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지지 않고 시 그림이 되다 1
미야자와 겐지 지음, 곽수진 그림, 이지은 옮김 / 언제나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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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야지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라는 시를 동화작가 곽수진의 그림으로 그려낸 책이다. 시 한편이 책이며, 또한 시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해 낸 그림책이기도 하다.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읽어보지 않고 곽수진 작가의 그림을 본적도 없었는데 괜히 기대하게 되었던 이 책은 실물을 받아들고 기대 이상의 느낌을 받았다.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문구에서 어린 시절, 비가 내리는 날 누군가 우산을 갖다 줄 사람이 없는 나는 비오는 거리를 오히려 느긋하게 걸어서 집으로 향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미 젖은 자는 비에 젖지 않는다, 라는 말을 떠올릴때마다 같이 연상되던 기억인데 그때의 그 느낌이 바로 비에도 지지 않는 느낌인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랬다가 감기에 걸린다면 큰일이 날꺼라는 걱정이 앞서고 날씨에 민감하지만 그 민감함은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일뿐이다.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추운 여름이면 걱정하며 걷고"의 마음은 처음부터 내게 없었던 것일까.


비에도 지지 않고, 라는 시 자체도 너무 좋지만 그 시를 풀어낸 곽수진 작가의 그림도 너무 좋다. 마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 초록의 그림과 사계절의 표현도 좋아서 계속 그림을 들여다보게 된다.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서 두려움을 달래주고'에서 어떻게 타이타닉호를 떠올렸을까. 아니, 어쩌면 남쪽으로 향하던 세월호를 떠올리기에는 너무 슬퍼서 타이타닉호로 바꿨을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한 느낌과 감상을 내 말로는 다 표현해내지 못하겠다. 그저 그 마음이 가는대로, 느낌이 오는대로 책을 펼쳐들고 시를 읽고 그림을 감상해보기를 권할뿐이다. 


비에도 지지 않고, 라는 시는 바로 미야자와 겐지의 삶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고 그러한 삶의 태도는 온갖 욕심을 부리며 스트레스에 찌들리고 짜증만 내고 있는 이 시점에 이 책을 펼쳐들고 보니 굳건하게 살아가자,라고 다짐했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궁금해진다. 함께 눈물 흘리고 위로하며,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그 마음을 찾아봐야겠다. 


덧. 사실 우산 밑에 있는 고양이의 그림은 뭔가, 했는데 "모두에게 바보라고 불려도 내가 옿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장면을 '비 오는 날 작은 달팽이와 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걸 몰라보는 나는 여전히 작은 우산 하나 포기 못하는 욕심쟁이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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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24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뭔가 광장히 단잔한 삶의 느낌이 드네요. 이 나이면 그런 단단함이 생길법도 한데 전 아직 매사에 흐물흐물.... 그래도 기죽지는 말아요.

chika 2021-01-24 22:47   좋아요 0 | URL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나아가면 되는거겠죠 뭐. ㅎ
 
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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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사실 제대로 잘 알고 있는 것은 없다.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로마의 건국 신화라거나 시작점에 대해 오래전에 읽었지만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의 위대함만을 이야기하는 로마 만세의 이야기여서 - 아니, 사실 그렇게 로마를 인식하게 되어서 로마 여행을 갔을 때 부러 아피아가도를 찾아가기도 했었다. 뭐하는 짓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동행에게 잠시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맨발로 이천년이 넘은 길을 걸어보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년 전 마스터스 오브 로마 라는 소설의 첫부분을 읽으며 로마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조금 더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소설의 흐름에 대한 기억과 역사의 흐름에 대한 간극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이 엉켜 있는 걸 풀지 못하고 막바로 리비우스 로마사 3권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은 단절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커다란 사건을 중심으로 흐름의 중간에 끼어들어 책을 읽는 것은 괜찮으리라 생각하고 리비우스 로마사의 21권부터 - 그러니까 이 책 리비우스 로마사 3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포에니 전쟁으로 알고 있는 - 리비우스가 첫머리에 밝히고 있듯이 '로마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전쟁을 다룬' 이야기인데 너무나 낯설게도 한니발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마치 일본의 역사 속에서 명량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인 것 같은? 

그런데 포에니 - 이건 카르타고를 일컫는 로마어라고 한다 - 전쟁이라고 하면 단연 한니발이 주인공일텐데 어색하다는 것은 내가 너무 일방적인 시선으로 먼나라의 역사를 바라본 것임을 절감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어색함을 넘기고 나면 역사서라기보다는 한편의 역사 대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한참 재미있게 읽어나가기 시작하다가 주중에는 집중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조금씩 쪼개 읽다보니 전체적인 흐름이 끊겨 온전히 빠져들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리비우스 로마사는 소설 이상의 흥미로움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포에니 전쟁이라고 하면 한니발과 코끼리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칸나이 전투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흥미로움 그 이상이다. 사실 이 부분이 좀 어색하기도 했었는데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읽으며 전투 경험이 많은 호민관의 조언보다 명예와 승리에 대한 욕심으로 무리한 전투를 벌이는 지휘관의 형편없는 전략전술은 얼마나 많은 위대한 로마병사와 장군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에 더 집중을 했었는데 리비우스 로마사는 한발 물러선 상태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라 한번 더 생각하며 로마의 전쟁을 바라보게 된다. 


리비우스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온갖 약탈이 가능하고 승리를 취할 수 있었던 1차 포에니 전쟁때보다 오히려 2차 포에니 전쟁에서의 한니발이 더 훌륭하다고 표현 한 것이다. 용병으로 이루어진 군인들을 통솔하고 본국의 지원도 없이 물자를 조달할 수 있는 약탈의 기회도 가질 수 없는 지역에서 한번의 반란도 없이 , 그러니까 오직 돈을 받기 위해 한니발의 군인으로 전쟁에 뛰어든 용병들이 급여지급이 늦춰지고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단 한번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낸 한니발의 위대함에 대해 '그의 주변 모든 것이 몰락으로 빠져드는 중이었는데도 여전히 후광이 남아있었다'(707)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위대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대한 이야기, 조금은 다른 결이지만 한니발의 만찬에 초대되어 그를 독살하려는 스키피오에게 자신의 심장을 먼저 뚫어야 한니발의 심장에 칼날이 꽂힐꺼라는 스키피오 부자의 이야기, 18살(이거나 혹은 19살이거나 여전히 십대인 것은 똑같지 않은가)에 전투에 참가하고, 시칠리아의 정예부대 300명을 만들어 낸 일화라거나 그의 공명함과 현명함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더 많이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역사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백과사전을 보면 오히려 더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이 평면적이라고 한다면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는 것은 입체적인 영화를 글로 읽는 느낌이 들게 된다. 리비우스 로마사를 읽은 후 읽다가 사정이 있어 끊긴 후 다시 집어들지 못한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면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이해하기 쉬운 로마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될 것 같다. 예전에는 그저 단순히 아피아 가도의 돌덩이에 발의 감촉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언젠가 다시 로마로 가게 된다면 그 길을 걸어다녔던 로마의 영웅들을 떠올리며 이천년이 넘는 세월의 흐름에 담긴 역사를 느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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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24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읽고 로마 포로 로마노를 가면 고대 로마로 빙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ㅎㅎ

chika 2021-01-24 22:49   좋아요 0 | URL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포로 로마노 터를 막 개발할 때 가보고 이후로 가보질 못했습니다만. ㅋ
 

하쿠나 마타타 를 생활 철학으로 삼지는 못하더라도 두려울 때 혹은 힘겨울 때마다 하쿠나 마타타라고 외쳐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과거의 아픈 기억에 휘둘리지 맙시다. 눈 딱 감고 우리 한번 기억을 안아줘 봅시다.
354


- P354

현실 세계에서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우리는 나쁜 기억을 지우고 또 좋은 기억을 만든다. 우리는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나쁜 기억은 버리려 하고 내 입맛에 맞는 좋은 기억만 취하려고 집착한다. ‘모든 기도는 성취되었고 모든 소망은 체념했네. 좋은 기억은 내 기도에 신이 반응한 것이고 나쁜 기억은 내가 체념할 정도로 어쩔 수 없었던 사건이다.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이여!‘ 다른건 모르겠고 나의 좋은 기억만큼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뒤집어보니 알렉산더 포프의 시는 그렇게 다가온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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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해(기원전 206년) 동안 한니발을 상대로 벌어진 직접적인 군사행동은 없었다. 최근의 손실이 한니발의 나라뿐만 아니라 한니발 자신에게도 직접적 피해를 주었기 때문인지 그가 먼저 전투를 걸어오는 일은 없었다. 로마 인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한니발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에 만족했다. 로마 인들은 아직도 이 사람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그의 주변 모든 것이 몰락으로 빠져드는 중이었는데도 여전히 후광이 남아 있었다.
실제로 나는 한니발이 성공을 누릴 때보다 운이 기울었을 때 더욱홀름했다고 생각한다. 고국에서 머나먼 적의 영토에서 13년 동안 싸우면서 많은 흥망성쇠를 겪은 그의 군대는 카르타고 인으로만 구성된 게 아니라 온갖 국적의 천민들이 뒤범벅된 그런 군대였고, 병사들은 법, 관습, 언어가 모두 달랐으며, 예절, 의복, 장비는 물론 섬기는신과 종교 의식의 형태도 어느 것 하나 같은 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이 잡다한 무리를 굳게 결속시킬 수 있었고, 그리하여 자기들끼리 단 한 번도 싸우는 일이 없었으며, 한니발에게 대항하여만란을 일으킨 적도 없었다. 놀라운 건 급료를 지급할 자금이 빈번히 - P707

부족하고 식량도 자주 떨어졌음에도 일절 반항의 기미가 없었다는것이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때는 그런 일로 장교와 병사 모두가 형언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바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승전의희망이 전부 사라진 데다 하스드루발이 전사함과 동시에 휘하 병력이 괴멸하고, 이탈리아의 작은 구석인 브루티움 하나를 제외하고 이탈리아 전역을 포기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 진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은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 더하여 브루티움 시골 지역에서 조달하는 걸 제외하면 부대를 먹일 가망도 없었고, 시골 지역 모든 곳을 경작한다고 하더라도워낙 작은 지역이라 도저히 그렇게 많은 인원을 먹일 수가 없었다.
더욱이 복무 연령대의 남자들은 대다수 군인으로 끌려가 농지에서 멀어졌다. 그리하여 브루티움 인들이 타고난 악랄한 짓, 즉 산적질을 하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한니발은 본국에서도 보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스페인을 계속 장악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으며, 이탈리아는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전반적인 상황은 어떤 측면으로는 이탈리아와 무척 비슷했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무척 달랐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사령관을 잃은 카르타고 인들이 대서양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던 점은 이탈리아의 상황과 유사했다. 하지만 스페인이 이탈리아와 다른 것은 지역의 특성이나 그곳 주민들의 기질이 세상 다른 어떤 곳보다 패배를태연하게 여기며 새로운 적대 행위에 나서는 일을 밥 먹듯이 한다는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이 로마 인들의 첫 번째 속주가 되고,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야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리더십과 지원아래 완전히 정복된 마지막 지역이 된 이유이다.
- P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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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이 그림 여행 - 화가의 집 아틀리에 미술관 길 위에서 만난 예술의 숨결
엄미정 지음 / 모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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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전쯤에 드디어 우피치를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홀로여행의 두려움에 항상 행사참가 아니면 패키지로 떠났던 여행과 달리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고 피렌체에서도 하루의 시간을 머무를 수 있게 계획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피치에 대한 열망은 나 하나뿐이었고 지팡이를 짚으며 겨우 따라다니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몇시간을 걸으며 미술관람을 하는 사치를 누리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는 판단에 우피치 미술관 대신 산마르코 수도원을 갔고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아씨시에서는 수바시오 산 정상에서의 피크닉을 즐기다가 성프란치스코 성당의 프레스코화를 놓쳤다. 별다른 준비없이 갔었던 나는 그곳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대기가 조토의 그림으로 그려져있다는 것도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이탈리아 여행을 끝내기전에 바로 또 다시 이탈리아를 찾아야 하는 이유들을 안고 왔다. 그런데 십여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다시 가보지 못했다. 여행 후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오랜 시간 병원에서 지내셨고 어머니가 괜찮아지시니 이제는 내가 아파서 맘편히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다. 그리고 또 좀 괜찮아지려나 했더니 전세계적으로 여행 자체가 힘들어지게 되어버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유가 생길 때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가족이 함께 다닐 수 있을 때 무조건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그 생각조차 너무 늦었구나..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후회 없이 그림 여행'은 그 제목만으로도 확 끌리는 것이었다. 그냥 그림 여행만으로도 좋은데 말이다.

저자는 2013년부터 이 책의 기획을 하고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의 여정길에 올랐다고 한다. 지역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별 여정을 따라 글을 썼는데 처음은 그렇게 저자의 글을 따라 읽어나가고 그 다음에는 부푼 마음으로 또 다시 나만의 여정을 계획해보는 것으로 이 책을 두번, 세번 읽을 수 있다. 처음 책을 펼칠 때는 생각보다 도판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 책은 미술관 관람이 중점이 아니라 화가의 생애와 관련한 길을 따라가는 것임을 느끼게 되면 더 이상 그림 도판이 별로 없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화가의 여행에서 첫번째가 뒤러라는 것이 좀 낯설어보였지만 이내 이탈리아 여행에서 움브리아를 지나칠 때 얼핏 본 프란치스코 성인의 순례길이 떠오르면서 화가의 여행이 그 순례길의 여정과 다르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면서 처음부터 저자의 여정에 빠져들어버렸다.

폴 세잔처럼, 페르메이르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들처럼 고향에서만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근대 이전의 화가들은 제작 의뢰가 있으면 그곳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화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은 시기별로 달라지는 화가의 환경과 그림화풍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해서 사실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그림에 대한 열망뿐 아니라 여행에 대한 열망도 커져 있어서 그런지 화가의 집이나 화가가 실제로 다녔을 것 같은 산책길, 동네의 풍경들은 직접 가보고 싶어진다. 또 늘 도판으로만 보는 것으로는 그림의 색감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해져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다음번 여행지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어느 곳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미술관은 어디일지, 또 그곳에 가면 놓치지 말고 봐야하는 화가의 그림은 무엇일지 머리속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조지아 오키프로 인해 산타페라는 곳이 궁금해졌었는데 이 책에서도 앙귀솔라의 그림을 보고 그녀가 너무 궁금해졌다. 우연찮게도 이탈리아 여행 마지막날 베네치아에서 시에나로 가야하는데 날짜 조율을 하지 않은 것을 까먹고 하루를 날리는 바람에 가보지 못했던 시에나에 앙귀솔라의 자화상이 있다고 한다. 앙귀솔라의 그림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시에나를 한시간 거리에 두고 로마로 향해야했던 기억이 겹치면서 다음에는 반드시 시에나에 갈 기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다 유명한 화가들이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화가들의 색다른 면모도 느끼게 되고, 나 역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솔직히 모네의 그림에 그리 큰 감흥이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모네의 그림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마티스의 그림이 주는 평온함과 즐거움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너무 진하거나 너무 희미한 도판들이 그의 그림에 대한 진가를 느끼기 힘들게 했었는데 직접 그림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져보게 하고 그것은 또한 고흐뿐 아니라 다른 모든 화가들의 그림을 책의 자그마한 도판이 아니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여행을 통해 만들어야겠다는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꼭 가보고 싶은 스페인의 톨레도는 엘 그레코로 인해 영원해진 곳이 아닐까.

모네의 수련을 자연광이 있는 전시실에서 보는 것도, 클림트의 멋진 풍경 그림 앞에서 말러 교향곡을 듣는 그 완전한 일체감을 느껴보는 것도 그저 바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떠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그날의 기쁨을 위해 그림여행지도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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