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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체인지 - 리플혁명과 약탈경제 그리고 대공황의 덫
화이트독 지음 / 비엠케이(BMK) / 2025년 12월
평점 :
#슈퍼체인지 #화이트독 #BMK #약탈경제 #디지털연방준비제도 #대전환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chae_seongmo @bmk_book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 #도서제공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a. 세뇌와 최면의 기본 원리는 “하나의 세계를 구조화해 다른 이가 그 세계를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다. “나의 세계를 너의 세계로 인식하게 하여 그 세계의 구조 안에서 반응하게 하는” 것이다.
b. 음모론적 세계관도 이 기본 원리에 입각해서 “한 사람이 구조화한 세계를 다른 이들이 자기 세계로 인식하게 하여 이 세계의 구조 안에서 사고하고 반응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c. 하지만 ‘음모론적 세계 밖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세계나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대화는 이와 다를 것 같은가?’ 전혀 아니다. “모든 대화의 노선도 각자의 세계관을 상대에게 제시하는 데 있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 세계에 대한 인식 역시 이런 세뇌나 최면의 기본 원리 하에 우리 뇌리에 각인된 것”이다.
“자본주의적 세계관이 다른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세뇌이자 최면이다.”
[능력주의, 황금만능주의, 승자독식, 적자생존, 약육강식] 우리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관점 아래 세계를 인식”하고 있다. “능력 있는 놈이 대우도 더 받는 게 당연하다.” “이 세계를 운영하고 지탱하는 건 돈이다. 그리고 승리한 자가 싹 쓸어가는 건 이 사회에서 당연한 거다.” “강자가 살아남는 건 자연의 순리 아닌가? 약한 놈이 잡아 먹히는 건 그들이 노력하지 않은 탓인데 강자가 그들 위에 서는 건 당연하지 않나?” 이것이 이 ‘사회의 기본 논리’다. 대부분이 이런 논리에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왜?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사회에서는 이런 기본 논리를 유년 시절부터 양육되고 학업을 이어오고 사회를 보아오고 살아가며 당연하게 수용하도록 구조화된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달동네 빈민들을 용역 깡패들이 쓸어버리며 내쫓을 때도 당연하게 묵인했다. 부자들이 백신제조사에 투자해 백신을 각국 정부가 받아들이며 코비드-19 시절 대중이 직장을 잃고 경제적으로 파행을 겪는 와중에도 백신제조사의 주가가 상승해 부자들의 부가 절정에서 더 절정으로 이를 때도 당연한 줄 알고 있었다. 이들은 소위 팬데믹 채권이라는 것도 만들어 감염병이 확산되는 자체가 이들의 부를 축적하게 했다. 게다가 2만 5천원 짜리 책이 한권 팔릴 때마다 50원이 기부되면 이것이 사회적 기부이고 사회적 수혜를 주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소액을 대중에게 쓰며 좋은 일 하는 채권으로 인식시키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이제는 급기야 자본주의적 세계관의 폐해가 극한으로 이르러 동아시아에서 사람들을 납치하고 장기를 적출해 팔아도 (돈을 벌자고 사람 죽여 장기를 꺼내는 이딴 세상이 경악할 세상인 줄도 모른 채) 돈 때문이니 이런 거 아니냐며 각국 정부와 세계의 기구들은 이게 자연스러운 사건인양 별 대응 없이 지나치고 있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 인류사적인 거대한 규모의 경악할 사안이라고 생각했다면 각국과 세계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처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이란 상(이미지)”이 이 시대에는 너무도 당연하다 보니 경악도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다.
d. 그렇다면 본서가 보여주는 세계의 경제구조와 사회구조를 제어하고 화폐제도의 구조와 국제적인 금융 구조를 통제하는 집단이 있다는 세계관은 과연 실상과 먼 것인가? 전혀 아니다. 돈이 힘인 세계에서 돈을 추구하고 이긴 놈이 다 갖는 게 당연한 세계에서 이미 힘이 있는 놈들이 더 큰 힘을 가지려 하고 자신의 힘을 지속하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세계에 룰이 있으며 누구나 그 룰을 지키리라 기대한다. 왜냐면 룰이 아니고는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룰을 만들 수 있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 과연 대중 누구나를 위한 룰을 만들겠는가 아니면 이미 주도권을 가진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겠는가?
이미 우리는 우리나라 안에서 그에 대한 답을 모두 보았다. 절대적인 힘을 한 집단이 가지면 여지없이 자신의 집단과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게 모든 룰을 송두리째 바꾸려고 든다. 그게 힘의 어두운 마력에 빠진 모든 인간의 속성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런 인간적인 속성을 세계의 절대적인 힘을 가진 주도자들은 갖지 않을 거라고 볼 수 있겠는가? 이들도 결국 자기들의 힘으로 자기들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어 왔고 만들고 있고 만들어 갈 거란 건 그저 짐작만으로 끝날 사안이 아닐 것이다.
e. 본서의 저자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저술한 것이다. 세계의 주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들이 어떻게 세계적인 경제구조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룰을 통해 어떻게 더욱더 자신들의 힘을 축적하고 키워왔는지, 그리고 새로운 룰을 어떤 구조로 만들고 있는지. 그걸 서술한 것이 이 책이다.
저자는 크게 경제 흐름을 그려주고 이 안에서 힘을 가진 자들이 만든 룰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자기에게 유익을 더했는지 설명한다.
(a) 세계의 경제사적 흐름을 [모던Ⅰ]과 [모던Ⅱ]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모던Ⅰ]의 시기는 16세기 전후부터 20세기로 이 시기의 발전을 바탕으로 금융세력들은 진짜 힘을 비축했다. 그래서 이들은 세계적 룰을 구조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실물 황금에 대중이 가치를 인정하는 데에 대응하여 황금을 교환한다는 개념을 적용한 대환화폐를 창조하고 시대를 조금 지나서는 이 대환화폐를 폐기하며 신용만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 의미의 (불환) 화폐제도를 창조했다. 한마디로 아무 가치 없는 종이에다 가치를 부여하기로 공공의 약속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개념의 경제구조를 창조했다. 이 새로운 화폐는 역동성을 갖게 된다. 다른 신용의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니 말이다.
(b) BIS(국제결제은행) 등 국제적인 경제기구들은 이들이 국제적인 공신력이나 강제력을 갖는다는 아무런 법 조항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전 세계 각국 정부는 이들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다. 각국 금융사들 역시 이들의 제도와 권고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며 이 시대의 신용화폐의 원리에 따라 신용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양식의 금융시스템과 투자대상을 창조해내고 있다. 역사가 오래인 기존의 주식 등의 시스템은 더욱 활성화되었고 주도권을 가진 자들은 대중이 투자하도록 유도해 ‘펌프&덤프’라고 주가를 올리고 빠지는 방식으로 대대적인 부의 축적을 이뤄갔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돈을 찍어내는 자체로 개인회사인 연방준비제도가 정부 기구와도 같은 권위를 가지고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 경제를 좌우한다.
국제적인 경제기구들의 요인들은 각국의 경제와 정부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며 연방준비제도 인사들은 정부 관리가 되었다가 다시 개인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관례이다. 이 인사들이 세계인들의 다수인 대중을 위한 제도를 펼치리라는 기대를 우리는 한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속해 있다고 믿는 집단에 진심(충성)을 다하는 게 당연하다. 이들이 과연 대중을 위하려 하겠나 아니면 자신들이 속해서 세계적 질서를 함께 만들고 있었다고 믿는 소수의 이익을 위하려 하겠나?
(c) 그리고 이제는 저자가 말하는 [모던Ⅱ]의 시기로 이행한다. 지금은 이제까지의 경제 제도가 완전히 대전환되는 시기다. 암호화폐와 CBDC, 블록체인, 결제 시스템과 금융시스템 전체의 전면적인 전환, AI와 그 기술을 기반으로 해 파생되는 기술력으로 사회의 대대적인 변화, 환경변화와 그 대응으로 인한 제도와 기술 적용으로 인한 일대 전환 등이 맞물려 사회 전체의 대혁신이자 거대한 전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f.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진작부터 했었지만, 다수의 지식인층마저 안일했다. 그 모든 우려를 사실이라고 한다 해도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인류는 어떤 거대한 변화에도 모두 적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변화도 적응할 것이고 살아남을 거라고 말이다. 인류가 모두 다 살아남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있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변화의 끝에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지금까지 마주해본 적 없는 전체주의 사회, 절대 통제 사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시스템이 우리를 이전과는 다른 사회로 인도할 것이다. 저자와 같은 이들이 이와 같은 저작을 저술한 이유 자체가 바로 그러한 경고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제까지 세계가 성장해온 여정의 이면을 기존과는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싶을 때. 세계적 변화의 추세와 변화의 이유를 기존에 입장을 떠나 생각해 보고자 할 때.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안을 나름 구상해 보려 전체를 조망하고 싶을 때.
본서와 같은 시각의 저작들을 찾아 읽는 것도 나쁜 선택은 결코 아닐 거라 말씀드려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사람과 세계에 아직 희망이 있는 이유를 짚고 싶다. 이미 말했듯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은 일종의 세뇌이자 최면의 기본 원리가 적용된 틀을 통해서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능력주의나 승자독식과는 다른 견해로 “내가 사는 가정은 문제 있더라도 내가 사는 마을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마을도 문제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마을은 문제 있지만 나라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가 나라에도 문제가 많다는 걸 인식했지만” 대부분에 사람들은 “세계는 문제없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는 어디에서 나올까? 우리가 그렇게도 세뇌되고 최면에 걸린 와중에도 말이다. 그건 바로 우리 내면에, 우리의 정신에, 우리의 영혼에 “정의와 선이 살아있는 세계의 원형”이 선험적으로 뚜렷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만으로도 세상에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 안의 천국을 이 세계에 구현할 가능성과 그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하나 늘어갈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무너져 가는 세계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는 것”, 그것도 또한 인간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