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하아. 분명 읽었는데,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뭐였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얼핏 내용을 훔쳐보고 기억을 떠올렸다.

소설을 다 읽었을때의 당혹감이 새삼 또 떠오른다. 물론 지금의 당혹감만큼은 아니지만.

이건 너무 한낮의 기억상실이 아닌가. 말같지도 않은.

 

 

 

 

 

 

 

 

 

 

 

 

 

 

 

나도 나중에 혼자 지내게 되면 집 구조를 좀 변경하고 짐 정리를 해서 에어비앤비로 이용하게 할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가 직접 먼나라든 이웃나라든 가서 이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점차 내가 어딘가로 떠나기보다는 그냥 한곳에 머무르면서 새로움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방법인 것일까. 아무튼. 피곤이 점점 쌓여가고 있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일하기도 싫어서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데 옆에서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니 나도 괜히 일하는 것 마냥 뭐라도 두들겨대고 있어야할 것만 같은 기분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건 도대체가. 낭비일뿐.

 

 

 

틀리지 않는 법,이라니.

정말 '정답을 찾는 법'이 아니라 틀리지 않는 법'을 제목으로 하다니. 수학, 넓게 과학은 정답을 찾는 학문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틀리기 어려운 답을 도출할수 있으며 틀리지 않으려면 올바른 가정을 설정하고 올바른 데이터 집단을 선정하고 올바른 알고리즘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건 절대 생각하기 싫어지고 있는데 '수학적 사고의 힘' 틀리지 않는 법은 왠지 보고 싶어진다. 이제는 틀려도 괜찮으니까...그런것인지도.

 

빨간책,이라니. 이 책 원제도 빨간책일까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 따르지 말고 학생들이 스스로 힘을 조직해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데 우리한테만 빨간책으로 불리는거 아닐까? 아니 그런데 영국에서는 책이 몰수되고 그리스에선 출판사 대표가 구속되는 등 불온서적 취급을 받았다니....궁금해지는 빨간책.

 

 

 

 

 

 

 

 

 

 

 "혁명가라면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마르크스는 친구 바이데마이어에게 썼다고 하는데. 흠...

"인간은 다른 인간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아가고 성장하고 발전한다. 관계의 비밀이 존재의 비밀보다 훨씬 크다" ... 그러나 도덕적 명령이 상실된 올리가르히의 시대(장 지글러는 현 시대를 세계적인 금융자본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의 전제정치 시대라고 말한다. 올리가르히는 소수자에 의한 지배, 즉 과두정치를 뜻하는 그리스어 올리가키에서 유래한 단어다)에서 연대성에 대한 희망은 그저 망상에 불과한것은 아닐까?

장 지글러의 책은 이미 새롭게 구입한 책들에 밀려 책탑의 밑바닥에 깔려버리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꺼내고 싶어진다. 그 전의 책과 비슷하지 않을까, 자서전적인 책은 별로인데...라고 생각했는데 선입견과 편견으로 책을 미리 덮어버리면 안되는거였어.

 

 

 

 

 

 

 

 

미국의 역사가 아니라 미국인의 역사.

"미국의 창조는 인류 최대의 모험이다" 라는 서술로 시작한다니. 아니, 저자는 책머리에 미국 역사에 대해 세가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미국은 건국 당시 불가피한 죄를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 건설로 속죄했는가, 사사로운 이익 추구의 욕구와 야망을 공동체적 이상과 이타주의로 통합했는가, 인류의 본보기가 될 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대담한 기획을 완성했는가. 개척시대와 건국과정에서의 폭력과 야만을 똑바로 응시했다,고 하는데 그건 이미 널리 알려진 - 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뿐. ㅉ

 

 

 

 

 

 

 

 

 

현실에서 남녀평등은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대중매체 속에서 남녀평등은 실현된 엄연한 사실이 됐다. 이러한 착시 속에 페미즘은 시대착오적인 운동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매체가 조롱하고 희화화한 페미니즘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슈퍼우먼이 되지 못해 홀로 자책하거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저주하는 대신 모순된 요구, 권리의 박탈, 사회의 부당함 앞에 다시 뭉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요청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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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임시 저장글이 사라져버렸다.

 

임시 저장글이 온통 다 사라져버린 것도 아니고.

 

서평을 항상 임시저장글에 쓰면서 업데이트를 하듯이 새로 임시저장하곤했는데

 

일주일정도 추가로 글을 썼던 것이 사라져버렸다.

 

이미 올린 서평글이었다면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을 텐데, 시간이 없어서 임시저장을 해 두고 다음날 글을 올리려고 한 바로 그 글이 사라져버려서 주말 내내 기분이 안좋았다.

 

내가 찾아 달라고 한 글은 26일 임시저장한 글이었는데 엉뚱한 것만 찾아내어 할일을 다 했다 해버리니. 답답하지 않을수가 없다.

 

26일까지 글을 써서 임시저장을 했는데, 왜!

 

27일 불러오기를 했더니 그 주간에 새로 덧붙인 글들은 사라져버리고 그 이전에 썼던 글들만 남아있는 것인지 문의를 한 것이었는데 그 불러오기 한 시점에 그 글이 자동저장 되어버렸고, 알라딘은 그 글을 찾아냈다고....

내가 찾아달라 한 것은 그 전에 이미 사라져버린 내 글들인데 말이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갔고.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 알라딘은 굿즈 마케팅에 정신이 팔려 다른 건 신경을 안쓰는 듯.

 

그러니까 오늘도 내 마일리지는 마이너스인데 쌩뚱맞게 마일리지 유효기한이 한달 남았다는 메일이나 보내주고 있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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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5-3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너무 속상하시겠어요. chika님 뿐 아니라 언제 누구에게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왜 적절한 대처를 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chika 2016-05-31 17:53   좋아요 0 | URL
사라져버린 것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인 거겠지요?
왠지 요즘은 이곳보다 다른 곳에서 기웃거리는 시간이 좀 더 많아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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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랫만에 폴 오스터의 글을 읽었다. 우리에게 폴 오스터가 알려지기 전부터 나는 그의 작품들이 번역될때마다 서둘러 읽기 시작했고 전작주의자가 되다시피 그렇게 그의 글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그의 새로운 작품이 번역되어 나올때마다 읽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작품은 꾸준히 읽어왔는데 그것 역시 언젠가부터 뜸하게 되었다. 당치않게도 폴 오스터의 작품에 매너리즘이 생길리도 만무한데, 나 혼자 괜히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잠시 폴 오스터와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말 꽤 오랫만에 읽은 폴 오스터의 [내면 보고서]는 다시 폴 오스터의 글을 마구 읽어보고 싶게 만들고 있다.

내 비루한 기억력은 분명 빵 굽는 타자기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폴 오스터가 그 작품을 언급할때마다 이런 글이 있었나? 하고 있을뿐 그의 작품에 대해 많은 것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작품을 십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면 보고서]는 폴 오스터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회고록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신의 이야기를 2인칭 시점으로 설명하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크게 구분하자면 첫장은 유년기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두번째장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영화 이야기, 세번째장은 그의 청년, 아니 갓 성인이 되어가던 시기인 십대의 마지막시기와 이십대초반의 청춘 시절 여자친구와 주고받은 편지글이 담겨있는 세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책의 뒷부분에는 앨범이 덧붙여져 있는데 그 앨범에는 흑백의 사진이 담겨 있고 그 사진을 넘겨보고 있으면 앞부분에서 읽은 폴 오스터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며 그의 이야기들을 다시 되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느 한 부분을 딱히 집어내어 말한다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책을 읽다가 폴 오스터가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부분은 괜히 한번 꺼내어보고 싶어진다.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혼란스러워져.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이후로 어떻게 될지 감조차 잡지 못하겠어... (글쓰기로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할 게 틀림없어) 그냥 굶주리며 글을 쓸까?"(222)

그렇게 고민했던 폴 오스터는 위대한(적어도 내게는)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폴 오스터의 젊은 시절이나 지금 우리의 문학 청년들이나 맘껏 글을 쓰며 살아가겠다는 꿈과 이상을 굶주림에 대한 현실적 불안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날마다 조금씩 읽어나가기 시작하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조금 서둘러 읽어버렸다. 책의 곳곳에 밑줄을 그어놓고 싶기도 하고 필사 노트에 옮겨놓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적어놓고 싶어지는 책이었지만 여유가 없어서 그냥 읽어버린 것이 아쉬움을 남기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폴 오스터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고 있어서 마냥 좋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문장들 사이에서 머뭇거림을 남기고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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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열심히 하지 않는다니, 지금의 내게 있어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열심히 하고 있었나? 라는 의구심이 든다. 아니,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출근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사무실 업무에 찌들리고난 후 퇴근해서는 또 집에서 해야하는 집안일을 해놓고... 피곤한 주말에 밥 먹는것조차 잊은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티비보다가 잠만 자고 있다가도 주일 오후가 되면 나도 모르게 새로운 한주간을 위해 집안을 정리하며 반찬을 준비하고 사무실 출근준비를 위해 내가 해야하는 최소한의 업무를 정리해보게 된다.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는 이것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라는 항변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노 요코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라는 에세이와 나의 이야기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그녀의 에세이 제목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그녀가 이야기하고 있는 열심히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작위적으로 애써 만들어내려고하지 않는다는 것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글 자체도 그리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간혹 이 글을 통해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싶어지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애써 다시 뒤적거리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했다. 솔직히 지난 주부터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지만 며칠전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난 후 계속 몸상태가 안좋아 거기에 신경쓰느라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모르고 지나쳐버릴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책을 얼렁뚱땅 대강 읽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엉뚱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글 하나하나 심각하게 읽는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우습게 느껴진다.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가족이야기는 없이 남자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대책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한 사람의 모습에 겹쳐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이 느껴지는 듯해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 아들이 있었어? 그런데 자식 교육에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라는 생각의 이면에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키워주고 있는 것 같아 라는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하고 아줌마 친구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은근슬쩍 험담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때쯤 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수다를 떨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험담을 하기도 하고 의미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이야기들을 힘을 빼고, 때로는 맥없이 그저 읽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그전까지는 그냥 그런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문득,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다 엇비슷하구나 라는 마음에서 느낄 수 있는 자잘한 위안을 얻게 된다.

 

중간중간 밑줄을 쫘악 그어놓고 싶은 글들이 눈에 띄었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이 이야기들은 그렇게 읽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잖아,라는 본능적인 망설임이다. 그렇게 열심히 파고들면서 읽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볍게 한없이 가볍게만 읽고 싶은 이야기랄까... 그러니까 그 가볍다는 말이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넘겨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말의 의미가 뭐지? 라거나 이 글에서 그녀가 의도하는바가 뭐지? 라는 분석따위는 던져버리고 - 사실 그렇게 분석할 것도 없다. 그녀 자신의 글 자체가 워낙 솔직 담백하고 세상만사 모든 일을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는 듯 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래, 그냥 이렇게 사는거지 뭐... 하다보니 어느새 한 권의 책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끝이났다. 그리고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렇게 쓰다보니 그녀의 글에 대한 나의 이야기가 된 것이라고 서둘러 마무리를 해 버린다. 그래도 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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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
나무 외 지음 / 세나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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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저 가볍게만 생각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그곳의 풍경이 너무 맘에 들어 이런 곳에서 딱 한달만 더 지내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몇 년 전 이탈리아의 소도시를 여행하면서 그곳이라면 잠시 생활인으로 머물다 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낯선곳에서의 시작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조금은 특별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게 되는 여행에서의 일탈 정도쯤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소망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막상 지금 내게 지금의 일상을 벗어나 어딘가 새로운 곳에서 삶을 새로이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한참을 망설이고만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 이라는 제목은 지금의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삶의 모험을 감행해본다는 도전이라기보다는 낭만적으로만 생각해 본 내게 이 책에 실려있는 저자들의 삶의 이야기들은 전혀 예상밖의 이야기들이었다. 일본에 대한 문화적 관심이라거나 일본에 대한 동경같은 마음보다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라는 막막함 속에서 무작정 일본으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 물론 모두가 다 그렇게 무작정 떠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라면 도저히 엄두도 못 낼 결단을 하고 일본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는 놀랍기만 했다.

특히 언어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진 자산이 많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일단 무작정 불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듯 일본으로 떠나간 이들은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십대의 청춘뿐 아니라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힘든 삼십대 후반, 사십대의 나이인 이들도 있다는 것은 일상에 안주하며 편하게만 살아가려고 하는 내게 나의 미래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일본어학교가 일본어를 배우기 위한 기본 단계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아는 누군가는 늦은 나이에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은근히 왕따도 당하고 학교 생활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을 해 줘서 이들이 그저 한 문장, 두 문장으로 짧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했다는 그 표현속에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됐을까 생각해보게도 된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든 생계를 위해서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든 그들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삶속에서 만나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익숙하기도 하고 조금 낯설기도 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일본의 한 단면일수도 있겠지.

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 그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거야 라는 조금은 무책임한 생각에서 그 말이 갖는 의미와 깊이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새삼스럽게 나의 생활 터전을 떠나 어딘가 다른 곳에서의 삶을 생각해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내 삶의 새로운 도전을 해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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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6-05-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브에서 일본으로 워홀간 학생들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아르바이트를 어찌나 많이하던지 누구랑 말한마디 하기는하나 궁금할 정도였어요... 여기나저기나 쉽지 않겠지요.

chika 2016-05-30 17:49   좋아요 0 | URL
네. 책을 읽다보니 정말 잠 잘 시간도 모자랄만큼 일만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인건비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생활비도 많이 들어가니까 풍족할수는 없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