어버린 세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퍼할 틈도 주지 않는 지하세계에서 슬퍼하고 바라고 기대하면서 닫힌 세계를 열고 나아가고자 한다. 그 아이들이.

천선란 작가의 북토크에서 독자가 왜 주인공은 항상 청소년인지 물었다. 어른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 라며 웃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미래를 구한다면 역시 청소년일 것이라고, 무언가 변하고 나아가고 바뀌기를 바라고 저항하고 싸우는 건 역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라고. 자신이 청소년에게 바라는 모습이기도 하다는 작가님의 대답이 인상깊었다. 그 후에 이 책을 읽으며 마르코와 친구들을 보며 나 역시 그렇게 믿는다.

˝너 그 사람의 목소리에 흠뻑 빠졌구나! 그 목소리를 사랑하는거야. 상대방이 가진 만 가지 특징 중에서 단 하나의 특징이 마음에 쏙 들어오면 사랑이 시작되는 것 같아.˝ p.40

˝더 할 말 남았구나?˝
˝보고 싶어서.˝
말은 본능처럼 툭 던져졌고 주워담을 수 없었다. 마르코가 손쓸 수 없이 데구루루 굴러간 말을 은희가 잡았다.
˝그래? 보고 싶으면 봐야지!˝ p.62
닫힌 세계라서 이길 수 없었다는 커커스의 말을 달리하자면, 이곳이 지상이었다면 가능했을 거란 말이었을까. 이곳에 하늘이 없고, 건너갈 바다가 없고, 숨을 동굴이 없어서 백기를 들어야 했다는 말이었을까. 저 위는, 이것이 아니면 저것을 하면 되는 세상이었나. 아닌 것 같다 싶으면 옮겨가고, 위험하다 싶으면 멈추고, 잘못됐다 싶으면 돌아갈 수 있는. 역시나 살아보지 못해 알 수 없었다. p.88




2. 누구보다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열렬히 사랑하는 쌍둥이 자매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이루어진 「우주늪」

지하도시에서는 임신과 출산도 계획하게 진행된다. 지하라는 공간은 한정적이고 인구과밀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정해진 출산계획에서 벗어난 아이들도 생겨나는 것이다. 등록되지 않은 아이는 평생 밖을 나갈 수 없다. 의조는 쌍둥이로 태어나 등록할 수 없었던 아이였다. 부모는 태어나자마자 죽이려고 했으나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좁은 방안에 갇혀 살 수 밖에 없는 의조는 왜 자신이 아니라 의주여야만 했는지 분노하고 미워하고 부러워하며 살아간다. 증오로 가득찬 분노어린 의조의 이야기에, 환풍구를 기어다니며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의조의 처지에 마음이 참 쓰렸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나도 살아있다고, 그러나 갇혀살 수 밖에 없는 의조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 의조에게도 자유가 생길까? 고마워요씨를 만났으면 좋겠다.

문장을 쓸 때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게 돼서 자꾸 거친 숨을 쉬게 되거든. 내 생각이 글자로 옮겨지다니, 엄청난 일이야. 이건 어떤 세상을 옮기는 일이라고. 그래서 매번 문장을 쓸 때마다 건축하는 마음으로 해. 나는 건축도 뭔지 잘 모르지만, 이 지하도시와 같은 거 아니겠어? 무너지지 않게, 헷갈리지 않게, 망가지지 않게. p.107

나는 언제나 말을 과격하게 해. 뾰족하게 하고, 날카롭게 하지. 누구든 찔리고 긁히라고. 그러지 않으면 종종 까먹더라고. 내가 살아있다는 걸. 엄마가 상처받을까봐 걱정되니? 내 몫까지 네가 실컷 해. 나는 걱정 안돼. 나한테 그런 것까지 강요하는 건 염치가 없지. p.110

나는 이제 내가 할 수 이는 걸 계속해나갈거야. 나는 고마워요 씨를 만날 거야. 엉금엉금 기어서. p.133

3. 상실의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 「이끼숲」

유오가 죽었다. 지하도시는 그대로 살아갈 수 없다. 계속 넓혀나가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필요하고 그 일엔 위험이 따른다. 유오는 늘 지상에 가고싶어했다. 그러나 붕괴사고로 죽고 말았다. 유오를 사랑했던 소마는 일도 나가지 않고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결국 친구들과 유오의 클론을 훔쳐 지하도시 밖으로 탈출하고자 한다. 유오랑 똑같이 생겼지만 유오는 아닌 복제인간. 마르코의 계획을 들었을 때 소마가 물었다.
˝그럼 그거 다 무슨 소용이지?˝
유오처럼 말을 하지도 않고, 유오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면(다시 말하지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걸 유올라고 할 수 있나?
마르코가 입을 연다.
˝그냥 우리의 미련인거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p.163
그런 클론이라도 데리고 나가고자 하는 친구들. 갑작스런 부재나 상실 앞에서 미련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놓지 못하는 건 당연한게 아닌가 싶다. 슬퍼하는 것이 유별나지 않은 세상. 마음껏 슬퍼하고 언제까지 슬퍼할거냐고 타박하지 않는 세상. 그게 우리의 현실에서도 바라는 일이 아닌지.
돔에서 만난 위원장의 말이 지금의 세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다 유별나고 억울하고 슬프면 도대체 일은 누가 해? 언제 일 하느냐고!˝(p.231)
유오의 죽음은 그저 노동자 한 명 사망, 한 줄로 남았다. 별것 아닌 한 줄. 그 애를 사랑했던 사람만이 그 한 줄을 뜯어 먹고 살 것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선과 선 사이에 촘촘히 박힌 삶을 그리워하면서(p.230) 그 죽음을 슬퍼하는 것도 애도하는 것도 유별나다고 말하는 세상이 과연 제대로 된 세상인지 묻고 싶다. 더 이상 슬픔이 유별나지 않은 세상이길 바라게 된다. 슬픈 일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슬프다고 핑계대며 남에게 피해주는 건 딱 질색이라던(p.232) 위원장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기를.

사실 치유키의 에피소드가 궁금한데,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다. 작가님은 처음에 <이끼숲>만으로 경단편소설을 준비해었다고 한다. 지난 해 여러 사건들을 통해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쓰게 되었고 세 편의 연작소설이 되었다. 다 읽고나니 소마와 유오의 이야기만으로는 아쉬웠을 것 같다. 마르코와 은희, 톨가, 의조와 의주, 그리고 치유키.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아이들의 미래를 꿈꾸게 된다. 슬픔이 유별나도 되는 세계를. 슬픔을 마주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차단당하지 않는 세계를. 닫힌 세계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세계를.
모두가 그 순간 최선을 다해 즐기고, 모든 걸 누리고, 마음껏 행복했으면 한다. 누군강의 행복과 즐거움에 그 어떤 위험도 없길 바란다. 이런 말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구나 다 바라는 일 아니던가?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이 행성에 우리가 머무는 동안, 부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반드시
#작가의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상문 테이크아웃 10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상문, 최진영

금도는 동생 신우를 잃었다. 신우는 자살했다. 금도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내내 괴로워했고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자살은 주변인에게 죄책감과 원망을 함께 남긴다. 그런 죽음이 또 있을까. p.10

신우의 자살은 누구에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이유를 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은 없었다. 금도와 반지는 신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생각한다. 왜 신우가 자살했는지. 금도를 괴롭게 하는 것은 신우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도 위로를 하고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다. 금도는 신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자신이 슬퍼하고 분노하는 게 우습고 가소로웠다. 그렇게 자책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도 죽어버린 신우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죽지말라고 애원하기도 하면서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일까. 태어났으니 살고 죽을 때가 되니 죽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시력이 다르듯 존재의 어둡고 습한 부분을 유독 잘 보는 사람이 있을(p.17) 거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인간의 생각이 모두 똑같다면 세상은 진작에 망했을테니까. 신우의 죽음이후에야 신우는 금도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듣지 않은 것까지 알았을 것라고 깨닫게 된다. 어둡고 습한 부분을, 작은 얼룩을, 작은 소리를, 그래서 더 괴로울 수밖에 없는 신우에 대해 생각한다.

자살이 어때서. 자기를 죽이는 게 뭐 어때서. 다들 조금씩은 자기를 죽이면서 살지 않나? 자기 인격과 자존심과 진심을 파괴하고 때로는 없는 사람처럼, 죽은 사람처럼, 그렇지 않나? 그렇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끔찍할 수 있다. 그럼 죽을 수 있지. 죽는 게 뭐 이상해. 자살이라고 달라?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자기를 위해 죽을 수도 있지.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이 죽음뿐인 사람도 있지.
괴로운 마음을 누르려고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기만이라는 것을 잘 알고, 그런 기만으로 나를 보호하려는 내가 끔찍하다. 나는 영영 최신우의 자살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p.48

죽고 싶다와 살고 싶지 않다.
죽고 싶다기보다 살 이유를 찾지 못했던 건 아닌가, 라고 반지는 생각한다. 이유가 필요하냐는 사람과 이유가 중요한 사람이 있다. 겁이 많아서, 누구도 죽일 수 없어서 결국 자기를 죽이는 사람과 세상을 원망하며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이 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과 같이 비를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

같이 비를 맞아주더라고. 혼자 맞는 것보다는 덜 쪽팔리잖아, 그러면서.
비를? 왜? 우산이 없었어?
.....
말을 제대로 해봐.
됐어. 혼자만 알고 싶은 것도 있는 거야.
그럼 결국 아무도 모르는 게 되잖아.
말로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게 있다고. 내겐 빛나는데 남들한텐 아무것도 아닌 그런 거. p.65

누군가 슬플 때 울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도 비슷한 순간이겠지. 내겐 빛나는 그 순간.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그 순간순간이 모여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살고 싶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죽고 싶다기보다 살고 싶지 않은. 그건 누군가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내 옆을 지켜줄 사람. 다들 행복하려고 안달난 게 끔찍했던 신우에게도 그런 순간이 필요했을 거라고. 인간이 징그럽고 자신에게 엄격했던 신우는 어쩌면 세상을 증오하기보다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삶과 죽음의 경계는 한끗차이인 것 같다. 끔찍하고 징그러운, 그래서 미래가 뻔히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살아가라고 일으켜세우고 싶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더라도. 일어나라고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주저앉아 있기도 하고 같이 비를 맞기도 하면서.

나이 들면 괜찮아질까 덜 넘어질까 기대했는데, 나이 들수록 더 깊이 넘어지고 일어날 때마다 겸연쩍다. 삶과 죽음 말고 다른 것은 없는가 중얼거리면서 시스템 종료 대신 다시 시작을 누르는 순간들. 매일 생각한다. 매우 사랑하면서도 겁내는 것이다. 이 삶을.
_최진영 인터뷰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 깊은 애정과 투명한 미움이 복잡하게 얽힐 때
한 시절 내가 건네받은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될 때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7편의 긴 편지

최은영 작가를 좋아한다. <쇼코의 미소>부터 지금까지 울지 않은 책이 없다. 엉엉 울기보다 읽다보면 눈물이 고이곤 하는 잔잔하면서 단단한 문체가 좋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늘 가볍지 않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녹여내고 있다. 여성 인권, 비정규직, 정치적 사건, 소수자가 우리 삶 속에 이렇게 있다고,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모른 체해도 이렇게나 만연해있다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과격한 표현이나 폭력과 잔인한 묘사가 없어도 모든 게 강렬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마음이 저리고 따끔하고 아프고, 결국 슬퍼지고 마는 것이다.

최은영 소설 속 인물은 대부분 여성이다. 인간의 삶 속 관계를 이렇게 섬세하게 잘 풀어내는 작가는 최은영이 독보적이다, 같은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일하는 여성, 엄마, 할머니, 이모 등 다양한 역할의 여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 안에 나의 모습이 없을 수는 없다. 관계는 한결같이 매끄럽게 이어질 수 없고 갈등과 상처를 반복하며 부서지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되돌아보기도 한다. 만남과 헤어짐이 이어지고 결국엔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그리고 지난 날의 당신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리뷰를 간단히 쓰기 어려워 단편별로 정리해봐야겠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비정규직 은행원으로 일하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희원. 희원은 영문과 전공수업에서 만난 ‘그녀’의 수업을 통해 자극을 받고 글쓰기와 공부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다. 시간이 흘러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된 후에 그 때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다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알려주는 빛을 보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더 가보고 싶게 하는 마음. 먼저 간 사람으로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빛이 되어주는 존재. 우리는 그런 존재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단편에 용산이 자주 등장하는데 용산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그 당시의 참사가 떠오르는 걸 보면 어떤 사건들은 그저 지나간 일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최은영은 이렇게 개인의 서사에 사회의 문제를 자연스레 녹여 우리가 잊고 지나가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작고 사소하다고 느끼면 안되는 문제들을 담담한 문체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몫>은 미메시스 테이크아웃 시리즈 이미 단행본이 나온 작품이다. 대학 편집부에서 만난 해진과 희영, 정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인권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당했던 그 당시의 사회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읽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글을 쓰고 싶다던 해진. 그저 쓰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내 몫은 했다고 부채감을 털어버리고 사라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는 희영. 글쓰기에 누구보다 재능이 있고 해진이 쓰고싶었던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쓰던 정윤. 결국 쓰는 사람이 된 건 해진이었다. 울면서 글을 쓰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마음이 붙을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던 해진이었다. 글쓰기는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이 해진의 마음을 빼앗았다.(p.75)
희영은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것은 편집부 안에서 주제로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가로막힌 권력이 벽이 존재했다. 기지촌 여성, 맞고 사는 아내, 성폭력에 노출된 여자.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들이지만 그당시에 더더욱 당연시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때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겠다.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묻곤 하니까.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잠근다. p.119

??다희와 주고받았던 이야기들 속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 서로를 비췄다. p.123

<일 년>

지수는 회사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었고 이제는 자연스레 잘 지내고 있다.(표면적으로는) 그 안에서 외롭게 지내던 지수에게 다희는 서서히 스며들었다. 최소한의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했던 말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 그녀가 나눈 대화의 전부(p.101)였던 지수는 다희를 만나면서 마음을 내보이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라는 공간과 정규직원과 계약직 인턴이라는 차이는 관계의 균열을 만들어낸다. 관계는 이어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마음들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누추한 마음이라도 서로를 마주할 때면 누추해지지 않는 사이. 서로를 비추는 빛. 당신과 나의 사이에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마음이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수의 일, 이현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마음은 호수와 같아. p.358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청소년들과 함께해와서인지 청소년 소설을 자주 접하고 읽어왔는데 마음을 두드리고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는 책들도 많았다. <푸른 사자 와니니>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아주 오랜전에 <우리들의 스캔들>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이현 작가님. 이 책은 친구가 호정이를 보며 내 생각이 났다고 해서 읽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작가님의 소설은 역시 좋았다.

호정이는 어린 시절 사업이 망한 부모와 떨어져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일일지 몰라도 호정의 기억 속엔 상처로 남았고 그 마음들은 얼어붙은 호수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다들 가족의 문제 앞에서 엄마, 아빠도 처음이라고, 사는 일이 팍팍했다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내느라 작은 마음을 뒤로 한 채 살아간다. 처음이 아닌 인생이 어디 있던가. 어리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기만 하고 외롭고 슬픈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정이는 외롭고 슬픈 마음들을 말보다 마음으로 먼저 알았던 아이였다. 자신의 마음이 왜 그런지도 모르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이였다. 그것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쓸쓸했다. 그리고 안전했다. 상처받을 일이 없으므로.

그런 호정이 자신과 비슷한 정의할 수 없는 그 마음,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 외로움을 가진 은기를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사랑하게 된다. 은기의 손이, 은기의 웃음이 따뜻하고 기뻤고 힘이 되었다.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치유하기도 했지만 상처 앞에서 무너지기도 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참 마음 아팠다. 호정이가 은기를 만나고 나래와 지후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누군가에겐 대단치도 않은 슬픔, 상처, 외로움일지라도 한 사람에겐 무엇보다 큰 고통이 되기도 한다. 기억은 제멋대로라서 기억하는 사람에 따라 왜곡이 일어나고 좋은 기억이 되기도 아픈 기억이 되기도 한다. 방황하고 혼란스러운 청소년기의 시절, 누구보다 예민했고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데 서툴렀던 어린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 때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좀 더 따뜻한 인간이 되었을까?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을까? 삶은 만약에라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상상해본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작가의 말이 참 좋았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흠뻑 슬퍼하고, 마음껏 기뻐하고, 힘껏 헤엄쳐 갈 수 있기를. 어느샌가 기슭에 닿아 있을테니.

우리는 슬픔에서 자라난다. 기쁨에서 자라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행복한 기억이 있어 우리는 슬픔에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 태양의 기억으로 달이 빛나는 것처럼. 그러므로 흠뻑 슬프기를, 마음껏 기쁘기를, 힘껏 헤엄쳐 가기를, 발이 닿지 않는 호수를 건너는 일은 언제나 두렵지만 믿건대, 어느 호수에나 기슭이 있다.
#작가의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