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는 새파란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화상을 유화로만 40점 남게 그렸습니다. 평생에 걸쳐 내면을 성찰하는 도구로 자화상을 그렸다고 하지만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림을 구매하거나 의뢰하려고 렘브란트의 스튜디오를 찾는사람들은 작가의 얼굴과 자화상 작품을 보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자화상이 곧 포트폴리오였던 것이죠. 고객의 필요에 대응한, 화가의 맞춤형 작업이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들을 보고 훌륭하다, 멋지다며 고개만 끄덕였다면이제 왜 그런 그림이 그려질 수밖에 없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좋겠습니다. 작품 안팎에 폭넓게 얽혀 있는 맥락과 관계, 즉 미술 생태계가 차츰 보일 겁니다.
현대미술로 이어진 ‘스틸 라이프‘
여기까지 14세기 이래 미술사의 몇 장면을 짚어보았습니다.
얀 반 에이크가 그린 그림에서 결혼의 코드를 읽어낼 수 있었고, 브론치노의 비너스에는 미묘한 외교적 의미가 담겨 있었죠.
1기에서 해석되어왔고 용도도 달리 쓰인다 - P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