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란 무엇인가 김영민 논어 연작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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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시절에 사람들은 사회의 기준과 철학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욱 이전의 사회가 명확한 기준과 규범을 지키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이상화하며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까닭에 더욱 예와 인과 덕을 가르치던 옛사람과 고전에 대한 갈증을 느껴 이때 공자와 논어에 대한 저작들이 연이어 출간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최근 [논어 연작] 3부작을 완간하였다고 하는데 저자 외에도 한형조 님의 [두 개의 논어]와 푸베이룽의 [공자사전]도 마침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었다. 그 외에도 최근 붓다의 가르침과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대중서들도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이 갈등과 분열의 혼란 시기에 대중이 옛사람들의 말씀을 찾는 건 아마도 과거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동경 때문인 듯도 하다. 확실히 사극 속 세상은 균형과 안정이 그 시대의 실상인 듯한 착각도 주기 때문이다. 어느 시절에나 과거에 대한 이상화가 있었다. 수메르 쐐기 문자에도 요즘 사람들은 너무 예의 없다는 식의 시대에 대한 평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현재가 불안정하고 혼돈으로 느껴지고 과거가 동경의 대상이 되는 건 인간의 근본적인 인지적 오류일지도 모르나 현재는 너무도 세계도 인간의 기준도 불안정하고 혼란이 극한에 이른 시기다. 그렇기에 규범과 기준이 명확하고 그를 통해 안정을 가져오던 시절의 고전이 주목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저자는 논어 연작을 공자를 찬양하거나 비판할 목적으로 쓴 것도 아니고, 인류의 결정적 지혜나 한국 사회를 위한 청사진으로써 쓴 것이 아니라고한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인생을 구제해줄 지혜를 찾으라고 쓴 것도 아니라고말이다. “그저 우리의 생각을 구성해온, 구성하고 있는, 구성해나갈 자원의 하나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전 독서의 의미를 다시 새겨주는데 고전을 펼쳐 드는 이유는 얼어붙은 자기 생각에 균열을 내기 위해, 좀 더 넓고 깊은 생각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나.”라며 일깨우고 있다.

 

나로서는 공자와 논어를 정치적 수단으로서 예를 삼은 사람이자 학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본서에서는 공자가 배움 자체의 의미를 더 높이 여겼으며 수단으로서만 중시하지 않았다고한다. 이는 서양의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정치적 수단으로 삼기 위한 도구로서 배움을 찾았다는 사실과는 완연히 다른 것이다.

 

공자는 배움 자체가 정치 수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가 가장 사랑한 제자는 배움 자체를 사랑하던 안회였고 안회가 죽고 나서 누군가 가장 뛰어난 제자가 누구냐고 묻자 공자는 배우는 자체를 기뻐하던 안회가 가장 뛰어났고 그 외에는 그저 그렇다는 식의 답변을 했다고 한다.

 

공자는 배움을 통해 바뀌어야 하며 가장 지혜로운 자와 가장 어리석은 자만이 바뀌지 않는다말했다고 한다. 공자가 말하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탁월함은 배움을 통해 획득되는 능력이지 생득적인 능력이 아니라고 한다. 공자가 말한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스스로를 확립하였고, 40세에 미혹됨을 벗어났으며, 50세에 천명을 알았고, 60세에 귀가 순해졌으며, 70세에 마음 가는 데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다는 자평 자체가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친 노력과 배움의 결과인 것이라 저자는 설명한다.

 

이 노년까지 꾸준히 성장하는 공자의 인생 역정은 세네카가 늙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이 평생에 걸친 자기 단련으로 열매를 맺는 노년기까지 우리는 멈추지 말고 배우고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분투하면서 우리가 구축해온 스스로에 대한 관념을 가면이라 한다면, 가면은 우리의 참자아,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자아다. 결국 역할이라는 것은 우리의 제2의 천성, 인성을 구성하고 통합하는 성분이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 이 세상에 들어와, 성격을 획득하고, 그러면서 사람이 된다.”

 

2의 천성을 통해 욕망을 소거하지도 통제하지도 않으며 자연스럽게 욕망을 실현한 상태에 이른 게 공자의 노년에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야 한다배움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배움을 좋아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른다.

 

공자는 예전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향상을 위해서 하였으나,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한다고 했다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배움이란 결국 자기 좋자고 하는 것이다. 자기가 향상되는 맛에 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신플라톤주의에서 학생들이 읽는 최초의 대화편 [알키비아데스] 속의 배움은 자기 향상의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목적에 봉사하는 수단적인 배움이라고 한다. “공자의 배움은 이런 것이 아니라 스토아적 자기 연마로 인생 전체를 통해 꾸준히 해야 할 일이며 자기 연마의 결과는 노년기에 절정에 이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본서에는 논어가 집필된 방식, 공자와 논어가 인정받기까지 역사, 논어에서 이르는 공자의 세계관과 가르침,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타 문명의 고전이나 경전과 논어의 역할과 무게의 비교 등등이 담겨있다.

 

논어의 가르침을 설명과 함께 듣는, 배움이 되기도 하는 책이자 논어 자체에 대한 지식을 비교, 분석과 함께 들을 기회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고전이 필요한 이유를 느끼기 충분한 책이다. 논어라는 고전과 이 책이 목마름이 깊어지는 이 시절에 시원한 한잔이 되어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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