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란 무엇인가 김영민 논어 연작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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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란무엇인가 #김영민 #사회평론 #논어연작 @sapyoungbook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시절에 사람들은 사회의 기준과 철학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욱 이전의 사회가 명확한 기준과 규범을 지키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이상화하며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까닭에 더욱 예와 인과 덕을 가르치던 옛사람과 고전에 대한 갈증을 느껴 이때 공자와 논어에 대한 저작들이 연이어 출간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최근 [논어 연작] 3부작을 완간하였다고 하는데 저자 외에도 한형조 님의 [두 개의 논어]와 푸베이룽의 [공자사전]도 마침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었다. 그 외에도 최근 붓다의 가르침과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대중서들도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이 갈등과 분열의 혼란 시기에 대중이 옛사람들의 말씀을 찾는 건 아마도 과거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동경 때문인 듯도 하다. 확실히 사극 속 세상은 균형과 안정이 그 시대의 실상인 듯한 착각도 주기 때문이다. 어느 시절에나 과거에 대한 이상화가 있었다. 수메르 쐐기 문자에도 요즘 사람들은 너무 예의 없다는 식의 시대에 대한 평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현재가 불안정하고 혼돈으로 느껴지고 과거가 동경의 대상이 되는 건 인간의 근본적인 인지적 오류일지도 모르나 현재는 너무도 세계도 인간의 기준도 불안정하고 혼란이 극한에 이른 시기다. 그렇기에 규범과 기준이 명확하고 그를 통해 안정을 가져오던 시절의 고전이 주목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저자는 논어 연작을 공자를 찬양하거나 비판할 목적으로 쓴 것도 아니고, 인류의 결정적 지혜나 한국 사회를 위한 청사진으로써 쓴 것이 아니라고한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인생을 구제해줄 지혜를 찾으라고 쓴 것도 아니라고말이다. “그저 우리의 생각을 구성해온, 구성하고 있는, 구성해나갈 자원의 하나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전 독서의 의미를 다시 새겨주는데 고전을 펼쳐 드는 이유는 얼어붙은 자기 생각에 균열을 내기 위해, 좀 더 넓고 깊은 생각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나.”라며 일깨우고 있다.

 

나로서는 공자와 논어를 정치적 수단으로서 예를 삼은 사람이자 학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본서에서는 공자가 배움 자체의 의미를 더 높이 여겼으며 수단으로서만 중시하지 않았다고한다. 이는 서양의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정치적 수단으로 삼기 위한 도구로서 배움을 찾았다는 사실과는 완연히 다른 것이다.

 

공자는 배움 자체가 정치 수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가 가장 사랑한 제자는 배움 자체를 사랑하던 안회였고 안회가 죽고 나서 누군가 가장 뛰어난 제자가 누구냐고 묻자 공자는 배우는 자체를 기뻐하던 안회가 가장 뛰어났고 그 외에는 그저 그렇다는 식의 답변을 했다고 한다.

 

공자는 배움을 통해 바뀌어야 하며 가장 지혜로운 자와 가장 어리석은 자만이 바뀌지 않는다말했다고 한다. 공자가 말하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탁월함은 배움을 통해 획득되는 능력이지 생득적인 능력이 아니라고 한다. 공자가 말한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스스로를 확립하였고, 40세에 미혹됨을 벗어났으며, 50세에 천명을 알았고, 60세에 귀가 순해졌으며, 70세에 마음 가는 데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다는 자평 자체가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친 노력과 배움의 결과인 것이라 저자는 설명한다.

 

이 노년까지 꾸준히 성장하는 공자의 인생 역정은 세네카가 늙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이 평생에 걸친 자기 단련으로 열매를 맺는 노년기까지 우리는 멈추지 말고 배우고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분투하면서 우리가 구축해온 스스로에 대한 관념을 가면이라 한다면, 가면은 우리의 참자아,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자아다. 결국 역할이라는 것은 우리의 제2의 천성, 인성을 구성하고 통합하는 성분이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 이 세상에 들어와, 성격을 획득하고, 그러면서 사람이 된다.”

 

2의 천성을 통해 욕망을 소거하지도 통제하지도 않으며 자연스럽게 욕망을 실현한 상태에 이른 게 공자의 노년에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야 한다배움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배움을 좋아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른다.

 

공자는 예전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향상을 위해서 하였으나,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한다고 했다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배움이란 결국 자기 좋자고 하는 것이다. 자기가 향상되는 맛에 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신플라톤주의에서 학생들이 읽는 최초의 대화편 [알키비아데스] 속의 배움은 자기 향상의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목적에 봉사하는 수단적인 배움이라고 한다. “공자의 배움은 이런 것이 아니라 스토아적 자기 연마로 인생 전체를 통해 꾸준히 해야 할 일이며 자기 연마의 결과는 노년기에 절정에 이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본서에는 논어가 집필된 방식, 공자와 논어가 인정받기까지 역사, 논어에서 이르는 공자의 세계관과 가르침,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타 문명의 고전이나 경전과 논어의 역할과 무게의 비교 등등이 담겨있다.

 

논어의 가르침을 설명과 함께 듣는, 배움이 되기도 하는 책이자 논어 자체에 대한 지식을 비교, 분석과 함께 들을 기회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고전이 필요한 이유를 느끼기 충분한 책이다. 논어라는 고전과 이 책이 목마름이 깊어지는 이 시절에 시원한 한잔이 되어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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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깨어나는가
람 다스.스티븐 레빈 지음, 유지연 옮김 / 올리브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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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어떻게깨어나는가 #람다스 #스티븐레빈 #도서출판올리브나무 #마음공부 #명상 @olive.tree.books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원제는 [The Grist for the Mill : Awakening to Oneness]인데 앞의 표제는 한국어로 의미가 와닿기에는 의아스럽고, 부제는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경향도 있다.

 

지금을 살라”, “여기에 있으라는 말은 흔히 듣다 보니 그 의미에 감흥이 일기 쉽지 않다. 많은 영적 지도자를 자청하거나 명상 수행자로 인정받는다는 이들은 한결같이 지금 여기에 머물라고 한다. 종교인들은 신의 뜻에 따르라거나 영지주의적인 명상가들은 신과 합일하라고 한다. 그들의 말이 맞겠지만 모든 사람의 의식은 각자 천차만별이고 삶의 무게도 다르다 보니 모두가 이 말을 실천하는 삶 속에서 수행하듯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빠듯한 생계가 버거운 와중에 또는 가족이 죽어가는 중에 또는 억울하고 한이 맺혀가는 중에 또는 트라우마나 정신과적 이상심리에 빠져있는 가운데 이런 게송과도 같은 말들을 실천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누구에게나 쉽지만은 않다. 스승입네 그냥 지금 여기 있으면 된다면서 스타벅스 커피를 홀짝이는 이들은 이해 못 할 수도 있겠으나 말이다.

 

누구는 마음 챙김을 하라, 누구는 화두선(간화선)을 하라, 누구는 만트라를 하라, 누구는 쿤달리니 탄트라를 하라, 누구는 요가 아사나를 하라지만, 이 여유로운 세상에서도 마음을 위한 잠시의 짬이 사치스러운 이들도 나름 적지 않을 거다. 삶의 무게와 시간의 비중이 모두에게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걸 한가로운 이들은 모른다. 괴롭고 미쳐가는 가운데 망가져서라도 시간이 나면 어떤 이들은 그 틈에라도 수행에 뛰어든다. 하지만 삶의 무게가, 인생의 수난 끝에 온 이 어느 순간의 휴식에 마음속 한과 울분은 지금 이 무슨 사치냐며 남은 생을 쫓기는 듯 무언가에 매달리게 하기도 한다.

 

자신을 잃기는 쉬우나 지키기에는 너무도 매뉴얼이 없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나를 지키는 매뉴얼! 나를 찾아가는 길에 지도!”를 원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래서 명상을 하고, 누군가는 그래서 경전을 잃고, 누군가는 그래서 철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이것이 한가함으로 여겨지고 자신의 이 순간이 사치라고 여겨질 때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에게 더 필요한 것과 자신이 더 원하는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일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분별력과 매뉴얼과 지도를 동시에 제시하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이들은 라는 것을 스스로에 대한 제한으로 여기지 말고 영적 여행을 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고통도 상승을 위한 도구로 여기라고 말이다. 우리 의식 어떤 부분은 이 과정에서 차분히 지켜보는 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가 한정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은 여러 층을 이룬다, 그로 인해 이 세계는 다양한 채널을 구성해 우리가 이 다양한 채널 중 한 채널로만 눈을 돌리면 바로 그 채널에 갇힌 경험만을하게 하니, “우리의 의지로 채널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설한다.

 

저자들은 이 세계의 다양한 문명이 신을 경험하고 신에 대해 다채롭게 정의했다며 열반과 도까지도 하나님으로 언급했다. 아마도 신이라기보다는 신성한 경계전체를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는 신과의 합일, 신성과의 일체를 이야기한다. 뇌과학은 불교수행이나 그것이 개량된 마음챙김 등을 통해, “인간의 뇌가 안과 밖의 경계를 또 시간의 한정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는 뇌의 상태에 관해 연구하여, 이것이 신성과의 합일에 대한 체험의 뇌과학적 설명이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현대 과학의 한정적인 수준의 연구일 뿐, 모든 대답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 한정된 대답 이상에 대해 많은 명상가와 영적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저자들이 언급하는 다양한 채널이나 의식의 층들도 그런 설명의 하나일 것이다. 저자들은 자신들이 삶의 여정에서 만난 스승들과 그들의 수행체계를 따르던 시절의 체험들을 논하기도 하며 신과 합일의 여정에 필요성과 단계를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을 설명하기도 한다.

 

불교 가르침들과 인도 요가 체계, 수행과 스승들이 논해지는 책이지만 본서에서 논해지는 서양인의 눈으로 본 경계들이 동양의 체계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생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이 시절에는 수행의 경지를 논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이런 책들을 보면 이게 하나의 놀이 문화이구나 싶다. 하나님의 놀이이자 인간이 성장하고자 뛰어든 놀이이기도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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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디렉션 - 사진작가 이준희 직업 에세이
이준희 지음 / 스미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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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디렉션 #이준희 #스미다 #직업에세이 #사진작가 #예술가의먹고사니즘 #사진가의직업분투기 @lee_junhee_ @smidabooks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소셜 포토 그래퍼 이준희 님이 집필한 직업 사진가의 현실 에세이.

저자는 예술가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은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행위적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본질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바로 그다음 장에서는 모든 물가가 상승하는데 사진 촬영 비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며 직업 사진작가로서 생계를 걱정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예술가이자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직업인으로서, “예술과 직업의 일체를 이룬 사람의 예술을 통한 성찰과 생계를 비롯한 현실적인 고뇌를 함께 담은 책이 본서이다.

 

그래서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 책은 사진가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라며 예술 분야에서 직업을 유지하고 돈을 벌고 삶의 만족감을 끌어올리는 것과 더불어 어떠한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썼다고 저술 동기와 서술 취지를 적고 있다.

 

저자는 연필을 쥐기도 전에 피아노부터 배웠다는 평생 음악인으로 전공도 실용음악이라고 한다. 평생 음악만 해오다가 취업 진로에서 취미이던 사진을 선택하게 된 사람이다. 물론 처음 스튜디오를 차리고 망하기도 해 편의점 사장을 한 전적도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사진으로 돌아왔고 그 여정에서 그는 세계가, 사진이, 나를 원해서,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수준의 천직이자 소명으로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았다.

 

사진가로서 그는 세계와 도시와 스포츠맨과 무용가를 찍어오며 자기 나름의 세상과 사람, 삶에 대한 감상과 의미를 깨달아온 것 같다. 특히 피사체와 효과, 사진 사이에서 그가 느낀 감상들은 하나의 직업과 예술에서 갖는 감상들이 사람에게 길이 되고 의미를 찾게 하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이건 비단 예술만이 아니라 요리건 운동이건 격투기건 카레이싱이건을 막론하고 자신의 길에서 누구나가 감상이 있을 수 있다. 누구든 다른 이의 삶에서 배움을 얻거나 그의 감상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기에 에세이를 읽는 이들이 있는 것일 테고 말이다. 저자가 사진예술을 통해 느끼고 깨우치고 성장해 온 과정을 담담히 적어 내려간 이 책은 예술과 생계의 사이에서도 성찰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더딜 수 없는 거구나느끼게 했다.

 

빛과 콘트라스트, 디렉션이 시적인 감성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건 저자의 깊은 독서열과 사유가 오랜 세월의 힘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좋은 사진가가 되려면’ “인문학과 예술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그의 책과 나눈 시간들이 사진을 통해 생을 깨우치게 하고 사진예술을 통해 성찰할 기회를 주지 않았나싶다.

 

그는 시는 단어로, 사진은 피사체로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때로 콘트라스트를 만든다는 점에서 닮아있다며 예술 사이의 공통분모 속에서 삶의 성찰을 얻는 과정을 그려주기도 한다. 모든 그림이 그렇지만 피사체를 매개로 구현되는 이 사진이라는 것에서 빛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싶은데 그래서인지 빛에 대한 저자의 깨우침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종교적 믿음과는 다른 빛을 향하는 자신의 관점을 전하면서 최선을 다해 순광의 빛을 바라보고 서는 것할 수 있는 한 매 순간 그 방향을 바라보려는자신의 노력으로 상징하며 사진가로서 사진 속의 빛을 찾는것과 흡사하다는 감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사진예술의 특성상의 문제인지 기술과 예술의 영역에 대한 시간과 경험의 축적에 관한 인상을 적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니 어느 장르든 전문성이 곧 기술이라고 한다면 기술이 배제된 예술도 학문도 드물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제게 직업과 삶 사이의 괴리가 없습니다. 사진이 제 삶이고 제 삶은 모두 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삶과 직업에 대한 입장과 감상을 전하기도 한다.

 

직업이 예술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예술 분야의 직업을 꿈꾸는 이에게 저자의 이 에세이가 어느 부분 조언도 역할도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된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다른 이의 삶을 엿보며 얻는 깨우침을 충분히 주는 에세이가 아닌가 싶다.

 

이는 모두 실패를 거듭한 결과로 얻은 어떤 깨달음, 그 위에 그린 새로운 디렉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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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5-12-28 0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이거 찜했는데요~~리뷰 감사해요! 2025년 서재의 달인 엠블렘 다신 거 축하드려요~~

이하라 2025-12-31 09:38   좋아요 0 | URL
리뷰가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폭군 - 셰익스피어가 그린 권력과 정치, 그리고 악랄한 독재자들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김한영 옮김 / 까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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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스티븐그린블랫 #윌리엄셰익스피어 #까치 #북클럽 @kachibooks @bookclub.kc

 

까치글방으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서는 [결론]이란 장으로 끝맺고 있다. [결론]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모든 일은 아주 오래전, 정치 체제가 매우 달랐던 사회, 다시 말해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 원리가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던 사회에서 일어났다.”

 

아마 이 문장은 텍스트로 삼은 셰익스피어 희곡들의 시대와 현재는 다르다고 명시함으로써, 묘사된 폭군과 서술한 폭정과 처사들이 현실이 아니니 현자 타임을 가지라는 뜻일 것이다.

 

본서는 셰익스피어라는 극작가의 희곡들을 통해 폭군과 폭정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가는 어떠해야 하며, 법이 아닌 독재의 시대에 어떤 동조자가 등장할 수 있는지, 또 그런 상황에서 민중은 어떤 현실을 맞이하였는지를 관객이자 비평가의 눈으로 보며, 이 시대에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 전에 셰익스피어의 시대부터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당시는 카톨릭인도 청교도인도 여왕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책자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손목이 잘리고 거열형이라는 능지처참을 당하던 시대다. 그 외에도 당대 유명인사나 셰익스피어의 지인들 역시 수감되거나 고문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어떻게 지금 남아있는 그 숱한 대사들과 같은 정치 비판이 가능했을까? 그것도 무대에 세워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배우의 입을 통해 소리치며 말이다.

 

그건 광기에 빠진 [리어왕]의 대사이거나 서사의 맥락이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며 그에 항거하는 인물의 대사로 토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예술을 인정하는 유럽의 문화와 닿아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의 [변호인]이라는 영화에서 배경이 된 시대에는 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책만 읽어도 구속되어 고문을 당했고, 가수들은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정부의 검열로 나라 찬양 노래를 앨범 출시 때마다 한 곡씩 수록해야 했으며,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곡은 금지곡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정치 비판이라는 순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극이라는 무대예술을 통해 폭군의 성격적 특질과 조력자와 선동가의 행태를 날카롭게 분석했고, “저속한 본능에 호소하고 깊은 불안에 의지해 두각을 드러내는 인간상, 기만적인 포퓰리즘으로 격렬한 파벌 정치가 벌어지는 정치판과 그런 독재자를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를 부추겨 폭정 속에서 기성 제도가 파괴되어가는 것을 유도하는 인물들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작가적 시선, 당시 정치제도의 문제, 가장 주시되는 정치적 문제, 폭군의 전형, 조력자의 유형, 폭군의 심리적 특징, 그를 제어하고 유도하려는 자, 폭군의 능력치, 그리고 폭정의 끝등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시된 [리어왕]이라는 희곡 속 등장인물을 통해 항거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 인물의 모습을 기품이라고 한다거나 존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에는 그랬다 해도 이 시대에 그를 롤모델 삼아 항거하다 죽으라는 건 몹시 과한 요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피해를 감안한다 해도, 어떤 시대에는 시대적 저항이 따라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셰익스피어는 독재자의 손에 사회가 맞이하는 끔찍한 결과를 그리기도 했고 그런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겪는 폭력과 고통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말년에 이런 상상을 했다고 한다.

 

최고의 희망은 공동체적인 삶이 완전히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 사람들이 어느 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발맞추어 행진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 있다.”

 

독재자와 그 앞잡이들은 그들 자신의 사악함 때문에 균열되며, 억압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진압할 수 없는 민중의 정신에 압도되어 반드시 파멸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안다. 누가 독재자인지, 누가 앞잡이들인지, 그들이 얼마나 사악한지. 하지만 민중의 정신은 진압할 수 없기 이전에 행동하지 않고 있다. 이 난국을 그리스 연극무대 천정에서 내려오는 데우스엑스마키나 같은 인물이 등장해 초월적인 힘으로 해소해주길 기다리고만 있다. 계엄은 내란이 되었고, 쿠테타는 가능성이 없고, 혁명은 일어날 기미가 없다. 이런 상황에 맞이할 파멸은 폭군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이 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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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2-27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이하라 2025-12-27 09: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님^^
 
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 - 우리 삶에 사랑과 연결 그리고 관계가 필요한 뇌과학적 이유
벤 라인 지음, 고현석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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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왜친구를원하는가 #벤라인 #더퀘스트 #뇌과학 #신경과학 #사회적연결 #사랑 #연결 #관계 #가족 #친구 #공감 #연민 @thequest_book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에 관한 관심은 무엇보다 관계의 필요성과 유익을 일깨우고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하는 팁을 깨우쳐 더 나은 삶을 주는 책이리라 생각되어서이다.

 

읽고나서 본서에 대한 맥락적 감상은 연결감을 만드는 뇌과학적 이론은 알겠으나 그 필요성과 유익 면에서는 설명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하는팁은 방법론적이라기보다 이론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으니 각자가 적용할 방법을 찾아내면 적용도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독서로 갖춰진 지식을 실제 적용하게 된다면 삶이 더 나아졌다고 느낄 것은 당연하지 않나 싶다.

 

우선 필요성과 유익 면에서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낀 면은 사회적 연결감을 느낄 수 없을 때 오는 부정적 측면에 대한 설명이 다소 간략하고 노년에 집중해 다소만 나열되어 있다고 여겨져서다, 사회적 연결이 결여된 상황에 대한 부정적 설명은 데이비드 롭슨의 [연결의 법칙]이라던가 그와 같은 맥락의 관계에 관한 책으로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다소 간략하긴 하지만 사회적 연결이 결여된 상황은 여러 건강상의 문제와 심리적 문제를 낳는다는 걸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뇌 구조와 동물 실험, 그리고 신경 물질, 여러 약품의 작용을 서술하며 사회적 연결감이 작용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동물 실험의 경우, 실험용 프레리 들쥐가 다른 쥐가 갇혀있는 걸 풀어주는 버튼과 먹이를 주는 버튼 두 개 중 모두 다른 갇힌 쥐를 풀어주는 버튼을 선택한다는 예시를 전하고 있다. 또 집단 간의 마찰이 있는 원숭이들 간에 충돌로 심한 부상을 입은 원숭이가 적대하던 상대 집단에 어울리려 해도 (부상을 입은 원숭이를) 상대 집단은 포용하고, 이동 과정에서 부상으로 더디게 따라오면 그 부상당한 원숭이를 도착할 때까지 상대 집단 원숭이들이 기다려준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물이 인간보다 나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부상당하면 배척할 것이고, 어린이를 가둬둔 케이지와 1000만 달러가 든 케이지 중 돈이 든 케이지를 선택하는 경우가 압도적일 것이다. 게다가 인간을 많이 겪어봐서 아는데 갇히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어린이를 죽이는 버튼을 누르면 9000만 달러를 준다고 한다면 망설이지도 않을 인간들이 대다수라는 걸 너무 명백히 알고 있다.

 

어쨌든 이와 같은 동물 실험의 경우에도 갇힌 쥐를 풀어주던 쥐들에게 옥시토신이나 세로토닌 분비를 억제하는 시술을 하면 다정하던 쥐들도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높아진다고 한다.

 

간결하게 정의하면 본서에서는 연결감의 비밀을 유대감을 느끼는 뇌 부위들에서 옥시토신과 세로토닌, 도파민 등이 분비되어 그렇다고 정의하고 있다.

 

연인과의 연결을 느끼는 뇌 부위들과 엄마가 자기 아기에게 모성을 느끼는 뇌 부위는 비슷하다고 한다. 물론 다른 두 부위도 작용한다는 데 뇌간에 위치한 한 부위의 작용 가운데 하나는 영적 체험과 관련되어있다는 설명도 괄호 안에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어머니의 사랑은 신성하다는 표현을 어느 나라 사람이나 하기도 하는데 어머니의 뇌 자체가 아기를 보면 영적 체험을 하는 신성함 속에 있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 아기를 바라만 봐도 옥시토신과 도파민 등 보상 체계를 담당하는 호르몬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자기 아기를 돌보는 자체에서 이미 상당한 보상을 여성의 뇌가 여성에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출산 당시부터 시작되는데 아기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느끼는 통증을 완화할 목적으로도 아기의 뇌를 보호할 목적으로도 옥시토신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짧게 정리하면, “사회적 고립은 죽음에 이를 정도의 건강상, 정신상의 문제를 낳는. 연결감은 공감하는 데서 시작하는 데 공감하게 하는 신경인 폰 에코노모 뉴런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 호감을 느끼는 상대에게는 자기-타자 중첩이라는 동조를 하게 된다. 친한 친구 사이에는 협력할 때는 서로의 뇌가 거의 같은 기능을 하는 상태인 뇌 간 동기화를 이룬다. 더욱이 절친인 경우 애초에 뇌의 구조가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비슷한 상대에게 끌린다는 호모필리라고 한다) 깊은 친밀감 속에서는 옥시토신세로토닌이 뇌의 독특한 영역에서 과다하게 분비된다. “만질 때 많이 분비되며 눈을 맞춰도옥시토신이 분비된다.

 

그리고 생명체는 이미 생존과 번식에 특화되어 존재하니 (초기 인류에게는 함께 사냥했을) 생존에 필요한 친구 경우에도 사회적 연결감에 필요한 뇌와 호르몬이 기능하지만, 이런 기능은 생존과 번식 그 자체인 연인이나 부모, 자식 사이에 더 강력하다. 한마디로 친구도 필요하지만 가족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젊을 때는 친구와의 시간이 많지만 세월이 가며 점점 가족과 보낼 시간이 다수가 되며 이는 가족 간의 유대가 생존과 건강과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본서의 제목은 [뇌는 왜 가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가]였어야 더 맞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인상 깊었던 건, “의사들은 연차가 길어질수록 점점 공감 능력을 잃어간다는 것, “대학을 나온 사람들의 공감 능력이 세월이 가도 높다는 것, “여자의 눈물 냄새만으로도 남자의 공격성이 완화된다는 것,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면 여성의 번호를 얻을 확률이 평상시보다 3배 이상에서 6배 이하의 수준으로 더 높다는 것 등이었다.

 

진통제와 항불안제가 공감을 저해하고 연결을 방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별의 고통이 극심할 때는 진통제가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일부 마약류는 사회적 연결감을 극대화해 2023년 백인우월주의 단체 지도자까지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게 만든 사례가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충격이었다. “호르몬(세로토닌)의 기능이 사람의 관점과 사상까지 바꿀 수 있다니 놀랍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의 할머니 사례를 들며 인간관계가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계란, “사회적 연결감이란, 우리의 건강을 너머 생존과 직결되기도, 우리에게 사는 의미가 되기도한다.

 

이런 관계의 비밀을 알고 (이를 아는 자체도 의미 있다) 이를 일상에서 적용할 방안을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져보면 어떤가 싶다. “관계와 가족과 친구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한 분들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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