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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 - 먹고 마시고 걷는 36일간의 자유
오노 미유키 지음, 이혜령 옮김 / 오브제 / 2016년 6월
평점 :
언제쯤이었는지, 몸상태가 별로 안좋고 일상생활을 버티는데 기력을 다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뜬금없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내 버킷리스트에서 빼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저 막연하게 언젠가는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 했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그 순례길을 포기하는것은 이렇게 단호하고도 손쉽게 결정을 내리다니.
지금 생각해봐도 조금은 어이가 없다. 그렇게 나는 머리속으로만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섰다가 금세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내가 그 길을 포기하려고 했던 것은 내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 '나는 안될꺼야'라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을 하지 말자,라는 안일한 마음이 더 커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산티아고에 대한 이야기를 읽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래서 결국 또 이렇게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것도 다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와는 달리 구체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필요한 정보가 들어있다는 말에 혹해서.
이 책은 크게 분류해서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가 실려있는 부분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정보가 담긴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모든 산티아고 순례기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어봤던 수많은 책들은 같은 길을 걸어가지만 각자가 체험하고 느끼고 변화되는 것이 모두 달랐다. 그건 당연한 것이겠지만 순례길 위에서 각자의 구체적인 체험은 다르지만 그래도 그 길의 끝에서 얻는 깨달음은 그들 모두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순례 이유를 물어보기에 `종교적 동기`라고 대답했다. 처음 걸을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걷고 난 지금은 아주 조금이나마 신앙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독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종교였다. 지금 여기에서 생활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공부한다면 감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이 길에서 접한 건 대지에 묵직하게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우는 나무처럼 커다랗고 따뜻하고 가까운 것이었다."(137)
짧고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인 종교라는 것은 세속적인 것을 의미한다기보다 우리 일상의 삶 자체가 신앙의 삶이라는 것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뭐 그런 뜻이 아닐까.
이 책은 순례길의 팁과 추천 알베르게, 챙겨야 할 물건 목록, 산티아고 순례길 외에 근처에 더 가보면 좋을 곳까지 추천을 하고 있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하고 있다면 꽤 유용한 내용도 많다. 8일간의 단기 코스부터 33일간의 완주코스도 나와있는데 무엇보다 각자의 체력과 상황에 맞게 완급을 조절하고 숙박시설을 이용하고 때로는 짐만 운반하는 택시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순례길을 걸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어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대로, 계획한대로만 순례길을 걷기를 바란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비우고 걸어야 하는 순례길에서 여전히 자기자신만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
이제 나는 안될꺼야,라는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조금 소극적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게 되기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