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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이라는 부제가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다 이야기해주고 있다. 저자 베리 로페즈는 오랜 현장 조사 결과를 써낸 책 '북극을 거닐다'로 전미도서상을 받은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는데 그의 글을 읽어본적도 없고 환경운동가로서의 명성도 들어본적이 없어서 특별히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저자의 글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에 리베카 솔닛의 서문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문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하나만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막상 책을 펼쳤을 때는 리베카 솔닛의 명성때문에 무작정 책을 선택했다는 것을 슬그머니 후회하게 되기도 했다.
"그는 자연 세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우리가 자연 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한 인식을 향해 다가선 한결같은 에세이스트였다. ...내게는 나의 길이 있지만, 그가 그 길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우리가 글에서 기대하는 것이 늘 그런 역할이니, 어쩌면 나는 그가 그걸 해주었다는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가보다"(서문)
이렇게 인용하고나면 바로 베리 로페즈의 글을 읽으시라, 하는 말 외에 또 무슨 덧붙일 말이 있겠는가. 글을 읽다보면 있는 그대로의 사물, 자연, 사람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순리와 저자의 통찰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베리 로페즈 사후에 출간된 그의 에세이집이라고 하는데 첫장에는 가족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머니가 자신을 어떻게 키우셨는지, 어린 시절 아동성추행을 당한 끔찍한 기억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풀어놓으려고 하는 모습이 담겨있는 글을 읽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물에 걸린 상어들을 풀어줄 때의 상황은 당연히 '기적'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성모마리아'를 어찌 믿지 않을수가.
아니, 이렇게 말한다면 베리 로페즈의 글이 신앙체험수기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 그가 좀 더 자연을 관찰하고 그 세계안에서의 평온함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또 그 평온함을 깨뜨리는 인간세계의 참혹함을 두 세문장으로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데 이건 그의 문장을 그대로 읽지 않는 한 보여주기 쉽지가 않다.
베리 로페즈가 어린시절 어머니 차를 타고 산길을 지나 집으로 갈 때 늘 캄캄한 앞길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갔다고 한다. 자칫 낭만처럼 보였을 그 회상은 낭만이 아니라 자동차의 전조등을 고칠 돈이 없어서 그럴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 우연찮게도 어머니가 옛시절을 떠올리며 버스타고 산넘어 가야할때면 세시간 넘게 가야하고 눈이 많이 내리면 그나마도 버스가 다니지 않아 산너머에 있는 학교에 출근을 못했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계셨다. 귀로 듣는 옛이야기와 글로 읽는 옛이야기가 중첩이 되면서 시간의 흐름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에 더해 인간이 변화시킨 자연의 모습이 오로지 인간의 편의에 의해서만 변화되어왔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기도 했다.
무엇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떠올리는 이야기를 이어가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속에서 죽기보다 앞에 놓인 가능성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또 이 세계는 사랑의 실패로 만들어졌음을 전쟁의 참혹함, 자연재해, 현대사회의 부조리함을 들어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되묻는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향해 어색하지않고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 가능한가? 라고.(255)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 고통 속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을 간결하게 말할수는 없지만 그 삶의 여정을 보여 준 이 책은 한마디로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그저 꼭 읽어보시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