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한 달 못 되게 남겨놓은 탓에 방안은 책으로 거의 포화상태다. 지난주 교수신문 기사를 스크랩해놓으려고 두리번거리다 김욱동 교수의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2010)도 10분만에 찾았다. 손 닿는 곳에 놓았다는 책도 그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글을 쓴다는 나 자신이 신기하다(가끔은 차포 떼고 장기를 두는 기분이다). 여하튼 책을 찾았으니 관련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교수신문(10. 07. 19) “번역은 근대화의 빗장 연 열쇄” … 金億, 번역사의 분수령이었다  

2007년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출범한 이래 번역에 대한 관심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번역의 역사를 훑는 통사적 접근은 드물었다. 이런 와중에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가 번역과 관련한 두 권의 책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근대의 세 번역가』를 상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두 책은 근대와 번역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번역과 한국의 근대』는 번역과 한국의 근대가 일본과 달리 ‘重譯된 근대’란 익숙한 주장을 펼친다. 『근대의 세 번역가』는 서재필, 최남선, 김억 등 근대에 활동했던 세 명의 번역가를 통해 중역에서 직역으로 넘어가는 근대 번역의 모습을 인물에 집중해 풀어냈다.

번역은 한국 근대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번역과 한국의 근대』는 갑오개혁에서부터 기관지 <해외문학>이 발행되던 1920년대 말엽까지 한국번역의 역사를 육하원칙에 따라 심도 있게 밝힌다. 김 교수에 따르면 번역은 일본과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근대화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열쇄가 됐다. 때문에 만약 서구 문헌이 번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뒤늦게 이뤄졌거나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중번역이 근대를 왜곡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근대를 ‘중역한 근대’로 결론짓는다. 이 같은 주장은 일본의 두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의 근대』(1998), 리디어 류(Lydia H. Liu)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의 『통언어적 실천』(1995)이 모태가 됐다. 특히 류 교수는 중국이 서양 문헌을 번역함으로써 근대화를 이룩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근대를 ‘번역한 근대’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중역한 근대’가 비롯되는 지점이다. 한국의 번역은 대개 서구 언어에서 일본어를 거쳐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이중 번역이었다. 심지어 서구 언어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거치거나 제3세계 언어에서 서구 언어와 일본어를 거치는 삼중 번역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근대화는 굴절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자못 안타깝다는 지적이다.

일본인 번역가나 중국인 번역가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번역해 놓은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때론 한국에는 필요 없거나 오히려 해롭기까지 한 문헌까지 무작위로 들어오게 됐다. 이것은 일찍이 1909년 1월 <대한매일신보>의 논설 ‘번역가에게 일고함’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번역자는 서양 문헌을 번역하되 반드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유길준 역시 서구 문물의 맹목적인 수용을 경계하면서 겉모습만 따르는 개화를 ‘개화의 병신’이라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중역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가 아닌 근대 사상이 문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중역의 문제를 당시 어쩔 수 없었던 차악의 선택이라 변호한다. “만약 이러한 중역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어두운 중세의 터널을 지나는 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며 “‘중역한 근대’가 바로 우리 근대의 모습이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김욱동 교수의 두 책은 한국번역사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한 김병철 교수의 『한국근대번역사연구』(1975), 『한국서양문학이입사연구』(1980)에 맥이 닿아있다. 그러나 기존의 번역 이입사 연구는 자료 수집 차원에 머물러 있었던 게 사실이다. 김욱동 교수는 김병철 교수가 이룩한 작업을 토대로 번역과 근대화의 상관관계를 규명함으로써 기존 성과를 한 단계 구체화 한다.

공리성의 굴레 벗어난 ‘김억의 번역’ 
『번역과 한국의 근대』가 근대 계몽기 번역이 한국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규명한다면 『근대의 세 번역가』는 한국 근대 문학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 데 가장 공헌한 세 번역가를 집중 조명한다. 세 번역가는 바로 松齋 서재필, 六堂 최남선, 岸曙 김억이다.

김 교수는 이들 세 번역가를 역사의 시대 구분에 빗대 국내 번역사에서 서재필은 고대, 최남선은 중세, 김억은 근대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서재필을 번역가로 부르는 데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 문명개화를 부르짖는 과정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단편적이나마 직역을 피하고 의역을 주장하는 등 나름의 번역이론을 전개했다.

최남선은 신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비록 중역의 형식을 빌려서나마 외국문학 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少年>(1908)과 <靑春>(1914) 등을 창간해 서구 문학작품을 집중적으로 번역해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작품 창작 과정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번역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 번역사는 김억을 분수령으로 중역에서 직역으로 전환한다. 김억은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러시아, 영국의 시를 집중적으로 번역했으며 1921년 한국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출간한다. 김 교수는 김억의 번역시가 한국 근대시에 미친 영향을 천착한다.

한국 최초의 순수문예지 <창조>(1919)와, <폐허>(1920)의 탄생에 산파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근대 문학으로 하여금 공리성의 굴레를 벗어나게 했다. 문학의 심미성과 쾌락성에 좀 더 무게를 실은 김억의 번역시로 인해 공리성에 기울어져 있던 당시 문단은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게 된다. “김억에 이르러 비로소 번역은 일본 식민주의 굴레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다”는 결론이 가능한 이유다.

김 교수는 “1920년대 말엽 한국 번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외국문학연구회의 활동을 미처 다루지 못한 것은 이번 저술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며 과제를 남겼다. 1926년 가을 일본에서 외국문학을 전공한 유학생들이 결성한 외국문학연구회는 그 이듬해 기관지 <해외문학>을 간행해 한국의 번역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김 교수는 이들의 활동을 다룬 단행본을 계획 중이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국내 출간 도서 중 30퍼센트는 번역서가 차지한다. 그럼에도 국내 번역은 늘 오역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뇌의 무도』가 번역된 지 한 세기가 가까워 오는 지금 김 교수의 이 같은 작업이 국내 번역의 안정된 기반 구축에 한 계기가 될지 그 행보를 기대해 본다.(우주영 기자) 

10. 07. 25.    

P.S. <번역과 한국의 근대> 서문에서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지만, 두 가지 사항을 덧붙인다. 먼저, 김병철 교수의 공적. "나는 이 책을 쓰는 데 누구보다도 기병철 교수님한테서 진 빚이 무척 크다. 교수님께서는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연구>(1975)를 집필하시어 한국번역사 연구에 그야말로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저자는 정당하게 지적한다. 일반 독자에겐 그냥 '자료집'처럼 여겨질 테지만 "한국번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마치 금강석 원석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와 같은 책이다. 러시아문학 번역사와 관련하여 나도 참고한 적이 있는데, 아쉬운 것은 도서관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절판된 책이라는 점. 시중에 남아있는 건 속편으로 나온 <한국현대번역문학사>(상, 하) 정도다(그마저도 알라딘에서는 품절이다). 다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둔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목에서 이미 풍기고 있지만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데 자극이 된 책 두 권. 기사에서도 "일본의 두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의 근대』(1998), 리디어 류(Lydia H. Liu)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의 『통언어적 실천』(1995)이 모태가 됐다."고 밝혔다. 저자는 두 사람의 책이 "내 책의 어버이"라고까지 했다. 한데, 특이한 건 <통어적 실천>이란 책의 번역서가 '리디아 리우'의 <언어횡단적 실천>(소명출판, 2005)이라고 나와 있음에도 참조되지 않은 점이다(참고문헌에도 빠져 있다). 저자가 번역서의 존재를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모양새다. 전자일 걸로 짐작되지만, 문제는 출판사쪽. 다른 곳도 아니고 같은 출판사에서 낸 책의 서지사항을 "리디어 류의 <통언어적 실천>"이라고 기재되도록 '방치'한 건 너무 무심한 처사다. 그들은 자기가 무슨 책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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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지 2010-07-2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명은 참 좋은 출판사인데... 마지막 부분은 좀 .. 희비극적이네요.

로쟈 2010-07-26 01:07   좋아요 0 | URL
주로 독자의 무관심을 탓하게 되는데, 가끔씩 출판사들도 무심할 때가 있지요.^^;

2010-07-26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번역이냐 반역이냐

격주간 <기획회의>(274호)에서 '<기획회의>'가 만난 사람' 꼭지를 읽었다. 인터뷰이는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이다. 밀턴과 칼라일 연구자이자 <서양 문명의 역사> 등 다수 번역서의 역자, 그리고 <번역은 반역이다>의 저자. 인터뷰의 타이틀은 '인문학, 지금부터 '새 역사'를 써야 한다'인데, 번역 문제와 관련하여 경청할 만한 대목들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우리의 경우 인문학의 황금기가 따로 없었기에 인문학 '부흥'을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 박 교수는 그럼에도 인문학 부흥을 위해 다져야 할 기본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먼저 독서 문화가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뒷걸음만 치고 있군요. 90년대만 해도 인문서 초판을 2,000-3,000부도 찍었는데 요즘은 500부, 1,000부더군요. 점점 더 책을 안 사본다는 거지요. 게다가 대학 교수들은 마치 올림포스 산 정상의 신들처럼 고고한 상아탑에 유폐된 채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아니, 소통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아요. 평생 인문학 교수 했다면서 대중과 소통 가능한 저서 한 권 없이 정년을 맞이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분을 과연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제도권 속에서 요구하는 논문만을 줄곧 쓴다는 점에서 '인문 기능인'이라고 해야지 않을까요?"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와 번역 문제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한다.  

"인문학이란 기본적으로 글읽기와 글쓰기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의 한글 콘텐츠는 정말 빈약하지요. 읽을 글이 태부족입니다. 한글은 창제된 후 상당히 오랫동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고, 20세기 전반기에는 식민지 지배를 겪으면서 활용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결국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번역을 통한 양질의 한글 텍스트 확보는 시급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온전한 콘텐츠 확충을 위해서는 번역이 절실해요. 전 세계 모든 지식과 정보를 모국어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와 비전이 있어야죠. 모국어에 대한 이런 포부와 야망마저도 없다면 이런 나라를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전시작전권' 환수도 버거워하는 국가인지라(이유야 어찌됐든 소위 '군사주권'을 방기하는 것인데) '지식주권'까지 바란다는 건 너무 무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건 현재 우리나라의 번역과 인문학 수준에 대한 박 교수의 평가인데,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서구 편향적 교육을 받아온 우리는 이슬람 문명을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슬람교가 창시된 직후 수백 년 동안 아랍인들은 찬란한 문명을 창조해냈습니다. 이슬람 문명권은 750년에서 900년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저작'을 아랍어로 번역했지요. 그것을 12세기 서유럽인인 라틴어로 중역해서 만든 것이 기독교 신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결합한 스콜라 철학이고요. 그런데 21세기 우리는 아직도 한글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없습니다. 아랍보다 1,100년, 서유럽보다는 900년 뒤졌네요.   
시인 김수영은 1960년대 중반에 쓴 산문에서 '1930년생'을 기준으로 세대를 구분했어요. 1930년 이전에 태어난 '구세대'는 해방되던 1945년에 15세 이상이었고 따라서 일본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죠. 반면 1930년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는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세대입니다. 김수영은 구세대가 일본어를 통해 문학의 자양을 흡수한 데 비해, 신세대는 일본어 해독 능력의 결여로 지적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수영은 신세대 문학 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했어요.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른는 까닭에 세계문학의 흐름에서 차단된 그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지성'이라는 겁니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글 콘텐츠를 일본어 못지 않게 늘리는 일이야말로 국운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지적했어요.     
흔히 일본을 번역 천국이라고 하죠. 일본어로 세계의 고급 정보와 지식을 다 습득할 수 있어요.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 쿄토산업대 교수는 "영어를 못해 물리학을 택했다"고 농담할 만큼 영어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어요. 대학원 시험 때 지도교수가 그의 외국어 시험을 면제해줄 정도였고 평생 외국도 못 나가 여권도 없었습니다. 저는 한글만 갖고서도 노벨상을 탈 정도가 돼야 선진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봅니다."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아예 '번역국'을 설치하여 국가 주도하에 수천, 수만 종의 서양 학술서를 번역했던 일본의 처지와 견주어 보면 우리는 100년 이상 뒤진다는 것이 박 교수의 냉정한 평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이미 19세기에 어머어마한열정으로 시작한 일을, 우리 사회는 지금도 그 필요성을 조자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번역에 대한 학계의 무관심과 제도적 냉대에 대해서 박 교수는 이렇게 꼬집는다. 

"인문학자들에게 정체성 자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모국어를 튼실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인문학에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성찰할 줄 몰라요. 미국이나 독일 등지의 대학원은 외국학(동양학) 연구자들에게 석박사 학위논문으로 번역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외국학을 할 경우 번역을 연구 실적으로 인정해야 마땅하지요. 그런데 그런 주체성에 입각한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한국사람이 아닌 미국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나 봐요." 

마지막 멘트는 농담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절반은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자녀들은 '미국인' 아닌가. 끝으로, 나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환기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주제인데, 번역 문제와 민주주의의 관련성이다.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는 인구는 극소수입니다.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10개 땄다고 해도 영어책을 한글책처럼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한글 콘텐츠를 확충해서 영어가 아니더라도 한글만으로 전 세계의 고급지식과 정보를 다 접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가 되는 거지요.
조건이 여의치 않다고해서 번역가와 출판인들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의병을 일으켜 위기를 극복한 역사적 경험을 갖지고 있어요. 어려운 상황일수록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좋은 번역서를 출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출판의 정도를 걸어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번역의 힘'을 만끽하도록 하는 일, 그것은 21세기 지식정보사회의 민주화운동이며 나라살리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병운동'과 '나라살리기 운동'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지식정보사회의 민주화운동'으로서 번역이 갖는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고 평가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환기시키고픈 의도에서 박상익 교수의 인터뷰를 옮겨적었다... 

10. 07. 02.  

 

P.S. 박상익 교수와 마찬가지로 번역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영문학자 김욱동 교수가 번역과 한국 근대를 다룬 책 두 권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2010), <근대의 세 번역가: 서재필, 최남선, 김억>(소명출판, 2010)이 그 두 권의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이라 바로 주문을 넣고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는 100년 전에 번역 문제를 어떻게 인식했고 또 어떤 작업을 했던가 살펴볼 수 있겠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 또한 100년 뒤에 똑같이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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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0-07-0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올 선생이 거의 25여년 전에 했던 주장이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군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요?

물론 전체적인 문제의식에는 십분 공감은 하지만 예로서 거론 된 것들이 좀 부적절하다 싶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에 1100년 900년 뒤졌다고 하는 건 좀 어폐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전달된 후 100여년 지났을 테니 그 시점 이후부터 따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인물임을 전제한다면 아랍어 번역이 나오는 데 거의 1000년 이상 걸린 셈이고 그리스 문명에 매우 친화적이었던 라틴어 번역도 아랍어 중역을 통해 거의 13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나온 셈이니까요. 물론 문화교류의 스피드를 그 시대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아마 번역에 열심이었던 일본에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이 얼마만에 나왔나와 비교한 예를 들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거에요. 그리고 중세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당시 학문의 중추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과연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 사회에 그정도의 비중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구요.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는 암암리에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세뇌도 보입니다...

김욱동 교수님 책은 저도 관심이 가는 군요.^^

로쟈 2010-07-02 21:38   좋아요 0 | URL
약간 '과장'된 면도 있지요. 서양사 전공자라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예로 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동시대 문제작들도 바로바로 소개되는 건 아니니까 저는 사정이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하기야 번역을 기다리는 우리 '고전'도 산적해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을 듯해요...

안티고네 2010-07-20 23:28   좋아요 0 | URL
그렇게 연대만 가지고 단순 비교하시면 곤란합니다.
아랍어 번역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슬람 문명권에서의 번역이라고 해야겠죠. 이슬람신학의 쳬계화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인것이니까요. 622년 시작한 신흥종교 이슬람교가 750-900년에 모든 번역을 마쳤으니 이슬람기원으로부터 130년이 경과된 뒤 본격 번역작업을 시작한 거죠. 이슬람교 초창기 모든 것이 체계가 잡히지 않고 어수선한 그 시대에 불과 130년 지나서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작심을 했으니 정말 대단한 겁니다.
그리스문명에 라틴어가 친화적이었다는 것도 고대로마시대에 국한된 얘기입니다. 로마 멸망 후 500년 넘도록 과거와의 엄청난 단절이 있었습니다. 서유럽 게르만족이 라틴어를 겨우 읽고 쓰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샤를마뉴 시대인 800년경이었지만 11세기 중반까지 서유럽의 문맹률은 99% 이상이었습니다. 대단한 문맹시대였죠. 샤를마뉴 황제도 문맹이었으니 말 다했죠. 한마디로 거의 동물처럼 산겁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면서...유럽은 1050년 이후에야 겨우 농업혁명으로 경제가 피어나고 먹고살만해져서 교육시설이 늘어나고 라틴어 해독능력자도 많아진거죠. 그러니 기아상태에서 벗어나고 사람답게 산지 1세기가 채 안되어서 비록 중역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번역한 겁니다.
그때와 지금의 시간을 똑같은 시간이라고 인정한다 해도(그럴 리가 없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동작이 신속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현대의 엄청난 변화속도를 감안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느려터진 굼벵이 수준이고요.
그리고 로쟈 님이 말씀하셨지만 서양사 전공자가 아리스텔레스 예를 들었다고 '서구중심주의의 세뇌' 운운하는 것은 생뚱맞은 오바로밖에는 안 보이네요. 모국어로 세계의 모든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서구 중심주의로 딱지 붙이는 건 심히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비판을 하면 좀 멋져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공정성은 있어야겠죠?

알비스 2010-07-0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 출판 뿐만 아니라 음반시장을 봐도 일본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구하지 못하는 음반을 일본에서는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를 기록하고 보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죠.
그리고 요즘 출판업계에서도 서서히 전자책이 도입이 되고 있는데 열악한 우리 출판계에 이것이 대중화 되면 불법복제로 출판상황이 더욱 더 악화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로쟈 2010-07-05 08:50   좋아요 0 | URL
촐판계에서도 불법복제 차단 기술에 대해선 다들 회의적이더군요...
 

대출할 책이 있어서 동네 도서관에 갔다오다가 편의점에서 한겨레를 손에 들었다. 북리뷰보다 먼저 읽은 것이 황현산 교수의 칼럼인데, '불문과에서는 무얼 하는가'란 제목이 눈에 들어서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인문학, 특히 어문계열 학과들의 통폐합(상투어론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문제가 분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정작 이런 '생각'이 필요한 이들은 이런 칼럼도 읽지 않을 테고, 이런 서재에도 드나들지 않을 테지만. 아래 사진은 어제 학교측의 '구조조정'에 반대하여 중앙대 학생들이 삭발식을 하는 장면.  

한겨레(10. 05. 01) 불문과에서는 무얼 하는가   

우리 세대가 대학을 다닐 때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주로 두 사람이 방 하나를 같이 쓰는 하숙집에서 기거했다. 내가 만난 ‘룸메이트’ 가운데 법대생이 둘 있었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상수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학창시절 온갖 책을 가리지 않는 독서광이었고, 글을 잘 썼으며, 입을 열면 시정이 넘치는 말을 쏟아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한 사람은 오로지 고시공부에만 전념하는 학생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도서관에서 살았다. 나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그에 비하면 내 공부는 늘 산만했다. 어느 날 그가 나한테 왜 고시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기도 그 질문이 뜬금없다고 느꼈던지 어조를 갑자기 힐난조로 바꾸었다.

불문과에서는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나는 고작 이렇게 대답했다. 불문학과니까 불문학을 하지. 대답이 아니라 대답의 회피였다. 그러나 저 고시생의 확실하고 단단한 신념 앞에서 내 공부의 내용과 목표를 차근차근 이야기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아득한 일이었다. 문제는 내 생애에서 이렇게 질문해오는 사람이 그 사람으로 끝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언젠가는 교육부의 관리가 프랑스의 불문학박사보다 한국의 불문학박사가 더 많다는 얼토당토않은 낭설을 티브이 방송으로 퍼뜨렸으며, 가끔은 대학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이제는 영어 하나면 어디서나 통하니까 프랑스어 교육은 필요 없지 않으냐고 넌지시 묻는다. 교육부 관리의 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프랑스어 교육 불필요론 앞에서 나는 프랑스어가 무역이나 여행을 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거나(실은 그런 일에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먼저 해야 하는데, 상대방은 이어질 말을 듣고 싶은 기색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현재 세계의 문화적·정치적 지형도의 형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프랑스어로 작성되었으며 지금도 작성되고 있는 많고도 중요한 문헌에 관해서는 말할 틈조차 없다. 그 질문은 처음부터 내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봉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사회의 발전에서 앞으로 오게 될 세계의 그림을 문학이 항상 먼저 그려왔으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쩌면 자신의 세계관에 적대할 사람들을 불어불문학과에서 기르고 있다고 아연 긴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불어불문학과를 비롯한 유럽어문학과는 졸업 후 취직이 특별히 어려운 학과도 아니다. 대기업에 무더기로 취직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계에서 연예계까지 각종 문화산업의 미묘한 자리에는 유럽문학과 출신들이 어김없이 끼어 있다. 다양한 장르의 문필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문학으로 함양한 개성과 재능을 토대로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영화감독, 작곡가, 디자이너도 적지 않다. 외국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효과는 우리가 마시는 공기처럼 이 삶의 안팎에 퍼져 있으나 그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적다. 그 효과가 어디서 오는지 아는 사람은 더욱 적다. 불어불문학과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설명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이 말은 해두자. 어느 젊은 출판인이 교수신문에 칼럼을 기고하여, 근래 프랑스에서 발간된 인문학 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이 시급한데, 마땅한 번역자를 구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 까다로운 문장을 읽어내고, 그 의미를 깊이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연결지어, 이 서적들을 번역해낼 만한 소수의 사람들은 저 모욕적인 질문을 자주 받으며, 제 공부의 터전에 위기까지 느끼면서 노력해온 사람들이다.(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10. 05. 01. 

P.S. 그 '어느 젊은 출판인'의 칼럼은 얼마전에 나도 읽었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교수신문(10. 04. 20) 번역자를 찾을 수 없는 이유

매년 엄청난 종수의 학술서들이 쏟아져 나온다. 출판 통계에 따르면, 그 가운데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율은 세계 선두권에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번역된 학술서를 보고 기획을 했지만, 지금은 일본보다 빨리 학술서가 번역ㆍ출판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나의 현상을 여러 가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반가운 현상으로 일단 생각해본다. 우리 학문의 자생성 문제를 떠나 이제 인문학은 ‘세계’의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단계로까지 우리의 시야를 넓혀놓았기 때문에 우리 바깥에서 논의되고 사유되는 문제들을 신속하게 ‘수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들어서는 학술 번역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문 출판인들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책을 번역할 ‘전공자’가 점점 고갈돼 간다는 데 있다. 지난 20여 년간은 인문학술 번역 출판이 풍요를 누리던 시기였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출판인 입장에서는 어떤 한 책에 대해 1순위, 2순위 하는 식으로 번역자 레벨을 매기는 분야까지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전공자들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시대상의 반영이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순수’한 학문적 열정이 지금에 비해서는 훨씬 많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푸코와 들뢰즈를 찾아 프랑스로, 하버마스를 찾아 독일로 떠나거나 또는 이 땅에 머물면서 최한기나 정약용을 공부했다. 물론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런 연구자들이 많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분위기는 ‘순수’ 학문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어버린 것 같다는, 다시 말해 때로는 학문이 순수 학문으로서 존재해야 할 그 가치를 잃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른바 상아탑 같은 학문적 토대도 필요할 터인데, 지금 우리 시대는 기능적 지식인 양성에만 힘을 쏟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물론 우리 사회에 기능인이 많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초과학 없는 응용공학이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회적 인프라로서 튼실하게 축적된 인문학적 사유이다.

최근 고려대생 김예슬 씨의 사건이나 중앙대 사태는 그런 점에서 우리 대학 사회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될 터이다. 기능적 지식인 양성에만 몰두하는 대학 내에서 철학이니 역사학이니 사회학이니 하는 학문들은 ‘찬밥’ 신세가 돼버렸다.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별로 없고, 더 많은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 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른바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고고한(?) 순수 인문학적 열정을 쏟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전공자의 절대 빈곤 속에서 ‘다양성의 담론’이 생명인 인문학은 그 토대를 잃고 말았다. 지금도 우리 밖에서는 새로운 이론들과 사상들은 버거울 정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옥석을 가려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전공자와 인문 출판인의 임무일 텐데, 그 수가 절대적으로 빈곤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새로운 이론과 사상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적당한 번역자를 눈 씻고 찾아봐도 해당 전공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책을 이탈리아어 원어로 읽고 제대로 번역할 전공자가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의 철학이 일류냐 이류냐를 따지는 것은 이후의 일이고, 우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우리말화해 우리 사유 속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를 예로 든 것이 너무 협소할까. 조금 시야를 넓혀 프랑스 철학으로 눈을 돌려도 형편은 별반 나을 것이 없다.
 
출판인의 입장에서 학술 번역과 관련한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은 대학 밖의 시선이겠지만, 이미 대학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현상은 그나마 기능적 지식인에 머무르고자 하는 데 대한 저항으로 읽혀 다행스럽다. 대학을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오직 취업과 국가경쟁력만을 향해 일방통행할 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문화적 근간은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칼 폴라니는 “우리 시대에서 이제 인간은 사회 실재의 현실 앞에서 스스로 체념하게 되었으며, 이는 인간이 예전에 믿었던 모습의 자유가 종말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장 밑바닥의 체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시 새로운 생명이 솟구치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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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부는 여가가 아니다
    from 라무레트의 입맞춤 2010-05-01 22:32 
    가끔 연구실 울타리를 벗어나, 직장인이 된 학부시절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술에 취해 택시 아저씨와 예상하지 않았던 친밀한 사담을 나눌 때, 나오는 초반부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oo야, 너 지금 전공이 뭐라고?", "학교는? 그럼 전공은?" 그럼 나는 머릿속에 조금 계산을 해야 한다. 내 전공명을 미리 밝히자면, "영상커뮤니케이션"이다.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 그럼 뭐 영화 이런거 공부하나?"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대부분 "
 
 
푸른바다 2010-05-0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침 황현산 교수님의 컬럼을 읽었고 '교수신문의 칼럼'이 궁금하던 차였는데 마침 올려주셨군요. 한마디로 말해서 本을 망각하고 末의 花만 쫓고 있는게 한국의 자칭 주류세력의 불행입니다. '崇本息末'의 의미를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로쟈 2010-05-02 16:54   좋아요 0 | URL
이심전심이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5-0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이라면 미국만 있는 줄아는 사람들...아...답이 안 나오네요.

로쟈 2010-05-02 23:29   좋아요 0 | URL
소위 '주류'죠...

사과나무 2010-05-26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교수신문에서 번역 문제에 대한 황현산 고려대 교수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현 한국번역비평학회장이기도 한 황교수는 번역 행위의 다층적 의의와 번역 비평/평가의 필요성에 대해서 짚어주고 있다. 안 그래도 개인적으론 번역의 바다에 '잠수'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눈길이 가는 칼럼이다.    

교수신문(10. 04. 26) 번역과 학문적 위선  

극렬한 찬성과 극렬한 반대는 많아도 비평은 없는 것이 우리 사회라는 말이 있다. 이 비평부재의 현상은 번역이 관련될 때 더욱 두드러진다. 몇 년 전에 외국문학을 전공한 어느 교수가 한 유명 번역가의 번역문에 나타나는 허점들을 격렬한 어조로 지적해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한 적이 있다. 내 친구이기도 한 번역가는 그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자신이 소홀한 번역가를 넘어서서 ‘나쁜 놈’으로까지 매도된 데에 깊은 불만을 표시했다. 여기서도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비평의 풍토이다.  

번역자는 신문·잡지의 단평을 벗어나서 자기 번역을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으며,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중요한 오류와 그 처방을 공개적으로 개진할 기회가 없었다. 말해야 하나 말하지 못한 말들은 상처가 되고, 그 상처에서 어느 날 화산이 폭발하듯 솟아나온 말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큼의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상처는 늘 비평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평 없는 사회의 분노에서 온다.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창립된 것은 4년 전이다. 그 동안 학회는 월례발표회와 춘하추동의 학술발표회를 통해 뛰어난 학문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어도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 언어로 실현된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인 번역은 그 텍스트에 담긴 진리성과 미적 효과를 다시 검토하는 매우 정교한 절차라는 점이 자주 논의 됐다. 인간사회에 어떤 절대적 언어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언어와 관련해 모든 언어는 하나의 방언일 터인데 한 방언의 역량을 토대 삼아 그 사용자들의 역사와 풍속과 주관성 안에서 성립된 텍스트를 다른 방언의 역량을 토대로 다른 주관성 안에서 다시 재현하는 번역 작업은 그 텍스트를 다른 문화에 비춰 객관화하는 한 방편이 된다. 이 객관화의 시련은 그 텍스트를 최초에 성립시킨 언어뿐만 아니라 그것을 번역으로 재현하는 언어에도 해당되는 것은 물론이다.

번역할 가치가 있는 텍스트라면 어떤 텍스트건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어휘적으로건 통사적으로건 논리적으로건 미학적으로건 우리말에 본래 내장된 힘을 밑바닥까지 동원해야 하며 그 텍스트를 둘러싼 문화와의 관계에서 우리의 역사와 풍속과 주관성을 다시 성찰해야 한다. 두 언어에서 말과 사물의, 생각과 표현의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이때이다. 따라서 진지한 번역자가 자기 작업에서 현대 인문학의 크고 작은 주제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학술 테스트나 문학 텍스트의 번역은 외국어 텍스트에 대한 우리말 텍스트를 마련하는 일에서보다도 언어에 미치는 이 번역 효과에서 더 중요하다. 번역비평은 궁극적으로 이 번역효과를 토론하는 데 이르러야 한다.

번역평가의 이론과 방법은 학술 테스트나 문학 텍스트보다도 외교문서, 계약서, 제품의 매뉴얼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실용번역에서 먼저 정립됐다. 이런 문서의 번역에는 한 국가나 기업의 운명, 때로는 개인의 생사가 걸려 있는 만큼, 그 평가도 오류의 지적에 치중하게 돼 있는 것이 당연하다. 문학 텍스트라 하더라도 오류의 지적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지만 현재 주로 사용하는 평가방법 곧 충실성과 가독성이라는 말로 환원되는 평가방법은 의미이해의 층위, 문체의 적합성, 낱말의 경제적 효과, 언어역량의 개발 등 숱한 문제를 섬세하게 다룰 수 없는 탓에 시비를 토론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평가방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번역 이를테면 번역시학이나 비교문체론 같은 좋은 비평을 촉발시킬 수 있는 번역이 드물다는 점도 말해야 한다. 질 높은 번역은 질 높은 비평의 토대가 된다.

늘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번역과 번역가의 낮은 위상도 문제가 된다. 정신적인 가치까지도 시장이 평가하는 사회에서 전문번역가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투는 말할 것도 없고, 생활이 안정된 대학교수들에게도 모든 업적이 양으로 평가되는 평가 체제에서는 정교한 번역을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 연구번역이 소논문 한 편의 대접을 받거나 받지 못하는 정황은 일종의 학문적 위선과 연결된다. 우리말 사전에는 번역서에만 나오거나 그 쓰임이 번역에서 특별한 어휘들이 등재돼 있지만 번역서의 문장이 용례로 소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번역비평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은 학문의 이런 위선과도 싸운다.(황현산 고려대·불어불문학과) 

10. 0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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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4-27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과 사전편찬을 무시하는 나라는 문화대국이 될 수 없습니다.

로쟈 2010-04-28 20:23   좋아요 0 | URL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부터 둘러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4-29 00:02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4-2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 말에 공감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29 00: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미지 2010-04-3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국역본 읽을 만한가요?...

로쟈 2010-05-01 09:48   좋아요 0 | URL
2종의 국역본을 같이 읽으시면 될 듯합니다. 국내에선 최고 권위자들의 번역입니다...

BonBon 2010-05-1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번역을 전공하는 대학생인데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관내 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레, 2008, 초판1쇄) 반납일이어서 부랴부랴 번역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적는다. 내가 읽은 건 <마음>(문예출판사, 2006, 5쇄)이고, 이레판과 웅진판 <마음>(웅진지식하우스, 2010, 재판9쇄)을 참고했다. 범우사판이 가장 먼저 나온 듯하지만,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판본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는 건 문예판-이레판-웅진판 순이다(적어도 알라딘에서는 그렇다). 

  

일본소설의 번역을 대조해서 읽은 건 기억에 처음이지 싶은데, 작가가 나쓰메 소세키 정도라면 그런 수고를 무릅쓸 만하다. 그래서 더 거창하게 '나쓰메 소세키를 읽기 위하여'란 페이퍼도 구상을 했었지만 3월엔 여유를 얻지 못했다. 몇몇 작품을 더 읽게 되면 나대로 정리를 해볼 계획이다.   

간단히 적으려고 하는 건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문예출판사판의 몇 가지 오역이다. 작품의 핵심이 되는 '선생님과 유서' 장은 번역본들마다 문체가 달라서 어느 것이 더 나은 번역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당장 문예판과 이레판에서 "나는 올 여름 자네로부터 두세 통의 편지를 받았네."라고 옮긴 첫 문장이 웅진판에서는 "나는 이번 여름에 당신에게서 두세 번 편지를 받았습니다."로 돼 있다. 그런 경어법이 원문의 뉘앙스에  더 가까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느낌은 상당히 달라진다. 거기에 '선생님'이 하숙집 여주인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주인 아주머니를 늘 사모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여기서도 사모님이라 칭하겠네."(문예판)   
"나는 주인집의 미망인을 항상 사모님이라고 불렀으니, 이제부터는 사모님이라고 부르겠네."(이레판) 
"나는 미망인을 늘 아주머니라고 불렀으니까 이제부터는 아주머니라고 부르겠습니다."(웅진판)

한번 부르고 마는 거라면 별로 상관이 없지만, 이 작품에선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호칭이기 때문에, '사모님'과 '아주머니'는 작품의 색깔마저도 달라지게 한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아주머니'는 경어체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아주머니'는 높임말의 쓰임도 갖지만 요즘은 예삿말로 보통 사용되기 때문이다). 번역본은 그런 차이를 고려하여 선택하면 될 듯싶다. 다만, 문예판에서 몇 대목은 교정이 필요하다. 먼저 작품의 서두 부분.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니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 칭하고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그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곧바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붓을 쥐고 글을 쓸 때에도 마음은 한결같다. 나에게조차 낯선 이름으로는 도무지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문예, 8쪽) 

"나는 그분을 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 쓰고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그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금방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펜을 들어도 그 마음은 마찬갖지다. 어색한 머리글자 따위는 도무지 사용하고 싶지 않다."(이레, 8쪽)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고만 쓰고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그분의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금세 '선생님' 하고 부르고 싶어진다. 펜을 들어도 마찬가지 기분이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니셜 따위는 쓸 생각이 전혀 없다."(웅진, 9쪽)   

'나'는 그를 항상 '선생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에 관해 쓰면서도 이름 대신에 '선생님'이라고 부르겠다는 것. 이름(본명)을 밝히지 않는 방법으론 이니셜을 쓰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는 것. 뭔가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선생님과 유서' 장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친구를 K라는 이니셜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나'와 '선생님'과의 차이도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니셜을 쓰고 싶진 않다"는 내용으로 옮겨져야 하는데, 문예판은 "나에게조차 낯선 이름으로는 부르고 싶지 않다"라고 다소 모호하게 옮겼다(이름과 이니셜의 차이가 지워졌다).  

그리고 사소한 것으로 "친구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자본가의 아들로 경제적으로 별 부족함이 없었지만 같은 학교에 나이도 나이니만큼 생활하는 수준은 나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문예, 9쪽)라고 한 대목. 다른 번역본을 보면 여기서 '중국(中國)'은 '주고쿠 지방'을 가리킨다. 중부지역의 5개 현을 일컫는 말이라고(당시 중국은 '지나'라고 썼겠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자본가"는 "주고쿠 지방의 한 자산가의 아들"(이레)이나 "주고쿠 지방의 부잣집 아들"(웅진)이라고 옮기는 게 맞겠다.   

부주의에서 빚어진 오역으론 이런 대목도 있다. '내'가 선생님 댁에서 술을 마시게 된 상황에서 선생님과 사모님이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오늘 웬일이세요. 저한테 잔을 권한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요."
"내가 당신 싫어하잖아. 그래도 가끔씩은 마셔도 되지. 기분이 좋아진다구."(문예, 30쪽)

"웬일이세요. 좀처럼 저한테 술을 권하지 않으시는 분이." 
"당신이 싫어하잖아. 그래도 가끔씩은 마셔도 괜찮아. 기분이 좋아진다니까."(이레, 29쪽) 

"별일이 다 있네요. 나한테 마시라고 한 적은 웬만해서 없었는데."
"당신이 싫어하니까 그랬지. 하지만 가끔씩은 마셔 보라구.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웅진, 27쪽)
 

문예판에선 원문에도 없을 법한 '내가'가 왜 삽입됐는지 모르겠다. 이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나의 아버지'가 천황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하며 매일 아침 신문 기사를 챙겨 읽다가 하는 말이다.  

"이것 좀 봐라. 오늘도 임금님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왔다."
아버지는 천황을 늘 임금님이라고 부르셨다. "안됐지만 말이야, 임금님의 병환도 선친이 앓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야."(문예, 129쪽) 

"이것 봐라, 오늘도 천자님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구나."
아버지는 천황을 항상 천자님이라고 불렀다.  
"황송한 얘기지만 천자님의 병환도 내 병하고 비슷한 모양이야."(이레, 124쪽) 

"이거 봐라, 오늘도 천자님 일이 자세히 나와 있다."
"아버지는 폐하를 항상 천자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송구스럽게도 천자님 병도 아버지 병과 비슷한 거 같구나."(웅진, 105쪽)  

'임금님'이란 번역도 아무래도 좀 과한 듯싶고 '천자님'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문제는 당시 메이지 천황이 앓고 있던 병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당뇨병'이었다는 것(메이지 천황은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황송한 일이긴 하지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미천한 자신도 아직 살아있으니까 천황도 괜찮을 거라는 얘기를 '아버지'는 덧붙인다. 그런 문맥에서 보면 "임금님의 병환도 선친이 앓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야"라고 옮긴 것은 부정확하다.  

그리고 '장모님'의 병환에 관한 대목도 "그러는 동안에 장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셨네.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보니 도전히 완치할 수 없는 병이라 했네. 나는 정성스럽게 간호해드렸네."(문예, 333쪽)라고 돼 있는데, 다른 번역본에서 "그러던 중 장모님이 병에 걸렸네."(이레, 307쪽), "그러던 중에 아내의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었습니다.(웅진, 265쪽)라고 옮겨졌다. 결과적으론 병으로 돌아가신 게 맞지만, 논리상 진찰도 받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 건 너무 앞지른 것이고, 다른 번역본을 보더라도 "병으로 누우셨네."정도가 맞겠다.   

참고로, <마음>을 읽는 데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윤상인 교수의 <문학과 근대와 일본>(문학과지성사, 2009)에 실린 '국민 속의 <마음> - 국민국가 이데올로기와 정전'과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도서출판b, 2004)에 수록된 '소세키의 다양성 - <마음>을 둘러싸고' 등이 있다. 국내 전공자들의 논문집도 나와 있지만, 학회용 성격의 책이다.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데는 고모리 요이치의 <나는 소세키로소이다>(이매진, 2006)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세한 작품론은 아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소세키론이 더 소개되면 좋겠다(단행본을 쓴 건 아니지만 가라타니는 여러 편의 소세키론을 쓴 바 있다)...  

10.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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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겨보아야할 죽음의 의미
    from 창조를 위한 검은 잉크의 망치 2010-04-27 12:23 
      주인공 나는 방학 중 가마쿠라 해변에서 처음 선생님을 만난다. 도쿄에 돌아와서도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방문하며 선생님과 꽤 친해졌다. 그러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간 사이 선생님은 나에게 두툼한 편지를 남겨놓고 자살을 한다. 선생님의 유서에는 자서전이라 할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쓰여 있다. 외아들인 선생님은 스무 살 무렵 장티푸스로 거의 동시에 부모님을 잃는다. 부모님이 남긴 유산을 맡아 관리하던 작
 
 
반딧불이 2010-04-04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유리와 박유하를 놓고 어떤 것을 읽을 것이냐 망설이다가 박유하 번역을 선택했어요. 이렇게 비교해주시니 도움이 많이 되네요. <언어와 비극>에 실린 글은 전혀 몰랐었는데 참고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로쟈님. 일본인에게 아버지와 천황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요?

로쟈 2010-04-04 11:22   좋아요 0 | URL
그렇게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구요,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엔 알다시피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진 않았습니다. 그의 문학에 나타난 가족관계에 대해선 국내에도 연구서가 나와 있습니다. 그의 천황론은 의견이 분분하던데, 윤상인 교수의 책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론 <마음>에서 선생이 말한 '메이지 정신'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가라타니 고진의 견해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는 메이지 10년대와 20년대를 구분하고 메이지 10년대의 시대저정신을 소세키가 말하는 '메이지 정신'이라고 봅니다...

2010-04-27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