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엮여지는 인연의 사슬고리가 들판의 야생초를 닮았다고 생각해 봅니다.
어느 날 저는 홀연히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씨앗이 되어 이리저리 정처없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운명의 여신같은 바람은 나를 어느 너른 들에 내려놓았고 나는 두 말없이 순순이 안착하여 땅속으로 고요히 침잠하였습니다. 땅속 혼자만의 사유의 세상에서 꿈틀거리며 꿈을 키우던 나는 문득 바깥세상이 궁금하여 고개를 내밀고 싶어졌습니다. 뽀드득....
낯설고 어둔한 몸짓으로 내가 뿌리내린 세상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운명처럼 나를 실어준 바람은 내게 가장 알맞은 토양과 적절한 햇빛이 쏘이는 곳에 나를 내려 주었다는 걸 한눈에 알아 보았습니다. 내가 뿌리내린 이 들판에는 나와 닮은 벗들이 모인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닮은 벗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들도 죽도록 좋아하고 있었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나보다 더 사랑하여 세상에서는 바보라는 소리까지 듣는 간서치(*)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밤을 새우며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의 지극한 이 기쁨을 이 들 밖의 남들은 잘 모릅니다. 우리는 들판에서 피어오른 색색깔의 야생초같습니다. 저마다 생긴 모양과 향과 빛깔은 다르지만 서로 어깨를 깃대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정겨운 민들레로, 어떤 이는 알록달록한 채송화로, 어떤 이는 상큼한 사과꽃으로, 또한 설란과 장미, 양귀비와 수수꽃다리로......우리가 사는 곳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강릉에서 해남까지 행정구획은 각기 달라도 우리는 책이라는 사슬로 엮어진 야생화같이 아름다운 인연들입니다.
(*)간서치: 看書痴,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스스로를 책읽는 바보라고 지칭한 말.“오로지 책 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전연 알지를 못하였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되도록 일찍이 하루도 손에서 옛 책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 방은 몹시 작았지만, 동창과 남창과 서창이 있어 해의 방향에 따라 빛을 받으며 글을 읽었다”
/060420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