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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 스스로 기린의 날개를 가가형사 시리즈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 꼽았다고 한다. 일단 책을 다 읽고난 후 이 사실을 알았는데 그렇다면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의 거장이라기보다는 미스터리적 요소를 가미한 소설가로서의 명서이 더 크다고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원체 다작을 하는 작가로 알고 있어서 책을 읽기 전에 이 작품은 언제 씌여진 것인가를 먼저 살펴보게 되는데 기린의 날개는 2011년 작품이니 그리 오래된 작품은 아니어서 그런지 예전의 사회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이야기에는 조금 못미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호불호가 있기는 하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하는데다 그저 그렇다 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좋다는 느낌으로 읽게 되니 기린의 날개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밤 늦은 시간, 번화한 거리이기는 하지만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이 뜸한 곳에 한 남자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 멀리서 그를 본 경찰은 술에 취한 행인쯤으로 여기지만 쓰러져 꼼짝않는 모습에 다가가서 보니 가슴에 칼이 찔린채 쓰러져 있다.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그 남자는 사망하였고, 같은 날 더 늦은 시간 한 청년이 불신검문에 불응하여 도망치다 차에 치여 중태에 빠진다. 그 청년의 소지품에서 칼에 찔려 죽은 남자의 신분증과 소지품이 발견되고 경찰은 그 청년이 사망한 피해자와 같은 회사에 다니다 해고되었음을 알게 된다. 청년 역시 사망하게 되고 증인도, 증거도 없지만 인과관계를 따져볼 때 범인과 범행동기가 드러나고 있어 사건은 그대로 종결되는 듯 한데...
사건의 발생과 경과는 그리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살인사건,이라는 것 자체를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이 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겠지만 '소설'의 구성으로 봤을때는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연고하나 없는 시골출신 고아 청년 부부의 고난한 삶의 모습과 공장에서 노동을 하며 다치게 되더라도 산재혜택을 받지 못해 치료도 제대로 못받는 현실, 사건의 진상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만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바뀌며 사회적으로 매장되기도 하고, 진실은 외면한채 가십거리만을 찾아 여론을 유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실상 따지고보면 이 모든 것들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느끼게 하고 있으니 그의 필력을 허투루 보면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될뿐이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자세히 하는 것은 장르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이야기가 반쯤 진행되었을 때 하나씩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다시 원점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틀어가기 시작하는데.
그 전환점의 계기를 밝혀주는 역할을 가가형사가 하고 있다. 보이는 사건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며 뭔가 미흡한 점이 있다면 그것으로 사건의 종결을 인정하면 안된다는 것,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것이 진짜 형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진짜 형사로 인해 사건은 깊이 가라앉아있던 진실을 드러내며 진정한 죄의 뉘우침과 그 댓가가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하고 있다.
이러니 어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