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마당에는 이렇게 커다란 하귤 나무와 곳곳에 꽃나무 과실나무 꽃..들이 심어져 있다. 그냥 들풀처럼 아무렇게나 자라게 두는 듯 하지만 그래도 가끔 풀도 메고 청소하고 화단을 가꾼다.

자기집 마당이 있는 것처럼 성당에도 마당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 전에 이 성당 마당에 한떼의 무리가 다녀갔다. 이름표도 달고 있고 유모차도 끌고오고 아이들도 데리고 온 걸 보면 분명 뭔가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듯 한데.

이 사람들이 이 마당에 난입해서 여기저기 풀들을 뜯어가고, 내년 여름이면 저렇게 숙성되어 노오랗게 익어갈 하귤열매를, 시퍼렇게 살아있는 열매를 따고 나뭇가지를 꺾고 난리가 아니다.

아, 아까 근처에 있을 때 한마디 했어야했는데. 그때는 내가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고 저 멀리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그렇게 자기 집 마당처럼 헤집어놓고 간다. 분명 자기들은 뭔가 자연을 느낀답시고 그따위 짓을 했겠지만.

내가 볼 때 그들은 자연파괴자들일뿐이다.

더구나 남의 집 마당에서 무슨 행패인가.

아무리 친한 옆집이라 해도 맘대로 들어가서 나뭇가지 꺾어들고 익지도 않은 열매를 손으로 마구 비틀어 따면 그게 어디 이웃인가?

성당이 열린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건 말이 안되지. 아, 생각할수록 화가나는데? 도대체 저들의 정체가 뭘까.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난입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참아서는안되지 않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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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9-15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안타깝네요.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아이들은 그저 모든 게 신기한 것이죠. 그런 것들로 가득찬 세상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감각적 자극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반응하는 로봇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 성찰적 의식은 형성되지 않은 상태니까요. 해서 아이들이 그러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 부모가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놔두거나 부추기는 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이게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대견스러워서 무슨 짓을 하든 걍 흡족하게 바라만 보는 때가 있다는 것이죠. 격려하고 쓰담쓰담하면서까지요. 그 순간은 부모로서의 어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성찰적 의식이 마비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아무리 고학력자, 지식인, 교양인이라 하더라도 똑같다는 것을 거듭 느낍니다. 한 가지 감정에 몰입돼 있을 때는 반성적·성찰적·이성적 의식은 하얗게 증발해버립니다.

혹은 아이와 그 부모가 함께 있을 때는 그 아이의 의식 없는 행동을 제3자가 나서서 제지하기는 무척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그 부모와 언쟁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천방지축 그렇게 날뛰어도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는 모른 척하고 지나가기 일쑤죠. 이런 상황에서 나서면 오히려 오지랖 넓다고 비야냥받기 쉬운 게 한국적 현실입니다. 이런 의식 구조가 우리 한국인들에겐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해서 자신한테 직접적 손해와 해가 끼쳐오지 않는 한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다한 불합리한 일들, 부조리한 실태들, 비상식·몰상식적 행태들, 명백한 오류들, 의심스러운 주장들 등등에 대해서 비판은커녕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행동 방식이 전형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겠죠. 해서 모두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할 뿐입니다.

우리가 부모일 때, 아이들과 자연으로 공공 도서관 등으로 놀러갔을 때, 이런 의식의 마비 상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1년에 단 하루뿐! 생일을 기다리는 어린이를 위한 책... 이라는데.

생각해보니 오늘은 내가 수십년전에 세례를 받으며 새로 태어난 날이고 - 그 해 주일이 십자가현양대축일이었다는것은 내게도 행운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날짜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올해는 주일이 내 생일이되고.

생일밥 먹으러 가자는데 나보고 밥 사라고 해서 긴축재정을 시행하고 있는 처지라 밥 먹는거 생략하자니까 다들 매정하게도 그러자, 하고 만다. 흥! 췟! 생일밥 얻어먹기 힘드어 못살겠다.

 

 

 생일 선물로는 밀레니엄을 사볼까, 궁리중. 하긴 뭐. 이제는 생일선물이라는 핑계없이도 그냥 책을 사면 되는건데.. 그런건데...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서 슬금슬금 책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지난 주말에 책탑이 쌓여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쌓아놓은 책탑으로 인해 청소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가끔 방을 닦아주시던 어머니마저 8월 말즈음에는 발길을 끊은 것 같았는데... 하아, 먼지가 쌓여있고 습기로 인해 벽쪽에 쌓아둔 책에는 먼지 곰팡이가! ㅠㅠㅠㅠㅠㅠㅠ

책이 상해 못쓰게 되었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물티슈로 닦아내니 대부분 깨끗해졌다. 그 구석에 깔려있었던 것이 양장본의 종이 재질이 좋은 그래픽 노블이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더 안타깝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책을 꺼내어 정리하고 너무 큰 상자라 택배포장이 힘들다고 해서 버리기 아깝다며 갖고 온 우체국의 가장 큰 사이즈 포장 박스를 넣고 그 안에 책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했다. 읽었지만 방출하기에는 좀 아쉬운, 나중에 또 찾을 것만 같은 - 그러면서도 두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두번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을 꾸역꾸역 담아넣고 또 하나의 상자에는 읽으려고 샀지만 이미 소장하고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자꾸만 뒤로 미뤄버리게 만든 새 책들 - 그 중에는 헌책처럼 느껴지는 책들도 많...하아. 처음 정리를 시작할 때는, 이 책은 책정리하고 당장 읽어봐야겠다, 라며 슬금슬금 뒤쪽으로 빼놓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상자안에 들어가는 책은 별로 없고 또 다른 책탑만 쌓여가고 있고 아직은 여름 날씨로 무지막지하게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다보니 나중에는 아무런 구분없이 무조건 마구 담으면서 쌓아올렸다. 그렇게 이틀동안 겨우겨우 두개의 상자를 채우고 나머지 책들은 그냥 널부러진 상태. 이번 주말에도 정리를 해야할텐데 정리하기가 겁난다. 하아...

그러고나니 새 책을 사는 것이 잠시 주춤해지기는했는데 주말에 책 정리하면서 오십여권을 방출하고 나니 왠지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또 책 살 궁리가 슬며시 올라오고 있다. 흠... 흠흠;;;;

 

 

 

 

 

 

 

 

 

호퍼의 그림을 보고 글을 쓴 빛 혹은 그림자. 17명 작가의 면면이 놀라워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책. 요즘 슬슬 다시 예전의 책들이 개정판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임옥상 화가의 벽없는 미술관은 집에서 찾다가 포기했고 - 그래야할만큼 책이 많은 건 아닌데 도저히 어느 구석에 박혔는지 알수가 없다. 다 재미있어 보이는데 어느 책을 먼저 읽어야할지... 아니, 용의자 x의 헌신은 이미 읽었구나.

 

 

 

 

 

 

 

 

지금 읽어볼까,하고 꺼내든 책. 아니. 위험한 비너스는 다 읽었고. 콜럼바인은 꺼냈다가 티비보느라 그대로 방치된 채 놓여있다. 오로지 일본의 맛,은 예상보다 처음 전개가 재미있어서 쓱쓱 읽게 될 듯 하다. 출근전에 십여분의 시간이 있어서 맘 편하게 술렁술렁 읽어볼까 하고 방에 뒀는데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아침에 읽던 책이 또 뒤로 밀려날까..싶은 두려움이.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있는데 마침 누군가 보내주겠다고! 오오~! 생일선물삼아 냉큼 받아버렸다. 사실 내가 '무민'을 본 기억은 없지만 캐릭터만큼은 너무나 유명해서... 그래서 조금 망설여지긴했었는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ㅎㅎ

 

이번 악스트 표지는 황정은 작가구나!

온다 리쿠의 메이즈, 신간이 나온 것도 몰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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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기록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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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3세 여아 영양실조로 사망 유아 방조 혐의 모친 체포 라는 기사가 에필로그처럼 떠 있고 본문의 첫 시작이 "아, 예. 그 사건 때문이죠?"로 되어있어 그냥 아무생각없이 유아방조에 대한 사건이야기인가 하며 읽게 된다. 그리고는 또 별 생각없이 독백처럼 이어지는 인터뷰어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일가족 살해사건 이야기의 전말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사건에 얽힌 에피소드에 집중을 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인터뷰어의 이야기.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해. 온통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건과 얽혀있는 살해된 부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자꾸만 이건 누구의 이야기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읽어나갈수록 자꾸만 앞으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그래서 결국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드는 기록. 두번째 읽는 것이 더 재미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더이상 사건에 대한 궁금증은 생겨나지 않는다. 아직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기록은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의 유희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은 무참하게 살해당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지나친 생각 아니냐고요? 아뇨,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인간이란 자신과 주변을 비교하면서 누가 위이고 아래인지 그런 걸 판단하는 생물이니까요. 자기보다 위인 인간이 있으면 재수 없어하고 자기보다 아래인 인간은 무시하죠. 그게 보통입니다."(82)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다 양면성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오랜 친분으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어느날 갑자기 낯설어질때가 있는데 특히 악의를 갖고 교묘히 자신의 잘못은 숨기고 타인의 행동을 자기 멋대로 판단해서 제3자에게 퍼뜨리고 다닐때 저게 사람인가, 싶어지는데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져 아전인수만을 일삼는 사람의 행태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모두 자기 주관적인 것이며, 그 주관에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성품이나 성격과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미 체험하고 깨닫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리석은 자의 기록'을 읽으며 새삼 그 적나라함에 다시 놀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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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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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이미 읽은 내용이기에, 세부적인 사항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이미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에 이르는 뜻밖의 전개에 대해서는 알고 있기때문에 이야기 자체를 읽는 즐거움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 새로 개정판이 나오면서 번역도 새로이 하고 문학적인 향기와 감동을 더했다고 하는데 이전과는 또 다른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가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더 궁금한 부분이다.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되는 용의자X의 헌신은 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딸과 함께 안정된 일상을 살아가는 하나오카 야스코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행방을 쫓아 찾아 온 전남편 도가시의 집요함에 집안에까지 들이게 되는데 그의 괴롭힘에 순간적으로 딸 미사토가 그에게 청동화병을 던지고, 머리를 다치기는 했지만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도가시를 보자 야스코와 미사토는 겁을 집어먹고 엉겁결에 둘이서 도가시를 죽여버리고 만다. 그렇게 벌어진 살인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방문한 이웃집에 사는 수학교사 이시가미는 이미 모든 상황을 알아채고 모녀를 돕기 위해 모종의 일들을 처리한다.

용의자 X의 헌신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밝혀진 범인을 지켜내기 위한 그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그 과정을 밝혀내는 갈릴레오 박사 유가와의 등장이 시작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럼, 그렇다면 P NP 문제는? 혼자 생각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과 남이 제시한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

결코 간단할 수 없는 문제였다. 헌신, 특히 순수함으로 온전히 자신을 바쳐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 사람에게 우린 단순히 '옳다, 그르다'의 판단만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권의 추리 소설을 읽은 것인지, 한편의 사랑 이야기를 읽은 것인지 헷갈려버리기는 하지만 그 모호함이 결코 싫지는 않다. 세상살이가 공식을 푸는 것처럼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용의자 X의 헌신은, 그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은 행복일까 아닐까.

 

예전의 기록을 찾아봤더니, 십여년 전 나의 느낌은 이랬었구나. 나는 아무래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읽으며 결말에 이르른 그 시점의 느낌을 더 강하게 남겼었구나, 싶어진다. 아마 어쩌면 그래서 기억력이 나쁜 나임에도 불구하고 한번밖에 읽지 않은 이 책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이미 그 용의자 X의 헌신,이 어떠한 것임을 알고 글을 읽어나가는 것은 첫느낌과는 다를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는 그닥 큰 감동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왠지 상투적인 광고문구같은 말, 가장 처절하고 가장 아름다운 한편의 서사시, 같은 문장에 백만배동감하고 싶어진다.

"그가 너무도 야스코 씨를 사랑하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 모두를 걸었다는 사실을 댁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그가 벌인 이런 일이 너무 가슴 아프니까요. 그는 이러는 걸 바라지 않겠지만, 댁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걸 저는 견딜 수 없습니다"(409)

진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때로는 큰 죄악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426) 결국 모든 것이 다 밝혀진다. 아니, 이미 독자인 우리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미스터리로서의 재미가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 충분히 '미스터리한' 트릭을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톱니바퀴란 없으며 그 쓰임새를 결정하는 것은 톱니바퀴 자신이다......"(419)

이 말은 소설 속에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퍼즐 한 조각의 의미가 되는 것이지만 또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의미가 되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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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현대미술
마이클 윌슨 지음, 임산.조주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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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가 현대미술을 너무 쉽게 봤나보다. '한권으로 읽는' 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해 간략하게 훑어보는 정도의 책이겠거니, 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렵다. 현대인의 일상에서 엿볼 수 있는 그 찰나의 순간을 고독과 소외의 정서를 담아 그려낸 듯 보이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거나 앤디 워홀의 수많은 복사본을 보는 것도 그 의미를 스스로 알아채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이 책에 실려있는 3차원적인, 말 그대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현재 미술을 보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다.

 

가장 최근에 가 본 미술전시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릴정도로 내 일상에서 미술이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한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낯설지 않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는 사실 놀랍지 않을수가 없다. 책의 표지를 장식한 해골모양의 모습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괴기함만 느껴지는데 데미언 허스트의 십년 전 이 작품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것이다. 그 재료는 실제 인간의 치아 - 다시 보니 좀 더 징그럽기도 하고, 또 그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있다. 역시 적응이 안되는 수많은 설치미술의 형상과 사진들은 설명없이 작품만 보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현대 미술'의 범주를 광범위하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 '현대'라는 것은 사실 지금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현재의 미술을 말하는 것인 듯 하다.

한국 작가로서는 이불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한쪽의 설명과 작품 사진 세개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정부분 어떤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지는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있는 작가이기에 검색으로 좀 더 많은 것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기는 하다. 이불 작가와는 달리 작품은 낯이 익이 보이는데 이름은 낯선 김수자 작가도 소개되어 있다. 우연찮게 한국의 작가는 모두 여성이 소개되어 있고 특히 김수자 작가의 작품은 좀 더 동양적인 영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해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물론 보따리 트럭- 이동광들, 이 좀 더 낯익은 느낌이어서 더 가깝게 생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한 권으로 읽는 현대 미술이기는 하지만 쉽고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사실 나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나 앤디 워홀보다는 그냥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을 구경하는 것이 더 좋고 호안 미로의 즐거움 넘치는 색채감을 보는 것이 더 좋을뿐이다. 미술 감상의 첫번째는 역시 나 자신의 느낌이겠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 현대 미술에 대해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도를 해보고 싶어지기는 하다. 아마 그 첫걸음에 조금은 용기를 내게 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개관 1주년을 맞아 특별전시회를 하고 있는 우리 작가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이라도 먼저 보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좋을까? 무엇이 됐든 마음에 남는 작품부터 찾아보고 점차 세계의 현대 미술에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서는 이 동시대 작가들의 파격적인 작품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없어 보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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