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해(기원전 206년) 동안 한니발을 상대로 벌어진 직접적인 군사행동은 없었다. 최근의 손실이 한니발의 나라뿐만 아니라 한니발 자신에게도 직접적 피해를 주었기 때문인지 그가 먼저 전투를 걸어오는 일은 없었다. 로마 인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한니발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에 만족했다. 로마 인들은 아직도 이 사람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그의 주변 모든 것이 몰락으로 빠져드는 중이었는데도 여전히 후광이 남아 있었다.
실제로 나는 한니발이 성공을 누릴 때보다 운이 기울었을 때 더욱홀름했다고 생각한다. 고국에서 머나먼 적의 영토에서 13년 동안 싸우면서 많은 흥망성쇠를 겪은 그의 군대는 카르타고 인으로만 구성된 게 아니라 온갖 국적의 천민들이 뒤범벅된 그런 군대였고, 병사들은 법, 관습, 언어가 모두 달랐으며, 예절, 의복, 장비는 물론 섬기는신과 종교 의식의 형태도 어느 것 하나 같은 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이 잡다한 무리를 굳게 결속시킬 수 있었고, 그리하여 자기들끼리 단 한 번도 싸우는 일이 없었으며, 한니발에게 대항하여만란을 일으킨 적도 없었다. 놀라운 건 급료를 지급할 자금이 빈번히 - P707

부족하고 식량도 자주 떨어졌음에도 일절 반항의 기미가 없었다는것이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때는 그런 일로 장교와 병사 모두가 형언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바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승전의희망이 전부 사라진 데다 하스드루발이 전사함과 동시에 휘하 병력이 괴멸하고, 이탈리아의 작은 구석인 브루티움 하나를 제외하고 이탈리아 전역을 포기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 진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은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 더하여 브루티움 시골 지역에서 조달하는 걸 제외하면 부대를 먹일 가망도 없었고, 시골 지역 모든 곳을 경작한다고 하더라도워낙 작은 지역이라 도저히 그렇게 많은 인원을 먹일 수가 없었다.
더욱이 복무 연령대의 남자들은 대다수 군인으로 끌려가 농지에서 멀어졌다. 그리하여 브루티움 인들이 타고난 악랄한 짓, 즉 산적질을 하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한니발은 본국에서도 보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스페인을 계속 장악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으며, 이탈리아는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전반적인 상황은 어떤 측면으로는 이탈리아와 무척 비슷했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무척 달랐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사령관을 잃은 카르타고 인들이 대서양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던 점은 이탈리아의 상황과 유사했다. 하지만 스페인이 이탈리아와 다른 것은 지역의 특성이나 그곳 주민들의 기질이 세상 다른 어떤 곳보다 패배를태연하게 여기며 새로운 적대 행위에 나서는 일을 밥 먹듯이 한다는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이 로마 인들의 첫 번째 속주가 되고,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야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리더십과 지원아래 완전히 정복된 마지막 지역이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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