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

(독신남)-96쪽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
파스칼

(따분한 장소의 매력)-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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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6-08-2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오늘 점심을 혼자 먹었다.
사자나 늑대의 삶처럼, 사냥을 한 것은 아니고 그저 단지 근처의 패밀리마트에 가서 삼각주먹밥을 싸들고 와서는 익숙하게 드라마를 플레이 시켜놓고 한입한입 까먹기 시작했다.
이건................................................................................ 오타쿠의 자질이 아주 높아 보이는 짓인거 아닌가?
 
낯선천국
최인형 지음 / 분도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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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천국, 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나서 사진집을 펴들었을 때 맨 처음 내 눈에 띈 사진.

이 세상이 어떤지, 그 느낌을 말로 할 수 없는... 이 무표정한 얼굴과 눈빛.
마음이 시린.

가끔 너무 아픈 걸 보면 눈 감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 힘든 걸 만나면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덕분에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를
너무 아프게 바라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조금은 가벼운 눈과 맘으로 이들과 만나 주시길...
그래서 어설픈 동정 말고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깊은 사랑의 눈과 이해하는 맘으로 이들을 보듬어 주시길...
이들에게 따뜻한 나눔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길...

사람들은 누구나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꿈을 꿉니다.
그러다 힘들어지면
문을 닫아 버리거나
눈을 감아버립니다.

또 한편
한 자락 희망도 남아 있을 것 같지 榜?곳에서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여기
아프면서도
절망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다시 눈 떠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행복은 전염성이고 파장이 깊어서
나누고 함께하면
더 넉넉하고 커지는 건가 봅니다
참 좋은 바이러스예요.

"당신도 가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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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영국 BBC 다큐멘터리, 행복 전문가 6인이 밝히는 행복의 심리학
리즈 호가드 지음, 이경아 옮김 / 예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오늘도 나는 변함없이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가 피곤함에 쩔어 다시 눈을 감아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려고 기를 쓰고 누워있다가 결국 6시 40분 알람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도 충분히 선선할 듯 한데, 시원함을 넘어서 오한이 날 듯한 에어컨 바람때문에 몹시 힘들어하다가 버스에서 내리고는 오히려 따스한 공기가 더 좋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업무를 하고 점심식사를 하고 1도화상을 입을 것만 같은 뜨거운 햇살에 인상을 찌푸리며 사무실 밖을 돌아다니다 다시 사무실 안에 들어와서 남이있는 일을 하고....
별다를 일도 없고, 즐거울 일도 없고, 그렇다고 마구 인상을 쓰며 힘들어할 일도 없다. 이런 내가.... 행.복.한.가?

어제 이 책을 다 읽었다. 어렵지 않게 쓰여있고, 어디선가 누군가에겐가 읽어보고 들어보고 경험해봤던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 확연히 다른 것이 있었다. 그건 이전에 내가 읽었던 책은 '그래! 결심하는거야! 나도 이제는!' 이러면서 뭔가를 실천행동으로 옮겨야만 하는 느낌이었는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이 책은 그냥 내게 스며드는 것 같다. 무심코 스며들어서 이 책은 말야~ 하고 말을 꺼내게 되면 괜히 씨익~ 하고 미소부터 짓게 만들어버리는. 그것이 이 책을 다른 책들과 확연하게 구분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행복'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자신의 업무 능력에 관한 것들만이 아니라 직장 내에서의 관계, 업무 환경에 대해서도 되돌아봐야 하며 가족, 친구, 건강, 심지어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적혀있다. 그런데 이 모든 조건들이 다 충족되어야 행복한 것인가?

아니, 행복하기 위한 것은 이 모든 조건을 만족스럽게 갖는것이 아니라 편한 마음으로 나의 모든 조건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나는 행복하고 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방글라데시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행복 지수를 가진 국가라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을 읽어보면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이 내게 모자라는 모든 환경을 말없이 순종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게 좋지 않은 환경이라면 과감히 그것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내 상황에 대한 비관이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그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아주 당연하게 나는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BBC 다큐멘터리라는 부제가 붙어 있듯이 이 책은 긍정심리학이라는 내게 조금은 생소한 분야의 실제 실험에 대한 성과물이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나 그에 대한 보편적인 대답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통계자료를 근거로하여 그 보편적인 대답이 정답이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다들 그러지 않는가.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야' 라고 대답하면서도 실상 머리속에서는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을 갖는 것.- 나만 그런가?
돈이나 일, 가족, 성, 건강, 음식, 나이듦....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그 한 예로 지금 당장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자. 억지 웃음이라도 입술꼬리를 올리고 히힛, 거리며 소리내어 웃어보고 깔깔거려보자. 괜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바로 이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 행복이 별건가? =)
조금 더 알고 싶다고? 그렇다면....이 책을 꼭 읽어보라는 말을 남길수밖에....=)


오늘도 변함없이 아침에 눈뜨고 출근하고 일을하고 퇴근하고...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르다. 즐거운 일을 생각하며 미소지을 수 있고, 내가 맡은 일들을 나의 능력으로 해 내었고 이 시간에 즐겁게 읽은 책의 느낌까지 적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또 남은 시간을 즐길 수 있으며, 내일은 또 오늘과는 다른,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가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일상의 행복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 책은 참으로 말 그대로 행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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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으로 2006-08-3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좋은 리뷰입니다. 아, 뭔가 판단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좋네요..라는 느낌을 전하고 싶은 거랍니다^^;;
일상이 행복하다는 확신이 필요한 날을 살고 있다고나 할까요? 내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해 줄 이 책을 소개해 준 치카님! 이 글을 읽는 '오늘'이 언제 일지 모르지만...행복하세요^_____^

chika 2006-08-3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림으로님, 의 글을 읽는 지금 아주 행복해요 ^^

icaru 2006-11-2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요!!!

chika 2006-11-2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요! 이카루님, 올만요~ ^^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관 순례
이주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커다란 도판이 너무 맘에 들었고... 아주 오래전이긴 하지만 내가 갔다온 루브르 얘기를 하고 있어서인지 엄청 설레였었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 내가 그림은 잘 모르지만 괜히 맘 설레며 좋았던 곳. 앉아서 습작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그런곳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처음 루브르 박물관을 갔을 때, 이리 저리 헤매다가 모나리자를 찾아 쫄레쫄레 쫓아가던 그 길의 이름모를 가이드는 (단체 여행객팀에 끼어들어 몰래 설명을 듣는 우리를 그 아줌마들은 한팀인양 마구 끼워주셨더랬다.하.핫) 회화중심으로 설명을 해 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주헌님의 설명처럼 회화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설명을 해 준 나이들어보이는 가이드. 장 드 봉,의 한켠에 존 굿 맨이 쓰여있어서 (당연하지만 아주 딴 이름같지 않은가, 그런 생각때문에) 엄청 웃었던 기억과 아무도 없는 그곳에 쬐끄만 초상화만 걸려있어 뒷문으로 들어간 듯한 인상이었던 기억이....
어쩌면 이렇게 그림에 문외한인 나같은 애가 지나온 길을 그대로 옮겨적고 있는지, 평소 이주헌님의 책을 많이 읽어보긴 했지만 이번에는 더욱더 친근함이 느껴져 괜히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훨씬 재미있게 읽게 되었다.

"아, 그래.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내게 딱,인 말인게야" 라는 말은 책을 펴들기 시작하면서 내 입을 맴돌더니 끝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대수인가? 아는만큼 보이겠지만, 미술관 순례는 느끼는 만큼 기억에 남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그리 깊이 읽을 필요는 없는것이겠냐,면 또 그렇지 않으니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순례''라는 말에 걸맞게 개인적인 체험의 느낌까지 적절하게 털어놓고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주헌은 정말 이 시대 최고의 ''그림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관 순례,는 많이 볼 수 있도록 많이 알려주는 것 뿐 아니라 자그마한 도판을 보면서도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설명을 자분자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친절하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그 친절에  감동까지 더해진다. 그러니 글로 뒤쫓아가는 프랑스 미술관 순례이지만 느낌이 커져간다. 
그 느낌이 증폭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가리라. 언젠가는 반드시, 그곳으로''를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했다.

칼레의 시민을 보기 위해 칼레를 가지 못한다면 서울의 로댕미술관이라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서울 로댕미술관의 작품이 원작으로 인정되는 열두번째 에디션이라니 그것이라도 봐야하지 않겠는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주헌님의 설명을 들으면 왠지 꼭 한번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니....), 모네의 그 아름다운 정원도 가봐야하겠고, 고흐.. 아아 고흐가 지냈던 오베르에 가서 그와 테오를 위해 꽃 한송이라도 바쳐야 하는데....

프랑스 미술관 순례는 전시된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이야기가 소박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더욱더 그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 꼭 가봐야겠다. 꼭 가봐야겠다... 언제가 되더라도.


*** 한가지 재밌었던 것은 '라스코의 동굴벽화' 이야기. 중학생이 되어 전국 모의고사라는 걸 봤을 때, 라스코 동굴 벽화는 역사시간에 배웠지만 미술과 관련된 시험에 나왔었다. 가장 오래된 미술작품을 골라내는 아주 쉬운 문제였는데 내 주위 모든 애가 그걸 틀린것이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있는 라스코 동굴벽화가 미술관 순례기에 당연히 들어가 있다는 것이 괜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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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8-2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모르게 이주헌씨의 새 책이 나왔는가 했더니 이전 <프랑스 미술기행>의 개정증보판이군요. 좋아하는 책이 증보판으로 나오면 마음이 무지 쓰린 것이.... 다시 사기는 그렇고 그래도 어떻게 바꼈나 궁금하고.... ㅠ.ㅠ

chika 2006-08-2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바람돌이님. 그 심정 제가 알지요....ㅠ.ㅠ

개정판에는 루브르와 오르세가 추가되었고요 (그래서 맨 앞에 나왔어요 ^^).
유럽 미술관 기행,도 읽으셨죠? 그러면 굳이 개정판을 사야하진 않을 것 같아요.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영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의 꽃무늬 티셔츠는 나의 존슨즈베이비로션과 같은 존재였다, 는 것을 깨닫고 피식 웃은 후 상진은 하늘호 앞마당의 노란 물탱크에 그렇게 적어넣었다. '딸기 우유와 크림빵 사이에서 엄마의 꽃무늬 티셔츠를 이해했다'라고.


왜 항상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은 내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고 넓이를 알 수 없는 이해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계속 못마땅하고 언짢은 시선으로 여우 꼬리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책을 읽으며, 눈 내리는 날 환하게 빛나는 은빛 여우를 본 그 경이로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상투적으로 짐작이 가는 집안의 사정이야기에 화가 나려했다. 또 이런 얘기인거야? 왜 항상.... 뭔가 울컥거리면서 괜히 트집잡고만 싶었다.

하지만 바로 나 자신이 경멸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눈 돌리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깊이 가라앉아 있는 내 이기심이 스멀스멀.. 벌레처럼 기어오르고 있는거다.

연립주택의 옥탑방, 무허가건물에 사는 소년 상진은 호수없는 자신의 집을 '하늘호'라고 부르고 있다.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형이 있고, 공사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친 후 하루종일 집에서만 지내는 아버지와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엄마가 있다. 이들에게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실적으로 '희망'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이 상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빛여우가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들어보려 하지 않고 그렇고 그런 어른처럼 도시 한복판에 여우가 어딨어? 하며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은 너무 추레해보였다.

나는 되도록이면 어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루종일 리모컨만 눌러대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포장마차를 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그러지 않고서는 내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내 전공이 아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진작 깨달았다. 너무 따지고 들다가는 낭패를 보기 쉬운게 세상이었다. 때로는 협상을 할 줄도, 어느 선에서 적당히 눈감아 줄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런데 그 '어느 선'이 문제였다. 항상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그 '어느 선'이었다(99).

상진이 고민하던 그 '어느 선'을 나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나는 여전히 강건너 불구경하듯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고, 실제로는 외면하면서 동정하듯 힐끔거리면서 고민하는 척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어느순간 나는 작가가 여우에 홀린 허깨비 상진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하늘호에 살고 있는 상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날 상진에게 다시 나타나 '슬프고 아름다운 역사가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이제는 더이상 쓸쓸해하지 않으며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 은빛여우의 이야기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말을 건네지 않을 것 같아 조금은 쓸쓸하지만.

더이상 희망은 없고 슬픈 현실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뚤어진 시선으로 팔짱끼고 서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진은 그런 내게 애써 강을 건너와 말을 건네주었다. 그러니 이젠 나도 꽃무늬 티셔츠를 이해할 수 있을까? 바다로 돌아가기 시작한 귀신고래를 볼 수 있을까...? 왠지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쓸쓸해졌다.


"여우는 알고 있을까.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쓸쓸해진 나는 더는 쓸쓸하지 않다던 여우가 생각났다. 그날 여우가 눈빛으로 들려준 길고 긴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온다던 그 약속을 기억해냈다. 눈이 오면 여우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흐린 하늘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발이 흩날릴 것처럼 사방이 어둑해졌다. 나는 옥상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294)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씩씩하며 오히려 어른을 염려하고 위안을 준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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