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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영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의 꽃무늬 티셔츠는 나의 존슨즈베이비로션과 같은 존재였다, 는 것을 깨닫고 피식 웃은 후 상진은 하늘호 앞마당의 노란 물탱크에 그렇게 적어넣었다. '딸기 우유와 크림빵 사이에서 엄마의 꽃무늬 티셔츠를 이해했다'라고.
왜 항상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은 내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고 넓이를 알 수 없는 이해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계속 못마땅하고 언짢은 시선으로 여우 꼬리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책을 읽으며, 눈 내리는 날 환하게 빛나는 은빛 여우를 본 그 경이로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상투적으로 짐작이 가는 집안의 사정이야기에 화가 나려했다. 또 이런 얘기인거야? 왜 항상.... 뭔가 울컥거리면서 괜히 트집잡고만 싶었다.
하지만 바로 나 자신이 경멸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눈 돌리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깊이 가라앉아 있는 내 이기심이 스멀스멀.. 벌레처럼 기어오르고 있는거다.
연립주택의 옥탑방, 무허가건물에 사는 소년 상진은 호수없는 자신의 집을 '하늘호'라고 부르고 있다.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형이 있고, 공사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친 후 하루종일 집에서만 지내는 아버지와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엄마가 있다. 이들에게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실적으로 '희망'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이 상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빛여우가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들어보려 하지 않고 그렇고 그런 어른처럼 도시 한복판에 여우가 어딨어? 하며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은 너무 추레해보였다.
나는 되도록이면 어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루종일 리모컨만 눌러대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포장마차를 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그러지 않고서는 내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내 전공이 아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진작 깨달았다. 너무 따지고 들다가는 낭패를 보기 쉬운게 세상이었다. 때로는 협상을 할 줄도, 어느 선에서 적당히 눈감아 줄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런데 그 '어느 선'이 문제였다. 항상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그 '어느 선'이었다(99).
상진이 고민하던 그 '어느 선'을 나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나는 여전히 강건너 불구경하듯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고, 실제로는 외면하면서 동정하듯 힐끔거리면서 고민하는 척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어느순간 나는 작가가 여우에 홀린 허깨비 상진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하늘호에 살고 있는 상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날 상진에게 다시 나타나 '슬프고 아름다운 역사가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이제는 더이상 쓸쓸해하지 않으며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 은빛여우의 이야기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말을 건네지 않을 것 같아 조금은 쓸쓸하지만.
더이상 희망은 없고 슬픈 현실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뚤어진 시선으로 팔짱끼고 서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진은 그런 내게 애써 강을 건너와 말을 건네주었다. 그러니 이젠 나도 꽃무늬 티셔츠를 이해할 수 있을까? 바다로 돌아가기 시작한 귀신고래를 볼 수 있을까...? 왠지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쓸쓸해졌다.
"여우는 알고 있을까.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쓸쓸해진 나는 더는 쓸쓸하지 않다던 여우가 생각났다. 그날 여우가 눈빛으로 들려준 길고 긴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온다던 그 약속을 기억해냈다. 눈이 오면 여우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흐린 하늘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발이 흩날릴 것처럼 사방이 어둑해졌다. 나는 옥상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294)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씩씩하며 오히려 어른을 염려하고 위안을 준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