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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평점 :
이 책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그곳에서 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던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의 체르노빌 원천사고 기록 보고서,라 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이 아니지만 소설처럼 인물들을 중심으로 글이 쓰여있어서 당시 체르노빌 원전과 관련된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조금은 흥미진진하게 읽게 되어 금세 읽을 수 있다. '체르노빌 히스토리'라고 되어 있어서 체르노빌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특히 그곳의 생태환경과 주민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글이려니 짐작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그런 환경의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체르노빌 원전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지만 글을 읽어가다보면 원자력의 폭발력,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저절로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단순히 기계 결함이라거나 관리 체계 부실이나 관리 소흘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소련의 국가적인 전력공급에 대한 무리한 가동 요구, 일부 과학자들이기는 하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해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대한 모든 진실이 완전히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의 기록을 정리하여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는데, 35년 전 아무리 국가통제가 강력한 시대라 하더라도 원자력 피폭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원자력 발전소의 핵폭발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어떤 행동 지침도 없이 무작정 출동했던 소방대원들은 단시간에 피폭되어 응급실로 실려가고, 지역주민들은 거리낌없이 야외에서 일상을 누렸고, 심지어 누군가는 선탠이 잘된다며 햇빛을 쬐였다 또한 피폭되어 병원으로 가야했다.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조차 발전소 바로 옆의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생활했다고 하니 오히려 그런 일상들의 모습이 더 비극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난지 3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핵분열반응이 일어나고있고 이 책의 역자가 우크라이나로 가게 되었을때도 현지의 딸기, 버섯 같은 식품은 절대 섭취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니 체르노빌 원전 주변 지역은 최소 2만년동안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하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에게 원자력 발전이라는 것은 부족한 전기 생산의 대안이 없는 필요악인것이 맞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글의 흐름에 빠져 너무 빠르게 읽어버려서 그런지 피폭당한 사람들의 고통과 심각한 환경오염, 페래스트로이카를 부르짖던 소련의 붕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비롯한 소수 민족국가들의 독립 등 정치, 경제, 사회의 많은 부분이 맞물리고 서로 영향을 받으며 세계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쉽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환경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독립 후 경제 발전을 위해 또다시 체르노빌 원전을 가동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체르노빌 원천사고 후 35년, 후쿠시마는 이제 10년.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었지만 생존을 위해 재건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방사능의 위험에서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세슘이 뭔지, 요오드 131이 뭔지 모르고 화학, 물리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일본의 정신나간 정치가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생활수로 사용해도 된다고 떠들어댔는데, 그렇게 자신있다면 정말 직접 식수로 넘치게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라, 말하고 싶다. 이 책의 말미에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건설되거나 계획중인 원자력 발전소가 적혀있는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원전사고에서 우리는 배운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암울해진다.
하지만 인류는 분명 과거에서 배워 미래의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에너지 절약을 하는 작은 실천 하나 역시 지구의 미래를 바꿔나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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