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군집 알고리즘
저우원 지음, 박지민 옮김 / 스피리투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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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지 말 것. 귀여운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두나의 평이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집이 지금까지 읽었던 SF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갖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가볍게 책을 펼쳐 읽다가, 뭔가 그냥 쓰윽 읽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라는 생각을 하며 결국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을 가질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들은 정말 새로움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낯선 것들인 것도 아니다.


고양이 군집 알고리즘은 이어지지 않는 별개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인 줄 알았다. 소설이 쓰여진 시기나 이어지는 이야기에 저자의 의도가 들어가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소설을 읽다보면 이 책이 소설집인지 옴니버스형태로 이어지는 한 권의 연작 소설집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심지어 처음 읽을 때는 장편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인 저우원의 다른 소설들이 더 있는지 궁금해시지 시작하고 모든 작품을 읽고 싶어질만큼 소설의 내용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특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모두 여성인 점, 스스로의 노력으로 미래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과 언어에 대한 특별함이 있고 학생의 신분으로 더 많은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소설집의 목차가 그 등장인물들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듯 편집되어 있어서 저우원의 작품이 처음인 내게는 훨씬 더 좋았다는 느낌이 있다. 


모니터를 옮겨다니는 고양이의 귀여움을 떠올리며 그 광경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재밌겠다는 생각은 곧이어 전 세계 네트워크를 해킹하고 연구자의 신념에 따라 외계로부터 지구를 숨겨놓고 방어를 할 것인지 외계와의 접촉을 위해 적극적으로 언어를 연구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의미일까 깊이 생각하게 하는데, 그 생각의 정리가 되기도 전에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단편에서는 또 다른 반전의 이야기가 튀어나오고 있어서 이어지는 이야기의 세계관이 내 상상력을 넘어서며 계속 확장되어가고 있는 듯 했다.


마법사의 권력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한 '주문'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린다면, 작가 저우원이 말하고 싶어하는 '언어'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이 더 확장되어야 할 것 같은데,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인 [마지막 번역가]를 읽어보면 '언어'에 대한 더 깊이있는 이해를 하게 된다. 소설집을 읽으며 언어를 통한 우주와의 방어와 공격에 대한 상상력(!)의 연결과 먼 미래의 시대에 번역가의 역할과 언어를 통한 소통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멋진 해석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었다,라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지만 SF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르귄과 옥타비아 버틀러에 이어 저우원의 작품까지 권해줄 수 있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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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씨름하던 그 오랜 세월 동안, 늘 스스로에게 물었다. 완벽한번역이라는게 존재하긴 하는걸까? 번역이라는 직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언젠가 룽형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은절대로 번역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지만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고 해도 좋은 번역을 해내는 일은쉽지않다. 예로부터 동서양의 일부 번역가들은 단정하듯 말해 왔다.
번역은 불가능하다고. 빌헬름 폰 훔볼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모든 번역은 결국 완수할 수 없는 과업을 완수하려고 시도하는것에 불과하다. 어떤 번역가든 두 개의 걸림돌 중 반드시 하나에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다. 원작에 너무 가까이 가서 모국의품격과 언어를 희생시키거나, 모국에 너무 가까이 가서 원작의품격을 희생시키거나, 둘 사이에 중간노선을 찾기 어려운 것이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에 찾을 수 없다. - P427

그럼에도 누군가는 만 길 낭떠러지 위에 걸려 있는 줄을 타고, 그불가능해 보이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다.
모든 것을 원문 그대로, 품격도 속됨도 그대로, 깊이도 얕음도 그대로 어투도 문체도 그대로그런 번역문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원문 속의 거대한 문자 장력과 그림같이 펼쳐지는 시적 정취가 문화의 간극을 뛰어넘어 독자 앞에 고스란히 펼쳐지던 그 생생한 감각을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 같았다. 두 언어에 대한 깊은 문화적 배경을 갖춘 번역가가 먼저 원작자의 세계로 들어가 문자가 전하려는 모든 것을 섬세하고 꼼꼼하게 헤아린다. 그런 다음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스스로 원작자가 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문화적 토양으로 들어가도록 자신을 몰아붙인다. 번역가와 원작자는 하나가 되어 원래의 사상과 감정 속으로 깊이 침잠해 그를 다른 언어로 다시써 내려간다. 마지막으로 번역가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오직 번역문만을 남긴다. 더 많은 독자의 시선이 번역가의 몸을 넘어 원작까지막힘없이 흘러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런 번역문은 너무나 적다. 번역가로서 필요한 자질 외에 끊임없는 사유와 저울질, 반복적인 다듬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빛나는 번역의 마지막 한 조각은 약간의 영감과운이 채워 넣는다. -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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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각각의 단어들이 하나의 독자적인 별이 되었다.
이 모델은 내게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정확히 동일한 개념을 가리키는 두 단어는 없다고. 바꿔 말하면 세상에 동의어는 없다는것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구상에는 각기 독특한 언어를 갖고있는 나라들이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발전해 왔다. 간단해 보이는언어 뒤에는 강렬한 민족 정체성과 깊고 단단한 문화가 축적되어 있다. ‘‘紅과 ‘red‘는 같은 색깔을 가리키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전자는혼례와 관련된 즐거움과 희열을 암시하고, 후자는 프랑스 대혁명이불러온 피로 물든 강의 이미지를 은근히 내포하고 있다.
그대로 한번 더 정밀도를 조정하자, 별들은 이제 몇 배로 늘어나실험실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각 단어가 또다시 여러 개의 자신으로 분열해 나간 것이다.

이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같은 언어 속의 같은 단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언어 상황과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그 의미는완전히 달라진다.
그 누구도 각자가 보는 빨간색이 모두 다 같은 빨간색이라고 중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근거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그모든 단어가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서 똑같은 의미로 이해될 거라고확신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으로 진화해 온 생명이며,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다. 당신이 말한 ‘빨강‘은 ‘강산을 비추는 아침 해‘의 붉은빛이고, 내가 생각하는 ‘빨강‘은 ‘온통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봉황꽃‘의 붉은빛이다.
멍하니 서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던 내 머릿속에는 단 한문장이 남았다.
‘번역은 불가능하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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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자기 거야. 왜 남의 시선을 신경 써? 내가 원하는 걸 좇으면 그만이지.


옌한은 잘익은 떡을 집어 들며,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 말 못 들어봤어? 노력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반드시 악인으로 남는다는 말."
"뒤에서 험담하는거, 신경안쓰여? 그러니까 내 말은......
"인생은 자기 거야. 왜 남의 시선을 신경 써? 내가 원하는 걸 좇으면 그만이지. 넌 무슨 생각이 그리 많니?"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문제하나를 처음으로 떠올렸다. 내가 지금까지 쫓아온 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었을까?
이렇게 얻기 힘든 장학금을 두고서도 누군가는 명예를 보고, 누군가는 돈을 본다. 하지만 옌한에게는 그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기위한 디딤돌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의미도 없는 대회와 활동을 전전하며 점수를모으고 있는 걸까?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아니면 다들 하는 경쟁속에 습관처럼 뛰어들어 세속적인 기준으로 ‘우수‘라는 메달을 따기위해?
내가 원하는 미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그 질문이 떠오른 순간, 어둡고 몽매했던 영혼이 처음으로 눈을뜬 것만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 과거를 들여다보았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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