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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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이미 읽은 내용이기에, 세부적인 사항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이미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에 이르는 뜻밖의 전개에 대해서는 알고 있기때문에 이야기 자체를 읽는 즐거움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 새로 개정판이 나오면서 번역도 새로이 하고 문학적인 향기와 감동을 더했다고 하는데 이전과는 또 다른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가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더 궁금한 부분이다.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되는 용의자X의 헌신은 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딸과 함께 안정된 일상을 살아가는 하나오카 야스코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행방을 쫓아 찾아 온 전남편 도가시의 집요함에 집안에까지 들이게 되는데 그의 괴롭힘에 순간적으로 딸 미사토가 그에게 청동화병을 던지고, 머리를 다치기는 했지만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도가시를 보자 야스코와 미사토는 겁을 집어먹고 엉겁결에 둘이서 도가시를 죽여버리고 만다. 그렇게 벌어진 살인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방문한 이웃집에 사는 수학교사 이시가미는 이미 모든 상황을 알아채고 모녀를 돕기 위해 모종의 일들을 처리한다.

용의자 X의 헌신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밝혀진 범인을 지켜내기 위한 그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그 과정을 밝혀내는 갈릴레오 박사 유가와의 등장이 시작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럼, 그렇다면 P NP 문제는? 혼자 생각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과 남이 제시한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

결코 간단할 수 없는 문제였다. 헌신, 특히 순수함으로 온전히 자신을 바쳐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 사람에게 우린 단순히 '옳다, 그르다'의 판단만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권의 추리 소설을 읽은 것인지, 한편의 사랑 이야기를 읽은 것인지 헷갈려버리기는 하지만 그 모호함이 결코 싫지는 않다. 세상살이가 공식을 푸는 것처럼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용의자 X의 헌신은, 그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은 행복일까 아닐까.

 

예전의 기록을 찾아봤더니, 십여년 전 나의 느낌은 이랬었구나. 나는 아무래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읽으며 결말에 이르른 그 시점의 느낌을 더 강하게 남겼었구나, 싶어진다. 아마 어쩌면 그래서 기억력이 나쁜 나임에도 불구하고 한번밖에 읽지 않은 이 책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이미 그 용의자 X의 헌신,이 어떠한 것임을 알고 글을 읽어나가는 것은 첫느낌과는 다를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는 그닥 큰 감동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왠지 상투적인 광고문구같은 말, 가장 처절하고 가장 아름다운 한편의 서사시, 같은 문장에 백만배동감하고 싶어진다.

"그가 너무도 야스코 씨를 사랑하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 모두를 걸었다는 사실을 댁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그가 벌인 이런 일이 너무 가슴 아프니까요. 그는 이러는 걸 바라지 않겠지만, 댁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걸 저는 견딜 수 없습니다"(409)

진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때로는 큰 죄악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426) 결국 모든 것이 다 밝혀진다. 아니, 이미 독자인 우리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미스터리로서의 재미가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 충분히 '미스터리한' 트릭을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톱니바퀴란 없으며 그 쓰임새를 결정하는 것은 톱니바퀴 자신이다......"(419)

이 말은 소설 속에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퍼즐 한 조각의 의미가 되는 것이지만 또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의미가 되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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