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디서 읽었더라.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죽기 한 시간 전 이렇게 말했던가 생각했던가 했지. 만일 절벽 높은 곳, 두 발로 간신히 설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서, 더구나 사방이 낭떠러지와 대양, 영원한 어둠, 영원한 고독, 영원한 폭풍으로 둘러싸인 그런 곳에서 살아야 한대도, 1아르신의 공간에 서서 평생을, 천년을, 영원을 살도록 내버려진대도, 그렇게 사는 게 지금 죽는 것보다 낫다고! 살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살 수만 있다면 말이지! 어떻게 살건, 단지 살 수만 있다면 말이야!....." 이게 진실이지! 세상에, 이만한 진실이 또 어디 있나! 인간은 비열하다!
또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비열한이라 부르는 사람도 비열해.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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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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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워 본 적은 없지만 고양이에 대한 관심은 많다. 사실 어렸을 때는 무서움이 더 컸지만 지금은 내가 섣불리 다가서려하지 않거나 해하려는 마음이 없음을 보여주며 고양이 역시 경계심을 풀고 크게 괘념치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한걸음 멀찍이서 고양이를 지켜보기만 한다. 고양이들이 친숙해진 것은 사진 에세이를 통해서인데 그렇게 고양이들의 귀여움에 반하게 되면서 무서움은 조금씩 사라졌다. 언젠가 한번은 골목길에서 서로 지나치던 고양이들이 마주보고 코를 비비는 것을 보고 내가 지금 뭘 본거지? 하고 있었는데 친구 고양이들이 마주치면 그런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무척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들의 인사 모습을 본 이후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 고양이가 되었고 여건상 키울 수는 없어서 책을 통해서 고양이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 에세이는 지금까지 읽었던 이야기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수십년을 고양이와 함께 생활했으니 당연히 고양이의 습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겠지만 그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뿐만 아니라 고양이의 생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집고양이들의 생애와 인간들과의 관계에 대해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풀어놓는 이야기가 절로 감탄하게 만든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물론 고양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문학적인 에세이로서 추천하고 싶어지는 글이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는데 습관처럼 뭔가 자꾸 늘어지는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은 망설임때문에 선뜻 끝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고양이의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살처분해야했던 경험이라거나 아픈 고양이를 조금 늦게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심각한 상태가 되어버려 고양이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음식을 거부하는 이야기들은 충격적이면서도 마음아픈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임시로 데려 온 고양이에게 집사를 빼앗길까봐 질투하면서 도리스 레싱 앞에서는 기침을 하고 제대로 움직일 수 없던 녀석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안에 들어가 망원경을 들고 관찰하니 너무도 멀쩡히 마당을 누비려 산책하고 있더라는 부분에서는 이 약삭빠른 고양이 녀석 같으니라고! 하게 된다.

아주 자잘한 부분에서도 고양이의 습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고양이에 대해 알고 있다면 흐믓하게 확인할 수 있고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른다면 신기하게 이 에세이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도리스 레싱도 고양이가 다른 녀석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때 고양이 입장에서는 고양이 녀석의 방이라고 표현을 하며 고양이의 특성과 습관들에 대해 슬쩍슬쩍 풀어놓는데 그런 내용들이 설명이 아니라 문학적 표현으로 하고 있어서, 글을 읽는 재미가 더 크다.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아름다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냉혹한 현실의 이야기도 담겨있고, 책임을 진다는 것의 의미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는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당연히, 고양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특히 더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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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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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모호하게 계속 흔들리는 사람과 사람의 접점. 남과 여,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죄와 용서"(278)

 

이 소설에 대해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책을 읽었다. 소설을 읽을 때 내용을 미리 알고 읽는 것과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당연히 다를수밖에 없겠지만 나의 경우 이 책처럼 플라주가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스토리의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몰라 조금 헤매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에 더하여 사람에 대한 - 나를 포함하여 - 성찰과 나 자신의 선입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달리다보니 예측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반전이 갑자기 훅 들어와 더 강한 감동을 느끼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여행사에서 일을 하던 다카오는 사무실에서의 스트레스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술에 취한 채로 자의인지 타의인지도 모른 책 약물주사를 맞았고 그 일로 경찰에 잡혀 집행유예를 받고 나오게 된다. 그 일로 직장에서 짤리고 살고 있던 집마저 화재로 잃은 채 겨우 운동복 하나 입고 거리로 나오게 되어 급하게 보호사를 통해 플라주에 입주할 수 있게 된다. 비용도 저렴할뿐더러 식사제공까지 해 주는 플라주는 잠금장치가 있는 방의 문 대신 커튼으로 주거 공간을 구분한 셰어하우스다. 독특한 구조의 셰어하우스에는 여러 인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동거인들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게 되고...

 

플라주에 입주한 이들에 대한 과거의 사건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범죄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것에 생각이 미친다. 살인죄와 각성제 약물 복용죄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범죄의 비교가 아니라 단지 약물 복용으로 집행유예 받았다는 사건 하나만을 놓고 봤을 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부인을 할 수가 없다.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옹호해 줄 생각은 없지만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 썼다거나 싸이코패스지만 규칙을 지키며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거나... 만약에 나라면 그 모든 것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을까...

플라주의 주인 준코의 이야기에서부터 플라주로 잠입해 들어간 자유기고가 기자의 이야기까지 이들 모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바다와 육지의 경계, 그 흔들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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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 - 신화와 어원으로 읽는 요가 이야기
클레망틴 에르피쿰 지음, 류은소라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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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요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친구가 정통요가를 배우면서 몸이 가뿐해지고 물구나무 자세도 쉽게 하는데 물구나무를 서고 나면 두통도 사라지고 몸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면서 내가 흥미로워하니 요가의 변형 말고 정통 요기가 쓴 요가책으로 한번 배워보라며 추천해 준 책을 받은 후 부터였다. 사실 그때 요가의 준비 자세가 명상이 아니라 태양숭배인 것을 알고 좀 당황하기는 했었다. 물론 심신수련처럼 신앙의 자세로 요가의 동작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이 책의 표지를 보니 단번에 읽고 싶어졌다. 더구나 카드 뉴스에는 '당신이 요가 동작을 잘 하는지에 관심이 없다'라고 하니 이 책은 요가책이라기보다는 요기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책으로만 요가를 배운 나는 - 그것조차 이십여년이 넘었는데 당시의 책에는 요가 자세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얼핏 삶의 자세가 달라지는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기도 했고 식이요법이나 호흡, 명상에 대해서도 수련자에게 교육을 하듯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그때의 기억들로 이 책을 펼치기도 했으니 그것이 독인지 약인지 잘 모르겠다. 신화,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각각의 자세에 대한 신화 이야기에 더하여 그 자세의 상징성에 대한 설명으로 끝이다. 요가 자세에 대한 설명이나 호흡, 순서도 없다. 그래서 대충 훑어보다가 살짝 밀어뒀었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펼쳐드니 처음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요가에 대한 관심이 더 컸기 때문에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신화 이야기와 그의 상징성을 읽고 있으려니 요가에 있어 명상과 자세를 취했을 때의 호흡과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시체자세도 그저 편하게 누워 몸을 이완시키고 불면을 해소해 쉽게 잠들 수 있게 하는 자세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몸과 정신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자신의 내부에 흐르는 에너지를 느끼며 또렷한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시체자세를 취하며 요기는 생생히 살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의 기원을 떠올리는 자세로 오히려 현재의 살아있음을 깨닫는 삶의 자세가 나오는 것이다.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굳이 신화를 믿고 신앙을 따르는 요기와 같지 않다 하더라도 그 자세에서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게 된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오랫동안 쟁기 자세를 하면서 그때만큼은 복식 호흡이 저절로 되고 조금씩 일직선으로 뻗는 다리 자세가 안정적으로 넘어가곤 했었는데 수술 후 1년동안 다리를 올리는 것조차 못하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뱃살때문에 복식호흡도 곤란해지고 자세 유지를 1분정도만 하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지만 바로 이 쟁기 자세가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신진대사를 도와주는 것이며 이런 수련은 농부가 쟁기를 다루듯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것이라고 하니 더 열심히 요가 수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쟁기자세에 얽힌 이야기속에서 자나카 왕이 밭을 갈다가 사랑하는 딸 시타를 발견하게 된 것 처럼 무엇을 행하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겠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아프고난 후 내 몸이 예전같지는 않게 되었지만 조금 더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이 많아졌다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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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고양이 임신을 가볍게 건냈다. 정원 가격으로달려가서 나무를 쪼르르 올라갔다가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무에 달라붙어 있을때 녀석이 눈을 반쯤 감은 채 박수갈채를 기대하듯이 고개를 돌렸다는 것이다. 녀석은 계단을 한 번에 서너 칸씩 뛰어내렸다. 소파 밑에서 바닥을 기어다녔다. 사람이라면누구든 자신을 처음 보면 황홀경에 빠져서 어머, 이렇게 아름다운 고양이가 다 있다니, 하고 외치기 십상이라는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손님이 오면 항상 문 앞에서 적절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난간을 타고 아래층 계단까지 미끄러져 내려가려고 하다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굴욕감을 느낀 녀석은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계단을 굽이굽이 돌아서 한참 동안 걸어 내려가는 편을 더 좋아하는 척 했다. 나무를 쪼르르 올라갔다 내려오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더니, 아예 나무에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새끼들이 배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당황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72-73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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