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과학서'는 영국의 여성 유전학자이자 방송인 앤 무어의 <브레인 섹스>(북스넛, 2009)다. 제목의 '섹스'란 말 때문에 아무리 '브레인'을 앞세워도 서점직원에게 찾아달라고 하기가 좀 멋쩍은, 그런 책이다. 남녀간의 성차가 이미 뇌의 구조와 기능에 각인돼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니(남성 과학자라면 감히 주장하기 어렵겠다)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성정체성이 그렇게 명확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과 비교해서 읽어봄 직하다). 한편으로 뇌과학 관련서는 하나의 트렌드라고 봐도 좋을 만큼 쏟아지고 있는데(전담 길잡이가 있었으면 싶다), 이주에는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릭 캔델의 자서전 <기억을 찾아서>(랜덤하우스, 2009)도 챙겨놓을 만한 책이다. 알라딘에는 사회과학서로 분류돼 있는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에코리브르, 2009)는 내가 서평도서로 다룰 뻔한 책인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뭔가 적고 싶다(같이 참고할 책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자음과 모음>(2008년 가을호)에 실린 슬라보예 지젝의 기고문 '벌들과 새로운 냉전'이다). 이 책들에 대한 리뷰기사를 하나씩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9. 03. 28) 남녀는 똑같다? 뇌 구조부터 다르다! 

"남자와 여자의 능력이 똑같다고? 우스운 소리 말라고 해. 남녀의 공통점은 인간이라는 것밖에 없어요. 엄연히 다르지."

회식에 함께한 여직원들 앞에서 한 남자 동료가 이런 얘기를 떠벌였다 치자. 십중팔구 그는 '남녀차별주의자'로 찍힐 것이고, 여직원들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영국 BBC 프로듀서이자 옥스퍼드대 유전학박사인 앤 무어 등이 지은 <브레인섹스>는 남녀의 재능이나 행동은 분명히 다르며, 다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책이다. 주장의 근거는 뇌과학의 실증적 연구성과이다.

 

최근 100년간 남녀의 차이에 관한 주도적 설명은 '성별 역할기대에 맞춰진 사회화 과정에서 차이가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의 이면에는 '일부러 차별을 만들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남녀의 차이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남녀의 상이한 호르몬 과정이 어떻게 서로 다른 뇌를 형성하게 하고, 행동의 차이를 낳게 하는지를 실증적 연구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태아가 6주가 됐을 때 성이 나눠지며, 남녀의 뇌도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여자 태아의 뇌가 애초의 기본형대로 성장하는 반면, 남자 태아의 뇌는 생식기에서 왕성하게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에 노출되면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겪는다. 그 결과 암수 포유류의 뇌는 신경전달물질의 양과 신경세포의 연결, 세포 및 세포핵의 크기 등이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

발생 단계부터 달라지는 남녀의 뇌는 성장기를 거치면서 차이가 더욱 커져 행동과 인지, 반응 등에서 극명한 차이를 내게 된다. 공간지각능력이나 추상적 관계를 파악하는 데 남자가 우수한 반면, 여자는 언어능력이나 감각에 대한 반응도가 앞서는 것도 뇌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지난 30~40여년 동안 여성들은 옆에 있는 남성만큼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교육 받으면서 자랐다"며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심각하면서도 불필요한 고통과 좌절과 실망을 겪어야만 했다"고 비판한다.(장인철기자)   

경향신문(09. 03. 28) 기억을 찾아 뇌속을 헤매다 

부스스한 머리에 흰색 가운을 입고 시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실험실에서 현미경에 코를 박고 있는 사내. 과학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자연 이런 이미지로 정의되는 과학자들은 무척이나 건조해 보인다. 그러나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릭 캔델(80)의 자서전인 이 책을 보면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반복하는 과학자들 삶의 이면엔 도전과 경쟁, 논쟁과 성취가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카블리 뇌과학연구소장인 캔델은 가장 단순한 뇌를 가진 바다달팽이를 이용해 기억이 세포 안에 저장되는 과정을 연구한 논문으로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캔델. 9살에 나치에 의해 굴욕적이고 공포스러운 경험을 한 뒤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는 과정의 서술로 시작되는 그의 삶에는 20세기에 진행된 뇌와 관련된 실험과 논쟁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공포스러운 유년기의 경험 때문에 인간의 기억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의대에 진학했으며, 특히 인간의 정신과 의식에 대한 선구적 심리학자인 프로이트에 깊은 감명을 받아 정신과를 선택했다. 프로이트가 주창한 의식과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총체적으로 규명해 보겠다는 포부에서다. 하지만 그는 의대 상급반 시절 만난 신경생리학자인 해리 그런드페스트로부터 “정신을 이해하려면 뇌의 세포를 하나씩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정신과 의사 대신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분자생물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는 전도유망한 생화학자로서 크고 작은 성취들을 이룩해 나갔다.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땐 동료와 함께 뛸듯이 기뻐했고, 새로운 연구대상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성취를 시기한 옆방의 연구자가 갑자기 말문을 끊어버리는 일을 겪기도 했다. 밤낮 없이 실험에만 몰두하는 그를 향해 부인이 “당신 이런 식으론 더이상 안돼! 당신하고 일만 생각하잖아! 나와 아이들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말이야!”라고 고함 치면서 부부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가 매달렸던 주제는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신경체계의 각 부문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가’였다. 이를 위해 그는 매우 단순한 뇌 구조를 가진 바다달팽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모험을 감행한다. 선배 과학자들은 그의 선택을 만류했는데 당시엔 단순한 동물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행동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기억과 학습과정이 신경세포 안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바다달팽이는 그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일곱살짜리 딸이 그의 마흔살 생일을 맞아 ‘바다달팽이’란 제목의 시를 지어 선물할 정도였다.

노벨상 수상으로 세계 최고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그는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매번 새로운 시도는 불안을 불러왔지만 기운을 북돋기도 했다. 새롭고 근본적인 것을 시도하느라 몇 년을 잃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판에서 막힌 실험을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김재중기자)  

    

서울경제(09. 03. 28) 사라지는 꿀벌, 우리 생존 위협?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언뜻 이 말을 들으면 '그래서 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사실 꿀이라는 맛난 식품을 제공하는 꿀벌이 감히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꿀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꿀을 앞으로도 계속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소박한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과일과 작물들에게 화분매개(꽃가루 받이)를 해온 무보수 노동자들이 소멸한다는 사실 자체에 그 절박함이 있다.

음식과 환경의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저자는 꿀벌의 질병으로 알려진 '군집 붕괴 현상(Collony Collapse Disorder; CCD)'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CCD는 2006년 미국의 양봉가들이 처음 발견해, 2007년 원인 모를 꿀벌의 질병으로 미국에서 맹위를 떨쳤다. 뒤이어 유럽 등지에서도 같은 증상의 질병이 확인돼 '꿀벌실종(Bee lose)'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미국의 꿀벌 실종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은 지난해 CCD로 총 보유 꿀벌의 수가 240만군 수준으로 감소됐는데, 같은 해 한국의 군집수가 200만군 이상으로 집계된 것과 비교하면 토지면적이 우리보다 50배나 큰 미국에 닥친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공기나 물과 같이 언제나 자연적으로 공급될 것 같은 꿀벌에 의한 화분매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꿀벌 외에는 화분매개를 대신 해 줄 마땅한 대체 생물이 없는 상황에서 CCD는 양봉업만이 문제가 아닌 화분매개를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작물, 즉 농업 전반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게 됐으며, 현재도 그 피해를 키워가고 있다.

농업 전반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가장 큰 피해국인 미국은 미농무성(USDA)을 필두로 질병의 원인체 규명에 돌입하였으며, 곤충학자ㆍ세균학자ㆍ화학자ㆍ물리학자 등 전문가를 동원해 원인체 발견과 해결책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연구 결과로 전자파, 환경오염물질, 살충제 등 농약, IAPV(Israelli acute paralysis virus; 이스라엘 급성 마비병 바이러스) 등 변형 바이러스 들이 유력한 원인체로 제시됐으나, 정확한 CCD의 원인체는 아직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꿀벌과 환경 전반에 걸친 풍부한 배경 지식과 뛰어난 필치로 양봉가들에 의해 CCD가 인식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재앙처럼 다가오는 새로운 질병에 원인도 모르고 대처 방법도 모르는 인간의 무력감을 무게 있게 다루고 있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새로 출연한 질병을 제어하는 시발점이 되는 원인체 규명에 매진하는 과정과 연구결과를 정확한 근거를 들어 제시한다. 저자는 집중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결론을 보여주지 못하는 전문가 집단의 무능함을 양봉 현장과 건강한 자연환경의 목소리로 질타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환경 저널리스트로서 거시 생태계의 흐름에 입각해 CCD가 꿀벌의 귀소 본능의 상실, 즉 방향 감각, 기억의 상실인 점을 주목한다. 또 살충제 등 폭 넓은 화학적 환경오염에 의한 스트레스, 거대 단일 작물재배에 의한 단순성 스트레스, 그리고 각종 꿀벌 병원체를 제어하기 위하여 끊임 없이 투여되는 약제들에 의한 스트레스 등을 그 원인으로 추론한다.

CCD의 연구에 큰 관심을 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에서 많을 것을 배웠음을 고백하고, 작가의 뛰어난 직관적 추론에 경의를 표한다. 이 저서가 꿀벌 뿐 아니라 건강한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의 생태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윤병수 경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0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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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흥미로운 책, &lt;브레인 섹스&gt;
    from 자기치유 : I am NOT such a person. 2009-03-28 17:59 
    브레인 섹스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앤 무어 (북스넛, 2009년) 상세보기 여행을 다녀왔더니 한국에 흥미로운 책이 한권 소개되었다.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로쟈'의 소개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뇌 자체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내용의 차이로 인해 다르다'라는 것. 개인적으로 상당히 신봉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사회화의 결과일 뿐이고, 일부 신체적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상당부분 여전히 사회화로 인한 것'이라는 내용과..
 
 
2009-03-29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9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중에 이 서재의 '즐찾'이 2000명을 넘어섰다. 작년의 목표치이긴 했으나 대략 이달쯤에 도달할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2000'이란 숫자는 1일 방문자 '1000'과 함께 이 서재(블로그)의 한계치라고 생각해오던 것이다(성장의 한계?). 현재의 여건에선 그 이상의 관심을 끌어모을 '동력'을 갖고 있지 않기에(내가 '전업 블로거'라면 사정은 다르겠지만). 다 아시겠지만 주로 언론 리뷰기사(스크랩)와 내가 쓴 잡문(주로 서평)이 이 서재의 단촐한 메뉴다. 특별히 재미있거나 심오한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었다. 감사한 일이면서 약간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책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면서 내가 지향하는 일이지만 그런 정보/지식을 내가 원하는 만큼 생산해낼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어 유감스러운 적도 많다. 스크랩으로 많은 페이퍼를 채우는 일이 멋쩍기도 하고(하지만 그 많은 책을 어찌 다 읽는단 말인가?!). 아무튼 이런 것이 현재 '스코어'이고 짧게 적어본 '서재 주인'의 감상이다. 경영학을 공부한 바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서재 운영의 쇄신을 도모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서재질'에 대해서는 고민을 좀 해볼 생각이다...   

'감상'은 그렇다 치고 '주업'으로 돌아오면, 새로 나온 관심도서들을 소개해온 처지에서 볼 때 이번주는 '최악'이다. 평소 기준에 따르면 다뤄야 할 책이 최소로 잡아도 10권은 되기 때문이다(평소의 2-3배다). 물론 한권만 고르라고 하면 개인적으론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을 꼽을 수밖에 없다(아직 리뷰기사들이 뜨지 않고 있다). 어젯밤에 조금 읽어봤는데, 최소 두 달치의 '식량'은 확보한 듯싶어 부듯하다(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과 대결하는 대목이 일단 관심을 끈다. 이 책에 대한 고진의 서평 제목이 '시차적 관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책들은 그냥 넘어가도 좋으냐고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해서 내주까지 틈나는 대로 스크랩도 하고 코멘트도 달아볼 생각이다(사실 이런 일은 '조수'가 해주면 좋겠는데 '1인 블로그'인지라 1인 2역을 해야 한다).   

 

닥치는 대로 집어보자면 먼저 '결혼제도를 통해본 서구문화사'<진화하는 결혼>(작가정신, 2009)이 있다. 원서의 부제 '사랑은 어떻게 결혼을 정복했나(How Love Conquered Marriage)'가 이미 많은 걸 얘기해주는 책이다. 역사적으로 '사랑'(감정)이 결혼의 중요한 변수는 아니었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차츰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연애혼'이 '중매혼'의 전통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 저자의 역사적 통찰은 이렇듯 감정(사랑)을 중요시한 결혼관이 필연적으로 결혼이란 제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 이른다(어제 연예가 뉴스에 '가수 박진영 결혼 10년만에 이혼'이 뜨던데, 그런 식인 것. '애정'이 결혼생활에 절대적인 변수라면 애정의 변덕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결혼의 단꿈을 꾸고 있을 청춘들에게는 도움이 안될 듯싶지만 차츰 무뎌지는 감정과 타엽해야할 처지에 놓인 기혼자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내친 김에 <오르가슴의 과학>(어드북스, 2009) 같은 책에 눈길을 줄 수도 있겠다. 2006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한 책으로 성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근래에 없던 인간 섹슈얼리티의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은 화제작이라 한다). 

 

문화일보(09. 03. 27) 결혼의 조건에 ‘사랑’은 없었다

오늘날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 또는 근거로 꼽히는 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이 언제부터 결혼의 전제조건이 됐을까. 과연 사랑이 결혼의 가장 중요한 근거이긴 한 걸까. 무엇보다도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모든 것에 답하는 책이다. (100여장이 넘는 주를 빼고서도) 500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책은 인류의 여명기부터 고대, 중세, 근·현대에 이르는 긴 시기 동안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결혼과 관련된 각종 문헌과 통계자료, 연구결과를 취합, 분석하여 결혼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역사를 펼쳐보인다. 



그럼 언제부터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결혼’이라는, 오늘날 우리들이 너무나 당연시하는 관념이 자리잡게 됐을까. 서구의 경우 19세기에 들어와서부터였다. 저자는 “결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낭만적인’ 일만은 결코 아니었다”며 “오랫동안 결혼은 정치적 거래이자 경제적 거래였는데 유력한 가문과의 사돈을 통한 동맹 맺기, 성별 분업, 재산 상속 등이 모두 결혼을 통해 이뤄졌다” 고 말한다.

이처럼 공적인 영역에 머물렀던 결혼이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는 전환점인 19세기는 결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는 결혼을 둘러싼 현재의 다양한 문제와 논의, 견해들이 이미 내포돼 있던 때이기도 하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전파되자 결혼 역시 개인의 인권과 관계된 사적인 일로 정착됐다. 아울러 양성 평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좀 더 동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사랑 하에 이뤄져야 하는 일로 여겨졌다. 과거 결혼의 부산물 정도로 여겨졌던 사랑이 결혼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던 것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18세기 말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서 결혼은 경제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에서 너무나 중요한 제도였기 때문에 당사자 두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문제였다. 특히 결혼 당사자들이 사랑이라는 ‘비이성적이고 덧없는 것’을 기반으로 결정 내리려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1차적인 목표는 부부와 그 자식들의 욕구, 즉 개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은 평생의 반려자를 구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기르기 위한 일인 동시에, 좋은 가문과 사돈을 맺고 가족의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성별과 연령을 기준으로 노동을 분배하고 권력을 분할하는 역할을 해왔다. 저자는 “물론 과거 수천년 동안에도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다. 심지어 때로는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결혼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관계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18세기에 시장경제가 전파되고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커다란 변화들이 급속히 이뤄졌다. 18세기 말에는 중매결혼 대신 개인이 직접 배우자를 선택하는 결혼이 사회적 이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장려됐다. 이 무렵부터 사람들은 사랑이 결혼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어야 하며, 젊은이들이 사랑을 기초로 배우자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새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에 감상적인 색채가 더해지고, 20세기엔 성(性)이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사랑과 동반자 관계를 결혼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수천년간 이어져 온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내포된 위험을 깨닫고,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라는 전대미문의 개념이 과격한 개인주의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랑의 결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유선택과 남녀 평등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쉽사리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혁명적인 결혼 시스템은 처음 잉태되던 순간부터 불안정한 징후들을 드러냈다. 결혼 생활에서 사랑, 즉 애정이 절대적인 요소라면 만약 애정이 식을 경우 결혼 생활 역시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결국 이 시스템의 불안정성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사람들을 괴롭히게 됐다. 동성 결혼과 동거, ‘싱글 맘’ 등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등장했고, 높은 이혼율과 낮은 출산율, 독신주의자의 급증 등은 결혼 제도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는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이 새로운 결혼 풍속도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결정적인 안내인도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미래에도 결혼이라는 제도가 유지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본다. 단,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결혼 제도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김영번 기자) 

0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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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욱 흥미로운 책, &lt;진화하는 결혼&gt;
    from 자기치유 : I am NOT such a person. 2009-03-28 18:07 
    진화하는 결혼 - 스테파니 쿤츠 지음, 김승욱 옮김/작가정신 사실 오늘 발견한 책 중에서 더욱 관심가는 책은 이 책이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서구 문화에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들에게 결혼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줄듯하다. 일생의 화두이기도 하나 사랑을 다루고 있고, 최근 들어 보다 큰 관심을 갖게 된 결혼의 문제도 파고들고 있으며, 전공을 고려하고 있는 문화사라는 분야의 책이라는 점에서 이래저래..
 
 
stella.K 2009-03-29 14:05   좋아요 0 | URL
위의 책들 재밌을 것 같군요. 좋은 정보네요.
벌써 즐찾이 2000이라니, 놀랍습니다!
축하해요.^^

로쟈 2009-03-29 16:53   좋아요 0 | URL
네, 감사. 오래만에 댓글도 달아주시고.^^
 

어제 늦은 귀가길에 읽기 시작한 책은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이다. 피로 때문에 읽다가 전철에서 잠이 들긴 했는데, 얇은 책이지만 일본에서 화제가 됐다고도 하니 호기심을 끈다. 인터뷰기사가 뜨기에 먼저 챙겨놓는다. 

 

경향신문(09. 03. 28) “철저히 고민, 살아갈 힘 찾아내라”  

여유를 찾기 힘든 시대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풍요와 발전을 좇으며 끝없이 앞으로 돌진하기만 한다.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불황은 사람들을 더욱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잠시 멈춰 고민하는 것은 사치다. 가볍고 ‘쿨’하게 살기도 힘든 세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고민하라고 부추기는 사람이 있다.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철저하게 고민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고 고민하는 힘이 살아가는 힘”이라면서.  

 

재일정치학자 강상중 도쿄대 교수(59). 1998년 재일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인물로 일본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으로 일본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지식인이다. 그가 지난해 5월 일본에서 펴낸 <고민하는 힘>(원제 惱む力)은 <내셔널리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등 기존 저서와는 달리 ‘인생론’을 피력한 책이다. 지금까지 100만부 넘게 팔리면서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고민하는 힘’을 화두로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압축된 근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일본 또한 앞으로만 전진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전례없는 불황 등으로 아무리 일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고민하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이제 힘든 일이 되었어요. 이 때문에 저는 오히려 ‘고민하는’ 일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찾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의 국내 출간을 맞아 e메일을 통해 인터뷰한 강 교수는 “지금 사회는 고민하는 것을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서 “고민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확신할 때까지 계속 고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책에서 현재의 일본 사회를 ‘희미한 납색’에 비유했다.

“진보주의나 발전주의가 한계에 도달했고 기득권의 현상유지적인 권익에 가로막혀 개혁이나 변화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 결과 폐쇄감이 우리 주위를 떠돌고 많은 사람들이 순간의 흥분이나 변덕에 사로잡히기 쉬운 상태가 되고 말았어요.”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 맹렬한 속도로 근대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한층더 격렬하게 표현하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높은 자살률이나 비정규직의 증가, 실업률의 증가 등을 예로 들 수 있어요.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지탱해온 가치나 삶의 방식에 대해 그 뿌리에서부터 반성을 해야 하는 내적 반성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0년 전 근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될 무렵 활동한 막스 베버(왼쪽)와 나쓰메 소세키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고민하는 힘’을 통해 시대를 꿰뚫어보려 했다. 베버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소세키는 문학을 통해 ‘근대’라는 시대가 낳은 문제와 마주했고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물었다.

소설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닌 그의 책이 보기 드문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경제 파탄이나 자살자의 급증 등 문명사적 전환기에 놓여 있는 현대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책을 통해 제시했다”는 것이다. 책은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를 실마리 삼아 고민하는 힘에 담겨 있는 삶의 의미에 대한 의지를 성찰했다. 소세키와 베버는 ‘우울한 청춘의 시대’에 강 교수에게 말을 걸어준 인물들이기도 했다. 강 교수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급격한 외부적 변화가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 개인은 점차 소외·고립되어간다는 점에서 현재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근본적으로 묻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자기와 타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철저하게 물었어요. 이런 지적인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그들이 고민하고 사색했던 문제를 현대의 문제로 받아들여 삶의 힌트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책에는 소세키 소설 속 인물들의 사례와 함께 강 교수 자신의 경험이 많이 등장한다. 그는 사춘기때 자아와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다 한국을 방문한 후 자신의 존재를 새로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대학원에 남아 긴 ‘모라토리엄’(유예) 시기를 갖기도 했다. 그는 특히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정체성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면서도 “하지만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 소수자와 다수자, 민족과 국민, 한국과 일본 등 많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눈을 뜨게 됐고 끊임없이 의식이 각성됐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또 40대 후반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워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증세가 사라진 뒤 기분이 묘하게 상쾌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 두려운 것은 없어’라는 심경. 그때 깨달은 것이 죽음이든 뭐든 적어도 깊게 고민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면 두렵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고민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고 나면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두려움이 없다면 뭐든지 꿈꿀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안정된 노년 계획만을 추구하지 말고 고민을 거듭한 후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최강의 노년’을 살라고 조언한다. 강 교수가 밝히는 ‘하고 싶은 일’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우선은 배우. 기왕이면 자신의 이미지와 정반대인 위선적인 악당 역이 좋단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일본과 한반도를 종단하고 싶단다.

그런 생각 끝에 그가 밝히는 것은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뻔뻔해진다’는 것. ‘깊게 고민해서 꿰뚫어라’라고도 한다. 그가 젊은 세대들에게 주문하는 것도 더 크게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 뻔뻔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파괴력이 없으면 사회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강 교수는 젊은 세대들에게 “자기의 발로 일어설 것”을 강조했다. “자기의 안팎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이제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신앙이나 이데올로기, 영적인 것 등은 ‘지성의 제물’ 없이는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국가나 기업, 거대 조직이나 제도 등에 대한 물신숭배를 그만두고 자기의 발로 일어서야 합니다.”

그가 보기에 한국과 일본을 불문하고 젊은 세대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다. 오히려 “모든 희망을 버려야 하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나 가치가 진지한 형태로 빛나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안이하고 졸속한 해답에 안주하지 말고 철저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힘을 축적해가기를 바랍니다.”(김진우기자) 

09. 03. 27. 

P.S. 사실 '고민하는 힘' 정도는 요즘 한국사회와 잘 맞지 않는데('발광하는 힘'에 맞서려면 최소한 '고뇌하는 힘'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용도를 찾자면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에 대한 입문서는 될 수 있겠다. 그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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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8 0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8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8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8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9 0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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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 0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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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9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노바바 2009-03-28 08:21   좋아요 0 | URL
강상중 교수는 적어도 저처럼 미디어연구-사회학의 교차로에 잇는 사람한테는 상당히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곁가지 얘기로 일본에 잇는 친구한테 들은 얘기인데, 강상중 교수는 일반인들한테도 상당히 유명하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강상중 교수하면 다들 '아 그 분 목소리'라고 반응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목소리가 워낙 좋아서 얘기만해도 설득력이 잇다나요. 실은 강교수가 '고민 상담'하는 텔레비전에 고정 출연해서 유명인이 되엇다고 합니다. 좀 의외네 싶엇는데, 구체적인 고민 상담 내용이나 방식이 어떤지는 몰라도 이 책 소개를 보니 그가 텔레비전에서 인생 상담하는 얘기가 그의 실존적인 고민이나 학문적인 고민과 완전히 별개가 아니겟구나, 하는 느낌이 들엇습니다.

로쟈 2009-03-28 08:26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나요?^^ 하긴 일본인들은 다 아는 스토리겠네요...
 

영문학자 이언 와트의 <소설의 발생>(강, 2009)이 다시 번역돼 나왔다. 예전에 다른 역자에 의해 <소설의 발생>(열린책들, 1988)이라고 출간됐던 책이니까 20년만이다. "1957년에 펴낸 <소설의 발생 : 디포우, 리처드슨, 필딩 연구>는 18세기 영국사회에서 작가와 독자가 공유했던 사회적 도덕적 경험의 변화 속에서 소설의 발생을 탐구한 책으로, 소설 양식의 확립과 근대의 관계를 해명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나름 이 분야의 고전이며, 여러 가지 문제제기와 함께 소설에 대한 이해에 영감을 주는 책이다. 20년 전에는 읽을 수 없었던 리처드슨이나 필딩의 소설 번역본들이 그간에 나온 터여서 이번엔 참조해가면서 읽어볼 수 있을 듯싶다. 리스트는 그래서 만들어둔다.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소설의 발생- 디포우, 리처드슨, 필딩 연구
이언 와트 지음, 강유나.고경하 옮김 / 강 / 2009년 3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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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와트의 소설발생론과 장르 정치학
김봉률 지음 / 동인(이성모) / 2007년 3월
18,000원 → 17,100원(5%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09년 03월 26일에 저장
품절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남명성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9년 03월 26일에 저장
품절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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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2009-03-26 19:45   좋아요 0 | URL
지젝의 <시차적 관점>이 드디어 번역 출간 되었네요~^^

로쟈 2009-03-26 23:3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며칠전에 알았습니다.^^

[해이] 2009-03-26 23:57   좋아요 0 | URL
ㅋㅋ 로쟈님 신나시겠어요~ 분량도 800쪽이나 되니^^ ㅎㅎㅎ

로쟈 2009-03-27 17:07   좋아요 0 | URL
네, 인연이 닿을 뻔했던 책이기도 하구요.^^

[해이] 2009-03-27 21:27   좋아요 0 | URL
지젝책 한권 번역하셔야죠^^ 너무 무심하신듯 ㅋㅋㅋ

로쟈 2009-03-27 21:30   좋아요 0 | URL
아, 번역하고 있습니다. 생계가 아니어서 늦어지고 있지만요.^^;

2009-03-28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8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들 아는 얘기지만, 탤런트 장자연씨의 자살과 관련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중이다. '급물살'을 탈 거란 얘기도 나오지만 아직은 답보상태이고 어젠가는 여당의 원내대표조차도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지금은 검열 때문에 온라인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사건 초기엔 '장자연 리스트'가 돌아다니기도 했다. 복자(가린 글자)가 한 자씩 들어가 있었지만 대부분 유추해서 알아볼 수 있는, 한국사회의 유력한 인사들이었다. '미디어오늘'의 표현을 따르면 이들이 '더러운 포식자들'이다. 이번 수사도 유야무야로 넘어가고 그들이 계속 '포식자'로 이 사회에 군림한다면 아무리 WBC에서 야구대표팀이 기량을 뽐낸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에 희망(?)은 없다. 더럽고 수치스러운 사회로 남을 뿐이다. 칼럼의 주장대로 그들이 '엄정한 법의 심판대'에 세워지기를 기대한다(이번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는가는 과연 한국사회에서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미디어오늘(09. 03. 24) 더러운 포식자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어둠의 포식자들이 여성 연예인들을 상대로 자신의 성욕을 채워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한 여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탤런트 장자연씨의 죽음! 형식은 자살이지만 내용은 타살이다.

한 여배우를 죽음으로 내몬 그 무서운 포식자들을 어떻게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인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름들은 검은 발톱으로 대한민국을 찍어 누르고 있는 ‘무소불위 포식자'들이다. 그 포식자들의 면면이 하도 어마어마한지라 경찰마저 벌벌 떨고 있는 모양새다. 말 바꾸기와 시간끌기를 하면서 미적거리고 있다.

경찰의 늑장수사를 보다 못한 정치권이 쓴 소리를 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2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은 한국 사회 상류층의 ‘모럴 해저드’의 극치”라면서 “경찰이 좀더 적극적으로 수사해 한국 사회 상류층의 모럴 해저드가 없어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홍 원대대표는 이어 기자들과 만나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야 한다. 상류층 윤리가 (일반 시민들과)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심상정 공동대표는 라디오에 출연, “장씨가 문건에서 밝힌 대로 노예적 성 착취가 자행됐다면, 그 사무실이야말로 여성의 아우슈비츠”라며 “여성을 착취하는 먹이사슬의 최상층 포식자에 대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실체가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마저 꼬리를 내리게 하는 저 무서운 포식자는 대체 누군가. ‘장자연 리스트'엔 유력 일간지 대표와 재벌 총수 등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상정 의원의 말대로 대한민국 최상층 포식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유력 일간지 대표가 누군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땅의 여론을 쥐락펴락 하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이미 그 구체적인 이름이 저자거리 술좌석의 안주로 오르내리고 있다. 그가 여배우의 인권과 사회적 윤리를 짓밟으면서 냄새나는 욕정의 찌꺼기를 내뿜고 있을 때, 자신이 만드는 신문의 지면에선 얼마나 많은 위선적 기사들이 독자들을 훈계하고 있었을까.

재벌총수의 이름이 ‘장자연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재벌들이 주연으로 등장했던 여배우와의 스캔들이 어디 한둘인가.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가 불식되지 않는 한 재벌가의 사람들과 여성 연예인들 간에 얽히는 추문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반재벌, 반기업 정서'를 탓하기 이전에 먼저 재벌들의 극심한 모럴 해저드부터 어찌 해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장자연씨가 죽기 직전 한 지인에게 남겼다는 글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일부만 옮겨보자. “근데 이렇게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못하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회사도 아닌, 술집도 아닌 웃긴 곳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는 일이 일어났고…. 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벗으라면 벗어야 하고. 여기저기…. 새로운 옷이 바뀔 때면 난 또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는 요즘이야." 

세상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음침한 밀실에서 신문사 대표와 재벌총수라는 사람들이 던지는 끈적거리는 눈길과 손길을 거부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했던 한 여배우의 좌절감과 수치심, 분노를 상상해보라. 오죽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고 했을까.

아무리 막강한 돈도, 권력도, 지위도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을 수 없다. 아직도 고 장자연씨와 같은 상황에서 신음하고 있을 다른 연예인들을 생각해보라. 장자연씨의 죽음을 헛되이 해선 안 된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더러운 포식자들을 엄정한 법의 심판대에 세워라! 그 범죄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그 이름도 공개하라!(박상주 논설위원)  

09. 03. 24.  

P.S. 여배우와 '포식자들'의 유착/착취관계는 사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20년 전엔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 <서울 무지개>가 대종상을 석권한 적도 있다(비슷한 시기에 나온 영화 <빨간 여배우>도 이 계열에 속한다). "돈과 명성을 동경하는 유라, 고향으로 가기 원하는 준. 준을 책망하며 스타가 되기위해 발돋움 하려는 유라. 하지만 준은 유라를 도와 준다. 스타가 되기까지 유라 자신도 모르게 배후에서 어떤 어른이 도와주지만 그녀는 행동을 규제 받고 애완동물처럼 취급된다. 비로소 자신이 꿈꾸던 정상이 허위와 고통의 가면이라는 것을 깨달은 유라는 준의 사랑을 그리워한다. 빠져 나가려 하지만 더욱 조여오는 현실..."이란 식의 줄거리였다. 차이라면 '유라'는 자살하는 대신에 정신병원에 감금된다는 것 정도. 결론은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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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자연 관련 수사와 신뢰 없는 사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4 20:40 
    요즘은 TV 뉴스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종종 라디오에서 시사뉴스를 듣곤 한다. 오늘 방송된 CBS 시사자키에서 경찰의 장자연 리스트 수사 중간발표에 대한 의견 인터뷰를 옮겨놓는다.   CBS 시사자키(09. 04. 24) “故 장자연 수사결과, 경찰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 진행 : 변상욱 대기자(CBS 라디오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 ▷ 출연 : 민주당 김상희 의원 경찰이 오늘 장자연 리스트
 
 
열매 2009-03-25 12:36   좋아요 0 | URL
어제자(3.24) 뉴스데스크의 끝맺음멘트가 압권이더군요.
"야구에 열광하는 사이 '박연 차리스트'는 신구 권력층을 맹수처럼 할퀴었고 장자연 수사는 거북이처럼,YTN수사는 토끼걸음으로 갔습니다.'장자연 리스트'와 연관 있는 쪽이 '박연차 리스트'를 띄워서 덮어보려고 해서 흥미롭습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슬그머니 출국해서는 수상한 냄새가 납니다. 추부길 전 비서관은 이례적으로 영장심사를 포기한 뒤 입을 굳게 다물어서 누구에겐가 무언의 약속사인을 보내 심상치 않습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48273

보는 제가 철렁하며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로쟈 2009-03-25 14:50   좋아요 0 | URL
오늘 기사를 보니 '살을 베이고 뼈를 베는 싸움'이라고 적었더군요. 추부길 하나 엮어넣고 초토화를 시키겠다는 계산이 섰겠지요. '장자연 리스트'처럼 불리한 싸움은 미적거리고요...

비로그인 2009-03-25 15:08   좋아요 0 | URL
처음 뵙습니다. 로쟈님.
근데 제 개인적으로는, 로쟈님의 페이퍼에 이런 글을 드려서 그렇지만 남자들 대부분 여자들을 돈으로 사서 성관계를 맺는 일이 많이 희귀한 일은 아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포식자들만이 아니라 남성 사회 전체가 그런 일이 많지 않았나요? 어찌보면 그 포식자들은 남성 문화 전반에 대한 반성으로 가야지, 있는 자들 혹은 권력을 가진자들로 한정 시킨다는 건 결코 문제의 해결이 아닐것 같은데요. 로쟈님.

로쟈 2009-03-25 14: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남성문화 전반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모든 남성이 권력 상층부의 '포식자'는 아니죠. '우리 안의 이명박'이 문제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의 책임이 면책되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나'라도 그랬을 텐데라는 문제의식이 실제의 '범죄'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건 같은 경우는 자신의 우월한 지위나 권력의 남용이고, 성적 착취죠. 대부분이 남자들이 여자를 돈으로 사기도 하지만, 이 '포식자'들은 '돈'을 내지도 않은 것 아닌가요? 죄에도 경중이 있으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해서 모든 '악'이 동급으로 취급될 수는 없습니다...

비로그인 2009-03-25 15:01   좋아요 0 | URL
저는 그들이 돈을 내고 내지 않았고가 문제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여자를 돈을 내고 이용했으니 다르고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이건 엄연히 거래이고 저들은 권력의 남용이다 라고 말한다는 건 여성의 몸을 어떤 이유건 남성이 자신이 가진 무엇으로 이용했다는 것에서는 동일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저의 의견은 저들에게 면죄부를 줄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저들과 함께 모두가 비판받고 반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저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어떤 의미로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쯤으로 삼는다는 문제에 있어서 남성 상층부의 포식자만이 비판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상층부 포식자들에 대한 면죄부는 말씀하신 대로 당연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구요.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로쟈 2009-03-25 17:56   좋아요 0 | URL
"상층부 포식자들에 대한 면죄부는 말씀하신 대로 당연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구요"라고 동의하신다면, 의견 차이라고 할 건 별로 없겠습니다. 다만 현대인들님은 거기에 덧붙여 "저들과 함께 모두가 비판받고 반성해야 한다"고 보시는 거지요. 저는 그런 의견이 '물타기'로 오용되지만 않는다면, 공감합니다. 덧붙이자면, "남성이 여성의 몸을 어떤 의미로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쯤으로 삼는다는 문제"가 걸린 거라고 생각지는 않구요(그건 염결주의적 태도라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이성뿐만 아니라 타인을 수단으로서 이용합니다. 문제는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것이지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요). 결과적으로 좀 주목을 끄는 페이퍼가 돼버렸지만, 사실 이번 사건이 제대로 수사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습니다. '리스트'도, 적어도 공표되진 않을 겁니다(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더라도). '법'과 '권력'은 '그들'의 편일 테니까요. 그게 한국사회의 진실입니다. 다만, 그런 진실에 불만을 토로할 수는 있고, 또 제2, 제3의 '장자연'을 예방할 수는 있겠죠. '포식자들'도 좀더 주의하게 될 테니까요... 그들의 사생활은 '음지'가 적당합니다...

paul 2009-03-25 22:46   좋아요 0 | URL
한 인간의 처절한 최후가, 여성과 남성의 성차의 문제로, 또 다시 남성의 욕망의 폭력적 분출로 "해석"되어야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어느 막다른 상황에 놓인 생명이 죽음보다 더한 괴로움 앞에서 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슬픔을 넘어서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어떤 무력함마저 느낍니다.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것을 가리며 휘장처럼 화려하게 걸쳐진 권력과 또 그것에 아첨하는 자들과 짐짓 자신을 그들과 다르다는 듯, 동경하는 마음을 감추려 목소리만 높여 단죄의 칼날을 세우는 자들, 모두가 공범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저는 모든 자살은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단죄가 제 2, 제 3의 또 다른 피해자들, 자신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처연한 비관론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약한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처참한 최후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머리 숙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악'에 의해 합리화되지 않는 지점까지 누군가는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에게 그러한 단죄만큼 중요한 것은, 뼈져리게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싸움이 끝났다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것을.....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회가 되었든, 우리의 내면이 되었든 마찬가지입니다.

로쟈 2009-03-26 02:04   좋아요 0 | URL
이번 사건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도 적지 않더군요(피해자의 자업자득이라는). 여러 이유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의 견적이 얼른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은 '가해자'들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이들의 책임을 엄정하게 추궁하고 밝힐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또한 상식이라고 믿습니다...

HugoWonchulKIM 2009-03-26 23:44   좋아요 0 | URL
포식자, 성상납,매춘...그런게 아니라 방법이 다를 뿐인 강간 또는 성적노예 sexual slave 에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요.

로쟈 2009-03-27 17:10   좋아요 0 | URL
포식자 등도 그런 의미를 갖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