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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평점 :
그러면 우리가 '아름다움'이 제공하는 좋은 것(그것이 약속하는 자신감과 성, 건강한 개성에 대한 자부심)이 사실은 '아름다움'이 제공하는 가장 좋은 것도 여성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여성이 '아름다움'을 성과 분리할 때, 자신의 특성과 특색을 찬미할 때, 우리를 분리하지 않고 결합시키는 우리 몸의 즐거움에 접근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신화가 역사가 될 것이다.(449쪽)
책을 읽다 보면 매번 마지막 꼭지 부분에서 밑줄을 가장 많이 긋게 되고, 가장 많은 해답을 얻게 되는 것 같고, 가장 많은 생각과, 가장 많은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아름다움의 신화가 역사가 될 것이라는 문구는 어째 좀 찌르르하다.
이런 기분은 여성인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남성들도 이 책을 읽는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오전에 책을 읽었다며 자랑스럽게 걸어 놓으니, 이 책을 읽은 서재 친구분들과 농담 섞인 댓글을 주고 받다가, 남성들도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다 보니, 남성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과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면 내 옆에 있는 남편과 아들에게도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데, 도통 책이라곤 읽는 자들이 아니니...내가 또 입으로 열심히 책 설명을 해야만 한다. 입이 아프겠구나!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줄곹 친구 한 명과 엄마를 떠올렸다.
대학 친구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 중 각별하게 매일 붙어 다녔었던 베프가 한 명 있었다.
내 친구는 좀 독특하고 특별한 아이다. 사교성이 너무 좋아 언제든 장소 불문하고 모두 친해진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 같이 앉아 간다면, 바로 내 친구와 명함을 주고 받거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왜냐면 친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곧바로 "저기요~"하면서 말을 걸기 때문이다. 낯가림이 1도 없는 아이다.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아이인데 대학 원서를 넣던 그 날, 과 창구 앞에서 원서를 넣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저기요~"하고 내게 말을 걸어 오길래, 고개 돌려 눈을 맞춘 그 날부터 그냥 코가 끼어 졸업할 때까지 옆자리에 앉았고, 지금도 한 번씩 전화 오면 한없이 하소연을 들어 주고 받는 사이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번 내게 전화를 걸어 온다. 뭐하냐고 물어오면 "앉아 있어!"라고 답하고, 그 친구는 맨날 나더러 팔자 좋다고 자기도 집에 들어 앉아 놀고 싶다고 부럽다고 한다. 그럼 나는 버럭한다. "집에서 앉아서 논다니?? 바빠서 서서도 놀고 있다."라고 답하며, 또 왜? 말해 보라고 하면 주절주절~~ 그러다 보면 내 고민, 친구의 고민들을 늘어놓는다. 딱 우리 나이때 하고 있는 고민들을 늘어 놓으며 한숨도 쉬었다가, 늘 언제 얼굴 한 번 보자!로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면 어렸던 대학시절의 친구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지금 회사에서 커리어도 쌓고, 집안일도 병행하는 친구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내새끼처럼 대견하기도 하다.
친구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를 입학하였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에 입학하였다. 나는 국문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진학하지 못했었다. 집에서 너무 먼 학교에 딸아이를 위험하게 자취를 시킬 수 없다는 염려를 우선으로 내세우셨지만, 대학을 가려면 서울대 정도는 가야하고, 서울대가 아니더라도 집 근처 학교 중에선 부산대 국립대 정도는 가야지 보내줄 수 있다는 아빠의 말씀이 농담인 줄 알았더니, 수능 성적을 받아들고 대학 원서를 넣고, 결과가 나왔는데 아빠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래서 국립대 국문학과를 합격하지 못하여 결국, 취직을 잘 할 수 있는 과가 있는 전문대를 가라는 말에 실망한 나는 정말 될대로 되란 식으로 아무 과나 적고 전문대를 찾아 갔더니, 취직 90%의 과는 이 과가 아니고 건추과라고 하여 세 줄을 그어 적어 갔던 과를 그 자리에서 변경하여, 창구에 급하게 뛰어 갔다. 그곳에는 덩치 큰 친구가 어슬렁 어슬렁 창구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게 마음에 안들었던 시간들이었던지라, 친구가 영 거슬렸는데, 관계 직원인 줄 알고 최대한 공손하게 대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친구도 그 날 학교에서 동향을 살펴 대학 원서를 넣느라 왔다 갔다 간을 보고 있었다고 했었다.
암튼, 그리하여 친구는 계속 내게 말을 걸어 왔었고, 나는 그 순간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귀찮았고,무례해 보였고,여튼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라 좀 싫었었다. 근데 친구는 합격하면 우리 친구 하자고 바로 그 자리에서 친근하게 굴어, 속으로 "설마? 내가 너랑?" 속으로 생각 했었는데, 입학하고 강의실에 들어 갔더니, 바로 나더러 "친구야! 니 자리 잡아 놨다" 하며 자기 옆자리에 앉으란다.
암튼 그리하여 졸업할 때까지 친구 옆자리에 앉았는데, 처음엔 그렇게 비호감이었던 친구가 점차 호감으로 바뀌더니 나중에는 둘도 없는 베프가 되었다.
한 날은 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너는 왜 이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느나고?
나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학교를 들어온 것인가? 궁금했었다.
친구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취업을 할 목적으로 면접을 몇 군데 봤었다고 했다.
그런데 매번 다 퇴짜를 맞았다고 했었다. 이유는 뚱뚱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면전에서 면접관이 대놓고 뚱뚱해서 취직시킬 수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회사도 있었다고 했다.
친구는 키가 170이 좀 넘는다. 그리고 덩치도 있다. 그러니 조금 더 커 보여 웬만한 키가 있는 남자들이랑 비슷한 덩치에 힘도 쎄다. 목소리도 크다. 웃음소리는 더 크다. 나도 작은 키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는데, 대학 들어가선 친구 옆에 같이 있다 보니 다들 나를 키도 작고 엄청 빼빼 마른 아이로 보게 되었다. 그것이 은근 친구에게도 스트레스(나 때문에 자신이 더 뚱뚱해 보인다고 늘 투덜거렸고) 나도 스트레스였다.(보는 사람들마다 말랐다고 한 마디씩 하는데, 나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투덜거렸다.)
암튼, 친구는 뚱뚱하다는 이유 때문에 취업을 못하니 자존심이 상하여 공부를 해서 전문대라도 졸업하면 좀 더 취업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수능을 준비했고 나와 친구가 되었다.
나는 친구가 이 학교에 입학한 이유가 너무나 절실하게 느껴졌고, 될대로 되란 식으로 입학한 나와 너무나 비교가 되어 뭐랄까, 친구에게 괜한 죄책감이 들었고, 외모로 인해 상처 받았을 친구가 너무나 안쓰러웠었다. 어쩌면 나도 친구의 첫 인상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져, 애써 피하려 했던 게 아녔을까? 반성하며, 아마도 그 무렵이 친구와 베프가 된 시점이었던 것 같다.
내 친구는 늘 당당했다. 늘 유쾌했다. 늘 자신감이 넘쳤다. 늘 웃었다. 늘 호기심이 넘쳤다.
학교 선,후배, 동기들, 교수님들 모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복도를 지나다가도, 캠퍼스를 지나가다가도 다른 과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졌고, 학교 교문을 나서서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는 그 먼 길을 걸어 가면서도 김밥집 사장님, 미용실 사장님, 복사실 사장님, 국밥집 사장님, 꽃집 사장님 등등 그 모든 사장님들과 "안녕하세요?" 인사 나누고 내려 가느라 정신 없던 친구였다.
그리고, 점심시간 때 밥집에 들어가서 메뉴를 시켰는데 아주머니가 여학생들이라고 밥을 적게 담아 주면 친구는 바로 아주머니를 불러 이야기 한다. "아줌마, 제 덩치 좀 보이소. 내가 이거 먹고 힘 쓰겠어요? 좀 더 주세요." 처음엔 식당 아주머니는 뭐 이런 애가 다있어?란 표정이더니, 며칠 지나면 바로 친분을 쌓아 놓았는지, 우리가 가면 알아서 듬뿍듬뿍~ 남학생들 밥 양보다 더 많이 담아 주신다. 친구는 내 밥을 보곤 내 친구를 차별하느냐며 항의해서 내 밥도 점점 늘어나 매번 많은 양을 먹어 대느라 배가 아파 죽을 것 같더니 어느새 위가 늘어났는지, 거뜬하게 먹어댔다. 그랬더니 정말 나도 살이 찌기 시작하여, 아마도 그 시절이 큰 애 만삭일 때 몸무게랑 비슷하게 찍었던 것같다. 스무 살, 다들 다이어트를 해서 몰라보게 살을 빼서 예뻐지던 친구들이 허다할 때, 나는 친구덕에 몰라보게 살이 쪄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 몰라보고 있었고, 남편은(같은 과 였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내가 뚱뚱한 아이인 줄 알았었다고 했다.
서로 살이 찌고 과 특성상 여학생들이 적었던 과 였던지라 여학생들은 화장도 잘 안하고, 고등학생들 마냥 등하교를 하였는데, 친구는 자꾸 나더러 이쁘다고 말했다. 처음엔 나도 화답으로 너도 예쁘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가만히 뜯어 보니 친구는 눈도 똥그랗고,쌍꺼풀이 가늘게 예뻤고, 얼굴도 잡티 하나 없이 피부가 너무 깨끗했었고, 머릿결도 부드럽고, 손도 통통하고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고 예뻤다. 특히 친구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불렀고, 운동신경도 좋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친구는 다 가지고 있었다. 나중엔 진심으로 예쁘다고 말해주고, 친구도 화답인양 나더러 이쁘다고 말해줬다. 서로 너무 예뻐보여 곁에 있는 남편에게 우리 너무 이쁘지 않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놀고들 있네. 여자들이 예쁘다고 하는 여자는, 남자들이 보면 하나도 안 예쁘다. 미의 기준이 다른다."라고 4가지가 없는 말을 겁없이 내뱉었다.
그래도 내 친구는 예뻤다. 그리고 집중력도 좋고, 두뇌회전도 빨라 자격증을 무조건 한 번에 다 따버렸다.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는 공대로 편입을 하여 그곳에서도 과 대표를 하면서 분위기를 휘어잡아 버렸다고 얘길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남친도 사귀고 그랬었다고 했다.
어련할까!
뚱뚱하고 예쁘지 않다고 면접 보는 곳마다 퇴짜 맞던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실력을 갖춰 전문직 회사를 들어갔고, 이직도 몇 번 하긴 했지만 가는 곳마다 사장님들께 신뢰를 받는 것 같았다.
지금은 회사 사장님이 급작스럽게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고, 어찌하다 보니, 친구가 사무실의 모든 일을 일임하고 있고, 사장님은 친구에게 이렇게 신세를 져서 너무 미안하다고 하시며 친구를 많이 의지하고 계시는 듯했다. 물론 친구는 이런 상황들이 너무 힘겹고, 울적하다고 전화를 해오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회사일을 묵묵하게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나는 내 친구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내 친구가 진정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취업에서 퇴짜 맞았던 그 사춘기 시절, 다이어트를 감행하는 것보다 공부를 선택하여 내공을 키웠고, 덩치가 크다고 남 앞에서 움츠러 들지 않고, 그렇다고 외모 가꾸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남 앞에서 움츠러 든 것은 나였으며, 친구덕에 갑자기 살이 쪄 거울 앞에 비친 내모습이 혐오스러워 방학 때 몰래 다이어트를 시도한 사람은 나였다.(시도해도 잘 빠지지 않아 배가 고파서 금방 포기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줄곧 여성의 아름다움 앞에서 당당한 사람은 누굴까? 질문을 던졌을 때, 계속 내 친구의 학창시절이 떠올랐고, 친구의 지혜로움에 뒤늦게 감탄했었다. 친구 생각이 많이 나서 연락 했더니 현재 전가족이 코로나로 확진되어 집에서 격리중이라고 했다. 역시 내 친구는 못하는 것이 없고, 안하는 것도 없구나!
친구라고 살아오면서 혼자만의 고민과 슬픔이 없었겠느냐만,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자신만의 아름다움의 신화를 만들어 온 장본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친구덕에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은 친구의 외향적인 성격에 영향을 많이 받아, 덕분에 대학생활이 좀 재밌었다.
하지만, 남자들이 많은 과 특성상 남녀 간의 복잡 미묘하게 기분 나쁜 일들은 종종 있었다. 남자들은 이상하게 무시로 어깨동무 스킨십이 있는 듯한데, 그게 아주 불쾌해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했었다. 한 날은 남자아이가 내게 어깨동무를 갑자기 하면서 질문을 해오길래,기분이 안좋아 그 팔을 손으로 세게 탁 뿌리쳤더니, 기분이 나빴었는지 "거 되게 비싸게 구네!!!"라고 한 마디를 하는데도, 혼자 얼굴이 뻘개져 별 대꾸를 하지 못하고, 그냥 자리를 피했었다. 그저 내가 한 응징이라곤, 졸업할 때까지 걔랑 말을 섞지 않는 정도였다.
친구는 어떡하나, 가만 지켜보니 어깨동무를 하는 남자아이가 있으면 살짝 장난치듯 하면서, 팔을 꺾어 비틀어 버렸다. 힘도 쎄니까 웬만한 남자들이 아프다고 엄살을 떨더니, 눈치 빠른 남자들은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학교 다니는 내내 이런 내 친구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론 내가 이 학교를 온 이유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남편앞에선 듣기 좋으라고 그런 얘길 하지만, 아마도 곰곰 생각해 보면,나는 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종종 하곤 했었다.
만일 여성이 성을 새롭게 정의해 우리가 우리끼리 느끼는 매력을 긍정한다면, 신화가 더는 상처를 줄 수 없을 것이다.이 경우 다른 여성의 아름다움은 위협이나 모욕이 아니라 즐거움이고 찬사를 보낼 대상이다.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상처를 주거나 배신할 위험 없이, 쓸데없는 데 충성한다고 비난받을 위험 없이, 옷을 입고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우리 몸의 즐거움을 찬미하기 위해 차려입고, "다른 여성을 위해" 자신을 긍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452쪽)
이렇게 책을 읽고,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친구의 면면들이, 나만 알고 있기에 아까워 적다 보니 주절주절 사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고, 쓰다 보니 이것이 지금 맥락이 맞는 것인가? 조금 의심이 든다.
어쨌든 결론은 여성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알아봐 주고, 사랑해 주고, 북돋워 준다면 여성들은 더이상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은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 같이 연대하며 여성이 여성을 이해해 준다면, 거울 앞에 섰을 때, 내가 나 자신을 혐오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존감을 떨어뜨릴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아름다움의 신화는 사회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