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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의 도시 ㅣ 사계절 1318 문고 90
장징훙 지음, 허유영 옮김 / 사계절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학교를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걸까?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책에서 표현하고 있는 꼰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요즘 엄청나게 뜨고 있다는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서 뭔가 싶어 찾아봤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서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모텔의 도시'라는 책 제목 역시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청소년 소설이라 일단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힐끔거리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보다는 상실의 시대가 더 많이 떠오르더라. 비슷한 듯 다른, 그러면서도 왠지 또 비슷한 느낌.
소설속 주인공 나(우지룬)는 열일곱살 고등학생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얼굴도 모르며 큰아버지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름 성적이 좋아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학교 공부와 성적은 관심밖이 되었다. 성적에 열 올리는 꼰대 교사와 학교공부와는 담을 쌓은 게임 중독자 머저리 친구들과는 무관하게 혼자 겉도는 학교 생활을 하다가 결국 누군가가 자행한 폭죽 사건으로 학교를 떠나버린다. 그렇게 학교를 나오고 가출을 하고 친구를 찾아 가 얻은 일자리가 모텔.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된 공간이 모텔인 것은 아니다. 또 모텔이 성욕을 해소하려는 공간의 의미로만 비유되면서 쓰인 글도 아니다.
“여기 오는 손님 중 열의 아홉은 섹스하러 오지만 나머지 한 명은 자살하러 와. 자살하러 온 손님 열 명 중 대략 한 명만 진짜로 자살을 시도하고, 진짜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중 최소한 아홉 명은 죽기 전에 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야 해. 무턱대고 빈방으로 들여보내기만 하면 그걸로 내 일은 끝이다 생각하면 안 돼.”(278)
그러니까 이건 모텔의 종업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학교의 꼰대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우는 비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야 하는 학생들을 무턱대고 졸업만 시키는 것으로 할일을 끝냈다고 하는 것도 직무유기인 것이지 않은가.
이야기의 줄거리를 보자면 평범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의 의미를 살펴보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열일곱 청춘이 가질 수 있는 고민과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우리와 가까운 대만 작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익숙한 풍경이나 이름도 자주 나온다. 물론 그 말속에 담겨있는 비아냥거림의 비유가 편치만은 않지만. 그래도 그러한 것들 역시 책을 읽는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니 이 책은 이러한 자잘한 재미와 함께 '모텔의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의 초상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