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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ㅣ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지금 독서 질문이 유행하던데 그 중 1번..책을 한 권만 읽나요? 아님 병렬독서를 즐기시나요?란 질문에서 이미 나는 부끄러움이 가득 차올라 독서 설문조사 릴레이 페이퍼에서 총총총 뒤꽁무니를 뺐다.
나야 뭐 이 책 집었다, 저 책 집었다.를 수없이 반복 중이며 북플에 ‘읽고 있어요.‘ 칸에 등록한 책도 수십 권이다.(때론 등록하지 않고 그냥 나 혼자서 읽고 있어요! 진행 중인 책도 수십 권.) 병렬 독서도 독서지만 읽다가 중간 멈춤 기간도 뒤죽박죽이어서 작년에 읽다 만 책을 갑자기 지금 펼쳐서 다시 읽기도 하니..이건 뭐 남편이 늘 내게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3무 여성(무질서, 무계획, 무개념을 가진 여성)이 되어 있기에 설문조사를 하면 할수록 슬픈 서사가 될 것 같아 일찌감치 포기했다.
암튼 오늘도 그렇게 병렬 독서 중이었던 책 중 한 권을 다 읽고 이 책을 언제부터 읽던 책이었나? 헤아려보니 헐...작년 겨울에 읽기 시작하여 계절이 두 번은 바뀌었단 걸 깨달았다.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릴 소재를 선택해야 하는데 ˝나야 뭐! 책을 그려야지 않겠어요!˝ 라며 큰 소리로 말은 못하고, ˝책표지를 그려보고 싶어요.˝ 작게 소곤거렸으며, 선생님이 채택해 주신 자료집 그림을 조심스럽게 밀어내어 고사하였다.
선생님께 책 표지 사진을 찍어 뒀던 사진 몇 장을 핸드폰 갤러리에서 꺼내 보여드렸더니 괜찮다고 그리 하라고 해주셨다.
사진은 총 네 장인데 그 중 한 장이 이 책이 모델이다.
작년 겨울 아들과 1박 2일 여행을 간 곳 테라스에서 백수린 작가의 이 책을 올려 놓고 찍다가 덜렁대느라 전날 비가 와서 물이 고인 곳에 책을 떨어뜨려 종이가 울어 나도 같이 울었던 그 시간의 사진 이것도 벌써 육개월 전이다.
그 육개월동안 나는 이 책을 완독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책표지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시던 동료 선생님께서 책 제목을 읽으시더니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나도 한 번 읽어본다면 행복한 마음이 들까?˝ 물으셨다.
나는 또 오지랖을 떤다고 작가가 베이커리 만드는 걸 좋아해서 소설을 읽다가 베이커리같은 음식이 나오면 관련해서 일상의 느낌을 잘 적어 놓은 책이라고 소개를 하면서 읽어 보신다면 분명 행복하실 꺼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작가님도 인성이 넘 좋은 사람이라고 마치 작가를 만나본 것처럼 설레발을 쳤던 순간들! 집으로 돌아와 그 분께 이 책을 선물해 드려야겠다고 다짐을 한 순간, 책 취향이 어떠신지? 전혀 모르는 사이란 걸 깨닫자 갑자기 조심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이 책을 읽어보자! 그 분의 갱년기 우울증을 날려버릴만큼 행복을 충전시킬 수 있는 책인지 검열하는 기분으로 재독하였다.
읽을 수록 재독이 아닌 기분이 드는 이 느낌은 뭐지?
아....계속 읽다 보니 백수린 작가의 다른 에세이집인 <다정한 매일매일>책과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 몹쓸 기억력!!!ㅜㅜ
(더군다나 그 책도 앞부분만 쬐끔 읽었더라!)
암튼 책을 정말 야무지게 읽었다.
책장이 물에 젖어 아랫부분이 울어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물에 젖어 휘어진 종이는 좀 더 특별한 질감의 소리를 낸다. 종이가 넘어가는 차라락! 그 특별한 소리처럼 여느 때보다 좀 더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오는 문장들이었다.
역시 소설가가 쓰는 에세이는 다르다.
좀 더 산뜻하기도, 좀 더 무게감이 있기도, 좀 더 내밀하기도,
좀 더 작가를 친근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의 책 제목의 문구를 발견한 대목에서 아, 그 분께 이 책을 선물하는 것은 안되겠구나! 깨달았다.
마침 키우던 반려견이 병이 들어 떠나보낸 슬픔을 가까스로 이겨내시고 계신 듯한데 이 책의 2부를 읽으신다면 무너지시겠단 생각이 들었다.
읽으시더라도 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반려견을 키워보진 못했지만 이웃집 친구가 여행을 갈 때 몇 번씩 반려견을 돌봐 준 경험이 있다. 나를 잘 따라서 난생처음 반려견과의 사랑과 애정을 느끼게 해 준 존재였었는데 그 강아지도 무지개 다리를 건넌지가 6년이 지났건만, 내 강아지였던 것마냥 아직도 눈에 아른아른하다 보니 작가가 봉봉이를 향한 애틋한 대목과 봉봉이를 잃고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대목은 읽으면서 절로 눈물이 흘렀다.
나도 이럴진대 그 분은 읽으시면서 마음이 어떠실지?
그래서 오늘 학원에 갔을 때, 선생님 이 책 안되시겠어요!
하며 책 내용을 조금 알려드렸더니...화들짝 놀라시며 안되겠네, 안되겠어! 하셨다. ㅋㅋㅋ (나는 그래도 읽어볼까? 하시길 원했었지만!)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의 그 느낌을 결국 나만 느끼고 말았다. 책을 읽으면서 넘 좋아서...나도 모르게 백수린 작가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으며 안드로메다의 세계로 빠졌다가 멈칫했다.
백..백마디의 말보다, 수..수려한 문장으로 빼곡한, 린..린...린?..린??????? 린에서 끼익....멈췄다는 것이다.
린이란 첫 글로 시작되는 문장을 만들어 완성하려면 백수린 작가의 또 다른 책들을 읽으면 절로 완성될 것이니 나는 아무 걱정 없다.
그저 든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