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이 그림 여행 - 화가의 집 아틀리에 미술관 길 위에서 만난 예술의 숨결
엄미정 지음 / 모요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십여년전쯤에 드디어 우피치를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홀로여행의 두려움에 항상 행사참가 아니면 패키지로 떠났던 여행과 달리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고 피렌체에서도 하루의 시간을 머무를 수 있게 계획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피치에 대한 열망은 나 하나뿐이었고 지팡이를 짚으며 겨우 따라다니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몇시간을 걸으며 미술관람을 하는 사치를 누리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는 판단에 우피치 미술관 대신 산마르코 수도원을 갔고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아씨시에서는 수바시오 산 정상에서의 피크닉을 즐기다가 성프란치스코 성당의 프레스코화를 놓쳤다. 별다른 준비없이 갔었던 나는 그곳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대기가 조토의 그림으로 그려져있다는 것도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이탈리아 여행을 끝내기전에 바로 또 다시 이탈리아를 찾아야 하는 이유들을 안고 왔다. 그런데 십여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다시 가보지 못했다. 여행 후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오랜 시간 병원에서 지내셨고 어머니가 괜찮아지시니 이제는 내가 아파서 맘편히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다. 그리고 또 좀 괜찮아지려나 했더니 전세계적으로 여행 자체가 힘들어지게 되어버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유가 생길 때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가족이 함께 다닐 수 있을 때 무조건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그 생각조차 너무 늦었구나..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후회 없이 그림 여행'은 그 제목만으로도 확 끌리는 것이었다. 그냥 그림 여행만으로도 좋은데 말이다.

저자는 2013년부터 이 책의 기획을 하고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의 여정길에 올랐다고 한다. 지역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별 여정을 따라 글을 썼는데 처음은 그렇게 저자의 글을 따라 읽어나가고 그 다음에는 부푼 마음으로 또 다시 나만의 여정을 계획해보는 것으로 이 책을 두번, 세번 읽을 수 있다. 처음 책을 펼칠 때는 생각보다 도판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 책은 미술관 관람이 중점이 아니라 화가의 생애와 관련한 길을 따라가는 것임을 느끼게 되면 더 이상 그림 도판이 별로 없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화가의 여행에서 첫번째가 뒤러라는 것이 좀 낯설어보였지만 이내 이탈리아 여행에서 움브리아를 지나칠 때 얼핏 본 프란치스코 성인의 순례길이 떠오르면서 화가의 여행이 그 순례길의 여정과 다르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면서 처음부터 저자의 여정에 빠져들어버렸다.

폴 세잔처럼, 페르메이르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들처럼 고향에서만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근대 이전의 화가들은 제작 의뢰가 있으면 그곳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화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은 시기별로 달라지는 화가의 환경과 그림화풍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해서 사실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그림에 대한 열망뿐 아니라 여행에 대한 열망도 커져 있어서 그런지 화가의 집이나 화가가 실제로 다녔을 것 같은 산책길, 동네의 풍경들은 직접 가보고 싶어진다. 또 늘 도판으로만 보는 것으로는 그림의 색감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해져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다음번 여행지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어느 곳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미술관은 어디일지, 또 그곳에 가면 놓치지 말고 봐야하는 화가의 그림은 무엇일지 머리속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조지아 오키프로 인해 산타페라는 곳이 궁금해졌었는데 이 책에서도 앙귀솔라의 그림을 보고 그녀가 너무 궁금해졌다. 우연찮게도 이탈리아 여행 마지막날 베네치아에서 시에나로 가야하는데 날짜 조율을 하지 않은 것을 까먹고 하루를 날리는 바람에 가보지 못했던 시에나에 앙귀솔라의 자화상이 있다고 한다. 앙귀솔라의 그림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시에나를 한시간 거리에 두고 로마로 향해야했던 기억이 겹치면서 다음에는 반드시 시에나에 갈 기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다 유명한 화가들이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화가들의 색다른 면모도 느끼게 되고, 나 역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솔직히 모네의 그림에 그리 큰 감흥이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모네의 그림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마티스의 그림이 주는 평온함과 즐거움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너무 진하거나 너무 희미한 도판들이 그의 그림에 대한 진가를 느끼기 힘들게 했었는데 직접 그림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져보게 하고 그것은 또한 고흐뿐 아니라 다른 모든 화가들의 그림을 책의 자그마한 도판이 아니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여행을 통해 만들어야겠다는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꼭 가보고 싶은 스페인의 톨레도는 엘 그레코로 인해 영원해진 곳이 아닐까.

모네의 수련을 자연광이 있는 전시실에서 보는 것도, 클림트의 멋진 풍경 그림 앞에서 말러 교향곡을 듣는 그 완전한 일체감을 느껴보는 것도 그저 바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떠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그날의 기쁨을 위해 그림여행지도를 펼쳐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