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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보고 싶거든 -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만 들리는 대답
줄리 폴리아노 글, 에린 E. 스테드 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내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뛰어 놀았던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바다를 가까이 했던 기억은 있습니다. 출렁거리는 구름다리 위에서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을 보면서 무서워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바다가 보고 싶은 날이면, 시내버스 차비만 달랑 들고 버스에 올라 타 두어시간이면 드넓은 바다를 두 눈에 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는 내 이웃동네였고 내가 평소 자주 만날 수 있는 가까운 물고기들이 사는 곳이었을뿐, 고래는 저어멀리 큰 배를 타고 나가야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생명체였습니다. 언젠가 오래전에 커다란 배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그곳의 넓은 바다에서는 고래를 볼 수도 있을거라는 얘기에 어린 조카와 함께 설레이는 마음으로 고래를 기다렸던 적이 있습니다. 고래를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며 고래 그림을 그리고 고래에게 건넬 인삿말도 생각하면서 마음 설레이며 기다렸지만 결국 그 날 고래는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푸르게 펼쳐진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더 이상 고래를 기다리는 날은 없었습니다. 어느덧 고래는 바다가 아닌 수족관에 사는 애완동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그런데 그렇게 바다에 사는 고래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져 버린 어느 날, 여전히 나의 눈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지만 이미 고래를 기다리는 마음은 사라져가고 있던 그 날 나는 드.디.어 고래를 만났습니다. 물론 나는 그저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함께 있던 조카는 고래를 발견하고 흥분하여 내게도 다급히 외쳤습니다. '고래예요!'
아주 오래 전 함께 고래를 기다리던 어린 조카는 나이를 먹어서도 고래를 기다리는 일을 잊지 않았나봅니다. 조카 덕분에 나는 제주도의 바람코지인 섭지코지에서 맘껏 뛰놀고 있던 돌고래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꿈인듯 어렴풋이 스쳐지나고 있지만 물살을 가르던 돌고래 가족의 자유롭고 평화롭던 그 느낌은 잊을수가 없습니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거, 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습니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에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 밝게 빛나는 태양에게도, 어여쁜 장미꽃에도 달콤한 향기에도, 꼬물거리는 초록벌레와 펠리컨에게도 눈길을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고래가 보고 싶다면 창문과 바다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도 있어야하지요. 바라보고 기다리고 '저게 고래가 아닐까?' 생각할 시간. 저 새구름은 고래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시간.
고래가 보고 싶다면, 너른 세상에서 자유로운 고래와 마주하고 싶다면.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우리는...고래를 만날 수 있는걸까요?
[고래가 보고 싶거든]은 짧은 그림동화입니다. 어렵지 않게 한번 쓰윽 읽고 '좋구나' 할 수 있는 그림동화입니다. 그리고 그림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책장을 넘깁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방금 읽었는데 또 다른 느낌이 들어, 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좀 전에도 읽은 문장인데, 방금 쳐다본 그림인데 참 이상합니다. 이 짧은 그림동화는 자꾸만 책장을 다시 넘겨보게 만들고 새로운 느낌을 갖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듯 합니다. 한 문장을 한 번 읽고, 또 한 번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느낌인 것은 이 짧은 동화속에 넓고 푸르른 바다만큼이나 넓고 깊은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인걸까요?
내가 이 그림동화에서 만난 고래와 당신이 만나게 될 고래는 같은 고래일수도, 다른 고래일수도 있을거예요. 고래가 헤엄치고 있는 바다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도 똑같지는 않을거예요. 그러니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만 들리는 대답'은 서로 각자의 마음에 들리는 대답을 간직하고 있기로 하지요.
서로가 만난 고래가 궁금해질 때, 우리에게 들려 온 대답을 말하고 싶어질 때 우리 언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만약 아직 고래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고래가 보고 싶거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될꺼예요. 믿어보세요.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이 노래를 함께 불러봐도 좋겠어요. ... 난 노래를 못부르지만 그래도 따라 불러볼께요. 우린 혼자가 아니니까.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 줘 숨기지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 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
......... 당신은 이미 한번쯤은 고래를 만났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