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과 아벨 강스
벤야민에 관한 첫번째 수다

서점 두 곳에 들러 이주의 관심도서 두 권을 사들고 왔다. 둘다 이론서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윤영 교수가 엮은 <사유 속의 영화>(문학과지성사, 2011)는 영화이론 선집이고, 호미 바바가 엮은 <국민과 서사>(후마니타스, 2011)는 '네이션'에 관한 탈식민주의적 성찰들을 묶은 것이다. 두 책을 모두 갖다놓은 서점이 없어서 한권씩 구하면서 발품을 팔아야 했다(알라딘에는 <국민과 서사>가 아직도 입고돼 있지 않다).   

그중 <사유 속의 영화>에는 벤야민의 유명한 텍스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 한번 더 번역돼 있어서 눈길을 끄는데, 이번엔 불어판의 번역이다. 제목은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 편역자가 서문에서 일러주는 바에 따르면, 벤야민이 1936년에 피에르 클로소프스키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불어로 쓴 텍스트이다. 이미 알려진 세 편의 독어본을 고려하면 '제4의 텍스트'인 셈이다. "이 불어판은 한국어로는 처음 소개되는 것이고 독일어로 된 다른 세 판본들과 대조 및 비교를 거쳐 영화 연구뿐만 아니라 벤야민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편역자는 적었다.  

책을 들춰보다가 벤야민이 인용한 아벨 강스의 말에 눈길이 멈추었는데, 그건 예전에 이 한 대목의 번역에 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벤야민과 아벨 강스' 참조). 내가 참조할 수 있었던 몇 개의 번역본이 모두 '오역'이 아닌가 싶어서 올렸던 글이었다(최초로 의견을 적은 건 2005년 '벤야민을 좋아하세요?'란 글을 통해서이다). 3판을 기준으로 할 때 벤야민 텍스트의 2절 말미에 나오는 문제의 문장과 예전글의 요지를 다시 가져오면 이렇다(강유원본과 김남시본은 출간본이 아니라 온라인 버전이었다).  

-1927년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말한 바 있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반성완)

-아벨 강스는 1927년 이미 이렇게 외쳤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될 것이다..."(차봉희)

-1927년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외쳤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이태동)

-1927년 아벨강스가 열광적으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될 것이다..."고 외쳤을 때...(강유원)

-1927년 아벨 강스가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김남시)

이 대목에 대한 영역본은 (2종 모두) 대략 "When Abel Gance fervently proclaimed in 1927, 'Shakespeare, Rembrandt, Beethoven will make films..."라고 옮기고 있다. 내용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를 만들/찍을 것이다..."이다. 그리고 벤야민의 독어본에서 인용문은 "Shkespeare, Rembrandt, Beethoven werden filmen..."이다. 이 역시 아벨 강스의 불어 텍스트를 벤야민이 옮겨온 것이므로 '원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건 아니다. 구문은 단순한데,  추측하자면 werden이 미래시제 조동사이고(사전에는 werden이 '-가 되다'란 뜻도 갖는 걸로 돼 있다), filmen이 동사원형(부정법)이어야 영역본에 대응한다. 러시아어본도 같은 식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를 만들/찍을 것이다..."가 의미론적으로 동치가 아닌 이상(물론 아니다) 어떤 해석이 맞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나는 5종의 국역본 대신에 영어와 러시아어본이 맞다고 본다. 그건 의미의 논리상 그렇다.  

   

이런 의견을 제시한 후에 동의와 함께 반박 의견도 많이 받았는데, 벤야민의 독어 텍스트뿐 아니라 아벨 강스의 불어 텍스트에 대해서까지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성태의 <'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은행나무, 2003)에 아벨 강스의 말이 이렇게 옮겨진 것을 발견했다. 이 대목이 내 생각과 맞아떨어지기에 '벤야민과 아벨 강스'란 글을 적었더랬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벤토벤은 영화를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왕국은 이전과 같으면서도, 동시에 훨씬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예술적 가치들은 온통 소란스런 전복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며, 게다가 지금까지 있어온 어떤 것보다 위대한 꿈들이 환상적이고도 급작스럽게 꽃을 피울 것이다. 단순한 인쇄기계를 넘어서, 모든 심리적인 상황을 변조할 수 있는 꿈의 공장이요 왕수(금이나 백금 따위를 녹이는 화학용액)요 리트머스 용액이기도 한 영화. 이미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236쪽)

그러나 다시금 반전이 벌어진다. 최성만 교수의 '발터 벤야민 선집'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외>(길, 2007)에서는 이 대목을 예전판들과 마찬가지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벨 강스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 … 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종교의 창시자, 모든 종교까지도 필름을 통해 부활될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 모든 영웅들이 영화의 문전에 몰려들고 있다"고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그는 - 물론 그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을 아니지만 - 광범위한 전통의 청산에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47-48쪽, 106쪽)

이에 대해서는 출판기획자(현재는 도서출판 난장 대표) 이재원 씨가 다시금 이견을 정리해준 바 있다('벤야민에 관한 첫번째 수다' 참조). 여하튼 '소수 의견'에도 불구하고 아벨 강스는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통용되던 차였는데, 작년 가을에 나온 <크리티카 4호>(올, 2010)에 루카치를 전공한 '자유 연구자' 김경식 씨가 벤야민의 텍스트를 '기술적 복제가 가능한 시대의 예술작품'이라고 재번역하면서 이 대목을 이렇게 옮겼다.  

1927년에 아벨 강스가 다음과 같이, 즉 "셰익스피어와 렘브란트와 베토벤은 영화를 찍을 것이다... 모든 전설, 모든 신화와 모든 설화, 모든 종교 창시자, 아니 모든 종교까지도... [카메라의] 빛이 비친 부활을 기다리고 있으며, 영웅들은  [영화의] 문전에 몰려들고 있다."라고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그는 아마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전통가치의] 포괄적인 청산으로 초대했던 것이다.(291쪽) 

역자는 해제의 각주에서 난장출판사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이재원 씨의 글을 참고했고 애초에 아벨 강스의 말을 "영화화 될 것이다"라고 옮겼다가 "영화를 찍을 것이다"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내 생각엔 그렇게 해서 번역 텍스트상으론 최초로 셰익스피어와 렘브란트와 베토벤이 '영화화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찍게 될 것'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이윤영 교수의 번역에서 이 대목은 다시금 이렇게 옮겨졌다. 

그리고 1927년에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미래에 태어날]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를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전설, 모든 신화학, 모든 신화, 모든 종교의 창립자, 모든 종교 그 자체까지도 ... 스크린 위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며 영웅들이 서로 떼밀면서 영화의 문전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때 그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우리를 광범위한 청산으로 초대했던 것이다.(107쪽)

이로써 논란이 된 벤야민의 한 문장, 아벨 강스의 말 한 마디에 대해선 정리가 되는 듯싶다. 오래전에 제시한 '사소한 이견'이 결말을 본 듯해서 일의 자초지종을 한번 더 적었다...  

11. 04. 24. 

P.S. 참고로 또다른 온라인 번역판인 신우승본(http://tobebuff.egloos.com/1420194)에서는 아래와 같이 옮겼다.  

그리고 1927년, 아벨 강스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과 같은 감독]이 [나타나] 영화를 제작할 것이다.(...) 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신화적 인물, 모든 종교 창시자, 모든 종교가 [영화의] 빛을 통해 부활을 기다리며, 또 모든 영웅도 [영화의] 문전에 몰려든다."라고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그는 - 물론 그럴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 [전통의] 광범위한 청산에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과 같은 감독]"을 나는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과 같은 창조적 천재들"이란 뜻으로 이해하지만, 여하튼 그들이 문학이나 미술, 음악 대신에 영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옮긴 점에서는 신우승본도 뜻을 같이한다. 한가지 보태자면, 역자의 블로그에는 영국 킹스 대학의 피터 애덤슨 교수가 진행하는 철학사 프로젝트(http://www.historyofphilosophy.net/)가 번역돼 있다(http://tobebuff.egloos.com/category/PeterAdamson_HoP). 저자의 동의를 얻은 번역이라고 하는데, 철학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겐 유익한 자료가 됨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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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5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의 근대가 일본의 근대와 마찬가지로 이식된 제도의 근대이고 '번역된 근대'라는 사실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아직까지 학계의 통설은 아닌 듯싶다.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이 일본 작가의 정치소설을 번안한 작품이란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고 하기에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창작이 아니라 번안작이라고 하여 국가적 위신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문학사와 번역문학사 사이에서 번안문학사의 자리를 새롭게 마련해야 할 필요성은 제기된다. 아직도 할일은 많아 보인다...

  

한국일보(11. 02. 28) 개화기 문학은 日메이지 문학 본뜬 것?

근대 초입 개화기 문학의 대표적 작품들이 일본 메이지(明治)시대 문학의 번안 작품이라는 사실이 근래 수년간 소장 연구자들에 의해 속속 밝혀지면서 개화기 문학 전반에 대한 인식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식민사관 극복과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근대 문화를 자생적 흐름에서 찾으려 했던 그간의 연구와 달리 소장 연구자들은 "인정할 것은 인정한 바탕에서 근대 자체를 반성해 보자"며 각종 작품의 서지사항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서재길 서울대 규장각 HK연구교수는 최근 신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안국선의 <금수회의록>(1908)이 일본의 사토 구라타로가 1904년에 출간한 정치소설 <금수회의인류공격>의 번안 소설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금수회의인류공격>은 까마귀 개구리 벌 게 박쥐 닭 등 44가지 동물들의 연설이 이어지는 구조인데 <금수회의록>에 나오는 8가지 동물이 모두 등장한다. 특히 작품 서언에 해당하는 부분은 번역이라 할 만큼 표현 자체가 거의 같다. 서 교수는 "원본 소설의 '서언'을 비롯한 본문의 50% 가량이 <금수회의록>과 일치하고 <금수회의인류공격>의 삽화와 <금수회의록> 표지 그림이 유사하다"며 "<금수회의록>이 창작품이란 그간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앞서 최초의 창작 희곡으로 알려진 조중환의 <병자삼인>(1912)도 일본의 신파극 <우승열패>를 번안한 작품임을 김재석 경북대 교수가 2005년에 밝혀냈고, 최초의 단편집으로 평가받던 안국선의 <공진회>(1915)에 실린 '인력거꾼'도 재일동포 연구자에 의해 번안물임이 확인됐다. 근대 문물이 조선에 급속히 밀려오던 1890년대에서 1910년대를 이르는 개화기 문학은 신소설 신체시 신파극 등이 등장하며 고전문학에서 벗어나 근대문학으로 이행하던 단계였다. 신소설의 대표작인 이인직의 '혈의 누'(1906)도 번안 작품이란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고,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역시 일본 신체시를 모방한 작품이란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정선태 국민대 교수는 "작가들이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개화기 문학이 일본 메이지시대 문학의 문법을 차용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본 문학의 영향을 거쳐 1920년대에 이르러 김동인 염상섭 등에 의해 본격적인 한국 문학만의 문법을 갖게 됐다는 평가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일본 메이지 문학 상당수도 서양의 근대 작품을 모방하거나 번안했다는 사실이 근래 밝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화기 대표적 번안 소설인 조중환의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가 주인공인 소설)의 원작 소설로 잘 알려져 있는 오자키 코요의 <금색야차>가 영국 여류 작가인 버서 클레이의 <여자보다 약한(Weaker than a woman)>을 모방한 것임이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2000년에야 밝혀졌다. 서 교수는 "<금수회의인류공격>을 쓴 사토 구라타로가 당시 셰익스피어 작품을 번역했을 정도 서양 작품을 잘 알고 있어서 그 역시도 동물이 등장하는 서양 작품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연구를 해 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1970~80년대 때만 해도 민족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개화기 문학에서 식민사관 극복 가능성을 찾고 재래적 전통을 강조하는 연구가 봇물을 이뤘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객관적 사실을 냉정히 인식하자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근대 자체를 일국적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틀에서 사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서 교수는 "민족국가의 폭력성이나 근대 자체에 대한 반성이 본격화하면서 젊은 세대 연구자들이 '이식문학론'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며 "번역이나 번안했다고 콤플렉스를 가질 게 아니라 번역이 근대의 또 다른 특징이었음을 인식하고 번역이 만들어 내는 실천적 측면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송용창기자) 

11. 03. 06. 

 

P.S. '번역된 근대'와 관련하여 기본서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 2000)이다. 일본의 번역문학과 관련한 더 자세한 책이 소개됐으면 싶지만 아직은 희망사항이다. 정선태 교수의 <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소명출판, 2006)에도 번역과 근대에 관한 글들이 여럿 포함돼 있다. 김욱동 교수의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2010)는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제 첫번째 코너에 접어든 느낌이고, 앞으로 더 많은 연구서들이 나옴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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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4일에 주문해놓고 한달 넘게 받지 못하고 있는 책이 있다. 알랭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1>(새물결, 2010)이다. 발행연도는 2010년으로 돼 있지만, 아직 미출간도서다. 어떤 사정인지 조금씩 늦춰지더니 지금은 2월 14일이 출간예정일로 돼 있다. 아마도 인쇄과정에서 무슨 '사고'가 있었거나 결정적인 하자가 뒤늦게 발견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책은 12월 말에 눈에 띄자 마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고 해가 바뀌자 곧바로 주문을 넣었다. 그러면서 자세히 확인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목차를 보니 번역본은 전체 8개 장 중에서 앞의 두 장을 옮긴 것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앞으로 세 권이 더 나와야 한다. 영역본의 경우에도 500쪽이 좀 넘으니까 분권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굳이 4권짜리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완간까지 좀 시간이 걸릴 거라는 암시도 되기에 약간 우려스럽기도 하고(저자가 강준만이라면 모를까).  

전례가 없지도 않다. 슬로터다이크의 <냉소적 이성 비판1>(에코리브르, 2005)은 곧 나온다던 2권이 6년째 나오지 않고 있으며, 가다머의 주저 <진리와 방법1>(문학동네, 2000)은 10년째 감감 무소식이다. 분량상 두 권쯤은 더 나와주어야 하는데, 독자의 기억에도 가물가물하므로 아마 역자나 출판사 모두 '포기'한 상태이지 않을까 싶다.   

독자마다 '사다 만 책'과 '읽다 만 책'의 리스트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오다 만 책'은 좀 유형이 다르다. 그런 가능성 자체를 봉쇄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책을 사다 말거나 읽다 말기 위해서라도, 그런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나와줘야 한다. 혹시나 <존재와 사건>의 경우에도 '나오다 만 책' 대열에 합류하게 될까 싶은 노파심이 들어서 간단히 적었다...  

11. 02. 05.

P.S. '나오다 만 책'도 있지만 더러는 '안 나오니만 못한 책'도 있는데, 랑시에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그런 경우였다. 조만간 새 번역본이 나온다고 한다. 그밖에도 랑시에르의 책이 올해 적어도 두세 권은 더 나올 듯싶어서 그의 화려한 '컴백'이 예상된다. 개인적으론 <문학의 정치> 영역본이 이달에 나온다는 사실이 반갑다. 2008년에 '문학과 정치'란 화두를 던졌던 랑시에르와의 조우도 이제 '2회전'에 접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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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0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도 같은 운명을 맞는 건 아닐까요? 1권이 나온 지 1년 가까이 지났는데... 다음 권이 나왔다는 얘기가 없어서요ㅠㅠ

설 연휴도 끝물이네요. 2월은 짧은 달이라 하루하루가 아쉬워질 것 같아요. 아무래도 더 바빠지실 텐데 건강 잘 챙기시길...^^

로쟈 2011-02-06 12:12   좋아요 0 | URL
새물결에서 나올 세계문학전집에는 포함돼 있던데요. 어쩌면 올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해줘 2012-05-1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여다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무질의 그책도 '안나오니만 못한 책'의 대열에 끼어있죠. 그 정도 번역 퀼리티를 내놓는 책임감을 짐작해 보면 안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듯.

로쟈 2011-02-06 12:13   좋아요 0 | URL
안 사두길 잘 했나 보네요.^^;

교고쿠도 2011-02-0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존재와 사건>이 꽤 끌리네요. ^^그런데 아직 미출간이라니 흐음...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좌절입니다.

로쟈 2011-02-06 12:13   좋아요 0 | URL
한참은 아니고, 내주에 나오는 걸로 돼 있습니다...

헌내 2011-02-0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슬로터다이크면 지젝이 자신의 이론에 차용한 사람 아닌가요?
2008년 세계철학대회 때 우리나라 왔다 가신 걸로 알고있는데...^^

로쟈 2011-02-06 23:20   좋아요 0 | URL
그 전에 2004년에 강연차 왔었지요...

마라난타384 2011-02-07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 2일에 주문하고 며칠 후 품절이라고 뜨는 걸 보면서 내심 즐거워했는데 벌써 한 달 째 기다림이 계속됩니다.
출간 예정일이 벌써 세 번이나 연기 된터라 14일에 정말 나올지도 미지수네요 ㅡㅡ;

로쟈 2011-02-07 08:45   좋아요 0 | URL
오래 걸리는 걸로 봐서는 번역상에 문제가 있었던 듯합니다. 편집이나 인쇄상의 문제였다면 이렇게 오래 지체되진 않을 텐데요...
 

지난주말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주최한 '세계문학전집 번역의 의의와 전망'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여했었다. 심포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0. 12. 20) "세계문학전집 붐 속 새로움·번역 윤리 부족” 

국내 출판계에 세계문학전집 출간 붐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세계문학전집 번역의 의의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학회는 18일 숙명여자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윤지관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세계문학전집시장을 선두하고 있는 민음사 장은수 대표,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편집위원 신광현씨 등을 초청해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윤 전 원장은 ‘세계문학 번역과 근대성’이라는 기조 강연을 통해, 근대에 생겨난 세계문학이라는 이념이 탈근대시대인 21세기에 부활하는 현상에 대해 진단하면서 ‘21세기의 세계문학’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국민·민족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문학, 혹은 하나로 단일화된 세계시장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작품을 세계문학이라고 한다면, 그런 유형의 세계문학은 이 지구화의 시대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등장으로 실현됐다”고 설명하면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위시해 댄 브라운, 파울로 코엘료, 스티븐 킹,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탈민족적’ 작가들은 지구화된 시대의 세계출판시장을 장악하는 새로운 유형의 지구적 문학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전 원장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세계화의 합당한 문학적 성과물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문학에 밀어닥친 위기, 문학 자체의 위기를 말해준다”면서 “문학의 상품화가 세계문학의 근거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구화라는 대세 속에서도 ‘민족’ 혹은 ‘민족문학’이라는 요소는 여전히 현실성을 갖고 있다”면서 “자본주의가 각 지역에서 발현시키는 모순의 현장을 포착하고, 그 현실을 토대로 이룩해나가는 문학적 성취를 세계적으로 공유하는 활동이야말로 세계문학”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자기복제식 세계문학 번역 현황에 대한 날선 비판도 나왔다. 문학평론가 조재룡씨는 195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번역본들을 비교하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번역본들”이라고 꼬집었다. 조씨는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판본들에 대해 “제1세대 번역가의 번역을 이후 판본들이 거의 베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59년 김붕구 번역으로 출간된 동아출판사 세계문학전집과 조홍식 번역으로 출간된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인간의 조건>을 이후 을지출판사, 동서문화사, 지성문화사 등에서 “거의 옮겨 적다시피하고 하고 있는 현실”을 구체적 구절까지 사례로 들어가며 비판했다. 조씨는 또 발췌 번역에 대해서도 “사유의 살결들을 잘라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대 우후죽순처럼 기획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 번역은 엄청난 분량, 참여한 출판사 수의 넉넉함에서가 아니라 번역의 윤리를 되새기면서 독자에게 떳떳한 번역을 선보일 때 의미가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번역가 이세욱씨는 ‘새로운 번역’이 유행처럼 번지는 행태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이씨는 “이전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주장하는 새 번역을 읽다가 이전에 아무도 범하지 않았던 새로운 오류를 봤다”며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에 영합하기 위해 옛것과의 단절을 기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이영경기자)   

한국일보(10. 12. 20) 세계문학전집 '다양성 함정'에 빠졌나

민음사, 을유문화사, 열린책들,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 푸른숲, 시공사, 책세상, 펭귄클래식코리아 등 여러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을 동시다발로 내고 있는 요즘은 정음사, 을유문화사, 신구문화사 등의 세계문학전집이 시장에서 호황을 누렸던 1960~70년대에 비견할 만하다. 이른바 ‘제2의 세계문학전집 붐’으로 불리는 이런 현상에는 문학 고전의 독자 저변을 넓혔다는 긍정적 평가 한편으로, 구미 편중의 작품 목록, 같은 작품의 중복 번역, 수요를 넘어선 전집 난립 등 부정적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전성기 고려대 교수)가 지난 18일 숙명여대에서 개최한 심포지엄 ‘세계문학 전집의 번역의 의의와 전망’은 국내 세계문학전집 출간의 의미와 문제점을 다각도로 짚은 자리였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의 기조강연에 이어 제1부에서는 장은수 민음사 대표와 을유문화사 전집 편집위원인 신광현 서울대 교수, 제2부에서는 번역가 이세욱씨와 문학평론가 조영일씨, 조재룡 고려대 교수가 각각 발제했다.

특히 2부에서는 현행 세계문학전집 출간 양상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조영일씨는 “세계문학전집이 화제가 되고 출판사들이 앞다퉈 전집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초로, 전년도 말에 민음사가 전집 100권 묶음을 홈쇼핑에서 판매해 성공을 거둔 무렵”이라며 “현재의 세계문학전집 붐은 출판사들의 기획력보다는 유통구조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씨는 “전집은 마땅히 편집위원들이 서로 합의한 원칙과 철학에 따라 작품 목록부터 확정, 공개하고 그에 따라 출간해야 하는 폐쇄적 출판물”이라며 “지금의 세계문학전집은 한국문학이 지닌 비평적 역량의 총집결이라기보다는, 편집위원을 맡은 언어권별 대학교수들의 분업과 출판사의 상업주의로 인해 작품 목록이 중구난방”이라고 혹평했다.

이세욱씨는 전집들이 같은 작품을 출간하면서 발생하는 재번역을 문제 삼았다. 이씨는 “출판사들이 물량과 구색을 갖추기 위해 재번역에 번역자들을 총동원하고 있다”면서 “재번역된 작품을 보면 번역자의 새로운 해석을 찾아볼 수 없는, 재번역과 개칠(改漆ㆍ덧칠)을 혼동하는 번역이 눈에 띈다”고 일갈했다. 그는 “널리 읽히던 번역이 신역(新譯)에 정본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 세계 번역사에서 흔한 일이기는 해도, 우리의 ‘번역 갈아치우기’는 속도와 규모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라며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번역’을 명분으로 앞선 세대의 번역을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낭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프랑스어권 번역가 정혜용씨도 “문학 번역 평가 프로젝트에 참여해 시대별 번역작을 살펴본 결과 선배 세대의 번역에는 언어 오류는 많아도 그걸 상쇄할 만한 문체의 힘이 느껴지는데 근래의 번역들은 문장이 밋밋하고 맛이 없다”며 “이는 (번역자보다는) 편집자의 역할이 더 커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룡 교수는 현재의 세계문학전집 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민음사 전집이 발행된 1998년 이전 국내 세계문학전집들의 ‘베끼기 번역’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지적하면서 “지금의 세계문학전집 번역은 시장 논리에 충실하면서 얻어낸 독자들의 환대가 아니라, 독자에게 기존 번역본과 확연히 차별된 결과물을 보여주려는 윤리적 자세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훈성기자) 

1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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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구화시대 문학의 쟁점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2-28 23:30 
    다수의 세계문학전집이 백가쟁명에 접어든 시점에 걸맞게 세계문학론을 전체적으로 조감한 책이 출간됐다. 창비담론총서의 네번째 책으로 나온 <세계문학론>(창비, 2010)이 그것이다. 부제는 '지구화시대 문학의 쟁점들'. 개인적으론 <창작과비평>(2007년 겨울호)에 실었던 글도 재수록돼 반갑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참고로, <안과 밖>(2010년 하반기)도 세계문학론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
  2. The Ultimate Reader’s Edition
    from tran/ SLATE 2011-03-10 10:22 
    출판사와 독자 모두를 위한 고전 문학 기획안 | 로쟈 선생의 이 글을 읽고 알게 됐는데, 현재 10여개 이상의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이미 번역본이 나와있는 책들은 새로이 번역되어 나오는 모양인데, 여기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다음은 이세욱 선생이 한 말이다. 출판사들이 물량과 구색을 갖추기 위해 재번역에 번역자들을 총동원하고 있다… 재번역된 작품을 보면 번역자의 새로운 해석을 찾아볼 수 없는, 재번역과 개칠...
 
 
cyrus 2010-12-2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부터 안 읽어봤던 세계문학전집들을 읽고 있는데, 그동안 무척 궁금했었던
번역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해갈되었네요. 하필 어제 읽은
세계문학전집에 대해서 언급한 장정일 씨의 독서일기에서는
전공자가 아닌 문외한 번역가들이 세계문학전집 역자에 버젓이 등장하는 것을
비판했는데, 로쟈님의 글을 비추어보면 양을 늘리기 위한 출판사의 상업주의 전략 때문에
재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작품 전공에 문외한 번역가들이 동원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10-12-24 13:45   좋아요 0 | URL
조영일 씨 발표문은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문학론에 대해서는 창비담론총서로 최근에 나온 <세계문학론>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주말과 휴일에 연이어 강연행사에 다녀왔더니 '정신력'이 바닥이다. 써야 했던 원고들이 고스란히 밀렸으니 내주, 아니 당장 오늘 일정이 빡빡해졌다. 혼미한 틈에도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서 일단은 스크랩해놓는다. 시 번역에 관한 것인데, 최정례 시인이 자신의 시 영어 번역에 참여한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기억엔 김광규 시인의 경우에도 자신의 시 독일어 번역에 참여했던 듯싶다(시인 자신이 독문학자이다). 이런 경험들을 모아놓아도 번역뿐 아니라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부가 되지않을까 싶다. 

경향신문(10. 09. 13) “시 번역, 장벽 넘기 어려워… 원작자가 직접 참여 중요”   

“문학작품 창작자가 번역에 직접 참여하면 오역을 피할 가능성이 높겠죠. 특히 낯선 외국어의 표현과 어휘를 접하면서 스스로 새로운 영감, 창조적 역량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시는 번역되는 순간 원전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흔히들 말한다. 국내에 번역돼 출간되는 숱한 해외 문학작품들 가운데 시가 별로 없다는 사실도 이를 말해준다. 최정례 시인(55)은 시 번역에 존재하는 까다로운 장벽을 넘기 위해 원작자가 직접 번역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2008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간 미국 버클리대학에 방문학자 자격으로 머문 최 시인은 미국 시인 브렌다 힐먼(세인트매리대 교수)과 함께 직접 자신의 시 53편을 영어로 공동 번역했다. 미국 시 전문 저널 ‘프리 버스(Free Verse)’에 최 시인의 시 ‘보푸라기들(Motes)’ ‘한 오천 살은 먹은 내 마음이(The Five-thousand-Year-Old Heart I’ve Swallowed)’ ‘없는 나무(The Absent Tree)’ 등 9편이 번역돼 실렸다. 최 시인의 시선집도 출판사 ‘팔로프레스(Parlo Press)’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레바논 감정> <붉은 수수밭> 등의 시집을 통해 밀도 높은 시어로 시간과 기억에 대한 시편들을 선보인 최 시인은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받았다.

한국 시인과 미국 시인이 공동으로 직접 자신의 시를 번역하기는 최 시인이 처음이다. 초벌 번역은 한국문학을 전공한 웨인 드 프레메르(Wayne de Fremere)가 맡았고, 최 시인과 힐먼이 원작의 의미를 해치는 표현을 바로잡고 영문 시 형식에 맞도록 가다듬었다. 최 시인은 “양국의 작가가 원작자이자 동시에 번역자의 역할을 했다”며 “공동 번역은 번역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들을 섬세하게 처리해 번역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번역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로 주어의 명확화, 상투적 시어의 번역, 관용어구의 번역, 잠재적 의미의 파괴 등을 꼽았다. 한국 시의 경우 주어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영시의 경우 구조상 주어가 없으면 문장 구성이 불가능해진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최 시인은 “번역이 불가피하게 변형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생략된 주어를 찾아 새롭게 지시함으로써 모호했던 원전의 의미와 감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숲’이란 시의 ‘아름다운’을 영어로 번역할 때 ‘beautiful’이란 표현이 너무 상투적이라는 조언에 따라 ‘ultimate’ ‘ideal beauty’로 번역하기도 했다. 

“영어로 번역했을 경우 원본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들이 있어 신비하게 느껴졌어요. ‘한 오천 살은 먹은 내 마음이’의 경우 영어로 번역하고 나니 오히려 더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미국에는 김소월·김지하·고은 등 몇몇 한국 시인들의 시가 번역돼 있지만 미국인들에게 잘 읽히지는 않는 상황이다. 최 시인은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경우 해외의 현대 시와 감각이 통하기 때문에 잘 번역될 수 있다면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고 말했다.(이영경기자)  

10. 09. 13.

 

P.S. 잘 읽히지 않는다는 번역이지만, 한국 시의 영역본은 국내에서도 읽어볼 수 있다. '답게 한국문학총서'로 10권이 출간돼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2-3권 갖고 있는 시리즈이고, 아예 이 번역시를 대상으로 한 시 비평을 고려해보기도 했었다. 나중에라도 좀 여유가 생기면 손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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