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 셰익스피어가 그린 권력과 정치, 그리고 악랄한 독재자들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김한영 옮김 / 까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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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글방으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서는 [결론]이란 장으로 끝맺고 있다. [결론]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모든 일은 아주 오래전, 정치 체제가 매우 달랐던 사회, 다시 말해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 원리가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던 사회에서 일어났다.”

 

아마 이 문장은 텍스트로 삼은 셰익스피어 희곡들의 시대와 현재는 다르다고 명시함으로써, 묘사된 폭군과 서술한 폭정과 처사들이 현실이 아니니 현자 타임을 가지라는 뜻일 것이다.

 

본서는 셰익스피어라는 극작가의 희곡들을 통해 폭군과 폭정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가는 어떠해야 하며, 법이 아닌 독재의 시대에 어떤 동조자가 등장할 수 있는지, 또 그런 상황에서 민중은 어떤 현실을 맞이하였는지를 관객이자 비평가의 눈으로 보며, 이 시대에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 전에 셰익스피어의 시대부터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당시는 카톨릭인도 청교도인도 여왕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책자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손목이 잘리고 거열형이라는 능지처참을 당하던 시대다. 그 외에도 당대 유명인사나 셰익스피어의 지인들 역시 수감되거나 고문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어떻게 지금 남아있는 그 숱한 대사들과 같은 정치 비판이 가능했을까? 그것도 무대에 세워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배우의 입을 통해 소리치며 말이다.

 

그건 광기에 빠진 [리어왕]의 대사이거나 서사의 맥락이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며 그에 항거하는 인물의 대사로 토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예술을 인정하는 유럽의 문화와 닿아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의 [변호인]이라는 영화에서 배경이 된 시대에는 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책만 읽어도 구속되어 고문을 당했고, 가수들은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정부의 검열로 나라 찬양 노래를 앨범 출시 때마다 한 곡씩 수록해야 했으며,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곡은 금지곡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정치 비판이라는 순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극이라는 무대예술을 통해 폭군의 성격적 특질과 조력자와 선동가의 행태를 날카롭게 분석했고, “저속한 본능에 호소하고 깊은 불안에 의지해 두각을 드러내는 인간상, 기만적인 포퓰리즘으로 격렬한 파벌 정치가 벌어지는 정치판과 그런 독재자를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를 부추겨 폭정 속에서 기성 제도가 파괴되어가는 것을 유도하는 인물들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작가적 시선, 당시 정치제도의 문제, 가장 주시되는 정치적 문제, 폭군의 전형, 조력자의 유형, 폭군의 심리적 특징, 그를 제어하고 유도하려는 자, 폭군의 능력치, 그리고 폭정의 끝등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시된 [리어왕]이라는 희곡 속 등장인물을 통해 항거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 인물의 모습을 기품이라고 한다거나 존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에는 그랬다 해도 이 시대에 그를 롤모델 삼아 항거하다 죽으라는 건 몹시 과한 요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피해를 감안한다 해도, 어떤 시대에는 시대적 저항이 따라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셰익스피어는 독재자의 손에 사회가 맞이하는 끔찍한 결과를 그리기도 했고 그런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겪는 폭력과 고통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말년에 이런 상상을 했다고 한다.

 

최고의 희망은 공동체적인 삶이 완전히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 사람들이 어느 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발맞추어 행진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 있다.”

 

독재자와 그 앞잡이들은 그들 자신의 사악함 때문에 균열되며, 억압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진압할 수 없는 민중의 정신에 압도되어 반드시 파멸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안다. 누가 독재자인지, 누가 앞잡이들인지, 그들이 얼마나 사악한지. 하지만 민중의 정신은 진압할 수 없기 이전에 행동하지 않고 있다. 이 난국을 그리스 연극무대 천정에서 내려오는 데우스엑스마키나 같은 인물이 등장해 초월적인 힘으로 해소해주길 기다리고만 있다. 계엄은 내란이 되었고, 쿠테타는 가능성이 없고, 혁명은 일어날 기미가 없다. 이런 상황에 맞이할 파멸은 폭군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이 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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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2-27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