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말씀
성열 엮음 / 현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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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전에 읽었던 고익진 선생의 <한글 아함경>보다 훨씬 더 마음으로 와 닿았던 편집본. 일목요연하게 개념별로 분류된 원시불교의 핵심 가르침과 아울러, 이후 제작된 대승경전의 뼈대를 이루는 수사적인 어구들까지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계기였다


윤회 사상이 기성 브라만교의 영향과 기층 민중의 미개한 관성을 포섭하기 위해 교육적 방편으로 수용된 게 아니라, 인간 고통의 실재를 파지하고 남은 나날 동안 충족시켜야 할 거시적인 수행의 기준선을 가늠하기 위해서도 회피할 수 없는 불교의 핵심부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절판되서 아쉬운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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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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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글쓰기의 기교를 다루지 않고 원천인 무의식을 파지하는 자세, 마인드셋에 관한 지침서이다. 무의식은 수면이기 때문에 출렁거려 봐야 잡히지도 않고 소금쟁이 발이 필요하다. 볼륨도 얇고 지침도 단순하다. 

일상의 충돌과 산문적인 비루함을 관리하는 ‘비평가로서의 나’와 ‘창조적 짐승으로서의 나(X)’,  둘로 나뉘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일어나자 마자 일정시간 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써 갈기는 ‘모닝 페이퍼’, 하루 중 스스로에게 약속한 특정 시각에 하늘이 무너져도 글을 쓰는 (내 식대로 명명해본다면) 앵커링-리추얼(anchoring-ritual)을 통해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을 위한 예열을 권한다.


모닝 페이퍼가 1차적 자료로서 일정 정도 퇴적이 되었다 싶으면 돌이켜 보고 자기 성향이 어떤 장르의 글쓰기에 맞는지 점검해 본다. 픽션을 쓰겠다 치면 이야기나 캐릭터를 끄집어 낸 후 이미지로 품고 있으면서 산책을 한다 든지, 멍 때리면서 누워있거나 언어적인 인풋으로 훼방받지 않는 취미나 여가 생활을 하면서, 하는 척하면서 그것이 고독의 오븐 속에서 스스로 익어가도록 내버려둔다. 조바심에 굴복하지 않는다. opus에 해당하는 본격 작업 중에는, 문체에 통제되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해당 분야의 라이벌이나 대선배 격에 해당하는 저작의 탐독은 삼가한다. 이 정도면 이 책의 요지에서 90프로 이상은 전달된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억해둘 만한 비례식 하나를 제시하는데, 마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몸을 쉬듯이 내 안의 창조적 X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도 마음을 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언어 구성물을 꾸역꾸역 내 안에 쳐 넣고 불모의 공회전을 시키는 강박증은 금물이라고 한다.

다른 글쓰기 책으로 건너가기 위한 예비작업을 위한 물건으로, 오래전 한 번 읽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독후감 피드백을 안해서 그런가, 앞서 언급한 무의식의 비스트 X와 관련한 비례식 외에는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시니컬하게 보면 저자 분도 작가지망생을 위한 책 두 권이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3시간 안팍이면 읽어치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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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을 봐 드립니다
안동민 / 명문당 /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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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얼척이 없었다. 저자는 본인의 전생이 고대 순 임금이었고 한고조 유방이었고 토요토미 히데요시였고 원효 스님이었다고 한다. 1988년에 씌어진 이 책에선 21세기가 되기 전 세계적 괴질로 인류가 파탄날 거라 하는가 하면 동아시아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자기가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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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예찬 - 데라야마 슈지 가출론
데라야마 슈지 지음, 손정임 옮김 / 미행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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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을 걸으며 요상한 엔카를 부르는 테라야마의 무정부적인 감성을 좋아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양비론스러운 절충을 섞고 몸을 사린 흔적이 적지않다. 이후 작인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서 흉측한 꽃이 더 피어 있다. 표지 디자인은 깔쌈한데 안쪽 본드 붙인 부분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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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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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스러운 경쾌한 구어와 다자이식 익살 댄디즘을 장착하고 쿄토 산책으로 스타트를 끊는다. 식(食)을 찾아 냄새와 뉘앙스를 맡으며 정처없이 걷다 풍경 속에 스며들어 어느새 게이필의 깨방정을 쏟아낸다. 1인칭 화자 시점의 미식가는 자신의 주관성을 이국의 골목과 가로수길, 다리가 보이는 천변 등지에 몸 부비듯 바른다. 플랫하고 엷게 스민 色스러운 에센스를 시티팝 bgm인 양 팬시하게 배치할 줄 아는 영악함과 귀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애정행각이 교차하는 과거사의 아스라함과 핫스팟인 폐허의 컬렉팅으로 빼곡하다.

<컬리지 포크>에서 주인공이 연인이었던 일본인 교수의 sm사진 노출에서 수치, 분노와 함께 성적 흥분을 느꼈다는 대목도 마음에 들었다. 이런 감정의 양가성을 다루는 것조차 요즘 소설들에서는 어쩐지 희귀해졌다.같은 단편의 스테이징 중 대학원 수업 환담의 일부를 이루는, 문예 비평의 어구들도 괴장되지 않으면서 격이 있고 지적이다.

안으로 고여드는 일본 사소설의 심리주의와 1인칭의 혼란스러운 내성으로 포괄되는 자유간접화법을 넘나들며 제4의 벽 너머 가상의 청자에게 말건내는 듯한 포즈. (쓰기가 아니라 플러팅의 말건내기!) 간혹 넘치는 멜랑꼴리와 애도를 빌미로 오바 액션을 양식화한 제스쳐처럼 내보이기도 한다.

다만 문장의 아름다운 육질을 음미할 줄 알던 롤랑 바르트가 끝내 제대로 된 소설을 못쓰던 이유 중 하나는, 마주치는 사건과 사물에 관념의 레테르를 달아주는 속도, 또는 비평적 프레이밍을 작동하는 기민한 습성 덕분이었다는 걸 기억하자. 하루키도 글쓰기 책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등장인물의 내성에 있어서나 내러티브 주체의 범주화 능력에 있어서나 제빨리 분류하지 않는, 전망의 불투명성과 캐릭터의 느린 점성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적 멍청함'이 필요하다. 여하튼 작자는 키냐르나 이인성처럼 자기분석의 에세이와 스캔들의 점화 소멸을 다룬 픽션의 경계선에서 흥미로운 줄타기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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