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시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 - 공학으로 읽고 예술로 보는 세계의 다리 건축 도감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에드워드 데니슨.이언 스튜어트 지음, 박지웅 옮김 / 보누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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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어렸을 때 동네 하천에 배고픈 다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천으로 나뉜 이웃동네를 연결하기 위해 평소 마른천인 곳에 시멘트로 연결선을 만든 것 뿐인 다리인 것 같다. 그렇게 실용성만을 갖춘 다리를 보다가 바닷가에 짧게 놓여있기는 하지만 흔들거리는 구름다리를 보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배고픈 다리의 고급버전인 잠수교를 보게 되고 2년전에는 유럽에서 아름답다고 알려진 카를교도 걸어보게 되었다.

몇백년전에 만들어진 카를교는 수많은 관광객이 건너다니면서 붕괴의 위험이 커졌다는 뉴스를 본것도 같은데, 지금은 과학적인 공법으로 다리를 건축하지만 그 옛날에 어떻게 보와 무게하중과 미적인 감각까지 갖추면서 긴 다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잔뜩 기대를 하고 이 책을 펼쳐들었다. '공학으로 읽고 예술로 보는 세계의 다리 건축 도감'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덤으로 세계의 아름다운 다리를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다리는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솔직히 공학적인 건축 설계 도감과 설명은 이해하는 것이 쉽지도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공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만 확인을 했지만 그래도 베네치아의 코스티투치오네 다리로 인해 베네치아 교량 발전이 가속화되었다고 하는 설명이라거나 기술과 설계의 발전으로 더 다양하고 많은 다리가 건설되었다는 것들은 이동하중이나 교량 같은 것을 몰라도 그저 다리를 만드는 재질만 이해하면서 봐도 좋았다.

한강다리에 대해서도 특별히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도시발달의 한 축으로 이해하는 것도 색달랐고, 보석상과 강변의 건축물의 조화로 명성이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베키오 다리를 다시 보는 것도 좋았고, 아주 오래전 사진배경으로만 인식했던 타워브리지가 새삼 건축물이 아닌 다리로서의 역할을 하며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좋았다.

 

스페인에 가본적이 없는데 언젠가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톨레도에도 꼭 가보고 싶었다. 그곳에 엘 그레코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트라야누스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알칸타라 다리도 보고 싶어진다. 알칸타라 다리는 이천년이 넘었는데 트리야누스 황제가 영원히 남을 다리를 건설했다, 고 하는데 실제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 옛날에 석조로 다리를 만들어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 톨레도에 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도 석조아치교라고 하면 정말 세밀한 설계로 견고하게 만들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실제 이 다리의 유선형 교각은 하류와 달리 상류쪽이 강이 범람할 때 받는 물의 저항을 줄일 수 있도록 유선형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홍예석과 벽돌의 조화로 건설된 알칸타라 다리는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알칸타라를 포함해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다리를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올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 되기를 기다려보며 지금은 그저 책장을 넘겨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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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고 있는 시,는

국어시간이 아닌 국사시간에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선생님께서 또박또박 읽어 주셨던 박노해시인의 '지문을 부른다' 였습니다. 밑줄을 그어가며 광야에서 백마타고 오는 초인의 의미는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들으면서 바로 내 마음대로 공감하게 되는 시. 이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지 않고 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곤 했다. 시를 나 혹은 너라고 바꿔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그러다보니 지금 여기 내가 맨 앞이었다. 천지간 모두가 저마다 맨 앞이었다. 맨 앞이란 자각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고 감성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존경하는 친구가 말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이 아니고 세계감이다. 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이다.

 

세계감과 세계감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새로운 세계관이 생겨날 것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놀랍도록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모아놓은 조금은 낯선 낯익은 이야기가, 오래된 기도 같은 이야기가 다른 삶,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았으면 한다." - 시인의 말

 

 

지금 여기가 맨 앞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지금 여기가 맨 앞 전문

 

 

 

스물다섯 번의 행운과 스물일곱 살의 불행. 행운이었을까?

 불행이긴 할까.

 신체를 잘라내고 타낸 보험금.

 천만다행을 믿어?

 날개도 다리도 믿지 않아, 시간을 공평하게 자르지 못하는 것처럼, 삐뚤빼뚤하게 잘린 신체 절단 마술처럼, 어느순간부터 실험이고 시험인지. 칭찬과 비난과.

 비가 오고 개는 순간이 나뉘고 있어. 표구사가 입술을 찢으며 웃을 때, 박수가 태어나네. 변태해 날아가는 비둘기? 종과 종 사이. 몸이 잘리는 기쁨과 멀쩡히 살아날 거라는 실망 사이.

 잘리기 전과 후, 다시는 같아질 수 없어.

 매초 다른 사람으로 분리되고 있잖아. 괜찮아?

 괜찮아.

 강렬한 긍정 속에서 다시

 태어나. 언니의 냉담에 동참하며. 엄마의 믿음에 부응하며. 돌이킬 수 없는 세례의 끝. 미개한 신앙인 타고난 모으로

 입술을 찌으며 웃을 수 있어. 

 

- 권민경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플라나리아 순간 일부

 

 

세계관,이라거나 세계감이라거나... 뭔가 마음속에서 훅 치고 올라오는 그런 비장함이 있었던 그때의 기억이 사라져갈 즈음 뜻하지 않게 병원을 다니게 되었고 시,라는 것은 비장함만이 아니라 그저 문장 하나만으로도 공감을 하게 되고 말로는 딱히 표현할 수 없지만 왠지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공감하고, 내가 위로받고, 내가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시,가 내게는 시,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시를 읽는 것이겠구나...같은.

 

 

 

 

 

 

 

 

 

 

 

 

 

 

 

 

 

 

 

처방전

 

짐승은 몸이 아프면 먹이 활동을 멈춘답니다. 우리들 측면에선 단식인 셈입니다. 몸을 비우고 기다리는 일, 내면의 번다함이 가라앉도록 말미를 주는 일입니다 스스로르 들볶는 일도 멈춰야겠죠

 

 몸이 아프다는 사람에게 무어라 보탤 것은 없고 마음만 앞선 탓입니다 나름의 처방을 내렸고 탕약도 지었습니다 달여서 인편에 전하겠습니다

 

 처방 하나 : 하루치 연료를 보충하는 아침은 꼭 챙겨야 합니다 체에 거른 햇살이니 미온수에 섞어 마시면 몸도 마음도 더워지고 체온을 유지할 겁니다 꼭꼭 씹을 때마다 간밤의 악몽이 바스러지도록 신경계를 조절했습니다 싱거운 농담도 넣었으니 계란찜이 짤 때 곁들이면 좋겠습니다

 

 처방 둘 : 악력을 첨가했으니 어깨 결리는 저녁에 효과가 있을 겁니다 엄지손가락은 소화불량으로 명치끝이 뻐근할 때 요긴할 겁니다 과용하다가 의탁하는 습관이 생기면 후일 더 큰 상실감에 시달리게 되니까 유의해야 합니다

 

 처방 셋 : 점심은 황제처럼 먹어야 한답니다 식욕보다 평온함이 비만도 예방하고 효과적입니다 아침에 마신 약이 정오무렵 발현됩니다 누구와 무엇을 먹더라도 만끽할 수 있도록 일상에 휘둘린 마음을 다스려줄 겁니다 현재에만 만족한다는 고양이의 하품을 넣었습니다

 

 처방 넷 : 봄바람을 채집해 결이 고운 쪽으로 넣었고 붉은 구름을 잘게 썰어 섞었습니다 고운 빛 덕분에 마시이에 수월할 겁니다 이 약은 서서히 마음을 제어해 산책을 자주하게 됩니다 저절로 운동하게 하니까 소화도 돕고 숙면에도 효과적입니다

 

 처방 다섯 : 베갯모 오른쪽엔 종달새를, 왼쪽엔 뜸부기를 새겼습니다 오른쪽으로 눕는 습관을 예상했으니 아침마다 종달새 지저귐을 들으며 깨어날 겁니다 오랜 불면은 탕약으로도 다스리기 힘들 것 같아 비방을 사용했습니다 후유증만 아니라면 팔베개가 특효이긴 합니다

 

 처방이라면서 염려만 언급했습니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했으니 섭생에는 끼니가 으뜸입니다

 

- 전영관시집 슬픔도 태도가 된다, 처방전 전문

 

 

 

 

병원에 있다 퇴원을 하고 받은 첫 선물 시집이 [슬픔도 태도가 된다] 였습니다.

세번째 수술이었고 이번이 끝이 아니라 어쩌면 또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 우울해지곤 했지만 그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바꾸게 되는 시집이었지요.

 

"슬픔은 짐작할수록 사나워지는 짐승이라서

오지 않은 것들은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다 아물었다 싶으면 단풍 먼저 기별을 넣고

내린천만큼 건강하게 돌아가겠습니다"

 

시를 읽다말고 시인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희망은 절망을 외면하는 기술이었다"

오지 않은 것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깨달으며 오늘도 처방전을 받아들고 섭생의 끼니를 챙깁니다.

오늘도 시는 내게 살아갈 힘을 주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살아가는 희망의 기술을 깨우치게 하고...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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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 영웅들의 섬
신도 준조 지음, 이규원 옮김 / 양철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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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이라고만 하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모를 것이다. 자세히 알지 못해도 별 관계는 없지만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섬은 오키나와를 지칭하는 것이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으로 독립된 왕국이었으나 일본에 복속되었다. 탐라국으로 존재하던 제주도가 대한민국에 속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었지만 오키나와는 조금 다른 결이기도 하다는 느낌은 그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이 소설은 그걸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

 

전후, 오키나와에는 미군이 주둔하며 군사시설을 만들어 간접적인 지배를 하고 있었다. 섬의 소년들은 미군기지에 몰래 들어가 보급품 물자를 훔쳐내 오는 것을 '센카아기야'라 부르며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치기어린 무모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훔쳐낸 물건들은 오키나와의 빈곤한 주민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곤 한다.

그렇게 훔쳐내온 물건을 '전과'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섬의 영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설의 온짱이다. 친구 구스쿠, 동생 레이, 애인인 야마코는 한팀을 이루어 센카아기야를 단행하는데 미군에 발각이 되어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추격이 일어나고 쫓기던 그들은 가까스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하는데 구스쿠와 레이를 먼저 보낸 온짱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이 사건 이후 온짱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고, 온짱이 살아있다고 믿는 구스쿠, 레이, 야마코는 계속 온짱을 찾기 위해 애쓰는데....

 

센카아기야에 연루된 이들은 결국 잡혀 징역을 살게 되고 전과자가 되지만, 해방 이후 일제의 경찰이었던 이들이 바로 미군정하에서 권력을 잡았듯이 오키나와에서 전과자인 구스쿠도 경찰이 될 수 있었다. 야마코는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다가 교사가 되어 삶을 이어가고, 레이는 변함없이 망나니처럼 형을 찾아 무모하게 진격할 뿐이다.

이들의 이야기와 오키나와 주민들의 삶과 미군기지가 있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이 얽히면서 소설 '보물섬'은 그저 청춘의 치기어린 모험담뿐만이 아니라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오키나와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추진되면서였다. 오키나와의 실상에 대해, 피폐된 주민들의 삶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우리의 역사와 닮아있는 그들의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알게 해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군으로 인한 폭행, 범죄를 저질러도 국내법이 아니라 미헌병에 수사권이 주어지고 그렇게 미국의 재판에 넘겨져 무죄방면되는 일들은 그동안 우리가 봤었던 주한미군의 범죄행위와 그에 대한 처벌이 너무도 똑같아 이것이 일본 소설인지 한국 소설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미군의 차량에 치어 죽은 아주머니에 대한 묘사와 사건의 결과는 우리의 효선이와 미순이를 떠올리게 해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대책없이 센카아기야를 하던 거칠고 난폭한 청춘들이 결국 찾아내는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나긴 역사속에서 잊지말아야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현재진행형인 지금의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힘겨운 현실을 헤치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제 제대로 살아볼 때가 왔다'고 성원을 보낸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말처럼 우리 모두 이제 제대로 살아봐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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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희순 - 노래로, 총으로 싸운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정용연.권숯돌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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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보면서 그저 흥미롭게만 그려진 독립운동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아가씨라고 불리는 양반네 딸도 총을 들고 독립운동을 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의병장 희순은 동네 아이들에게 동요같은 노래로 독립운동을 노래하게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꺼라던 동네 아낙네들에게 똑같이 총을 들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음을 인식시켜주었고 머나먼 중국땅으로 가서도 학당을 세워 독립운동가를 키워냈다. 이런 독립운동가를 여태 모르고 있었다.

 

의병장 희순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일생록]을 바탕으로 그래픽노블로 작화한 이야기이다. 학창시절 위정척사, 쇄국주의, 갑오경장, 동학농민운동... 이런 내용들을 배우며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하지는 못했다고 기억한다.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일제의 관점에서 역사의 기록이 왜곡되어 왔었고 그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때문에 더욱 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관심이 필요한데...

아무튼 이야기는 희순의 어린 시절 양반이지만 모친상을 당한 자신을 찾아온 몸종에게도 음식을 챙겨주며 신분의 차이없이 자신을 찾아 준 벗으로 대하는 모습을 본 유중교의 중매로 유홍석의 아들 제원과 혼례를 하게 된다. 이후 시아버지와 남편이 나라를 찾기 위해 힘든 활동을 하고 일제의 고문에 끝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독립운동을 위한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연보를 보면 그녀가 76세 되던 1935년 장남 유돈상이 모진 고문에 결국 푸순 감옥에서 먼저 세상을 떠나고 이어 윤희순, 그녀도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의 남은 아들과 손주들이 삶은 어떠했을까.

이 그래픽노블의 첫머리에는 1960년대 서울에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며 힘든일을 하는 독립운동가 자손의 모습이 나온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그렇게 힘든 삶을 보냈을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도 자본을 축적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댓가로 받은 땅덩어리를 되찾기 위해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다. 왜 그런것들은 질기고 모질게 기름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지.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역사적으로 많은 패배가 있었고 결국은 일제강점기를 보내며 독립운동에 수많은 희생이 있었으며 해방이 되기까지의 역사가 분노와 슬픔을 더 많이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 생각하며 무심코 책장을 넘겨버리고 있었는데... 알고 있는 것으로 이 이야기들을 그냥 흘리듯 읽을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니, 실제로 무심히 글을 읽다가 어느 순간 울컥해져버리고 만다.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우리도 나가 의병 하러 나가보세. 우리나라 만세로다. 안사람 만세로다"

"할미는 배움이 짧아 조선이 망국에 이른 복잡한 정세는 미처 알지 못한다. 하나 이것만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너희 조상 모두가 금전과 권력에 어둡고 제 한목숨 부지하기 급급한 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용서하거라. 죽음보다 어려운 삶을 너희에게만 떠안긴 채 혼자 떠나는 것을. 나라 잃은 백성으로 내 어찌 자식 잃은 슬픔을 혼자만 겪은 듯 유난스레 굴까마는. 이제는 정말 기력이 쇠하고 고단하여 쉬고 싶구나. 한번도 나만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할미에게 마지막 이기심을 허락해다오. 할미가 다 마치지 못한 일기는 광복된 세상에서 너희가 채워주기 바란다. 그리고 부디 기억해다오. 좋은 옷, 기름진 음식, 푹신한 잠자리에 입히고 먹이고 누이진 못했으나 우리는 너희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것을. 무엇을 지키려 했냐고? 글쎄다.

바로 그것은 누군가에겐 가족이었고 누군가에겐 이르이었고 목숨이었고 땅이었고 하늘이었고 지존이었고 독립이었을테지.

그러나 그 대답은 좀 미뤄두기로 하자. 우리가 그토록 처절히 지키려 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는 훗날 너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겠느냐?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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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별 1 - 경성의 인어공주
나윤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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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전라북도 군산, 빚을 갚지 못한 아버지는 5살의 수아를 주인댁에 몸종으로 팔아넘겼다. 또래의 아이가 없었다면 수아는 그곳에서나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주인아씨의 말벗이 되고 몸종이 되어 주며 삼시세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지내는 수아는 시간이 날때면 근처 바닷가로 가 잠수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 빠져 의식을 잃고 있는 사람을 발견해 구해내는데...

 

경성의 인어공주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고래별은 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다. 아직 연재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선뜻 이 이야기를 읽어보려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처음의 시작을 같이 한 것이 아니라면 연재가 다 끝난 후 한번에 정주행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이야기의 마무리가 되지 않은 글을 보는 궁금증과는 또 다르게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민초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친일의 자손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며 독립운동을 하는 지식인도 있지만 친일의 자손으로 아비의 부를 위해 팔려가듯 일본군과 혼인을 해야하는 처지를 비관해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해버린 삶도 있다. 조금 뜻밖의 전개이기는 했지만 집을 뛰쳐나갈 수 있는 당시의 남자들과 달리 마음대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당시 여성들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의병장 윤희순 같은 분도 계시지만 오랜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흔치않을 것이다.

 

독립군 의현와의 만남과 글을 배우지 못한 수아가 필연적으로 글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예감, 삼시세끼 먹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머무르고 있는 주인어른댁을 떠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담겨있는 고래별 1권은 이후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무척 기대된다. 인어공주의 끝은 슬픈 엔딩인데.....

"절망할 자유도, 파멸할 자유도 모두 나의 것이다"

아씨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리라 믿게 되는 수아의 삶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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