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해 여름 그 장소에서 맺은 관계 전체를 떠올린다. ...
무엇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해 여름 그장소에서 맺은 관계 전체를 떠올린다. 북위 68도에서 하루 스물네 시간 내리쬐던 햇볕, 적운이 뜬 청명한 하늘, 가벼운 미풍.
우리 스스로 정한 일 외에는 비워둔 스케줄. 거의 온종일 눈앞에 나타나주는 큰 짐승들. 수목한계선 한참 북쪽인 이곳에서는40 배율 탐지 망원경으로 투명한 대기를 막힘없이 통과해 3, 4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동물의 행동까지 훤히 볼 수 있었다. 야생동물(혹은, 나중에 떠오른 호칭인데, 아직까지 인간의 간섭으로 방해받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자유로운 동물들)의 다양하고도 예측을 불허하는 행동에 관해 대화하는 일이 밥과 나의 일상이였다. 우리는 몇 해 전 유콘강 상류로, 세인트로렌스섬으로,
베링해 북쪽으로 함께 갔던 다른 답사들을 추억했다.
우리 캠프의 분위기는 느긋하고 평온했다. 우리는 살아 있음에, 커져가는 우정에, 이렇게 좋은 날 자유로운 동물을 관찰할 기회에, 우리의 단순한 일상에 깃든 시간의 무한함에 마음이 들였다. 나는 우리의 강도 높은 불침번 근무가 즐거웠다. 우리가 매일 지켜보는 광경이 우리한테는 아마 누구한테는 그야말로 황홀한 장관이었다. 늑대와 카리부의 추격전, 늑대 굴에 침입하려던 회색곰을 혼자서 물리치던 어린 늑대, 서른 마리 카리부 떼가 저녁 해를 등에 업고 유투콕강 얕은 물을 질주할 때 공기 중에 부서져 반짝이던 수천 개의 영롱한 방울들, 텐트에서10미터 채 못 되는 거리에 웅크려 앉아 20분 동안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북극여우 한 마리.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면 다른 연구자들과 즐거이 밥을 먹고 각자가 그날그날 관찰한 동물들의 흥미로운 행동들과 사건들을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날 오후에는 누군가가 근처 사주에서 파낸 매머드 엄니를 들고 돌아왔다. 어쩐지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 오기 전 출발한 그 세기에 살고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불가사의한 특권의 한복판에 머무른 나날이었다.
사랑에 실패했다는 증거는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다. 지금 시대에 사랑의 의미를 숙고하는 자는 컴컴한 암초와 절망의 벽에부딪힌다.
참해-해양 산성화, 기업의 부정행위, 정부의 부패, 끝없는 전쟁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면, 어떤 것이 유의미한 삶인지 새롭게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는다면다 괜찮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으로 꾸역꾸역 버티게 될 뿐이다. 황홀과 박애에 대해 더 깊은 대화를 시작해야 하고, 다른인간을 사랑하는 더 큰 포용력을 탐색해나가야 한다. 낡은 생각 민족국가 유지라는 참담한 악행, 타인에 대한 배려는 유약한 짓이고 베풂은 아둔한 행동이라는 생명 유린적 생각으로는 기대할 미래가 없다.
권력을 쥐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멸종과인종 청소와 해수면 상승의 시대에 순응하기보다 윌슨의 생명사랑을 일상의 대화로 가져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 속에서 죽기보다 앞에 놓인 가능성을 위해 사는것이 더 중요하다.
무지한 자만이 곤충과 철새와 원양어류가 우리 곁을 떠나더라도 우리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알기 때문에 살아남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다. 미혹된 자만이 불길이 지구를 태우는 것, 우리가아는 유일한 천국을 삼켜버리는 것을 보면서 의로운 자에게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윌로라 서쪽 평원을 걷던 그날 나는 이 세계가 사랑의 실패로 만들어졌음을 각성했다. 그러나 이 각성에 불을 붙인 것은 와리와 야퉁카의 사랑 이야기였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수년 전부룩스산맥에서 친구들과 여름을 보내며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의미인지 경험함으로써 얻은 앎이기도 했다. 그 경험이 내 작가생활의 중심 과제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사랑하는 것, 타인에게도 똑같이 촉구하는 것.
이 무시무시한 순간, 시리아 북쪽에는 몇몇 깃발 아래 기갑차량이 서 있고, 팔레스타인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맞아 죽어가고 캘리포니아 포도밭에는 화마가 덮치고, 개발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숲을 쓰러뜨리고, 학자금 대출의 폭리에 젊은이들 등골이 부서지고, 나이아가라 폭포수와 그린란드에서 녹아내린 물이다 같이 바다로 흘러드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가능할까? 운집하는 어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지구라는 대상을 향해 그리고우리 자신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향해 어색하지알고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이? 이 불타는 세계를 두려움 없이 부둥켜안을 수 있을까? 252-2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