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 초등학교 3학년의 거짓말
저는... 거짓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잠시 생각해보니 꽤 잘하기도 하고 (마로가 보여줬던 것처럼 확인이 없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지능적인) 거짓말도 체계적으로 세워두기도 합니다. 요전번 휴가에서 친구들이랑 여행을 갔는데, 그 친구들이랑 같이 일본에 갔다는 걸 알게 되면 속상해할 친구가 있어서 다른 친구와 둘이서 여행을 갔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지요. 물론..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낳는다고 이틀동안 여행얘기를 물어보는데 끊임없는 거짓말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흠칫, 놀라거나 얼버무리거나...ㅠ.ㅠ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무서웠던 거짓말은 초등학교 3학년때였지요. 담임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셨는데 제 기억으로는 자기대로 오백문제를 만들어서 노트에 문답형식으로 적어오라는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쌤이 지나쳤다는 생각밖에 안드는군요. 아무튼 숙제를 안해간다는 걸 상상도 못했던 저로서는(그때 당시는 그랬지요. 고등학교 댕길때는 시험점수에 반영한다고 해도 숙제를 안해가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밤을 새면서 오백문제를 만드는데 정말 끝이 없는거예요. 그래서... 어찌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지만 문제의 숫자를 중간중간 건너뛰고 오백문제를 만들었습니다. 노트 수십장이 넘어가는데 모르겠지..몰라야 하는데 하면서 학교엘 갔었지요.
그때 숙제검사를 하던 선생님이 떠오릅니다.(역시...무서워하는 저도 떠오르고요) 꼼꼼히 검사하면서 저 앞쪽에서 한 아이의 노트를 들고는 왜 숫자를 제대로 안하고 중간에 빼먹고 오백문제 다 했냐면서 막 화를 내시더군요. 그때의 두려움을 생각하면... ㅠ.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두려움이 기적을 일으킨것인지 내 앞까지 오신 선생님은 숙제검사가 힘들다면서 앞쪽의 빈 자리에 앉으시면서 제 노트에 확인도장을 그냥 쿵, 찍어주시더군요. 아마 제가 거짓말을 할 학생으로 생각하지 않으셨던거겠지요.
수많은 학생들이 매를 맞고 창피를 당하고 욕을 들었지만.. 저는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지금도 거짓말 하면 그때 일이 떠오릅니다. 어린 학생에게 그건 절대적으로 무리예요,라는 말은 어른이 되어서나 할 수 있는 말이었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 시간에 오백문제를 만들어오는것은 너무너무너무 힘들었어요,라는 말은 초등학생이 선생님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걸까요?
거짓말은 나쁜거라고 하는데, 남을 속이기 위해서인지 두려움에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거짓말은 거짓말일.뿐.이다 라는 말 한마디로 결론을 짓기엔 뭔가 좀 어설프죠?
조선인님과 비슷한 느낌의 A라는 후배가 있었는데, 그 후배와의 일이 떠올라서 그냥 중중중 적어봅니다.
대학교 다닐때 동아리에서 수련회를 갈때의 일이었지요. 저는 4학년이라 해당이 안되었고, 후배들은 의무참석인 중요한 수련회였지요. 그런데 한 녀석이 엄한 부모님때문에 집밖에도 못나온다며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한테서 그날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 몰래 나오기는 했는데 수련회는 가기 싫다며 만나자고요. 다른 친구 하나도 갑작스런 일이 생겨 수련회 못간다 연락하고 둘이서 저한테 다른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거예요.
그날 대학생이 될때까지 서귀포에 한번도 못가봤다는 녀석을 데리고 중문관광단지에 가서 하루종일 놀다 왔습니다.
그런데 후배 둘은 수련회 총책인 A와 절친이었고 친구를 속이고 놀러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다 A가 상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친구라 사실대로 털어놓기 힘들어했어요. 자기들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화낼 것 같다고 말이지요.
나중에 결국은 사실대로 다 얘기하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후배 A는 친구들이 자기를 너무 엄격하다고만 생각하고 친구들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슬펐다더군요. 저한테는 그 친구가 너무 즐거워했다며 수련회가라고 말하지 않고 함께 놀아준것에 고맙다는 얘기를 하면서요.
너무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은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난할뿐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게 보편적...인거겠죠? 그때 거짓말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봤어요. 내가 사실대로 말하면 상대방은 이런 반응을 보이겠지...라는 나의 판단이 거짓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을요.
마로의 경우는, 신청서 늦게 내는 것이 창피하다는 걸 엄마에게 얘기하지 못한것이 원인일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 말을 엄마에게 하지 못한 이유는.. 또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마로와 조선인님이 가벼운(!) 마음으로(^^;) 얘기를 해 보시길.
조선인님은 마로가 신청서를 늦게 내는 것이 창피하다라고 느끼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마로는 엄마가 자기 기분을 이해해주지 못할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말이죠.
조선인님이 마로에게 신청서를 주면서 '늦었으니 엄마가 선생님께 사정 이야기를 전화로 말씀드릴테니 선생님께 신청서를 갖다 드리기만 하면 된다'라고 했다면 달라졌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조선인님과 마로를 제가 잘 몰라서 그냥 제3자의 입장에서 떠오른 생각을 적었을뿐이예요. 점심먹고 일드 한편을 볼 수 있는 시간에(^^;) 가끔은 졸기도 하면서 쓴 이 글이 전혀 엉뚱한 글이더라도 조선인님은 이해하시죠? ^^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도 아니고, 선생님의 입장도 아닌지라... 그리 큰 문제삼을 일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
너무 심각하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마로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에게는 거짓말이 아닌 솔직함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얘기해주시는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아,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