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주문한 책박스는 아직도 '준비중'일뿐이다. 그게 세월호 키링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니, 그게 어제까지 준비가 되는것이었고 그렇다면 오늘은 배송을 시작해야하는건데, 알라딘의 입장에서는 어제까지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고 오늘에야 - 그것도 오늘 오후에야 회사에 도착하면 분류 작업을 해서 책 배송을 해주겠다는 뜻이었댄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고객센터 문의를 하면서 가장 빠른 답변을 받은 것이 오늘이고 바로 이 내용인데. 암만 생각해도 오늘도 배송될 기미가 안보이고 여차하면 예약판매하는 책도 아닌데 주문과 배송에 이르는 시간이 2주가 될 판인지라, 반쯤 협박조로, 배송이 늦어지면 주문 최소를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혔더니. 아니, 어쩌면 이것과는 또 무관하게 빠른 답변을 해 준것인지도 모르는데. 내 입장에서는 배송상황에 대한 문의 하나에 대한 답변조차 반나절이 걸리던 것을 생각하면 글을 올리고 삼십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메일도 아닌 전화답변을 해주니 놀랄수밖에. 아무튼.

오늘 오후나 되어야 - 그 오후도 몇시쯤인지는 확인할수도 없고. 책 배송을 한다는데 조금 빨리 받아야 할 책이 포함되어 있어서 아, 그냥 확 주문 취소해버리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이놈의 책 주문을 카카오페이로 했다. 까짓 오천원! 이러면서 신경도 안쓰다가 왜 이번에 카카오페이로 책주문을 해가지고는. 오천원 결제할인을 받았는데 이거 취소하고 다시하면 그 할인도 사라지는거 아닌가. 그리고 오만원 이상 결제해서 뭔가 받는 것이 하나 있었고. 기타등등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사은품들. 쳇! 다 필요없어!! 하고 싶지만 선뜻 주문취소가 되질 않네.

 

이건 정말 마스다미리를 다 갖고 있는데 문고판이 나오면서 텀블러를 준다고 하니 괜히 살까말까 고민하게 되는 마음과도 비슷하다. 아니, 이젠 어떤 기념품이 나올지 모르니 단행본이 아닌 시리즈나 뭐 그런 책들은 신간을 사는 것도 망설여지게 된다.

그러고보니. 책을 사는거야, 증정품을 사는거야?

 

아, 정말.

 

 

 

공간과 시간과 돈이 있다면야... 수집의 즐거움은 소소한 일상의 놀이가 되겠지만.

기껏 시간 맞춰 오일장에 가 사가지고 온 토마토 묘종은 마당에서 채 한달도 못버티고 다 죽어버렸고. 아니, 근데 어떻게 묘종 일곱개가 모조리 마르고 썪어버리냐? 우리 집 마당에서 토마토를 키운게 몇년인데.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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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4-21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굿즈를 사면 책을 끼워주는거죠~

chika 2015-04-21 16:33   좋아요 1 | URL
ㅠㅠ
그러니까 주문취소를 못했어요. 키링을 사니 덤으로 받는 책이 늦어도 할 말이 없는거죠 ㅠㅜ

나와같다면 2015-04-2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오늘 키링받았어요... 잊지 않을거예요...

chika 2015-04-22 09:18   좋아요 0 | URL
^^
저는 배송중입니다. 1년이 지났지만 진실은 여전히 저 너머에 있네요...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두번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를.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 황경신의 한뼘노트
황경신 글, 이인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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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책 제목이 확 와닿지 않았다. 그리 나쁜 것은 아닌데, 아니 오히려 한번 익숙해지고 나면 뭔가 다시 되내이면서 그 뜻을 생각해보게 되는 제목인데 이 말뜻이 무엇일까를 깊이 고민해보지는 않았기에 더 어정쩡한 기분으로 무작정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감지하고 있는 뜻은, '토끼처럼'이라는 표현에서 그 단서를 찾아낸 것이라 생각한다. 겁이 많아 항상 큰 귀를 쫑긋거리며 그 어떤 소리 하나, 아주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듣겠다는 마음. 그러니까 나는 온힘을 다하여 귀를 기울여 당신을 듣겠다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황경신 작가의 글을 좋아하지만 특히 더 좋아하는 것은 동화같은 이야기이다. 어떤 은유나 환상이 들어가지 않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듯 쉽게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런 동화. 이인 화가의 그림과 곁들여진 글이라길래 나는 망설임없이, 아니 해적선장이 보물이 있는 곳을 적어놓은 일기장을 쓰다듬듯 책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한 편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글은 천천히 조금씩 읽어보려고 마음먹어도 어느새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책을 열심히 읽어버리고 있는 나를 발견해버리곤 한다. 그만큼 깊이 빨려들어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소한 무심함으로 울다가 사소한 다정함으로 웃는다. 사소하게 기대하다가 사소하게 실망하고 사소하게 위로를 구한다. 사소하게 숨기거나 사소하게 드러내거나 사소하게 자랑하다가 사소하게 후회한다. 사소한 인연이 사소한 기억으로 가까워져 쌓이다가 사소한 망각으로 멀어진다. 나의 삶이 온통 사소함으로 채워져 있으나 사소한 행복은 가볍지 않고 사소한 견딤이 쉽지는 않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절망이 사소하지가 않다."(사소하게)

 

짧은 글이지만, 우리가 항상 일상적으로 쓰는 이야기지만 그녀의 마음을 거쳐 나오는 글은 굉장한 울림을 준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옮겨오고 싶은 글들이 너무 많았지만 꾹 참고 그대로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마음에 남기고 싶지만, 잊혀진다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두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책을 펴들고 또 그녀의 글이 내 마음을 울리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좋은 글들만 옮겨놓고 그것만 들여다본다면 이미 그 글이 갖고 있는 울림은 사라지고 없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항상 그래야겠다.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듣겠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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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20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하게,라는 말이 와닿네요.

chika 2015-04-21 10:15   좋아요 0 | URL
짧은 문장들이 마음에 많이 남아요. ^^

BRINY 2015-04-2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진짜 토끼는 절대 제 말을 귀기울이고 잘 들어주지 않더라구요.
그냥 그 커다란 귀를 펄럭거리며 딴청을 할 뿐이더라구요.

chika 2015-04-21 15:04   좋아요 0 | URL
헉, 그런 반전이! ;;;
겁이 많아서 자그마한 기척에도 금세 알아챌 것 같은 캐릭터인데...ㅠㅠ
 

요즘 짜증이 최고치를 갱신하며 치솟고 있는 판국인데.

좀 전에 지들이 급하다고 전화를 해 놓고는, 내가 허둥지둥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했는데 그 새 자리를 비우고 유유자적 나중에 전화한다고만 하고 있다. 급한건 댁들이거든? 게다가 일처리도... 하아.

제대로 안되고 있는 건 내가 신경 쓸 필요없지. 댁들 일이니까.

아무튼.

'배신'이 지금 이 페이퍼의 핵심코드가 되어가고 있다. 지들이 급한 일인데 오히려 내가 더 급하게 우당탕 해주고 있고. - 이런 경우는 배신이 아니라 황당,이라고 해야하나? 아, 그쪽일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지.

 

지난 주 주문한 책박스. 굳이 오만원에 맞출 필요는 없는데 어느새 관습처럼 책박스는 오만원을 넘겨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굳이 그걸 나눠 받을 이유는 없어서 그냥 주문. 근데 원래 당일 배송이 없어진 것은 아닐꺼고. 오후에 주문했으니 그건 그닥 신경 안썼는데, 상품이 준비되는 대로 배송하는 것은 마일리지를 빼겠다고 하고, 한꺼번에 다 받는 것은 조금 늦겠지만 - 하루, 이틀 정도겠으니 주말 넘기면 충분히 배송 시작되겠지, 하고 그냥 주문했는데. '주문확인' 페이지를 확인해봐도 모든 상품이 다 준비되었다고 나오는데.

왜 배송이 아니라 계속 상품 준비 중,이라고만 되어 있는걸까. 은근히..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 또 뭘까.

아, 내가 지금 '배신'에 꽂혀있는걸까? 아니, 배신의 화살에 맞은 거.... ㅡ,.ㅡ

 

 

 

 

 

 

 

 

 

세상이 정치판 같고, 정치판이 드러운 세상이고, 졸린 오후에 괜한 짜증을 부리는 나는 히스테릭한 승질 더러운 인간으로 보일 뿐이고.

 

 

 

오늘 데빌스 스타,를 받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노 유 진의 생각해봤어?

너무 술술 읽혀서 사실 별로 남지 않는 것 같다. 이미 한차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 내용들이어서 그런 것인지, 그리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서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역시 쉽게 읽히는 것은 쉽게 잊혀지기 때문인지. 내가 좀 정신이 없어서 그러는것인지. 아무튼. 재미있기는 한데 뭔가 그냥 생각없이 정신없이 흘려보내고있는 느낌이다.

 

 

 

아침에.

해가 길어지고 있어서 그냥 저절로 빨리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일찍 출근할 것도 아니어서 그냥 느릿느릿 꼼지락대면서 책을 읽거나 출근 준비를 끝내고 연필을 잡고 꼼지락대기도 하고 그러는데... 앉은뱅이 책상이라도 있으면 단 십분이라도 차분하게 뭔가를 해볼터인데,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일없이 멍때리다가 시간만 보내고 만다. 오늘도 일기장에 낙서를 하듯 메모를 잠깐 하고, 연필을 잡고 있다가 나왔는데 평소보다 삼십여분 일찍 일어났음에도 다른 날과 다르게 삼십여분을 뭔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삼십분을 더 잤다면 오히려 '잠'이라도 충분했을텐데. 정말 무엇을 하고있는 것인지.

 

책상위에 책이 여섯권. 옆자리에 계신 분이 출장을 가시는 관계로 일없이 놀아도 된다고 했는데, 딱 지금 만사귀찮아져서 책읽기도 안되고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있다. 도대체 책을 읽어제끼는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책박스는 재촉하는것일까.

참으로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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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6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지프 앤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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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가 쓴 자서전인데 책의 제목이 조지프 앤턴인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조합해서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 조지프 앤턴이며 '악마의 시'로 이슬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살만 루슈디가 사용하는 가명이 조지프 앤턴이다. 그렇게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세월이 십수년, 그는 "상징적 인물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실존 인물이 되고 싶었다"(476)라고 항변하고 있다. 조지프 앤턴으로 살아야 하는 그 시간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어렴풋이 알 듯 하면서도 나는 온전히 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물론 나의 체험이 아니기에 그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득 엊그제 읽은 황경신의 에세이가 떠오른다. "삶이란 둘 중의 하나.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런 것들이 쌓여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책은 작가의 책상을 떠나면서 변모한다.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니 더는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책이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해도 좋다. 책은 제멋대로 여행할 테고 작가가 간섭할 방법은 없다. 작가 자신도 문장 하나하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남들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달라 보인다. 책은 이미 세상으로 나아갔고 세상은 책을 바꿔 놓는다.

'악마의 시'도 그렇게 집을 떠났다. 그리고 작가의 책상 바깥의 세상에서 이 책은 유난히 극단적인 변형과 탈바꿈의 과정을 겪었다. (129)

 

나는 '악마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다. 이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비유에 대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문학이 전하는 은유의 세계를 이해할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종교의 지도자들이 왜 종교적 금기 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노골적인 신성에 대한 모독은 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행하는 모독처럼 느껴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때 읽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악마의 시에 대한 관심은 아예 갖지 않았다. 호기심에 슬쩍 들춰본 적은 있지만 내 기억에 악마의 시는 이해할 수 없는 긴 연작시같은 느낌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살만 루슈디와 악마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인 조지프 앤턴을 읽다보니 이슬람을 좀 더 이해하고 싶고 악마의 시를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는 분명 이슬람을 모독하려고 글을 쓰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표현처럼 작가의 책상을 떠나 책이 된 '악마의 시'는 바깥의 세상에서 극단적인 변형과 탈바꿈의 과정을 겪으며 그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조지프 앤턴은 파트와 기간동안 살만 루슈디라는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자유로움도 속박당하면서 지내야 했던 13년간의 기록이다. 처음 글을 읽을 때는 그 기록의 의미에 대한 생각은 커녕 그저 단순히 살만 루슈디의 자저전이라는 인식조차 별로 없이 막연하게 한 작가의 삶, 정도로만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자신의 삶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호기심이 가득한 상태로 재미삼아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집중하며 빠져들기보다는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3인칭 화자로 쓰여졌기 때문에 소설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조지프 앤턴은 살만 루슈디 자신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의미로 행동을 하고,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느낌을 갖는지, 특히 세상 사람들의 온갖 편견과 오해에서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는지... 그의 마음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것들이 살만 루슈디 자신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내고 항변하지 못하고 억눌러야 했던 그 자신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이 책은 단순한 자서전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문학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문학은 우주를 조금 더 열어보려고 노력한다. 인류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총량을 조금이라도 증가시켜 결국 인간의 가능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한다. 위대한 문학은 이미 알려진 세계의 변경까지 나아가 언어, 형식, 잠재력의 한계를 확장함으로써 세계가 전보다 더 크고 더 넓게 느껴지도록 한다"(811)

 

조지프 앤턴을 읽기 전까지는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봤을 뿐이지만 이제는 읽고 있는 책들이 좀 정리가 되면 빠른 시일내에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의 '의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조지프 앤턴의 자서전을 풀어내는 살만 루슈디의 글솜씨로 봐서는 그의 소설들은 정말 흥미롭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도 그의 작품을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한 몫을 하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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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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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무실 화장실에는 좋은 문구가 하나씩 걸려있는데 그 중 한 곳에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가 걸려있다. 가끔 되내이곤 하면 왠지모를 위안을 받게 되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로 시작하는 그 시.

정호승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서울의 예수]라는 시집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렇게 서정적인 언어로 단지 감정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연민'을 느끼게 하는 시인의 시에 충격 비슷한 것을 느꼈고 곧 그의 시에 빠져들었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그의 시는 한편의 짧은 에세이같은 느낌이기도 했고, 삶의 고달픔에 짓눌려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노래 같기도 했다. 차마 위로의 말을 건네기 힘든 상황일 때 나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펼쳐들고 그 시를 옮겨 적어 건네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시는 큰 위로가 된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한 송이 들꽃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라/ ...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눈물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라"(새벽에 아가에게)

그러니까 그의 시를 읽다보면 그늘이 없는 사람, 올곧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사람조차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의 시가 더 좋은 이유는 듣기 좋은 언어로만 포장을 한 이쁜 시가 아니라 그 안에 결연히 일어서게 하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슬픔과 절망을 묵묵히 견디어 내어 끝내 굳건히 일어나야 하는 그런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꽃)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 되어야 한다/..... 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우물이 되어야 한다"(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인생의 길을 가다 넘어지는 내게 따뜻한 손을 내밀고만 있는 것 같은 위안이 되는 것이 바로 정호승 시인의 시이다.

그리고 오늘은 특히 나의 마음을 울리는 시 한편을 넘길수가 없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꽃을 보려면, 전문)

봄 지나 꽃이 피었다 져버리기 전에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먼저 볼 생각이다. 아니, 올 봄에는 꽃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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