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이 그림 여행 - 화가의 집 아틀리에 미술관 길 위에서 만난 예술의 숨결
엄미정 지음 / 모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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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전쯤에 드디어 우피치를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홀로여행의 두려움에 항상 행사참가 아니면 패키지로 떠났던 여행과 달리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고 피렌체에서도 하루의 시간을 머무를 수 있게 계획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피치에 대한 열망은 나 하나뿐이었고 지팡이를 짚으며 겨우 따라다니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몇시간을 걸으며 미술관람을 하는 사치를 누리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는 판단에 우피치 미술관 대신 산마르코 수도원을 갔고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아씨시에서는 수바시오 산 정상에서의 피크닉을 즐기다가 성프란치스코 성당의 프레스코화를 놓쳤다. 별다른 준비없이 갔었던 나는 그곳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대기가 조토의 그림으로 그려져있다는 것도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이탈리아 여행을 끝내기전에 바로 또 다시 이탈리아를 찾아야 하는 이유들을 안고 왔다. 그런데 십여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다시 가보지 못했다. 여행 후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오랜 시간 병원에서 지내셨고 어머니가 괜찮아지시니 이제는 내가 아파서 맘편히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다. 그리고 또 좀 괜찮아지려나 했더니 전세계적으로 여행 자체가 힘들어지게 되어버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유가 생길 때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가족이 함께 다닐 수 있을 때 무조건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그 생각조차 너무 늦었구나..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후회 없이 그림 여행'은 그 제목만으로도 확 끌리는 것이었다. 그냥 그림 여행만으로도 좋은데 말이다.

저자는 2013년부터 이 책의 기획을 하고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의 여정길에 올랐다고 한다. 지역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별 여정을 따라 글을 썼는데 처음은 그렇게 저자의 글을 따라 읽어나가고 그 다음에는 부푼 마음으로 또 다시 나만의 여정을 계획해보는 것으로 이 책을 두번, 세번 읽을 수 있다. 처음 책을 펼칠 때는 생각보다 도판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 책은 미술관 관람이 중점이 아니라 화가의 생애와 관련한 길을 따라가는 것임을 느끼게 되면 더 이상 그림 도판이 별로 없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화가의 여행에서 첫번째가 뒤러라는 것이 좀 낯설어보였지만 이내 이탈리아 여행에서 움브리아를 지나칠 때 얼핏 본 프란치스코 성인의 순례길이 떠오르면서 화가의 여행이 그 순례길의 여정과 다르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면서 처음부터 저자의 여정에 빠져들어버렸다.

폴 세잔처럼, 페르메이르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들처럼 고향에서만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근대 이전의 화가들은 제작 의뢰가 있으면 그곳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화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은 시기별로 달라지는 화가의 환경과 그림화풍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해서 사실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그림에 대한 열망뿐 아니라 여행에 대한 열망도 커져 있어서 그런지 화가의 집이나 화가가 실제로 다녔을 것 같은 산책길, 동네의 풍경들은 직접 가보고 싶어진다. 또 늘 도판으로만 보는 것으로는 그림의 색감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해져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다음번 여행지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어느 곳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미술관은 어디일지, 또 그곳에 가면 놓치지 말고 봐야하는 화가의 그림은 무엇일지 머리속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조지아 오키프로 인해 산타페라는 곳이 궁금해졌었는데 이 책에서도 앙귀솔라의 그림을 보고 그녀가 너무 궁금해졌다. 우연찮게도 이탈리아 여행 마지막날 베네치아에서 시에나로 가야하는데 날짜 조율을 하지 않은 것을 까먹고 하루를 날리는 바람에 가보지 못했던 시에나에 앙귀솔라의 자화상이 있다고 한다. 앙귀솔라의 그림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시에나를 한시간 거리에 두고 로마로 향해야했던 기억이 겹치면서 다음에는 반드시 시에나에 갈 기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다 유명한 화가들이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화가들의 색다른 면모도 느끼게 되고, 나 역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솔직히 모네의 그림에 그리 큰 감흥이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모네의 그림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마티스의 그림이 주는 평온함과 즐거움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너무 진하거나 너무 희미한 도판들이 그의 그림에 대한 진가를 느끼기 힘들게 했었는데 직접 그림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져보게 하고 그것은 또한 고흐뿐 아니라 다른 모든 화가들의 그림을 책의 자그마한 도판이 아니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여행을 통해 만들어야겠다는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꼭 가보고 싶은 스페인의 톨레도는 엘 그레코로 인해 영원해진 곳이 아닐까.

모네의 수련을 자연광이 있는 전시실에서 보는 것도, 클림트의 멋진 풍경 그림 앞에서 말러 교향곡을 듣는 그 완전한 일체감을 느껴보는 것도 그저 바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떠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그날의 기쁨을 위해 그림여행지도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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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은 아닙니다만 - 서른 개의 밤과 서른 개의 낮으로 기억하는 '그곳'의 사람, 풍경
남기형 지음 / 도서출판 11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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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은 아닙니다만... 뒤에 어떤 말이 생략되었을까, 궁금했다. 단순하게 여행책은 아닙니다만 여행에 대한 이야기인 것은 맞습니다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기회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여행을 떠나곤 했었기에 최근 몇년간 병원에 다니느라 제대로 된 휴가를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병원을 핑계로 서울 나들이를 하며 수원행성도 다녀왔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병원을 핑계로 한 나들이도 멈추게 했고 여행은 현실이 아닌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여행에 대한 수다가 길어지게 된다. 내 여행 이야기도 그렇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는 하나의 무용담처럼 흥미롭고 내가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 책은 저자가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풍경들을 통해 깨닫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밤과 낮으로 구분하고 글을 쓰고 있는데 여행이야기를 이렇게 밤의 모습과 낮의 모습으로 나누어 이양기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다. 확연히 느껴지는 것은 저자의 사진을 통해서이고 - 사진에 대해 말하자면, 사진이 크게 실려있지는 않지만 풍경이나 그 분위기를 느끼기에 작은 크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밤과 낮의 여러 풍경을 한꺼번에 보는 재미도 있어 좋았다. 글에 섞여드는 적절한 사진으로 보는 여행의 모습은 참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밤과 낮의 사진을 볼 수 있고, 밤과 낮으로 구분되어 떠올릴 수 있는 여행 이야기가 삶의 체험과 기록처럼 담겨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삶의 궤도를 벗어나는 멍청한 짓 한두 번쯤은 저질러봐야 한다는 이상한 합리화를 하게 해주지 않나"(172)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저자가 여행에 동행하기도 하는 친구가 있고 그가 잠시 맡겨놓은 짐가방을 분실할까봐 꼭 끌어안고 졸고 있는 모습은 나 역시 친구와 여행을 떠났을 때 졸고 있는 친구의 사진을 남겼던 추억을 끄집어 내기도 했고 차별에 대한 오해의 글에서는 한 도시에서 이방인에 대해 친절히 대하던 이주민의 모습과 노골적으로 동양인을 무시하던 서양인과 한국전 참전에 대한 체험으로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물론 두리번거리며 관광하던 나를 자꾸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경찰이 괜히 나를 의심하는 건가 싶어 무서웠는데 머뭇거리던 경찰이 결심한 듯 내게 다가와 가방을 잘 메고 유명관광지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의 체험과 나의 체험은 다를수밖에 없고 같은 곳을 여행한다 하더라도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를수밖에 없는데 소소하게 배울 수 있는 여행팁을 알게 되는 재미도 있다. 여행다니며 빨래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 한번은 창틀에 우리 가족의 온갖 속옷을 걸어놓고 외출하고 돌아오니 게스트하우스 부부가 청소를 한 후 창틀에 옷걸이를 걸어주고 간 이후에도 딱히 빨래 걱정을 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 홀로 장기간의 자유여행을 떠나는 저자와 패키지이거나 지인의 친분으로 편하게 여행을 다녔던 나와는 그 필요성이 다를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너무 가볍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여행은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최고의 현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때로 결핍이 풍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그 어떤 시대보다 풍족함을 자랑하는 현대사회에서 반대로 결핍된 건 무얼까? 네팔의 산속 로지의 밤에서 물질의 결핍으로 사람이, 대화가 풍요로워진 것을 보며 이 산속을벗어나면 나는 다시 와이파이를 얻고 사람을 잃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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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관계 걷어차기 - 사람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
장성숙 지음 / 스몰빅라이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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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지키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10가지 방법'이라는 부제를 보면서 내 인간관계를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라고 한다면 좀 많은 거짓말이 담겨있는 말이다. 사실 나는 관계맺음에 그리 마음을 쓰는 편이 아니다. 나를 잘 아는 누군가의 말을 빈다면 선뜻 마음을 내주지 않아 다가서기 힘들게 하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진심으로 관계맺음을 하는 친구, 라는 조금은 포장된 칭찬을 듣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 어울려 노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오래전에는 그런 나도 함께 어울리며 몰려 다니느라 시간낭비, 돈낭비 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편하게 생각하기는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직장 후배들이 많아지면서 왕따가 되어가는 느낌이 커졌다. 실제로 정보 공유를 하지 않고 나만 빼놓는 일이 많아지자 그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었는데 상황정리를 하고 보니 단지 한명이 주동을 하고 모두를 휘둘리게 하며 그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후로는 직장내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인사이동이 되면서 나를 이해하고, 나를 챙겨주고 함께 하는 친구들이 생기니 더 별다른 마음을 쓰지 않게 되었는데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행한 관계 걷어차기'라는 것은 직장에서만이 아니라 가족, 친구 등 내가 관계맺고 있는 모두와 연관이 될 것이고 세상은 혼자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기왕이면 불행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관계맺음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이 책에 관심을 갖게 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관계맺음에 대해 행복해지기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각각의 장에서 상담을 하며 쌓아 온 구체적인 예시와 해결 - 훌륭한 관계개선의 결과가 있지만 때로는 실패와 내담자의 상담 종료로 인해 관계 개선이 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하는 글 속에서 나 자신의 관계 개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부분이 가족과의 관계, 특히 부부나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론적으로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놓는 것이 좋았다. 서로 말이 없고 별 문제 없어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관계 악화는 한순간이 아니라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하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상대방의 감정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편하게 내보이지 못하는 것에서 오해와 불신이 커져나갈 수 있다는 것에서 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한가지 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나 역시 감사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기도 하고 굳이 물질적인 보상을 해 줘야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었는데 내면만큼 외면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다섯번째 원칙의 이야기는 나를 좀 더 돌아보게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정도 물질적인 보상이라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렇게 행동하기는 하지만 보상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감사의 표시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는 이 책은 각 장의 마무리로 행복한 관계를 위한 솔루션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조금만 노력을 한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나 자신의 행복한 관계 맺음도 필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마음 상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또한 그보다 선행적으로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사족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이 있었는데,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에 와서 편히 쉬고 싶은데 자꾸 어머니가 말을 시켜서 대부분은 건성건성 흘려듣거나 때로는 대답도 잘 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라서이다. 종일 집에 혼자 지낸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에 짜증이 쌓여있을 때는 말없이 외면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말고 그 모든 것을 표현해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짜증을 낼 것 같아 없는 것처럼 무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 지쳐있으니 쉬고 싶다는 표현을 하면 서로의 마음이 더 편해지고 관계도 좋아질테데 이처럼 쉽게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을 지금까지 못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모든 관계의 결정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자존감을 지키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그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슬쩍 펼쳐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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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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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뭐에 꽂힌것이었을까. 평소 내가 느꼈던 박완서님의 글에서 느꼈던 것은 진심에 가까웠는데 '진실'이라는 제목때문이었는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라는 박완서님의 글 모음에 급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글이 그렇겠지만 에세이는 나의 주관적인 상황과 생각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지만 예전의 느낌이 그저 비슷한 경험에 의한 동질감과 웃음이었다면 지금은 좀 더 깊은 감정의 울림이 느껴지는 것을 직감한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 초반에 여행가방을 분실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하루가 지나 찾아내어 남은 일정의 여행을 기분좋게 끝낼 수 있었던 내 경험과는 달리 완전히 분실해버린 가방에 대한 소회는 분실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가방안에 가득담긴 빨래거리 속옷과 그 안에 켜켜이 쌓아 둔 선물용 커피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그분과의 세대차이를 느끼게 하면서도 왠지 그 마음은 다 비슷하구나 라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낯선 곳을 찾아가야하는데 마중을 나와주겠다는 것에 안심을 하며 길을 나섰는데 지갑을 두고 온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틀어지는 일화는 자잘한 것들에 대해 늘어놓고 있지만 글을 읽는 나로 하여금 도대체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라는 긴장감 넘치는 글이기도 하고, 나이 든 노모에 대한 걱정과 내가 그만큼 더 나이를 들었을 때는 이런 상황이 오면 어쩌나 라는 생각으로까지 많은 갈래의 생각을 하게 된다. 

한가지 다행이라 생각한 글이 있는데, 택배 배송과 관련해 무거운 책박스가 잘못배송되어 온 것을 다시 갖다달라 하고나서 보니 자신의 기준에서는 이십여분 거리지만 배송 심부름꾼 - 더구나 초등학생처럼 여린 몸의 십대 소년으로 보였던 그 아이는 두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잘못 배송된 것을 갖다주고 가며 원망어린 한마디를 남기고 갔는데 당황한 박완서님은 교통비를 보태줄 생각마저 못했다며 잠을 못이뤘다고 하는 글이다. 사실 며칠 전 내게도 배송이 엉뚱한 곳으로 되어 택배박스를 찾을 수 없었는데 다시 찾아서 갖다 주겠다고 했지만 설명을 들으니 어느 곳에 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그냥 찾아오겠다고 얘기했다. 정말 작은 친절이지만 만약 내가 움직이지 않고 바쁜 택배기사님에게 굳이 찾아오라고 했다면 이 글을 읽을 때 내 마음이 조금은 불편했을 것이다. 


박완서님의 글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 정말 소소한 일상이야기인데도 내가 예상하는 결론으로만 치닫지 않아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정말 많이 느끼는 것은 소소하게 부끄러운 일이라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을 것 같지만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정말 말 그대로 진심과 진실이 아닌가, 싶다. 

넉넉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남았고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하는 글들은 이전에 읽은 기억이 있지만 그전과는 다른 느낌이 드는데 이제서야 더 그 깊은 맛을 느끼게 된 듯하기도 하다. 

후에 다시 읽어볼꺼야, 라는 생각에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박완서님의 십주기에 나온 편집본 에세이를 읽고나니 이제는 차근차근 그분의 글을 섬세하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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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허밍버드 클래식 M 5
찰스 디킨스 지음, 김소영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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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일까 혁명 이야기일까....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처음 읽었을 때 - 그러니까 청소년용 편집본이 아니라 완역번역본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이야기의 흐름은 당연히 알고 있는데 자꾸만 문장속에 빠져들었던 것은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함이 어떻게 악으로 표현되고 현실속 올리버 트위스트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구조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도 등가교환처럼 그대로 소설 속 인물들로 보여지고 있다. 


이야기의 시대 배경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시기,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운명이 바뀌는 이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지만 어리석음의 시대이기도 했다"(13)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첫문장에서부터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이 소설이 단지 주인공들의 장엄한 삶과 죽음, 희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널리 읽힌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토리 자체도 몰입하게 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더해지는 문장들과 그 문장 안에 담겨있는 시대의 통찰과 사랑은 새삼 감탄스럽다. 

성급히 사랑에 대한 문장 하나만 끄집어 내 본다면 "항상 여름이던 에덴동산 시절부터 추운 겨울이 대부분인 위도가 낮은 땅에서 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자의 세상은 항상 한길로만 흘러갔는데 찰스 다네이의 길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여인을 향한 사랑의 길이었다"(239) 라는 것으로 지고지순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또 다른 지고지순함과 숭고한 희생은 또...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한 글이 성급히 달려가고 있는데 이 소설의 스토리는 혁명의 시작점에서 그 이전에 일어난 귀족과 평민 사이의 불평등과 억압의 구조가 깔려있으며 그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루어진 시민혁명은 복수의 여신의 칼날에 무고한 피를 흘리게 되면서 엇갈리게 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고 더이상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가 아닌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늙은 구두 수선공은 18년동안이나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마네트 박사이며 그는 은행원 로리의 도움으로 그의 딸 루시와 재회하고 자유의 몸이 되어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프랑스 귀족 출신인 찰스는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영국으로 망명해 살면서 루시를 사랑하게 되고, 루시 주위에는 또한 그녀를 사랑하는 변호사 카턴이 있다. 

불안정한 프랑스가 아닌 영국에서 이들의 삶은 행복하게 살았다, 라는 것만 있을 것 같았지만 프랑스에서 온 한통의 편지로 찰리는 프랑스로 떠나게 되고...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기 전의 소설이어서 그랬을까. 사실 책을 다 읽고나면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늕가를 떠올리게 하는 복수의 여신이 더 활약을 하는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그 줄기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더 크다. 하지만 이 역시 프랑스 혁명의 일부일지니. 그들은 죽었어도 살아있으리라. 


"이 방들은 보기에 충분히 아름답지만, 대낮의 하늘 아래 드러나는 본질은 낭비, 부패 갈취, 빚, 융자, 박해, 굶주림, 벌거벗음 그리고 고통스러움이 쌓아 올린, 허물어지고 있는 탑일 뿐이에요"

"만약에 유산이 제 것이 된다면 저보다 자격을 더 갖춘 사람에게 넘길 겁니다. 그 사람은 이 탑을 천천히 무너뜨려서,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착취당했지만 그곳을 떠날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는 덜 고통받도록 무게를 덜어 줄 겁니다"

"너는 그런 새로운 철학을 가지고 어떻게 우아하게 살아갈 거냐?"

"저는 프랑스의 여느 사람들이 하는 일 그리고 귀족들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야겠죠. 바로 노동 말입니다"(229-230)


어쩌면 사랑과 혁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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