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비룡소 클래식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워드 윌슨 그림, 정영목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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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은 어릴적에 TV에서 해 주던 만화로 기억이 된다. 다른 모습은 전혀 기억에 없는데 유독 외나무다리를 하고 머리를 묶은 모습인 존 실버의 모습만 내게 남아있는 만화...
사실 보물섬은 무한한 상상력을 갖고 읽는다면 한없이 재밌는 책일것이다. 그렇지만 한참 나이를 먹어버린 내게 보물같은 상상의 나라는 그 기력을 다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멋있기만 하던 존 실버가 이처럼 야비하게 느껴지다니말이다. 이런 내 느낌이 너무 낯설어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어릴때는 포우가 황금벌레라는 단편을 쓰면서 보물섬의 내용을 인용한 줄 알았다. 당연히 난 보물섬을 먼저 읽었었고 먼저 읽은 책이 먼저 씌어진 것으로만 알았으니까... 그후에 진실을 알게 된 것처럼 다 크고 나서 읽는 보물섬에서 내가 발견한 진실이라는 보물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옮긴이의 말처럼 선과 악에 대한 틀에박힌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

글쎄.. 내가 발견한 보물은 '보물'만을 바라고 떠나는 모험이 아니라 '모험'을 찾아 보물섬으로 찾아가는 그 마음이다. 모험을 찾아 떠나는 순수한 마음에는 진실이 담겨있을테니... 자, 이제 떠나야겠다. 바람타고 물결 넘어 바다로, 꿈에 본 섬으로...!

아, 별로 필요없는 얘기겠지만 비룡소는 내가 꽤 신뢰하는 출판사다. 그런데 인쇄편집을 서둘러서 그랬는지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색한 문맥이 조금 눈에 띈다. 379쪽에는 아예 존 실버와 의사의 대사가 한문장으로 섞여버리기까지 했다. 초판 1쇄라 그러려니 이해는 해보지만 어린이들이 읽는 책일수록 더 세심한 교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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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공간의 환상 다빈치 art 5
안토니 가우디 지음, 이종석 옮김 / 다빈치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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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우디'라는 건축가의 이름을 들은 것이 언제였을까..? 언젠가 건축관련 인터뷰책을 읽다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상식처럼 떠들어대던 얘기속에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때 나는 가우디라는 건축가가 한세기 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도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다.

'아직도 건축중'이라는 성가정성당이란 사진을 봤을때, 그 흑백사진속에 묻어나는 성당 건물은 그저 '장엄하고 위대함'만을 느끼게 했고 얼마나 오랜세월을 건축중인 것인가.. 얼핏 궁금했을뿐이다. 그리고 솔직히.. 성당 건물이 그렇게 거대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다분히 갖고 있었고.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모두가 말하는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에 대해 알고 싶기도 했고, 그의 건축물은 도대체 어떤것인가 하고..

이 책을 펴드는 첫머리에 '교회는 신이 머무는 곳으로 기도하는 곳이다'라는 글이 나온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아, 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신이 머무는 곳이기에......
[슬프게도 내 손으로 사그라다 패밀리아 성당을 완성시키지 못할것이다.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시대와 함께 유능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본문에서)]

가우디는 아직도 성당을 건축중인 것이며 그래서 그는 살아있는 건축가인 것이다. 설계는 이미 끝냈지만 자신의 후대에 발달된 건축기술로 훨씬 견고한 건물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그는 진정한 건축가라는 생각이든다.

리뷰에 사족처럼 덧붙인다면 가우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는데 이 책은 그러기에는 약간 역부족인 면이 있는 듯 하고, 그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날아갈 형편이 안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 책이 사진으로 대리충족할 수 있는 현장보고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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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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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유리의 도시에서]

폴 오스터의 초기 작품이라는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그저 그렇게 끝없는 미궁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드는 도시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초기 작품이라니.. 그럴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책의 마지막 장을 읽어나갈 즈음에는 갑자기 혼란이 오기 시작해버렸다. 아무래도 이 책은 마지막을 덮으며 다시 첫장을 펴들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비슷한 것 때문에 다시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어떤 책이든 리뷰를 쓴다는 것이 쉬운것은 아닌데, 이 책은 특히나 더 어렵다. 그저 단순히 '저도 이 책 읽었거든요..'라는 말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듯 하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가 도대체 어떤 작가인지도 모르던 90년대 초 우연히 그의 책을 읽고 뭐라 딱히 꼬집을 수 없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면 당연하다는 듯 구입해서 읽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솔직히말하자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아주 위대한 작가라든가 그의 작품이 이러이러해서 대단하다..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항상 책을 읽고 난 후 뭔가에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그런 둔탁한 느낌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솔직히 말하자면, 폴 오스터의 책은 다른이들의 리뷰를 읽는것보다 직접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느끼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그의 작품에서 아주 깊은 내면의 세계를 느끼게 되든, 황당하고 어이없는 가상의 세계를 느끼게 되든 그것은 책을 읽는 자의 몫이려니....

'그러나 아직은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이 아직 남아 있고, 그 순간은 블루가 방을 나서기 전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가 어디로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일이건 일어날 수가 있다.... 나는 은밀한 꿈 속에서...'[유령들 중에서]

폴 오스터가 은밀한 꿈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의 말에서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나는 여전히 그 상태로 마치 되돌이표가 있는 듯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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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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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리뷰는 책을 읽은 느낌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쓰기 힘들어지는것 같다. 마음속에선 뭔가 강한것이 느껴지는데 그것을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란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흘려버렸었고, 추천도서목록에서 다시 그 제목을 봤을 때는 왜 하필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환경'운운하는 추천의 이야기에 이러한 제목을 가진 환경소설은 어떤 책일까 하는 호기심에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은근한 서정성을 느끼며 무심코 책의 첫장을 열었는데 맨처음 마주하는 작가의 말부터가 일순 긴장하게 만들어버린다.

노인은-그의 이름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이지만 그저 '노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현실감있게 느껴진다- 그에게서 모든것을 빼앗아간 밀림을 증오하였으나 밀림은 다시 그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그 밀림 속에서 그는 완전한 자유를 누렸다. 증오심도 잊어버렸고, 자신이 자유롭다는 인식조차 잊은채...

밀림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밀림 속에서 살아가는 수아르족의 '죽음'에 대한 예식 역시 밀림을 살아가는 자의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연애소설' 읽기를 멈추게 하는 삵쾡이의 사냥에서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고 인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짐승은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느낀 노인은 그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이 모든것의 시작은 '인간'이 밀림에 사는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여 세상의 모든 창조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금속성의 짐승을 마구 휘두른데서 시작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다섯달이나 걸려 노인이 결론을 내린 좋아하는 책은 '연애소설'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음아파하고 인내하고 슬퍼하지만 어쨋거나 연애소설에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천.천.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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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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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흘러흘러 알라딘 서재를 거닐다 지니님 추천도서목록에서 발견한 책으로 기억한다. 그냥.. 재미있을까..? 생각하며 책을 펴들었는데 이 책은 정말 상상 이외의 책이다. 우리의 백두대간을 종주하듯 애팔래치아를 종주하며 느끼는 자연의 위대함, 아름다움..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자랑스러움. 솔직히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어나가면서부터 '이따위로 준비를 하고 이렇게 걸어가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걸까?'라는 실망감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어,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닌것이다. 책을 읽어갈수록 점점 더 내게 배낭메고 숲으로 뛰어들어가고픈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몇년 전 지리산 등반을 한다고 폼을 잡다가 엉금엉금 기며 손전등에 의존해 야간산행까지 감행하고 비좁은 산장에서 온갖 찌든 냄새와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새우잠을 자던 추억이 슬금슬금 떠오르는 것이다. 게다가 브라이슨과 카츠처럼 나 역시 끝내 지리산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산행을 하는 것은 고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기에 도전을 하였고 내 체력이 되는 만큼까지 갔다가 내려왔다는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 책이 더 재미있고 실감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들이 너무나 쉽게, 너무나 멋있게 애팔래치아 종주를 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거짓말같은 사실에 실망하면서, 나의 못난 모습만을 떠올리면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은 어리버리한 준비와 산행, 더구나 배낭이 무거워 일용할 양식까지 다 던져버리는 친구의 어이없는 모습 묘사까지 숨김없이 다 털어놓는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배낭메고 산길을 걸어가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그런 엉망진창인 그들의 솔직한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어쨋거나 우리는 '시도'했다, 라는 말이 맘에 남는다. 성공과 실패가 중요하지 않다. 산행은, 자연속에서 숲을 거닐고 여행을 떠남은 반드시 목적완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 생각이 든다. 그 여행길에서 즐겁고 행복함을 느꼈다면 '시도'했다는 것으로 우리는 훌륭할 수 있는 것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 준게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본문에서 따옴]

아아, 유쾌하게 숲을 거니는 행복을 맛보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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