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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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단 대학 탐방기,라니. 흔하디 흔한 청소년 소설일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박지리'라는 이름에 잠시 멈칫 했다. 흔하디 흔한 소재를 글로 썼다하더라도 최소한 재미만큼은 보장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얄팍한 생각에 냉큼 이 책을 집어들었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는 읽어나가면서 알아볼 일이고 일단은 내 안에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신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필요했다. 근데 어쩌다 박지리라는 작가는 내게 유쾌한 글을 쓰는 작가로 기억되고 있는걸까.

이전의 작품을 꽤 흥미롭게 읽기는 했지만 깊이있게 작품속으로 들어가며 읽지는 않아서 그저 가볍게만 생각했는데 확실히 '양춘단 대학탐방기'는 달랐다. 책의 첫머리를 펼쳐 읽으며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와 순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이내 작품 속으로 빠져들었고 나는 확실히 박지리라는 작가의 팬이 되어버렸다.

 

양춘단 대학 탐방기는 말 그대로 양춘단이라는 사람이 대학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탐방기'라는 말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잘 파악해야한다.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형제들에게 자식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그녀는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기보다는 대학의 청소노동자로 일을 하러 다니는 것이다.

송정리 촌마을에서 남편의 수술과 병간호를 위해 서울의 아들집으로 이사를 온 양춘단은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을 통해 대학의 청소노동자 일자리를 얻게 된다. 어린 시절 석공일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로 인해 두 오빠의 학업과 두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공부를 하지 못한 서러운 신세풀이를 끝내 풀 수 있게 되었다며 신이 나서 가방을 사고 드디어 대학교를 다니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만 해도 그 안에 담겨있는 흥미로운 세상 풍자를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양춘단의 대학 탐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녀의 가족인 아버지와 남편, 아들, 손주의 이야기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풀어져 나오는 우리들의 세상 모습이 가벼운 풍자로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사를 통해 해방즈음의 이야기에서부터 아들의 이웃에 있는 양옥집 하나에 얽혀있는 소문을 통해 70년대의 경제부흥이라 일컬어지는 외국건설현장에서의 성공은 수많은 가정을 어떻게 파괴해나갔는지, 그 과거는 재개발의 현장에서 어떻게 사그라져 가는지를 단순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 만만치않게 다가왔는데 이러한 것들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어느 한 문장, 어느 이름 하나도 허투루 읽고 넘길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한편의 소설 안에는 우리 현대사의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는 사실 이런 소설을 읽을때마다 아직은 어린 조카들이 이 소설을 읽게 될 때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느끼게 될까 궁금해지곤 한다. 부모의 작장사정으로 어릴때부터 외국에서 생활하고 외국 학교를 다니느라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모를뿐 아니라 현대사에 대해서는 더욱 모를텐데 '양춘단 대학탐방기'같은 소설이 말 그대로 웃긴 소설이야기로만 읽게 될까, 생각하면 조금은 쓸쓸해진다.

그런데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의 안일한 마음을 쿵, 하고 울려대는 작가의 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양춘단은 실제 인물이다. 김영일, 양호익도 실제 인물이다. 한도진과 김종철, 서성환이라는 가명으로 숨어 산 장대열도 실제 인물이다. 이름 없이 성씨로만 불리는 김씨, 이씨, 박씨……. 도시를 누비는 경찰 기동대, 파업 노동자들, 새벽일을 나가는 가방 군단,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행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여기서조차 언급되지 못한 수많은 이들까지, 모두 실제 인물이다. 분명, 본 적 있을 거다."

 

이 책을 그저 소설로만 읽은 것은 오히려 나였구나. 나는 다시 한번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실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아파하고 어깨를 걸었던 그들을 잊고 살아가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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