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과 휴일에 연이어 강연행사에 다녀왔더니 '정신력'이 바닥이다. 써야 했던 원고들이 고스란히 밀렸으니 내주, 아니 당장 오늘 일정이 빡빡해졌다. 혼미한 틈에도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서 일단은 스크랩해놓는다. 시 번역에 관한 것인데, 최정례 시인이 자신의 시 영어 번역에 참여한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기억엔 김광규 시인의 경우에도 자신의 시 독일어 번역에 참여했던 듯싶다(시인 자신이 독문학자이다). 이런 경험들을 모아놓아도 번역뿐 아니라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부가 되지않을까 싶다. 

경향신문(10. 09. 13) “시 번역, 장벽 넘기 어려워… 원작자가 직접 참여 중요”   

“문학작품 창작자가 번역에 직접 참여하면 오역을 피할 가능성이 높겠죠. 특히 낯선 외국어의 표현과 어휘를 접하면서 스스로 새로운 영감, 창조적 역량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시는 번역되는 순간 원전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흔히들 말한다. 국내에 번역돼 출간되는 숱한 해외 문학작품들 가운데 시가 별로 없다는 사실도 이를 말해준다. 최정례 시인(55)은 시 번역에 존재하는 까다로운 장벽을 넘기 위해 원작자가 직접 번역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2008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간 미국 버클리대학에 방문학자 자격으로 머문 최 시인은 미국 시인 브렌다 힐먼(세인트매리대 교수)과 함께 직접 자신의 시 53편을 영어로 공동 번역했다. 미국 시 전문 저널 ‘프리 버스(Free Verse)’에 최 시인의 시 ‘보푸라기들(Motes)’ ‘한 오천 살은 먹은 내 마음이(The Five-thousand-Year-Old Heart I’ve Swallowed)’ ‘없는 나무(The Absent Tree)’ 등 9편이 번역돼 실렸다. 최 시인의 시선집도 출판사 ‘팔로프레스(Parlo Press)’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레바논 감정> <붉은 수수밭> 등의 시집을 통해 밀도 높은 시어로 시간과 기억에 대한 시편들을 선보인 최 시인은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받았다.

한국 시인과 미국 시인이 공동으로 직접 자신의 시를 번역하기는 최 시인이 처음이다. 초벌 번역은 한국문학을 전공한 웨인 드 프레메르(Wayne de Fremere)가 맡았고, 최 시인과 힐먼이 원작의 의미를 해치는 표현을 바로잡고 영문 시 형식에 맞도록 가다듬었다. 최 시인은 “양국의 작가가 원작자이자 동시에 번역자의 역할을 했다”며 “공동 번역은 번역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들을 섬세하게 처리해 번역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번역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로 주어의 명확화, 상투적 시어의 번역, 관용어구의 번역, 잠재적 의미의 파괴 등을 꼽았다. 한국 시의 경우 주어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영시의 경우 구조상 주어가 없으면 문장 구성이 불가능해진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최 시인은 “번역이 불가피하게 변형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생략된 주어를 찾아 새롭게 지시함으로써 모호했던 원전의 의미와 감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숲’이란 시의 ‘아름다운’을 영어로 번역할 때 ‘beautiful’이란 표현이 너무 상투적이라는 조언에 따라 ‘ultimate’ ‘ideal beauty’로 번역하기도 했다. 

“영어로 번역했을 경우 원본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들이 있어 신비하게 느껴졌어요. ‘한 오천 살은 먹은 내 마음이’의 경우 영어로 번역하고 나니 오히려 더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미국에는 김소월·김지하·고은 등 몇몇 한국 시인들의 시가 번역돼 있지만 미국인들에게 잘 읽히지는 않는 상황이다. 최 시인은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경우 해외의 현대 시와 감각이 통하기 때문에 잘 번역될 수 있다면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고 말했다.(이영경기자)  

10. 09. 13.

 

P.S. 잘 읽히지 않는다는 번역이지만, 한국 시의 영역본은 국내에서도 읽어볼 수 있다. '답게 한국문학총서'로 10권이 출간돼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2-3권 갖고 있는 시리즈이고, 아예 이 번역시를 대상으로 한 시 비평을 고려해보기도 했었다. 나중에라도 좀 여유가 생기면 손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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